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화도회군(威化島回軍)

대한민국 사건기간 : 1388년 5월 22일~1388년 6월 3일, 조회수 : 421,   등록일 : 2022-09-04
14세기 말 고려는 권문세족들의 횡포로 사회 기강이 해이해지고 왕권이 약화되었다. 밖으로는 원에서 명으로 교체되는 불안정한 상황이었다.

명나라의 [1]홍무제는 철령 이북의 고려 영토를 원나라 영토였다는 이유로 반환하라는 요구를 하였다. 1387년(우왕 13) 12월에 [2]철령위 설치를 통고하는 한편, 고려 사신의 입국을 거절하는 등 강압적인 자세를 취하였다.

이에 고려는 국왕 [3]우왕과 [4]문하시중 [5]최영등 강경세력은 철령위 설치에 반발하여 요동정벌을 단행하였다.
 
요동정벌이 단행될 때, [7]이성계는 첫째,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거스르는 일은 옳지 않으며, 둘째, 여름철에 군사를 동원하는 것이 부적당하며 셋째, 요동을 공격하는 틈을 타고 왜구가 침략할 것이며 넷재, 무덥고 비가 많이 오는 시기이므로 활의 아교가 녹아 풀어지고 병사들이 전염병에 걸릴 염려가 있다는 사불가론(四不可論)을 들어 반대하였다.

그럼에도 우왕과 문하시중 최영(崔瑩)이 강력하게 주장해 요동정벌이 실행되었다. 고려군의 총사령관은 팔도도통사 [5]최영, 좌군도통사 [8]조민수, 우군통도사 [7]이성계로 편제하여 우왕과 최영은 서경(평양)에 머물면서 독전하고, [7]이성계와 [8]조민수가 이끄는 좌·우군은 음력 4월 18일 서경(평양)을 출발하였다.
이때 동원된 총 병력은 좌·우군 3만 8,830명과 겸군(傔軍) 1만 1,600명, 그리고 말 2만 1,682필이었으나 10만 대군을 자칭하면서 음력 5월 7일 [6]위화도에 도착하였다.

그런데 그 사이에 도망치는 군사가 속출했고, 마침 큰비를 만나 압록강을 건너기가 어렵게 되자, [7]이성계는 이러한 실정을 보고하면서 요동정벌을 포기할 것을 우왕에게 요청하였다. 그러나 우왕과 최영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계속해서 요동정벌을 독촉하자, 결국 이성계는 조민수와 상의한 뒤 회군을 결정하였다.

5월 22일 출발하여 6월 1일 개경 근처에 도착하여 6월 3일 최영과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위화도 병력이 집중되어 있는 상태에서 최영과 우왕은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패배하였다.

궁궐을 장악한 이성계 등은 정치적인 실권을 장악했다.이를 바탕으로 조선건국의 기초를 다지게 되었다.

최영은 고봉현(高峰縣, 고양)으로 유배되었으며, 그 해 12월에 개경(개성)으로 압송돼 처형되었고, 우왕은 강화도로 추방됐다가 역시 1년뒤 아들 창왕과 함께 처형되었다.

[참고문헌]
- 위키백과, 나무위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 홍무제(1328년~1398년) : 명나라를 건국한 초대 황제(재위 : 1368년 ~ 1398년). 본명인 주원장(朱元璋)으로 유명하다
[2] 철령위(鐵嶺衛) : 고려 말인 1387년(우왕 13년), 중국 명(明)이 철령 이북의 고려 동북방 변경 지역을 직접 다스리기 위해 설치하려 했던 군사적 행정기구
[3] 우왕(1365년~1389년) : 고려의 제32대 국왕(재위: 1374년~1388년). 최영의 사위
[4] 문하시중(門下侍中) : 고려시대 중서문하성의 최고 관리로 품계는 종1품이다. 조선의 영의정과 같고 대한민국의 국무총리와 비슷한 벼슬이다.
[5] 최영(1316년~1388년) :고려 말기의 장수이자 정치가
[6] 위화도 : 평안북도 신의주에 속해있는 압록강 한 가운데 있는 섬
[7] 이성계(1335년~1408년) : 고려 말 무신이자 정치가. 조선을 건국한 초대 국왕(재위 : 1392년~1398년).자 대한제국의 추존 황제
[8] 조민수(미상 ~ 1391년) : 고려 말의 무신, 군인, 정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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