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회수 : 123   등록일 : 2021-11-20 ]
행주산성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행주내동 덕양산의 7, 8부 능선에 쌓은 테뫼식(山頂式) 산성으로 흙을 이용한 토축산성이다.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56호로 지정되었다.

덕양산 정상부를 에워싼 소규모의 내성(內城)과 북쪽으로 뻗은 골짜기를 에워싼 외성(外城)의 이중구조로 강안의 험한 절벽을 이용하고 동·북·서로 전개된 넓은 평야를 감싸고 있는 형태는 삼국시대 초기의 산성형식과 같다.

현재 성벽은 산 정상부의 동남쪽 사면과 외성부의 동북쪽 성벽뿐이며, 북서쪽 방면은 내성은 확인되나 외성 성벽은 확인할 수 없다.

성벽은 내성의 경우 정상부를 깎아내어 다듬은 뒤에 둘레 약 250m 정도의 토루(土壘)를 형성하고 있으며, 정상에서 동북쪽의 산등성이를 따라 외성의 자취가 남아 있다.

성안에서는 삼국시대의 적갈색 연질토기와 회청색 경질토기 등의 조각을 비롯하여 어골문(魚骨文), 수지문(手指文)이 새겨진 기와조각도 발견되고 있어 고려시대까지도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행주산성은 1593년(선조 26) 권율(權慄)장군이 대승을 이룬 전적지로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인 행주대첩을 이룬 곳이다. 현재 성안에는 복원된 415m의 토성의 성곽과 1603년에 세운 행주대첩비가 있으며, 1970년에 대대적인 정화작업으로 권율장군의 사당인 충장사(忠壯祠)등을 건립하여 현재의 모습을 구축하였다.

- 소재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행주로 15번길 89 덕양산 내
- 건립시기 : 삼국시대
- 크기 : 둘레 약 1,000m(현존 415m)
- 규모(면적) : 산성 면적 347,670㎡(105,17평)

[출처] 고양시 행주산성(http://www.goyang.go.kr/haengju/index.do)

