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회수 : 452   등록일 : 2022-02-02 ]
사적 제354호로 지정된 서울탑골공원은 서울에 최초로 만들어진 근대식 공원이다. 만들어진 시기를 두고 이견이 있으나 1890년대로 알려졌다.
이 공원은 고종 연간 [1]총세무사 영국인 브라운의 건의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개장 당시에는 빈 땅에 울타리를 둘러 나무를 심고 의자를 놓은 정도였으나 1910년부터 첨차 시설물을 늘려갔으며 1913년부터는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었다.

탑골공원은 3.1독립운동의 점화지로 유서깊은 곳이다. 1919년 3월 1일, 4~5천명에 이르는 학생들이 이곳에 모여 12시를 알리는 소리와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이곳의 팔각정에서 민족대표 33인의 이름으로 독립선언문을 낭독했다. 여기서 시작된 만세시위는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이 일대는 고려시대에 흥복사(興福寺)라는 사찰이 있었던 곳으로 조선시대 1464년(세조10년)에 원각사로 개명하고 중건하였다. 성종때 억불정책으로 원각사는 서서히 철거 및 용도변경으로 1514년(중종9년)에는 사찰건물은 자취를 감추어 버리고 현재는 원각사지 십층석탑과 대원각사비만 남아있다. 그 외에 
3.1운동을 기념한 독립운동 부조판과 3.1운동의 대표자 손병희 선생의 동상, 한용운 선생 기념비 등이 있다.

1967년에 시작한 이 지역의 재개발사업으로 종로도서관은 사직공원 옆으로 신축, 이전되었으며, 공원 서편에는 파고다아케이드라는 상가를 만들어 그 모습을 크게 바꾸었으나, 1980년대 초 이 아케이드는 철거되고 공원 내외부가 말끔히 단장되었다.

서울시내 공원 중에서 최초로 유료공원이 되었는데 1988년 시민의 휴식을 위하여 무료로 개방되었다.

탑동공원, 파고다공원등으로 불리다가 1991년 10월 11일 탑골공원으로 정했다. 2011년 7월 28일 '서울탑골공원'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2021년 제102주년 3.1절 경축 행사가 탑골공원 팔각정 앞에서 거행되었다.

[참고문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encykorea.aks.ac.kr)
 - 탑골공원 안내판

