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회수 : 532 등록일 : 2022-02-26 ]
석조전은 접견실과 대식당, 침실과 서재등을 갖춘 황궁으로 건립되었으나 일제강점기에 미술관으로 용도가 변경된 이후 국제회의장, 박물관등으로 사용되면서 원형이 많이 훼손되었다. 이에 석조전을 원형대로 복원하고 대한제국의 역사적 의미를 회복하고자 2009년부터 복원 공사를 시작하여 2014년 10월 '석조전 대한제국역사관'을 개관하였다.
석조전은 도면과 옛 사진, 신문 기사, 카탈로그 등 고증자료의 검증을 거쳐 준공 당시의 모습으로 재현하였다. 석조전의 여러 방 중 사진 등 고증 자료가 남아있는 공간은 생활사를 재현하였으며, 고증자료가 남아있지 않은 공간은 대한제국 전시실로 꾸며져 있다. 생활사를 재현한 공간에 배치한 가구는 국립고궁박물관과 창덕궁에 남았던 석조전 준공 다시 사용한 가구이다.
석조전에는 영국 메이플사의 가구가들어왔는데, 국내에 남아 있던 석조전의 메이플사 가구 41점을 찾아 원래의 자리에 배치하였다. 석조전 전래 가구 배치 후 각 실에 부족한 가구는 메이플사 카탈로그를 참조하여 유사한 영국 고가구(앤틱 가구)를 구매하거나 복제하여 배치하였다.
석조전은 고종의 승낙을 얻어 대한제국 해관 총세무사 영국인 브라운이 계획을 세우고 청국 해관 엔지니어 영국인 하딩이 설계하였다. 공사 감독 역시 영국인 카트만, 하딩, 데이비슨이 맡았으며 인테리어 공사는 영국인 로벨이 총감독을 맡고, 영국 가구 회사 메이플에서 시공 및 가구 납품을 담당하였다. 한편 건축 공사를 시작하기 전에 목재로 1/10크기의 석조전 모형을 제작하였는데, 이 모형이 1900년 미국 건축잡지에 소개되었다.
대한제국 최대의 서양식 건물인 석조전은 신고전주의 양식의 철골 콘크리트조 건물이다. 지층은 창고와 주방 등의 준비실로 구성되었고, 1층은 공식적인 행사를 위한 공간, 2층은 황제와 황후의 생활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전통적인 궁궐은 편전과 침전이 분리되어 있는데, 석조전은 이를 한 공간에 둔 서양식 궁전이다.
대한제국 선포와 함께 황궁의 정전(正殿)으로 계획되었던 석조전은 1900년 착공하여 1910년에 준공되었다. 1911년에 외국에서 나무를 들여와 석조전 앞 정원을 완성하였다. 순 서양식으로 완성된 석조전은 서구화로 근대화와 부국강병을 꿈꾸었던 대한제국의 의지가 반영된 건물이다.
[출처] 석조전 대한제국 역사관 카탈로그
석조전은 도면과 옛 사진, 신문 기사, 카탈로그 등 고증자료의 검증을 거쳐 준공 당시의 모습으로 재현하였다. 석조전의 여러 방 중 사진 등 고증 자료가 남아있는 공간은 생활사를 재현하였으며, 고증자료가 남아있지 않은 공간은 대한제국 전시실로 꾸며져 있다. 생활사를 재현한 공간에 배치한 가구는 국립고궁박물관과 창덕궁에 남았던 석조전 준공 다시 사용한 가구이다.
석조전에는 영국 메이플사의 가구가들어왔는데, 국내에 남아 있던 석조전의 메이플사 가구 41점을 찾아 원래의 자리에 배치하였다. 석조전 전래 가구 배치 후 각 실에 부족한 가구는 메이플사 카탈로그를 참조하여 유사한 영국 고가구(앤틱 가구)를 구매하거나 복제하여 배치하였다.
석조전은 고종의 승낙을 얻어 대한제국 해관 총세무사 영국인 브라운이 계획을 세우고 청국 해관 엔지니어 영국인 하딩이 설계하였다. 공사 감독 역시 영국인 카트만, 하딩, 데이비슨이 맡았으며 인테리어 공사는 영국인 로벨이 총감독을 맡고, 영국 가구 회사 메이플에서 시공 및 가구 납품을 담당하였다. 한편 건축 공사를 시작하기 전에 목재로 1/10크기의 석조전 모형을 제작하였는데, 이 모형이 1900년 미국 건축잡지에 소개되었다.
