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회수 : 504 등록일 : 2022-02-27 ]
중명전은 황실 도서관으로 1899년경에 지어졌다. 당시 건물의 이름은 수옥헌(漱玉軒)이었다. 1906년경부터 중명전이라 불리었다.
처음에는 1층의 서양식 건물이었으나 1901년 화재이후 지금과 같은 2층 건물로 재건되었다. 중명전 외에도 환벽정, [1]만희당을 비롯한 10여 채의 전각들이 있었으나 1920년 이후 중명전 이외의 건물은 없어졌다.
중명전과 [2]예원학교 일대는 서양 선교사들의 거주지였다가 1897년에 경운궁(덕수궁)을 확장할 때 궁궐에 포함되었다.
경운궁 본궁과 이 일대 사이에 이미 미국 공사관이 자리를 잡고 있어서 별궁처럼 사용되었다.
1904년 덕수궁 대화재 이후 고종이 이곳으로 거처를 옮겨 정사를 논하고 귀빈을 접견하는 장소로 사용하였다. 황제의 집무실 겸 처소의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1905년 11월 중명전은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된 비운의 장소가 되었다.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박탈되자 고종은 을사늑약의 무효성을 알리고자 한 1907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특사 파견도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이일로 7월 고종은 강제 폐위가 되었다.
을사늑약 체결 이후 고종은 계속 중명전에 머무르고 있었고, 건물의 역할이 변화함에 따라 1906년 수옥헌에서 중명전으로 변경되었다.
1907년에 덕수궁 [4]함녕전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후 중명전은 외국인 클럽(club)인 경성구락부로 사용되었고 1963년 [3]영친왕이 잠시 소유하였다가 민간에 매각되는 등 순탄치 않은 역사를 겪었다.
1925년 3월 12일에 화재가 발생해 내부가 전소되었으나 외관은 기존 중명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2005년 대한민국 정부에서 매입하였으며 덕수궁에 포함시켜 대한제국 황실 건물로서의 위상을 되찾았다.
2007년~2009년까지 공사로 복원하였으나 원형과는 다소 달라져 있다.
현재 중명전에 전시관을 마련하여 대한제국 역사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4개의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다.
- 제1전시실 : 덕수궁과 중명전
- 제2전시실 : 을사늑약의 현장
- 제3전시실 : 을사늑약 전후의 대한제국
- 제4전실실 : 대한제국의 특사들
[1] 만희당(晩喜堂) : 건립년도는 알 수 없으나 1904년 경운궁(덕수궁)화재 이후 고종이 거처를 옮기면서 침전으로 사용하였다. 1907년 고종이 함녕전으로 돌아간 이후에 헐린 것으로 보인다
[2] 예원학교 :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에 위치한 예체능 계열의 중학교. 바로 옆에 중명전이 있다
[3] 영친왕(1897년~1970년) : 대한제국의 황족이자 일본 제국의 군인. 고종의 7번째 아들이며 순종과 이복형제
[4] 함녕전(咸寧殿) : 고종이 머물렀던 침전으로 1904년에 화재로 다시 지은 건물이며 고종이 1919년 1월 22일 승하하신 곳이다
처음에는 1층의 서양식 건물이었으나 1901년 화재이후 지금과 같은 2층 건물로 재건되었다. 중명전 외에도 환벽정, [1]만희당을 비롯한 10여 채의 전각들이 있었으나 1920년 이후 중명전 이외의 건물은 없어졌다.
중명전과 [2]예원학교 일대는 서양 선교사들의 거주지였다가 1897년에 경운궁(덕수궁)을 확장할 때 궁궐에 포함되었다.
경운궁 본궁과 이 일대 사이에 이미 미국 공사관이 자리를 잡고 있어서 별궁처럼 사용되었다.
1904년 덕수궁 대화재 이후 고종이 이곳으로 거처를 옮겨 정사를 논하고 귀빈을 접견하는 장소로 사용하였다. 황제의 집무실 겸 처소의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1905년 11월 중명전은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된 비운의 장소가 되었다.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박탈되자 고종은 을사늑약의 무효성을 알리고자 한 1907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특사 파견도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이일로 7월 고종은 강제 폐위가 되었다.
을사늑약 체결 이후 고종은 계속 중명전에 머무르고 있었고, 건물의 역할이 변화함에 따라 1906년 수옥헌에서 중명전으로 변경되었다.
1907년에 덕수궁 [4]함녕전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후 중명전은 외국인 클럽(club)인 경성구락부로 사용되었고 1963년 [3]영친왕이 잠시 소유하였다가 민간에 매각되는 등 순탄치 않은 역사를 겪었다.
1925년 3월 12일에 화재가 발생해 내부가 전소되었으나 외관은 기존 중명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2005년 대한민국 정부에서 매입하였으며 덕수궁에 포함시켜 대한제국 황실 건물로서의 위상을 되찾았다.
2007년~2009년까지 공사로 복원하였으나 원형과는 다소 달라져 있다.