* 퇴뫼식((山頂式))산성 : 산의 지형을 이용하여 성곽이 산의 정상을 중심으로 산의 7~8부 능선을 따라 거의 수평되게 한바퀴 둘러 쌓은 산성
행주산성 대첩문 : 1970년 건립하였으며 행주산성으로 들어가는 주 출입문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 높이 4.7m의 평삼문 형태로 제작되었으며 지붕 안쪽에 홍살문을 넣어 행주대첩지의 숭고한 뜻을 상징하고 있다. 이 세 개의 문은 평소에는 오른쪽 출입문 하나만 열려 있으나 행주대첩제 등 주요행사 때는 모두 열어 사당이나 서원의 삼문 형태를 따르고 있다-출처 : 고양시 행주산성
[촬영일 : 2021-11-21]
행주산성 대첩문 : 1970년 건립하였으며 행주산성으로 들어가는 주 출입문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 높이 4.7m의 평삼문 형태로 제작되었으며 지붕 안쪽에 홍살문을 넣어 행주대첩지의 숭고한 뜻을 상징하고 있다. 이 세 개의 문은 평소에는 오른쪽 출입문 하나만 열려 있으나 행주대첩제 등 주요행사 때는 모두 열어 사당이나 서원의 삼문 형태를 따르고 있다-출처 : 고양시 행주산성
충장공 권율 도원수 동상 : 문무를 겸비한 명장 충장공(조선시대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신하와 장군에게 내리는 시호) 권율 도원수상은 1986년 건립되었으며 근대조각가 김세중 작품이다. 동상 뒤 4폭 부조물은 행주대첩 당시 관군, 의병, 승군, 여성들의 치열한 항전모습을 담았다. 동상의 높이는 4.5m, 기단 3.5m로 총 8m에 달한다
[촬영일 : 2021-11-21]
충장공 권율 도원수 동상 : 문무를 겸비한 명장 충장공(조선시대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신하와 장군에게 내리는 시호) 권율 도원수상은 1986년 건립되었으며 근대조각가 김세중 작품이다. 동상 뒤 4폭 부조물은 행주대첩 당시 관군, 의병, 승군, 여성들의 치열한 항전모습을 담았다. 동상의 높이는 4.5m, 기단 3.5m로 총 8m에 달한다
행주산성 홍살문(紅살門) : 권율장군의 영정을 모신 사당인 충장사 입구에 세워졌다. 1970년 충장사 건립당시 세워졌다. 홍살문은 능·원·묘·궁전 또는 관아 따위의 정면에 세우는 붉은 칠을 한 나무 문으로 신성한 곳으로 경의를 표하라는 의미를 담고있다. 11월의 늦은 가을의 정취가 단풍으로 어우러져 한폭의 그림을 담아내고 있다
[촬영일 : 2021-11-21]
행주산성 홍살문(紅살門) : 권율장군의 영정을 모신 사당인 충장사 입구에 세워졌다. 1970년 충장사 건립당시 세워졌다. 홍살문은 능·원·묘·궁전 또는 관아 따위의 정면에 세우는 붉은 칠을 한 나무 문으로 신성한 곳으로 경의를 표하라는 의미를 담고있다. 11월의 늦은 가을의 정취가 단풍으로 어우러져 한폭의 그림을 담아내고 있다
행주산성 충장사(忠壯祠) : 권율 장군의 영정을 모신 사당으로 1970년 건립하였다.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이다. 권율 장군 사당은 이전 1842년 조선 헌종 때 현재의 행주서원 자리에 지은 '기공사'가 있었다. 그러나 전란 등으로 무너져 1970년 문화재 재건 사업으로 건립하였으며 구조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콘크리트 건물이다. 충장사 현판은 방정희 대통령의 휘호이며 상당안에 봉안된 장군의 영정은 장우성 화백이 그린것이다 출처 : 고양시 행주산성
[촬영일 : 2021-11-21]
행주산성 충장사(忠壯祠) : 권율 장군의 영정을 모신 사당으로 1970년 건립하였다.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이다. 권율 장군 사당은 이전 1842년 조선 헌종 때 현재의 행주서원 자리에 지은 '기공사'가 있었다. 그러나 전란 등으로 무너져 1970년 문화재 재건 사업으로 건립하였으며 구조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콘크리트 건물이다. 충장사 현판은 방정희 대통령의 휘호이며 상당안에 봉안된 장군의 영정은 장우성 화백이 그린것이다 출처 : 고양시 행주산성
행주산성 충장사(忠壯祠) : 권율 장군의 영정을 모신 사당으로 1970년 건립하였다. 코로나19로 입구가 통제되어 있다
[촬영일 : 2021-11-21]
행주산성 충장사(忠壯祠) : 권율 장군의 영정을 모신 사당으로 1970년 건립하였다. 코로나19로 입구가 통제되어 있다
행주산성 대첩기념관 뒤에서 내려다 본 충장사  전경이 가을단풍과 어우러져 있다
[촬영일 : 2021-11-21]
행주산성 대첩기념관 뒤에서 내려다 본 충장사 전경이 가을단풍과 어우러져 있다
행주산성 대첩기념관 : 행주대첩 기념관으로 행주대첩 당시 무기고와 군량창고로 추측되는 자리에 1980년 건립하였습니다. 전시물은 화차인 신기전을 비롯하여 각궁, 총통 등 무기류와 권율 장군 승전도 3점, 토성에서 출토된 와당 및 토기 파편 등의 유물, 그밖에 조선시대 장군과 나졸 형상과 대첩비문 액자 및 병풍, 망암 변이중 선생 문집 등이 있다. 코로나19로 현재 폐쇄되어 있다. [출처:고양시 행주산성]
