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회수 : 32 등록일 : 2025-06-15 ]
덕진진은 조선시대 강화 해협을 지키는 요충지로 원래는 [1]수영에 속한 진이었다. [1]덕진돈대, [2]남장포대 등이 모두 덕진진에 소속되어 있었다. [4]돈대와 [5]포대는 조선 숙종 5년(1679)에 설치했다.
19세기 후반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등 외세에 맞서 싸운 장소이며, 신미양요 때 초지진에 상륙한 미국 해병대에 의하여 점령을 당한 슬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때 덕진진은 파괴되어 무지개 모양의 홍예문만 남아 있었으나 1977년 돈대와 성곽을 보수하고 덕진진의 성문인 공조루를 복원했다.
덕진돈대에서 강화 해협을 바라보는 위치에 조선 고종 4년(1867년) 흥선대원군의 명으로 강화 덕진첨사가 건립한 경고비가 세워져있다. 개화기에 외국 선박의 출입을 통제하겠다는 척화의 의지를 담고 있는 비석이다. 비의 크기는 높이 147cm, 너비 54.5cm, 두께 28cm로 정면에는 "海門防守他國船愼勿過(해문방수타국선신물과), 바다의 관문을 지키고 있기에 외국 선박은 통과할 수 없다."라고 각인되어 있다.
[1] 덕진돈대(德津墩臺) : 덕진진에 소속된 2개 돈대 중 하나이다. 북쪽의 광성보와 남쪽의 초지진 중간에 위치하여 강화수로의 가장 중요한 요새지이기도 하다. 신미양요(1871)당시 미국함대와 48시간 동안 치열한 포격전을 전개하였는데 이 때 파괴되었던 것을 1977년에 복원하였다.
[2] 남장포대(南障砲臺): 강화 9개 포대 중의 하나로, 1871년(숙종 5)에 축조되었으며 강화 덕진진의 관할하에 있었다. 대포 10문이 설치되어 있었으며 고종 8년(1871) 신미양요 때 덕진돈대와 함께 미국 함대와 포격전을 전개하였던 곳이다. 성첩과 시설물은 이때 모두 파괴되었는데, 1977년에 다시 복원하였다
[3] 수영(水營) : 조선 시대에 수군절도사가 있던 군영
[4] 돈대(墩臺) : 경사면을 절토하거나 성토아여 얻어진 계단 모양의 평단지를 옹벽으로 받친 방위시설
[5] 포대(砲臺) : 적의 대포 공격으로 부터 무기를 보호하고 아군의 대포 공격을 편리하도록 만든 시설
19세기 후반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등 외세에 맞서 싸운 장소이며, 신미양요 때 초지진에 상륙한 미국 해병대에 의하여 점령을 당한 슬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때 덕진진은 파괴되어 무지개 모양의 홍예문만 남아 있었으나 1977년 돈대와 성곽을 보수하고 덕진진의 성문인 공조루를 복원했다.
덕진돈대에서 강화 해협을 바라보는 위치에 조선 고종 4년(1867년) 흥선대원군의 명으로 강화 덕진첨사가 건립한 경고비가 세워져있다. 개화기에 외국 선박의 출입을 통제하겠다는 척화의 의지를 담고 있는 비석이다. 비의 크기는 높이 147cm, 너비 54.5cm, 두께 28cm로 정면에는 "海門防守他國船愼勿過(해문방수타국선신물과), 바다의 관문을 지키고 있기에 외국 선박은 통과할 수 없다."라고 각인되어 있다.
[1] 덕진돈대(德津墩臺) : 덕진진에 소속된 2개 돈대 중 하나이다. 북쪽의 광성보와 남쪽의 초지진 중간에 위치하여 강화수로의 가장 중요한 요새지이기도 하다. 신미양요(1871)당시 미국함대와 48시간 동안 치열한 포격전을 전개하였는데 이 때 파괴되었던 것을 1977년에 복원하였다.
