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회수 : 93   등록일 : 2020-05-07 ]
남한산성은 험준한 자연지형을 따라 성벽을 구축하여 많은 병력으로도 쉽게 함락시킬 수 없는 지리적 여건을 구비하고 있다. 남한산성 성곽 둘레는 약 12.4km에 달하고 면적은 2.15킬로평방미터이다.
남한산성은 대한민국의 대표 산성으로 기록에 의하면 백제의 시조인 온조의 왕성이었다는 기록이 있고, 나당전쟁이 한창이던 신라 문무왕 12년(672년 축조)에 한산주에 쌓은 '주장성'이라는 기록도 있다. 조선 인조 4년(1626년)에 중앙부의 본성이 완성되었고 병자호란 이후 방어력을 높이기 위하여 동쪽의 봉암성, 한봉성 등을 비롯하여 여러차례 증축을 거쳐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인조 14년에 청나라가 침략해오자 이곳으로 피신하여 47일간 항전한 곳이다.
현대에 들어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돼 보존관리되어 오다가 2014년 6월 카타르 도하에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Outstanding Universal Value)'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침괘정(枕戈亭) 툇마루
[촬영일 : 2020-05-06]
침괘정(枕戈亭) 툇마루
세계유산 남한산성
[촬영일 : 2020-05-06]
세계유산 남한산성
남한산성도
[촬영일 : 2020-05-06]
남한산성도
좌익문(左翼門, 동문)
[촬영일 : 2020-05-06]
좌익문(左翼門, 동문)
좌익문(左翼門,동문)
[촬영일 : 2020-05-06]
좌익문(左翼門,동문)
좌익문(左翼門,동문)
[촬영일 : 2020-05-06]
좌익문(左翼門,동문)
전승문(全勝門, 북문)
[촬영일 : 2020-05-06]
전승문(全勝門, 북문)
전승문(全勝門, 북문)
[촬영일 : 2020-05-06]
전승문(全勝門, 북문)
전승문(全勝門, 북문)
[촬영일 : 2020-05-06]
전승문(全勝門, 북문)
전승문(全勝門, 북문)
[촬영일 : 2020-05-06]
전승문(全勝門, 북문)
우익문(右翼門, 서문)
[촬영일 : 2020-05-06]
우익문(右翼門, 서문)
우익문(右翼門, 서문)
[촬영일 : 2020-05-06]
우익문(右翼門, 서문)
지화문(至和門, 남문)
[촬영일 : 2020-05-06]
지화문(至和門, 남문)
지화문(至和門, 남문)
[촬영일 : 2020-05-06]
지화문(至和門, 남문)
남한산성 도성벽
[촬영일 : 2020-05-06]
남한산성 도성벽
연주봉옹성 : 옹성은 일반적으로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성문 밖으로 한 겹의 성벽을 더 둘러쌓은 이중의 성벽을 말한다. 남한산성에는 모두 5개의 옹성이 있는데, 이 옹성은 북서쪽의 요충지인 연주봉을 확보하기 위하여 설치하였다.
[촬영일 : 2020-05-06]
연주봉옹성 : 옹성은 일반적으로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성문 밖으로 한 겹의 성벽을 더 둘러쌓은 이중의 성벽을 말한다. 남한산성에는 모두 5개의 옹성이 있는데, 이 옹성은 북서쪽의 요충지인 연주봉을 확보하기 위하여 설치하였다.