대한제국 최대의 서양식 건물인 석조전은 신고전주의 양식의 철골 콘크리트조 건물이다. 지층은 창고와 주방 등의 준비실로 구성되었고, 1층은 공식적인 행사를 위한 공간, 2층은 황제와 황후의 생활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전통적인 궁궐은 편전과 침전이 분리되어 있는데, 석조전은 이를 한 공간에 둔 서양식 궁전이다.
대한제국 선포와 함께 황궁의 정전(正殿)으로 계획되었던 석조전은 1900년 착공하여 1910년에 준공되었다. 1911년에 외국에서 나무를 들여와 석조전 앞 정원을 완성하였다. 순 서양식으로 완성된 석조전은 서구화로 근대화와 부국강병을 꿈꾸었던 대한제국의 의지가 반영된 건물이다.
[출처] 석조전 대한제국 역사관 카탈로그
[촬영일 : 2021-11-06]
석조전의 야경
[촬영일 : 2022-02-25]
석조전은 1910년에 완성된 대한제국의 대표적인 서양식 건물이다
[촬영일 : 2022-02-25]
중앙홀 : 석조전의 중앙 계단을 올라 실내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공간으로 로비와 같은 도입 공간이다. 정면에는 접견실, 측면에는 귀빈대기실과 대식당이 연결되어 있다. 석조전 인테리어는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아칸서스 잎 몰딩, 과일 띠주름, 장식 기둥 등 고전적인 장식의 활용, 좌우대칭의 배치가 특징이다. 중앙홀은 1911년과 1918년 사진을 검토하여 준공 상시 모습을 재현하였다
[촬영일 : 2022-02-25]
중앙홀 우측면 : 중앙홀의 탁자는 창덕궁 희정당에서 보관하던 것을 이관한 것으로 석조전 내에서 가장 화려하다. 탁자 뒤 벽감에 배치한 횃불 모양의 입식 전등은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소장하던 석조전의 입식 전등을 복제한 것이며 접견실 문 앞에서 배치한 화병은 일본 도쿄의 구 영친왕저택에 남아 있는 석조전의 화병을 복제하였다
[촬영일 : 2022-02-25]
귀빈대기실 : 황제를 만나기 전에 순서를 기다리는 공간이다. 대기중에는 관리들과 간단한 대화를 나누거나 황실에서 제공하는 비스킷, 샴페인 등의 서양식 다과를 즐겼다. 귀빈대기실 인테리어는 1918년 사진 속 거울에 비친 모습을 참고하여 좌우대칭으로 배치하였다. 석조전 인테리어는 영국인 로벨(Lovell)이 총감독을 맡아 영국 메이플사에서 시공했는데, 귀빈대기실의 모습은 메이플사 인테리어 카탈로그 중 영국 신고전중의 양식 아담스타일 인테리어와 유사하다. 준공 당시 귀빈대기실의 벽면에는 영국 자연주의 풍경화가 걸려 있었으나 현존하지 않아 1929년 작가를 알 수 없는 작품 <석조전>과 고종의 초상화를 그린 휴버트 보스(Hubert Vos)의 1899년 작품 <서울풍경>을 복제 전시하였다 [출처:석조전 대한제국 역사관 카탈로그]
[촬영일 : 2022-02-25]
귀빈대기실 : 석조전 전래 가구 중 일부에는 배치 장소를 도장으로 찍거나 손으로 적어 놓은 경우가 있는데 귀빈대기실 가구중 긴 의자와 장식장에는 'RECEPTION ROOM'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출처:석조전 대한제국 역사관 카탈로그]
[촬영일 : 2022-02-25]
대한제국 황제 폐현 의례 : 조선의 왕이 입는 평상복 홍룡포는 황금색 황룡포로 바꾸었고 국가를 상징하는 국새는 '조선왕보'에서 '대한국새'로 변경하였다. 또한 황실의 인물을 책봉하거나 공덕을 칭송할 때에는 '옥책'을 대신하여 '금책'을 사용하였다. 이 방은 석조전 준공 당시 식당이었으나 현존하는 고증 자료의 부족으로 식당 복원 대신 대한제국의 의례를 설명하는 공간으로 꾸몄다. 대한 제국은 황제국의 격에 맞추어 조선왕조의 여러 의례를 크게 고쳤다. 또한 새로운 국제질서에 맞는 서양식 의례를 도입함으로써 외교 의례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촬영일 : 2022-02-25]