[2] 남장포대(南障砲臺): 강화 9개 포대 중의 하나로, 1871년(숙종 5)에 축조되었으며 강화 덕진진의 관할하에 있었다. 대포 10문이 설치되어 있었으며 고종 8년(1871) 신미양요 때 덕진돈대와 함께 미국 함대와 포격전을 전개하였던 곳이다. 성첩과 시설물은 이때 모두 파괴되었는데, 1977년에 다시 복원하였다
[3] 수영(水營) : 조선 시대에 수군절도사가 있던 군영
[4] 돈대(墩臺) : 경사면을 절토하거나 성토아여 얻어진 계단 모양의 평단지를 옹벽으로 받친 방위시설
[5] 포대(砲臺) : 적의 대포 공격으로 부터 무기를 보호하고 아군의 대포 공격을 편리하도록 만든 시설
[촬영일 : 2025-05-04]
공조루(控潮樓) : 강화 덕진진의 정문
[촬영일 : 2025-05-04]
공조루(控潮樓) 입구 우물
[촬영일 : 2025-05-04]
강화 덕진진(江華 德津鎭)
[촬영일 : 2025-05-04]
강화 덕진진(江華 德津鎭)
[촬영일 : 2025-05-04]
강화 덕진진의 정문 공조루(控潮樓)를 지나서
[촬영일 : 2025-05-04]
강화 덕진진의 정문 공조루(控潮樓)
[촬영일 : 2025-05-04]
강화 덕진진의 정문 공조루(控潮樓)
[촬영일 : 2025-05-04]
강화 덕진진(江華 德津鎭)
[촬영일 : 2025-05-04]
남장포대(南障砲臺):강화 9개 포대 중의 하나로, 1871년(숙종 5)에 축조되었으며 강화 덕진진의 관할하에 있었다. 대포 10문이 설치되어 있었으며 고종 8년(1871) 신미양요 때 덕진돈대와 함께 미국 함대와 포격전을 전개하였던 곳이다
[촬영일 : 2025-05-04]
남장포대(南障砲臺):강화 9개 포대 중의 하나로, 1871년(숙종 5)에 축조되었으며 강화 덕진진의 관할하에 있었다. 대포 10문이 설치되어 있었으며 고종 8년(1871) 신미양요 때 덕진돈대와 함께 미국 함대와 포격전을 전개하였던 곳이다
[촬영일 : 2025-05-04]
남장포대(南障砲臺):강화 9개 포대 중의 하나로, 1871년(숙종 5)에 축조되었으며 강화 덕진진의 관할하에 있었다. 대포 10문이 설치되어 있었으며 고종 8년(1871) 신미양요 때 덕진돈대와 함께 미국 함대와 포격전을 전개하였던 곳이다
[촬영일 : 2025-05-04]
남장포대(南障砲臺):강화 9개 포대 중의 하나로, 1871년(숙종 5)에 축조되었으며 강화 덕진진의 관할하에 있었다. 대포 10문이 설치되어 있었으며 고종 8년(1871) 신미양요 때 덕진돈대와 함께 미국 함대와 포격전을 전개하였던 곳이다
[촬영일 : 2025-05-04]
남장포대(南障砲臺):강화 9개 포대 중의 하나로, 1871년(숙종 5)에 축조되었으며 강화 덕진진의 관할하에 있었다. 대포 10문이 설치되어 있었으며 고종 8년(1871) 신미양요 때 덕진돈대와 함께 미국 함대와 포격전을 전개하였던 곳이다
[촬영일 : 2025-05-04]
남장포대(南障砲臺):강화 9개 포대 중의 하나로, 1871년(숙종 5)에 축조되었으며 강화 덕진진의 관할하에 있었다. 대포 10문이 설치되어 있었으며 고종 8년(1871) 신미양요 때 덕진돈대와 함께 미국 함대와 포격전을 전개하였던 곳이다
[촬영일 : 2025-05-04]
남장포대(南障砲臺):강화 9개 포대 중의 하나로, 1871년(숙종 5)에 축조되었으며 강화 덕진진의 관할하에 있었다. 대포 10문이 설치되어 있었으며 고종 8년(1871) 신미양요 때 덕진돈대와 함께 미국 함대와 포격전을 전개하였던 곳이다
[촬영일 : 2025-05-04]