제5암문(연주봉옹성 암문) : 암문은 적의 관측이 어려운 곳에 설치한 성문으로 일종의 비밀통로이기 때문에 크기도 작고 적에게 쉽게 식별될 수 있는 시설도 설치하지 않았다
[촬영일 : 2020-05-06]
제5암문(연주봉옹성 암문) : 암문은 적의 관측이 어려운 곳에 설치한 성문으로 일종의 비밀통로이기 때문에 크기도 작고 적에게 쉽게 식별될 수 있는 시설도 설치하지 않았다
제2남옹성 : 옹성은 일반적으로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성문 밖으로 한 겹의 성벽을 더 둘러쌓은 이중의 성벽을 말한다. 남한산성에는 모두 5개의 옹성이 있는데 이 중 3개의 옹성이 산성 남쪽의 완만한 지형을 보완하고 신남성으로 부터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설치되었으며, 제2남옹성은 이 3개 중 중앙에 있는 두 번째 옹성이다. 제2남옹성은 둘레가 318m이며 다른 옹성과는 달리 이중으로 되어 있는 것이 특색이다. 남한산성에 설치된 옹성 중 규모가 가장 크다
[촬영일 : 2020-05-06]
제2남옹성 : 옹성은 일반적으로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성문 밖으로 한 겹의 성벽을 더 둘러쌓은 이중의 성벽을 말한다. 남한산성에는 모두 5개의 옹성이 있는데 이 중 3개의 옹성이 산성 남쪽의 완만한 지형을 보완하고 신남성으로 부터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설치되었으며, 제2남옹성은 이 3개 중 중앙에 있는 두 번째 옹성이다. 제2남옹성은 둘레가 318m이며 다른 옹성과는 달리 이중으로 되어 있는 것이 특색이다. 남한산성에 설치된 옹성 중 규모가 가장 크다
제2남옹성 : 옹성은 일반적으로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성문 밖으로 한 겹의 성벽을 더 둘러쌓은 이중의 성벽을 말한다. 남한산성에는 모두 5개의 옹성이 있는데 이 중 3개의 옹성이 산성 남쪽의 완만한 지형을 보완하고 신남성으로 부터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설치되었으며, 제2남옹성은 이 3개 중 중앙에 있는 두 번째 옹성이다. 제2남옹성은 둘레가 318m이며 다른 옹성과는 달리 이중으로 되어 있는 것이 특색이다. 남한산성에 설치된 옹성 중 규모가 가장 크다
[촬영일 : 2020-05-06]
제2남옹성 : 옹성은 일반적으로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성문 밖으로 한 겹의 성벽을 더 둘러쌓은 이중의 성벽을 말한다. 남한산성에는 모두 5개의 옹성이 있는데 이 중 3개의 옹성이 산성 남쪽의 완만한 지형을 보완하고 신남성으로 부터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설치되었으며, 제2남옹성은 이 3개 중 중앙에 있는 두 번째 옹성이다. 제2남옹성은 둘레가 318m이며 다른 옹성과는 달리 이중으로 되어 있는 것이 특색이다. 남한산성에 설치된 옹성 중 규모가 가장 크다
제2남옹성 암문 : 도성밖에서 바라본 도성벽
[촬영일 : 2020-05-06]
제2남옹성 암문 : 도성밖에서 바라본 도성벽
침괘정(枕戈亭)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5호. 침괘정은 무기제작소라 알려져 왔으나 온돌과 마루방, 회랑처럼 된 툇마루 등 건물 구조로 보아 집무실로 쓰인 것으로 보인다. 최초의 건립시기는 명확하지 않으나 주변에 있던 무기창고를 명나라 사신정룡이 '총융무고'라 이름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그 이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영조27년(1751) 광주유수 이기진이 고쳐 짓고 '침괘정'이라고 이름 지었는데 '침과정'을 '침괘정'이라고 부르는 까닭은 명확하지 않다. 무기 제작소와 무기창고는 침괘정 부근에 별도로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촬영일 : 2020-05-06]
