[ 조회수 : 38 등록일 : 2021-06-02 ]
전봉준(1855~1895)
동학농민군의 함성은 1894년 이 강산을 뒤덮었다. 녹두장군 전봉준이 지휘한 동학농민군은 부패한 벼슬아치를 몰아내고 폐정을 바로잡기 위해 봉기하였다.
농민통치기구인 집강소에서 개혁활동을 펼치던 중 일본이 침략 음모를 꾸미자 이를 몰아내려고 전면 재봉기하였다.
동학농민군 지도자 전봉준은 공주 우금치에서 일본군이 주력인 진압군에게 패배한 뒤 서울 전옥서(한성부 중부 서린방)에 같혔다. 그리고 권설재판소에서 사형판결을 내린 다음날인 1895년 4월 24일 새벽 2시에 손화중, 김덕명, 최경선, 성두한 등 동지들과 함께 교수형을 받았다.
이제 순국 123주년을 맞이하여 국민 성금을 모으고 서울시의 협조를 받아 종로 네거리 전옥서 터에 녹두장군의 마지막 모습을 동상으로 세운다.
- 2018년 4월 24일 사단법인 전봉준장군 동상건립위원회 - [출처 : 전봉준 동상 글]
* 전옥서(典獄署) : 조선 형조에 속한 감옥으로, 감옥과 죄인에 관한 사무를 관장했던 관서였다. 전옥서는 남자 옥사와 여자 옥사로 구분 되어 있었고, 수감되는 죄수의 대부분은 상민이었지만, 때에 따라 왕족이나 양반, 관리 출신의 죄인들도 수감되었다
동학농민군의 함성은 1894년 이 강산을 뒤덮었다. 녹두장군 전봉준이 지휘한 동학농민군은 부패한 벼슬아치를 몰아내고 폐정을 바로잡기 위해 봉기하였다.
농민통치기구인 집강소에서 개혁활동을 펼치던 중 일본이 침략 음모를 꾸미자 이를 몰아내려고 전면 재봉기하였다.
동학농민군 지도자 전봉준은 공주 우금치에서 일본군이 주력인 진압군에게 패배한 뒤 서울 전옥서(한성부 중부 서린방)에 같혔다. 그리고 권설재판소에서 사형판결을 내린 다음날인 1895년 4월 24일 새벽 2시에 손화중, 김덕명, 최경선, 성두한 등 동지들과 함께 교수형을 받았다.
이제 순국 123주년을 맞이하여 국민 성금을 모으고 서울시의 협조를 받아 종로 네거리 전옥서 터에 녹두장군의 마지막 모습을 동상으로 세운다.
- 2018년 4월 24일 사단법인 전봉준장군 동상건립위원회 - [출처 : 전봉준 동상 글]
* 전옥서(典獄署) : 조선 형조에 속한 감옥으로, 감옥과 죄인에 관한 사무를 관장했던 관서였다. 전옥서는 남자 옥사와 여자 옥사로 구분 되어 있었고, 수감되는 죄수의 대부분은 상민이었지만, 때에 따라 왕족이나 양반, 관리 출신의 죄인들도 수감되었다
[촬영일 : 2021-06-03]
서울 종로구 영풍문고 앞에 건립된 녹두장군 전봉준 동상
[촬영일 : 2021-06-03]
서울 종로구 영풍문고 앞에 건립된 녹두장군 전봉준 동상
[촬영일 : 2021-06-03]
서울 종로구 영풍문고 앞에 건립된 녹두장군 전봉준 동상
[촬영일 : 2021-06-03]
서울 종로구 영풍문고 앞에 건립된 녹두장군 전봉준 동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