현재 중명전에 전시관을 마련하여 대한제국 역사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4개의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다.
- 제1전시실 : 덕수궁과 중명전
- 제2전시실 : 을사늑약의 현장
- 제3전시실 : 을사늑약 전후의 대한제국
- 제4전실실 : 대한제국의 특사들
[1] 만희당(晩喜堂) : 건립년도는 알 수 없으나 1904년 경운궁(덕수궁)화재 이후 고종이 거처를 옮기면서 침전으로 사용하였다. 1907년 고종이 함녕전으로 돌아간 이후에 헐린 것으로 보인다
[2] 예원학교 :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에 위치한 예체능 계열의 중학교. 바로 옆에 중명전이 있다
[3] 영친왕(1897년~1970년) : 대한제국의 황족이자 일본 제국의 군인. 고종의 7번째 아들이며 순종과 이복형제
[4] 함녕전(咸寧殿) : 고종이 머물렀던 침전으로 1904년에 화재로 다시 지은 건물이며 고종이 1919년 1월 22일 승하하신 곳이다
[촬영일 : 2022-02-25]
중명전은 황실 도서관으로 1899년에 지어졌다. 1904년 덕수궁 대화재 이후 고종이 이곳으로 거처를 옮겨 정사를 논하고 귀빈을 접견하는 장소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1905년 11월 중명전은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된 비운의 장소가 되었다
[촬영일 : 2022-02-25]
중명전은 황실 도서관으로 1899년에 지어졌다. 1904년 덕수궁 대화재 이후 고종이 이곳으로 거처를 옮겨 정사를 논하고 귀빈을 접견하는 장소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1905년 11월 중명전은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된 비운의 장소가 되었다
[촬영일 : 2022-02-25]
중명전은 황실 도서관으로 1899년에 지어졌다. 1904년 덕수궁 대화재 이후 고종이 이곳으로 거처를 옮겨 정사를 논하고 귀빈을 접견하는 장소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1905년 11월 중명전은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된 비운의 장소가 되었다
[촬영일 : 2022-02-25]
1903년~1904년경 덕수궁과 중명전
[촬영일 : 2022-02-25]
제1전시실 을사늑약의 현장 : 1905년 11월 17일 일본군에 둘러싸인 중명전에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는 내용의 을사늑약이 강제적으로 체결되었다. 이근택, 권중현, 이지용, 이완용, 하야지 곤스케, 이토히로부미, 박제순, 한규설, 민영기, 이하영(좌측부터 시계방향순)
[촬영일 : 2022-02-25]
제1전시실 을사늑약의 현장 : 1905년 11월 17일 일본군에 둘러싸인 중명전에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는 내용의 을사늑약이 강제적으로 체결되었다. 이근택, 권중현, 이지용, 이완용, 하야지 곤스케, 이토히로부미, 박제순, 한규설, 민영기, 이하영(좌측부터 시계방향순)
[촬영일 : 2022-02-25]
만희당지 : 만희당은 중명전 뒤쪽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고종이 침전으로 사용했던 곳이다. 건립년도는 알수 없으나 1904년 경운궁(덕수궁)화재 이후 고종이 중명전 영역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침전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1907년 고종이 함녕전으로 돌아간 이후에 헐린 것으로 보인다. 일제강점기 중명전이 외국인들을 위한 클럽으로 사용되었는데, 이때 만회당이 있던 자리에 수영장을 만들어 사용하였다. 2009년 발굴조사시 수영장으로 썼던 흔적과 만회당의 기둥자리가 확인되었다. [출처:중명전 만회당지 안내글]
[촬영일 : 2022-02-25]
중명전 우물 : 2009년 중명전 복원공사중 발견된 우물로 고종이 중명전에 기거하였을 당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촬영일 : 2022-02-25]
제1전시실인 덕수궁과 중명전 : 중명전의 처음 이름은 수옥헌이나 1906년부터 중명전으로 부루기 시작하였다. 1897년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한 이후 덕수궁을 황궁으로 정비하여 궁궐의 영역이 확대되었다
[촬영일 : 2022-02-25]
제4전시실 대한제국의 특사들 : 고종은 각국에 특사를 파견하였고 특사는 일제의 강압적인 을사늑약의 무효성을 알렸다. 헐버트에게 수여한 위임장과 헤이그 특사에게 발급한 위임장
[촬영일 : 2022-02-25]
중명전 입구 바닥과 각 전시장 입구
[촬영일 : 2022-02-25]
제3전시실 을사늑약 전후의 대한제국 : 대한제국 황제어새. 대한제국은 자주 독립을 유지하고자 하였지만 일본과 열강의 협상으로 인하여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기게 되었다
[촬영일 : 2024-06-15]
을사늑약문
[촬영일 : 2024-06-15]
을사늑약문
[촬영일 : 2024-06-15]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개최된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대한제국 고종황제가 밀사로 파견한 이준, 이상설, 이위종(왼쪽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