덕진돈대(德津墩臺) : 덕진진에 소속된 2개 돈대 중 하나이다. 북쪽의 광성보와 남쪽의 초지진 중간에 위치하여 강화수로의 가장 중요한 요새지이기도 하다. 신미양요(1871)당시 미국함대와 48시간 동안 치열한 포격전을 전개하였는데 이 때 파괴되었던 것을 1977년에 복원하였다
[촬영일 : 2025-05-04]
덕진돈대(德津墩臺) : 덕진진에 소속된 2개 돈대 중 하나이다. 북쪽의 광성보와 남쪽의 초지진 중간에 위치하여 강화수로의 가장 중요한 요새지이기도 하다. 신미양요(1871)당시 미국함대와 48시간 동안 치열한 포격전을 전개하였는데 이 때 파괴되었던 것을 1977년에 복원하였다
[촬영일 : 2025-05-04]
덕진돈대(德津墩臺) : 덕진진에 소속된 2개 돈대 중 하나이다. 북쪽의 광성보와 남쪽의 초지진 중간에 위치하여 강화수로의 가장 중요한 요새지이기도 하다. 신미양요(1871)당시 미국함대와 48시간 동안 치열한 포격전을 전개하였는데 이 때 파괴되었던 것을 1977년에 복원하였다
[촬영일 : 2025-05-04]
덕진돈대(德津墩臺) : 덕진진에 소속된 2개 돈대 중 하나이다. 북쪽의 광성보와 남쪽의 초지진 중간에 위치하여 강화수로의 가장 중요한 요새지이기도 하다. 신미양요(1871)당시 미국함대와 48시간 동안 치열한 포격전을 전개하였는데 이 때 파괴되었던 것을 1977년에 복원하였다
[촬영일 : 2025-05-04]
덕진돈대(德津墩臺) : 덕진진에 소속된 2개 돈대 중 하나이다. 북쪽의 광성보와 남쪽의 초지진 중간에 위치하여 강화수로의 가장 중요한 요새지이기도 하다. 신미양요(1871)당시 미국함대와 48시간 동안 치열한 포격전을 전개하였는데 이 때 파괴되었던 것을 1977년에 복원하였다
[촬영일 : 2025-05-04]
덕진돈대(德津墩臺) : 덕진진에 소속된 2개 돈대 중 하나이다. 북쪽의 광성보와 남쪽의 초지진 중간에 위치하여 강화수로의 가장 중요한 요새지이기도 하다. 신미양요(1871)당시 미국함대와 48시간 동안 치열한 포격전을 전개하였는데 이 때 파괴되었던 것을 1977년에 복원하였다
[촬영일 : 2025-05-04]
덕진돈대(德津墩臺) : 덕진진에 소속된 2개 돈대 중 하나이다. 북쪽의 광성보와 남쪽의 초지진 중간에 위치하여 강화수로의 가장 중요한 요새지이기도 하다. 신미양요(1871)당시 미국함대와 48시간 동안 치열한 포격전을 전개하였는데 이 때 파괴되었던 것을 1977년에 복원하였다
[촬영일 : 2025-05-04]
덕진돈대(德津墩臺) : 덕진진에 소속된 2개 돈대 중 하나이다. 북쪽의 광성보와 남쪽의 초지진 중간에 위치하여 강화수로의 가장 중요한 요새지이기도 하다. 신미양요(1871)당시 미국함대와 48시간 동안 치열한 포격전을 전개하였는데 이 때 파괴되었던 것을 1977년에 복원하였다
[촬영일 : 2025-05-04]
경고비(警告碑): 조선 고종 4년(1867년) 흥선대원군의 명으로 강화 덕진첨사가 건립한 것으로 개화기에 외국 선박의 출입을 통제하겠다는 척화의 의지를 담고 있는 비석이다
[촬영일 : 2025-05-04]
경고비(警告碑): 조선 고종 4년(1867년) 흥선대원군의 명으로 강화 덕진첨사가 건립한 것으로 개화기에 외국 선박의 출입을 통제하겠다는 척화의 의지를 담고 있는 비석이다
[촬영일 : 2025-05-04]
경고비(警告碑): 조선 고종 4년(1867년) 흥선대원군의 명으로 강화 덕진첨사가 건립한 것으로 개화기에 외국 선박의 출입을 통제하겠다는 척화의 의지를 담고 있는 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