접견실 : 황제를 폐현하는 곳으로 석조전 실재 중 가장 화려하고 위엄 있는 공간이다. 다른 방들과 달리 황실의 문장인 이화문(오얏꽃무늬)을 가구와 인테리어에 사용하였다. 이화문은 태극기, 무궁화와 더불어 대한제국을 상징하는 문장으로 서양식 관복, 군복, 훈장, 공문서, 동전, 우표, 관용식기등에 사용하였다. 현재 접견실은 북쪽 천장의 1/3정도가 남쪽보다 낮게 되어 있는데, 이는 한국전쟁 때 파손되고 노후화되어 내려앉은 천장의 하중을 보강하기 위해 철골 보를 추가하였기 때문이다
[촬영일 : 2022-02-25]
접견실 : 황제를 폐현하는 곳으로 석조전 실재 중 가장 화려하고 위엄 있는 공간이다. 다른 방들과 달리 황실의 문장인 이화문(오얏꽃무늬)을 가구와 인테리어에 사용하였다. 이화문은 태극기, 무궁화와 더불어 대한제국을 상징하는 문장으로 서양식 관복, 군복, 훈장, 공문서, 동전, 우표, 관용식기등에 사용하였다. 현재 접견실은 북쪽 천장의 1/3정도가 남쪽보다 낮게 되어 있는데, 이는 한국전쟁 때 파손되고 노후화되어 내려앉은 천장의 하중을 보강하기 위해 철골 보를 추가하였기 때문이다
[촬영일 : 2022-02-25]
석조전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촬영일 : 2022-02-25]
황제 침실 :석조전 계획 당시에는 고종의 침실로 계획되었으나 고종은 덕수궁 함녕전에 계속 머물러 실제로는 사용하지 않았다. 1907년 유학을 빌미로 일본으로 끌려갔던 영친왕이 1911년 생모인 순헌황귀비의 훙거(왕이나 왕족,귀족등의 죽음을 높여 이르는 말)시 귀국하여 석조전을 임시 거처로 사용할 때 이용하였다. 영친왕은 이후 1922년까지 귀국할 때마다 석조전을 숙소로 사용하였다. 침실의 고증 사진은 남아 있지 않으나 석조전 전래 가구중 옷장과 세면대에 'EMPEROR'S BEDROOM'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어 황제 침실에 배치하였다. 또한 영국 메이플사의 카탈로그를 참조하여 가구를 배치하고 침대 위에 캐노피를 설치하였다. 2층의 커튼 색상은 황제의 공간에는 황금색으로 황후의 공간에는 자주색으로 재현하였다. 커튼의 문양은 고증 사진에서 보이는 문양을 분석하여 직조하였다 [참조 : 석조전 대한제국 역사관 카탈로그]
[촬영일 : 2022-02-25]
황제 침실 :석조전 계획 당시에는 고종의 침실로 계획되었으나 고종은 덕수궁 함녕전에 계속 머물러 실제로는 사용하지 않았다. 1907년 유학을 빌미로 일본으로 끌려갔던 영친왕이 1911년 생모인 순헌황귀비의 훙거(왕이나 왕족,귀족등의 죽음을 높여 이르는 말)시 귀국하여 석조전을 임시 거처로 사용할 때 이용하였다. 영친왕은 이후 1922년까지 귀국할 때마다 석조전을 숙소로 사용하였다. 침실의 고증 사진은 남아 있지 않으나 석조전 전래 가구중 옷장과 세면대에 'EMPEROR'S BEDROOM'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어 황제 침실에 배치하였다. 또한 영국 메이플사의 카탈로그를 참조하여 가구를 배치하고 침대 위에 캐노피를 설치하였다. 2층의 커튼 색상은 황제의 공간에는 황금색으로 황후의 공간에는 자주색으로 재현하였다. 커튼의 문양은 고증 사진에서 보이는 문양을 분석하여 직조하였다 [참조 : 석조전 대한제국 역사관 카탈로그]
[촬영일 : 2022-02-25]
황제서재 : 황제가 책을 보거나 가까운 손님을 맞이하는 방으로 전통적 개념의 사랑방과 같은 공간이다. 1911년과 1918년에 촬영한 황제 서재 사진을 검토하여 책상과 2층 책장, 회전식 책장, 원탁 등을 배치하였다. 배치된 가구중 책장과 원탁에는 'EMPEROR'S LIBRARY'라는 문구가 찍혀있다. 1918년에 촬영한 황제 서재 사진에는 중앙의 원형 탁자 위에 제목을 알 수 없는 양장본책이 한 권 놓여있다. 이를 재현하기 위해 고종이 반포한 '대한국국제(大韓國國制)'의 참고가 되었던 '만국공법'의 원서인 'The Element of International Law'를 구매하여 탁자 위에 배치하였다. 벽난로 소품 또한 고증 사진에 등장하는 양식으로 20세기 초 영국 엔틱 제품을 구매하여 배치하였다 [참조 : 석조전 대한제국 역사관 카탈로그]
[촬영일 : 2022-02-25]