침괘정(枕戈亭)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5호. 침괘정은 무기제작소라 알려져 왔으나 온돌과 마루방, 회랑처럼 된 툇마루 등 건물 구조로 보아 집무실로 쓰인 것으로 보인다. 최초의 건립시기는 명확하지 않으나 주변에 있던 무기창고를 명나라 사신정룡이 '총융무고'라 이름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그 이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영조27년(1751) 광주유수 이기진이 고쳐 짓고 '침괘정'이라고 이름 지었는데 '침과정'을 '침괘정'이라고 부르는 까닭은 명확하지 않다. 무기 제작소와 무기창고는 침괘정 부근에 별도로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수당(池水堂) : 현종 13년(1672) 부윤 이세화가 건립한 정자이다. 건립 당시에는 정자를 중심으로 앞뒤에 3개의 연못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2개의 연못만 남아있다
[촬영일 : 2020-05-06]
지수당(池水堂) : 현종 13년(1672) 부윤 이세화가 건립한 정자이다. 건립 당시에는 정자를 중심으로 앞뒤에 3개의 연못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2개의 연못만 남아있다
연무관(演武館) : 성을 지키는 군사들이 무술을 연마하던 곳으로 조선 인조 3년(1625) 남한산성을 쌓을 때 함께 건립되었다. 처음에는 연무당으로 부르던 것을 숙종때 '연병관'이라 쓴 현판을 하사하여 통칭 연병관 또는 연무관이라 부르고 있다. 연무관은 문,무과 시험을 보는 공개적인 시험 장소였으며 특히 무기 시연을 물론 주조, 야조등의 군사훈련을 거행했던 장소이다
[촬영일 : 2020-05-06]
연무관(演武館) : 성을 지키는 군사들이 무술을 연마하던 곳으로 조선 인조 3년(1625) 남한산성을 쌓을 때 함께 건립되었다. 처음에는 연무당으로 부르던 것을 숙종때 '연병관'이라 쓴 현판을 하사하여 통칭 연병관 또는 연무관이라 부르고 있다. 연무관은 문,무과 시험을 보는 공개적인 시험 장소였으며 특히 무기 시연을 물론 주조, 야조등의 군사훈련을 거행했던 장소이다
연무관(演武館)  내부
[촬영일 : 2020-05-06]
연무관(演武館) 내부
숭렬전(崇烈殿) : 백제의 시조 온조왕과 산성 축성 당시 책임자였던 이서 장군의 영혼을 모신 사당
[촬영일 : 2020-05-06]
숭렬전(崇烈殿) : 백제의 시조 온조왕과 산성 축성 당시 책임자였던 이서 장군의 영혼을 모신 사당
숭렬전(崇烈殿) : 백제의 시조 온조왕과 산성 축성 당시 책임자였던 이서 장군의 영혼을 모신 사당
[촬영일 : 2020-05-06]
숭렬전(崇烈殿) : 백제의 시조 온조왕과 산성 축성 당시 책임자였던 이서 장군의 영혼을 모신 사당
남한산성 종각의 천흥사 동종 : 남한산성 종각의 천흥사 동종은 높이 170cm, 입지름 100cm로 몸체에 새겨진 명문 '聖居山 天興寺鐘銘統和二十八年庚戌二月日(성거산천흥사종명통화28년경술2월일)'에 따르면 고려 현종 1년(1010년)에 주조된 것으로, 원래 고려 태조 4년(921)에 태조가 창건한 충청남도 천안시 성거읍 천흥리 천흥사에 있었다고 한다. 남한산성으로 언제 옮겨졌는지 알 수 없으나 조선시대 산성내 시간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였으며,이후 일제강점기 이왕가박물관으로 옮겨지고, 해방 이후 덕수궁미술관을 거쳐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현재 종은 원형의 문양 및 형태를 그대로 재현하되 타종 시 종 울림이 좋게 하기 위해 약 3배정도 더 크게 제작하였다
[촬영일 : 2020-05-06]
남한산성 종각의 천흥사 동종 : 남한산성 종각의 천흥사 동종은 높이 170cm, 입지름 100cm로 몸체에 새겨진 명문 '聖居山 天興寺鐘銘統和二十八年庚戌二月日(성거산천흥사종명통화28년경술2월일)'에 따르면 고려 현종 1년(1010년)에 주조된 것으로, 원래 고려 태조 4년(921)에 태조가 창건한 충청남도 천안시 성거읍 천흥리 천흥사에 있었다고 한다. 남한산성으로 언제 옮겨졌는지 알 수 없으나 조선시대 산성내 시간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였으며,이후 일제강점기 이왕가박물관으로 옮겨지고, 해방 이후 덕수궁미술관을 거쳐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현재 종은 원형의 문양 및 형태를 그대로 재현하되 타종 시 종 울림이 좋게 하기 위해 약 3배정도 더 크게 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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