[1] 총세무사(總稅務司) : 1883년(고종 20) 11월 관세(關稅)를 관장하기 위한 해관을 각 개항장에 설치하면서, 세무사를 배치하고 총세무사로 하여금 통제·관할하도록 하였다. 역대 총세무사는 1883년 묄렌도르프(Mollen-dorf, P. G. von, 穆麟德)가 초대 총세무사로 취임한 뒤, 1885년 메릴(Merrill H. F., 墨賢里), 1889년 쇠니케(Schoenicke, J. F., 史納機), 1892년모건(Morgan, F. A., 馬根), 1893년 브라운(Brown, J. McLeavy, 伯卓安) 등이 역임하였다
삼일문 : 서울탑골공원 정문
[촬영일 : 2022-01-29]
삼일문 : 서울탑골공원 정문
삼일문 : 서울탑골공원 정문의 상량(목조 건축물의 낱낱의 재료를 조립하여 만든 구조물에서 최상부의 부분 목재인 마룻대를 올려 놓은 건축절차) 구문
[촬영일 : 2022-01-29]
삼일문 : 서울탑골공원 정문의 상량(목조 건축물의 낱낱의 재료를 조립하여 만든 구조물에서 최상부의 부분 목재인 마룻대를 올려 놓은 건축절차) 구문
서울탑골공원의 팔각정 : 팔각정은 1902년(광무6년)에 탑골공원안에 지은 팔각형 정자이다. 이곳은 1919년 3월 1일 탑골공원에서 시작된 3.1운동 당시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곳이다. 팔각정은 장대석 기단 위에 둥근기둥을 세우고 기둥머리 부분은 물익공을 짠 후 기와지붕을 덮었다. 전통과 근대의 건축기술을 두루 사용했던 건축가 심의석(1854~1924)이 주도하여 공사를 진행하였다
[촬영일 : 2022-01-29]
서울탑골공원의 팔각정 : 팔각정은 1902년(광무6년)에 탑골공원안에 지은 팔각형 정자이다. 이곳은 1919년 3월 1일 탑골공원에서 시작된 3.1운동 당시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곳이다. 팔각정은 장대석 기단 위에 둥근기둥을 세우고 기둥머리 부분은 물익공을 짠 후 기와지붕을 덮었다. 전통과 근대의 건축기술을 두루 사용했던 건축가 심의석(1854~1924)이 주도하여 공사를 진행하였다
서울탑골공원 팔각정 : 팔각정은 1902년(광무6년)에 탑골공원안에 지은 팔각형 정자이다. 이곳은 1919년 3월 1일 탑골공원에서 시작된 3.1운동 당시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곳이다. 팔각정은 장대석 기단 위에 둥근기둥을 세우고 기둥머리 부분은 물익공을 짠 후 기와지붕을 덮었다. 전통과 근대의 건축기술을 두루 사용했던 건축가 심의석(1854~1924)이 주도하여 공사를 진행하였다
[촬영일 : 2022-01-29]
서울탑골공원 팔각정 : 팔각정은 1902년(광무6년)에 탑골공원안에 지은 팔각형 정자이다. 이곳은 1919년 3월 1일 탑골공원에서 시작된 3.1운동 당시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곳이다. 팔각정은 장대석 기단 위에 둥근기둥을 세우고 기둥머리 부분은 물익공을 짠 후 기와지붕을 덮었다. 전통과 근대의 건축기술을 두루 사용했던 건축가 심의석(1854~1924)이 주도하여 공사를 진행하였다
원각사지 십층석탑 : 조선 세조때 세운 원각사터에 남아있는 높이 12m의 십층 석탑이다. 원각사는 1465년(세조 11)에 조계종의 본산이었던 흥복사터를 확장하여 세운 사찰인데, 이 탑은 2년 뒤인 1467년에 완성했다. 세조는 사리분신(舍利分身)하는 경이로운 일을 겪은 뒤 원각사를 짓기로 결정하였는데 공사도중에도 사리분신(舍利分身)하고 서기가 나타났다고 전해진다. 지금 견해로는 십층 석탑이지만 사료에는 13층의 탑을 세워 분신사리와 영도파(寧覩婆)를 세워 새로 번역한 원각경(圓覺經)을 모셔 두었다고 한다. 아(亞)자 모양의 기단은 세겹인데, 아래에는 용과 연꽃같은 무늬를 새겼고 중간에는 삼장법사와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일행이 인도에서 불법을 구해오는 과정을 그려 새겼다. 위에는 부처님의 전생 설화와 일생을 조각하였다. 법회 장면을 새긴 탑의 몸체에는 현판, 용을 휘감은 기둥, 목조구조, 지붕을 두었는데, 마치 하나의 건물같다. 탑을 만든 재료는 흔치않은 대리석이며 독특한 형태와 조각솜씨는 조선시대 석탑의 백미로 꼽힌다. 이 석탑은 고려시대에 제작한 경천사 십층석탑과 여러 면에서 매우 비슷하다 (출처 : 서울탑골공원 원각사지 십층석탑 안내판)
[촬영일 : 2022-01-29]
원각사지 십층석탑 : 조선 세조때 세운 원각사터에 남아있는 높이 12m의 십층 석탑이다. 원각사는 1465년(세조 11)에 조계종의 본산이었던 흥복사터를 확장하여 세운 사찰인데, 이 탑은 2년 뒤인 1467년에 완성했다. 세조는 사리분신(舍利分身)하는 경이로운 일을 겪은 뒤 원각사를 짓기로 결정하였는데 공사도중에도 사리분신(舍利分身)하고 서기가 나타났다고 전해진다. 지금 견해로는 십층 석탑이지만 사료에는 13층의 탑을 세워 분신사리와 영도파(寧覩婆)를 세워 새로 번역한 원각경(圓覺經)을 모셔 두었다고 한다. 아(亞)자 모양의 기단은 세겹인데, 아래에는 용과 연꽃같은 무늬를 새겼고 중간에는 삼장법사와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일행이 인도에서 불법을 구해오는 과정을 그려 새겼다. 위에는 부처님의 전생 설화와 일생을 조각하였다. 법회 장면을 새긴 탑의 몸체에는 현판, 용을 휘감은 기둥, 목조구조, 지붕을 두었는데, 마치 하나의 건물같다. 탑을 만든 재료는 흔치않은 대리석이며 독특한 형태와 조각솜씨는 조선시대 석탑의 백미로 꼽힌다. 이 석탑은 고려시대에 제작한 경천사 십층석탑과 여러 면에서 매우 비슷하다 (출처 : 서울탑골공원 원각사지 십층석탑 안내판)