[촬영일 : 2021-11-21]
행주산성 대첩기념관 : 행주대첩 기념관으로 행주대첩 당시 무기고와 군량창고로 추측되는 자리에 1980년 건립하였습니다. 전시물은 화차인 신기전을 비롯하여 각궁, 총통 등 무기류와 권율 장군 승전도 3점, 토성에서 출토된 와당 및 토기 파편 등의 유물, 그밖에 조선시대 장군과 나졸 형상과 대첩비문 액자 및 병풍, 망암 변이중 선생 문집 등이 있다. 코로나19로 현재 폐쇄되어 있다. [출처:고양시 행주산성]
행주산성 진강정 : 1970년 건립한 사각지붕, 건평 36㎡의 정자이다. 호젓한 위치에 있어 행주산성에서 한강을 가장 가까이 볼 수 있다. 정자 이름은 한강의 홍수를 막는다는 의미로 진강(鎭江)이다. 특히 이곳은 2013년부터 행주나루터와 연결된 행주산성역사누리길이 지나는 곳으로 누리길을 걷는 사람들의 쉼터 역할도 하고 있다 [출처 : 고양시 행주산성]
[촬영일 : 2021-11-21]
행주산성 진강정 : 1970년 건립한 사각지붕, 건평 36㎡의 정자이다. 호젓한 위치에 있어 행주산성에서 한강을 가장 가까이 볼 수 있다. 정자 이름은 한강의 홍수를 막는다는 의미로 진강(鎭江)이다. 특히 이곳은 2013년부터 행주나루터와 연결된 행주산성역사누리길이 지나는 곳으로 누리길을 걷는 사람들의 쉼터 역할도 하고 있다 [출처 : 고양시 행주산성]
행주산성 진강정 : 1970년 건립한 사각지붕, 건평 36㎡의 정자이다. 호젓한 위치에 있어 행주산성에서 한강을 가장 가까이 볼 수 있다. 정자 이름은 한강의 홍수를 막는다는 의미로 진강(鎭江)이다. 특히 이곳은 2013년부터 행주나루터와 연결된 행주산성역사누리길이 지나는 곳으로 누리길을 걷는 사람들의 쉼터 역할도 하고 있다 [출처 : 고양시 행주산성]
[촬영일 : 2021-11-21]
행주산성 진강정 : 1970년 건립한 사각지붕, 건평 36㎡의 정자이다. 호젓한 위치에 있어 행주산성에서 한강을 가장 가까이 볼 수 있다. 정자 이름은 한강의 홍수를 막는다는 의미로 진강(鎭江)이다. 특히 이곳은 2013년부터 행주나루터와 연결된 행주산성역사누리길이 지나는 곳으로 누리길을 걷는 사람들의 쉼터 역할도 하고 있다 [출처 : 고양시 행주산성]
덕양산 정상으로 오르면서 좌측부터 덕양정, 대첩비각, 행주대첩비가 세워져 있다
[촬영일 : 2021-11-21]
덕양산 정상으로 오르면서 좌측부터 덕양정, 대첩비각, 행주대첩비가 세워져 있다
행주산성 덕양정 : 1970년 건립한 팔작지붕, 건평44㎡의 정자다. 덕양산의 이름을 딴 정자로 오르막길을 올라오다 땀을 식히기에 좋은 곳dl다. 사방이 트여있는 전망은 주변 환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촬영일 : 2021-11-21]
행주산성 덕양정 : 1970년 건립한 팔작지붕, 건평44㎡의 정자다. 덕양산의 이름을 딴 정자로 오르막길을 올라오다 땀을 식히기에 좋은 곳dl다. 사방이 트여있는 전망은 주변 환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행주산성 대첩비각 : 행주대첩 초건비는 1602년 건립한 것으로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74호로 지정되었다. 비의 크기는 178㎝, 너비 80㎝, 두께 18㎝의 대리석 재질이다. 권율 장군이 돌아가신 후 행주대첩의 승전을 되살리고자 장군의 휘하 장수들이 뜻을 모아 세운 것이다. 당대 최고의 문장가인 최립이 비의 앞면 글을 짓고 한석봉이 글씨를 썼으며, 비의 머리글은 김상용이 썼다. 행주산성에 있는 유일한 문화재이다[출처 : 고양시 행주산성]
[촬영일 : 2021-11-21]
행주산성 대첩비각 : 행주대첩 초건비는 1602년 건립한 것으로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74호로 지정되었다. 비의 크기는 178㎝, 너비 80㎝, 두께 18㎝의 대리석 재질이다. 권율 장군이 돌아가신 후 행주대첩의 승전을 되살리고자 장군의 휘하 장수들이 뜻을 모아 세운 것이다. 당대 최고의 문장가인 최립이 비의 앞면 글을 짓고 한석봉이 글씨를 썼으며, 비의 머리글은 김상용이 썼다. 행주산성에 있는 유일한 문화재이다[출처 : 고양시 행주산성]
행주산성 대첩비각 : 행주대첩 초건비는 1602년 건립한 것으로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74호로 지정되었다. 비의 크기는 178㎝, 너비 80㎝, 두께 18㎝의 대리석 재질이다. 권율 장군이 돌아가신 후 행주대첩의 승전을 되살리고자 장군의 휘하 장수들이 뜻을 모아 세운 것이다. 당대 최고의 문장가인 최립이 비의 앞면 글을 짓고 한석봉이 글씨를 썼으며, 비의 머리글은 김상용이 썼다. 행주산성에 있는 유일한 문화재이다[출처 : 고양시 행주산성]
[촬영일 : 2021-11-21]
행주산성 대첩비각 : 행주대첩 초건비는 1602년 건립한 것으로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74호로 지정되었다. 비의 크기는 178㎝, 너비 80㎝, 두께 18㎝의 대리석 재질이다. 권율 장군이 돌아가신 후 행주대첩의 승전을 되살리고자 장군의 휘하 장수들이 뜻을 모아 세운 것이다. 당대 최고의 문장가인 최립이 비의 앞면 글을 짓고 한석봉이 글씨를 썼으며, 비의 머리글은 김상용이 썼다. 행주산성에 있는 유일한 문화재이다[출처 : 고양시 행주산성]