황후거실 : 황후가 책을 보거나 내빈을 접대하는 방으로 계획되었다. 중앙의 타원형 탁자와 책상에는 'EMPRESS'S BOUDOIR'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는데 'BOUDOIR'는 전통적 개념의 안방, 규방과 같은 뜻이다. 석조전의 다른 방들에 비해 화려한 새틴우드 가구가 배치되었다. 준공 당시 석조전 가구는 모두 영국 메이플사 가구인데 대부분 1910년경에 발행한 메이플사 카탈로그에 등장한다. 이를 통해 석조전 가구가 주문 생산품이 아니라 기존 생산품을 구매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참조 : 석조전 대한제국 역사관 카탈로그]
[촬영일 : 2022-02-25]
황후침실 : 석조전 준공 당시에는 순헌황귀비의 침실로 계획되었으나 준공 직후 1911년 황귀비가 별세하여 사용되지 못하였다. 1920년 일본에서 영친왕과 혼인한 영친왕비가 1922년 영친왕과 함께 입국했을 때 잠시 사용하였다. 황제 침실과 마찬가지로 고증 사진이나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데, 석조전 전래 가구중 'EMPRESS'S BEDROOM'이라는 문구가 있는 가구가 남아 있어 침실을 재현할 수 있었다. 황제 침실과 대칭적으로 재현하였으며 영국 메이플사 카탈로그를 참고하여 가구를 배치하였다 [참조 : 석조전 대한제국 역사관 카탈로그]
[촬영일 : 2022-02-25]
황후침실 : 석조전 준공 당시에는 순헌황귀비의 침실로 계획되었으나 준공 직후 1911년 황귀비가 별세하여 사용되지 못하였다. 1920년 일본에서 영친왕과 혼인한 영친왕비가 1922년 영친왕과 함께 입국했을 때 잠시 사용하였다. 황제 침실과 마찬가지로 고증 사진이나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데, 석조전 전래 가구중 'EMPRESS'S BEDROOM'이라는 문구가 있는 가구가 남아 있어 침실을 재현할 수 있었다. 황제 침실과 대칭적으로 재현하였으며 영국 메이플사 카탈로그를 참고하여 가구를 배치하였다 [참조 : 석조전 대한제국 역사관 카탈로그]
[촬영일 : 2022-02-25]
석조전 2층 복도
[촬영일 : 2022-02-25]
석조전 2층 복도
[촬영일 : 2022-02-25]
석조전 2층 복도에 전시되어 있는 영친왕 사진 : 1911년 영친왕의 친모인 순헌왕귀비의 별세로 일본에서 귀국하여 이왕직(일제 강점기에 조선총독부에서 대한제국 황족의 의전 및 대한제국 황족과 관련된 사무를 담당하던 기구)과 같이 촬영한 사진이며 영친왕이 한쪽 다리를 구부린 자세(짝다리)는 전형적인 일본군인의 자세라고 한다
[촬영일 : 2022-02-25]
대식당 : 공식적인 행사 후 만찬을 베푼 공간이다. 대한제국 시기에는 연회에서 서양식 요리가 제공되었는데, 석조전에서도 서양식 만찬을 즐겼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만찬 장면의 재현은 '대한예전'의 연향도를 기준으로 삼았다 [참조 : 석조전 대한제국 역사관 카탈로그]
[촬영일 : 2022-02-25]
대식당 : 공식적인 행사 후 만찬을 베푼 공간이다. 대한제국 시기에는 연회에서 서양식 요리가 제공되었는데, 석조전에서도 서양식 만찬을 즐겼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만찬 장면의 재현은 '대한예전'의 연향도를 기준으로 삼았다 [참조 : 석조전 대한제국 역사관 카탈로그]
[촬영일 : 2022-02-25]
석조전 좌측 옆면과 뒷면
[촬영일 : 2022-02-25]
석조전 우측 옆면으로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과 연결되어 있다
[촬영일 : 2022-02-25]
석조전 우측 옆면으로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과 연결되어 있다
[촬영일 : 2022-02-25]
석조전 1층 테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