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회수 : 280   등록일 : 2022-09-02 ]
고려 말기의 명장으로 고려를 지키려다 처형된 최영(崔瑩, 1316∼1388) 장군의 묘이다. 1975년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홍건적을 평정하고 수십 차례에 걸친 왜구의 침입을 막아내는 등 흔들리는 고려의 국운을 바로 잡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명나라에서 철령 이북의 영토를 빼앗으려 하자 요동정벌 계획을 세워 압록강까지 진군하였다가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1388년(우왕 14) 이성계 등의 신진세력에 개성에서 처형되어 이곳에 안장되었다. 

묘역은 부인 문화 유씨(文化柳氏)와의 합장묘로 하나의 봉분으로 조성되었다. 묘제(墓制)는 원형이 변형되었지만, 석물은 옛 것과 새 것이 섞여 있다. 봉분은 고려 말기의 전형적인 직사각 형태이고, 봉분을 보호하기 위하여 아래 부분에 2단으로 둘레석을 조성하였다. 봉분의 정면 왼쪽에는 묘표(墓表 ; 무덤 주인공의 이름 등을 새긴 비석)를 세웠고, 봉분의 정면 오른쪽에는 무민공 충혼비(武愍公 忠魂碑)를 세웠다. 봉분 앞에는 혼유석·상석·향로석·문석인 등을 조성하였는데, 모두 1970년대에 새롭게 추가한 것이다. 

화강암 장대석으로 2단의 호석을 두른 전형적인 고려 양식의 방형묘(方形墓)이다. 고려시대의 묘제(墓制)가 일부 남아있어 학술적 가치가 있다.

최영장군하면 "황금보기를 돌같이 하라"라는 명언이 떠오른다. 이 명언은 최영의 아버지가 어린 최영에게 남긴말이다. 이 묘의 뒤편 한 계단 위에 장군의 부친 최원직의 묘가 있다.

소재지 : 경기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 산70-2번지

[참고문헌]
- 국가문화유산포털(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2333100230000&pageNo=1_1_1_1)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57478)
최영장군 묘역으로 가는 길 입구 : 최영장군하면 "황금보기를 돌같이 하라"라는 명언이 떠오른다. 이 명언은 최영의 아버지가 어린 최영에게 남긴말이다.
[촬영일 : 2022-08-28]
최영장군 묘역으로 가는 길 입구 : 최영장군하면 "황금보기를 돌같이 하라"라는 명언이 떠오른다. 이 명언은 최영의 아버지가 어린 최영에게 남긴말이다.
최영장군 묘역으로 가는 길 입구 : 최영장군하면 "황금보기를 돌같이 하라"라는 명언이 떠오른다. 이 명언은 최영의 아버지가 어린 최영에게 남긴말이다
[촬영일 : 2022-08-28]
최영장군 묘역으로 가는 길 입구 : 최영장군하면 "황금보기를 돌같이 하라"라는 명언이 떠오른다. 이 명언은 최영의 아버지가 어린 최영에게 남긴말이다
최영장군 묘역 입구 : 중앙 계단을 올라서면 묘역이 나타난다
[촬영일 : 2022-08-28]
최영장군 묘역 입구 : 중앙 계단을 올라서면 묘역이 나타난다
최영장군묘소 입구 안내글
[촬영일 : 2022-08-28]
최영장군묘소 입구 안내글
기념물 제 23호 최영장군 묘
[촬영일 : 2022-08-28]
기념물 제 23호 최영장군 묘
기념물 제 23호 최영장군 묘 : 뒤에 있는 묘는 최영장군의 부친 최원직의 묘이다. 비석에는 성 뒤에 공(公), 이름 앞에는 휘(諱)자를 붙인다. 좌측비석에 최공휘영지묘(崔瑩將軍之墓)가 쓰여져있다
[촬영일 : 2022-08-28]
기념물 제 23호 최영장군 묘 : 뒤에 있는 묘는 최영장군의 부친 최원직의 묘이다. 비석에는 성 뒤에 공(公), 이름 앞에는 휘(諱)자를 붙인다. 좌측비석에 최공휘영지묘(崔瑩將軍之墓)가 쓰여져있다
최영장군의 부친 최원직의 묘
[촬영일 : 2022-08-28]
최영장군의 부친 최원직의 묘
기념물 제 23호 최영장군 묘 와 최영장군의 부친 최원직의 묘
[촬영일 : 2022-08-28]
기념물 제 23호 최영장군 묘 와 최영장군의 부친 최원직의 묘
기념물 제 23호 최영장군 묘
[촬영일 : 2022-08-28]
기념물 제 23호 최영장군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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