행주산성 행주대첩비 : 정상에 서있는 15.2m의 행주대첩비는 1970년 건립한 것으로 탑신의 글은 박정희 대통령이 쓰고 아래 비문은 신석호가 짓고, 글씨는 서희환이 썼다. 이 비는 1963년 경기도민과 가계유지들에 의하여 세워진 기념비로 1970년대 국토정화사업의 일환이었던 행주산성보수정화사업에 의하여 새롭게 보수, 재건되었다 [출처 : 고양시 행주산성]
[촬영일 : 2021-11-21]
행주산성 행주대첩비 : 정상에 서있는 15.2m의 행주대첩비는 1970년 건립한 것으로 탑신의 글은 박정희 대통령이 쓰고 아래 비문은 신석호가 짓고, 글씨는 서희환이 썼다. 이 비는 1963년 경기도민과 가계유지들에 의하여 세워진 기념비로 1970년대 국토정화사업의 일환이었던 행주산성보수정화사업에 의하여 새롭게 보수, 재건되었다 [출처 : 고양시 행주산성]
행주산성 충의정 : 행주산성 영상교육관으로 호국정신을 계승, 함양을 위하여 1978년 지어졌으며, 십자형지붕에 정면 3칸, 측면 3칸의 규모이다. 이곳에서는 17분 분량의 영상자료 <행주대첩과 권율장군>을 상시 상영하고 있다. 충의정 주변은 심학산, 장항습지, 북한산, 창릉천, 능곡평야 등을 볼 수 있는 전망을 갖고 있다 [출처 : 고양시 행주산성]
[촬영일 : 2021-11-21]
행주산성 충의정 : 행주산성 영상교육관으로 호국정신을 계승, 함양을 위하여 1978년 지어졌으며, 십자형지붕에 정면 3칸, 측면 3칸의 규모이다. 이곳에서는 17분 분량의 영상자료 <행주대첩과 권율장군>을 상시 상영하고 있다. 충의정 주변은 심학산, 장항습지, 북한산, 창릉천, 능곡평야 등을 볼 수 있는 전망을 갖고 있다 [출처 : 고양시 행주산성]
행주산성 토성 : 흙으로 쌓은 퇴뫼식 토축성으로 덕양산 7~8부 능선에 쌓았다. 1992년 415m를 복원하였으며 총길이는 1㎞다. 토성에서는 삼국시대 와당 및 토기 파편들이 출토되어 삼국시대부터 중요한 군사적 요새지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출처 : 고양시 행주산성]
[촬영일 : 2021-11-21]
행주산성 토성 : 흙으로 쌓은 퇴뫼식 토축성으로 덕양산 7~8부 능선에 쌓았다. 1992년 415m를 복원하였으며 총길이는 1㎞다. 토성에서는 삼국시대 와당 및 토기 파편들이 출토되어 삼국시대부터 중요한 군사적 요새지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출처 : 고양시 행주산성]
행주산성 전투지 : 행주산성의 주 출입구(성문)이 있던 곳으로 가장 치열한 전투가 있었던 지역이다. 행주산성의 토성 중 현재까지 복원된 구간 중 가장 낮은 곳에 해당하며 산성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가장 완경사를 이루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점이다. 기록에 의하면 권율 장군의 조방장 조경이 목책을 쌓아 행주산성의 약점을 보완하였으며 전투경험이 풍부한 승군 등이 이 부근에 배치되어 치열한 전투 후 대승을 거둔 곳으로 여겨진다 [출처 : 고양시 행주산성]
[촬영일 : 2021-11-21]
행주산성 전투지 : 행주산성의 주 출입구(성문)이 있던 곳으로 가장 치열한 전투가 있었던 지역이다. 행주산성의 토성 중 현재까지 복원된 구간 중 가장 낮은 곳에 해당하며 산성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가장 완경사를 이루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점이다. 기록에 의하면 권율 장군의 조방장 조경이 목책을 쌓아 행주산성의 약점을 보완하였으며 전투경험이 풍부한 승군 등이 이 부근에 배치되어 치열한 전투 후 대승을 거둔 곳으로 여겨진다 [출처 : 고양시 행주산성]
행주산성 충훈정 : 1986년 건립하였으며 2층 누각으로 팔짝 지붕에 정면 5칸, 측면 5칸 규모이다. 옛날의 주무기인 각 궁의 연습도장으로 심신을 단련하며 호국의식을 함양하는 국궁 장이다. 행주대첩제 때에는 국궁 대회가 열리며, 봄, 가을 주말에는 국궁 체험장을 별도로 운영하여 일반관람객에게도 국궁 체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출처 : 고양시 행주산성]
[촬영일 : 2021-11-21]
행주산성 충훈정 : 1986년 건립하였으며 2층 누각으로 팔짝 지붕에 정면 5칸, 측면 5칸 규모이다. 옛날의 주무기인 각 궁의 연습도장으로 심신을 단련하며 호국의식을 함양하는 국궁 장이다. 행주대첩제 때에는 국궁 대회가 열리며, 봄, 가을 주말에는 국궁 체험장을 별도로 운영하여 일반관람객에게도 국궁 체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출처 : 고양시 행주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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