원각사지 십층석탑 : 조선 세조때 세운 원각사터에 남아있는 높이 12m의 십층 석탑이다. 원각사는 1465년(세조 11)에 조계종의 본산이었던 흥복사터를 확장하여 세운 사찰인데, 이 탑은 2년 뒤인 1467년에 완성했다. 세조는 사리분신(舍利分身)하는 경이로운 일을 겪은 뒤 원각사를 짓기로 결정하였는데 공사도중에도 사리분신(舍利分身)하고 서기가 나타났다고 전해진다. 지금 견해로는 십층 석탑이지만 사료에는 13층의 탑을 세워 분신사리와 영도파(寧覩婆)를 세워 새로 번역한 원각경(圓覺經)을 모셔 두었다고 한다. 아(亞)자 모양의 기단은 세겹인데, 아래에는 용과 연꽃같은 무늬를 새겼고 중간에는 삼장법사와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일행이 인도에서 불법을 구해오는 과정을 그려 새겼다. 위에는 부처님의 전생 설화와 일생을 조각하였다. 법회 장면을 새긴 탑의 몸체에는 현판, 용을 휘감은 기둥, 목조구조, 지붕을 두었는데, 마치 하나의 건물같다. 탑을 만든 재료는 흔치않은 대리석이며 독특한 형태와 조각솜씨는 조선시대 석탑의 백미로 꼽힌다. 이 석탑은 고려시대에 제작한 경천사 십층석탑과 여러 면에서 매우 비슷하다 (출처 : 서울탑골공원 원각사지 십층석탑 안내판)
[촬영일 : 2022-01-29]
원각사지 십층석탑 : 조선 세조때 세운 원각사터에 남아있는 높이 12m의 십층 석탑이다. 원각사는 1465년(세조 11)에 조계종의 본산이었던 흥복사터를 확장하여 세운 사찰인데, 이 탑은 2년 뒤인 1467년에 완성했다. 세조는 사리분신(舍利分身)하는 경이로운 일을 겪은 뒤 원각사를 짓기로 결정하였는데 공사도중에도 사리분신(舍利分身)하고 서기가 나타났다고 전해진다. 지금 견해로는 십층 석탑이지만 사료에는 13층의 탑을 세워 분신사리와 영도파(寧覩婆)를 세워 새로 번역한 원각경(圓覺經)을 모셔 두었다고 한다. 아(亞)자 모양의 기단은 세겹인데, 아래에는 용과 연꽃같은 무늬를 새겼고 중간에는 삼장법사와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일행이 인도에서 불법을 구해오는 과정을 그려 새겼다. 위에는 부처님의 전생 설화와 일생을 조각하였다. 법회 장면을 새긴 탑의 몸체에는 현판, 용을 휘감은 기둥, 목조구조, 지붕을 두었는데, 마치 하나의 건물같다. 탑을 만든 재료는 흔치않은 대리석이며 독특한 형태와 조각솜씨는 조선시대 석탑의 백미로 꼽힌다. 이 석탑은 고려시대에 제작한 경천사 십층석탑과 여러 면에서 매우 비슷하다 (출처 : 서울탑골공원 원각사지 십층석탑 안내판)
원각사지 십층석탑 : 조선 세조때 세운 원각사터에 남아있는 높이 12m의 십층 석탑이다. 원각사는 1465년(세조 11)에 조계종의 본산이었던 흥복사터를 확장하여 세운 사찰인데, 이 탑은 2년 뒤인 1467년에 완성했다. 세조는 사리분신(舍利分身)하는 경이로운 일을 겪은 뒤 원각사를 짓기로 결정하였는데 공사도중에도 사리분신(舍利分身)하고 서기가 나타났다고 전해진다. 지금 견해로는 십층 석탑이지만 사료에는 13층의 탑을 세워 분신사리와 영도파(寧覩婆)를 세워 새로 번역한 원각경(圓覺經)을 모셔 두었다고 한다. 아(亞)자 모양의 기단은 세겹인데, 아래에는 용과 연꽃같은 무늬를 새겼고 중간에는 삼장법사와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일행이 인도에서 불법을 구해오는 과정을 그려 새겼다. 위에는 부처님의 전생 설화와 일생을 조각하였다. 법회 장면을 새긴 탑의 몸체에는 현판, 용을 휘감은 기둥, 목조구조, 지붕을 두었는데, 마치 하나의 건물같다. 탑을 만든 재료는 흔치않은 대리석이며 독특한 형태와 조각솜씨는 조선시대 석탑의 백미로 꼽힌다. 이 석탑은 고려시대에 제작한 경천사 십층석탑과 여러 면에서 매우 비슷하다 (출처 : 서울탑골공원 원각사지 십층석탑 안내판)
[촬영일 : 2022-01-29]
원각사지 십층석탑 : 조선 세조때 세운 원각사터에 남아있는 높이 12m의 십층 석탑이다. 원각사는 1465년(세조 11)에 조계종의 본산이었던 흥복사터를 확장하여 세운 사찰인데, 이 탑은 2년 뒤인 1467년에 완성했다. 세조는 사리분신(舍利分身)하는 경이로운 일을 겪은 뒤 원각사를 짓기로 결정하였는데 공사도중에도 사리분신(舍利分身)하고 서기가 나타났다고 전해진다. 지금 견해로는 십층 석탑이지만 사료에는 13층의 탑을 세워 분신사리와 영도파(寧覩婆)를 세워 새로 번역한 원각경(圓覺經)을 모셔 두었다고 한다. 아(亞)자 모양의 기단은 세겹인데, 아래에는 용과 연꽃같은 무늬를 새겼고 중간에는 삼장법사와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일행이 인도에서 불법을 구해오는 과정을 그려 새겼다. 위에는 부처님의 전생 설화와 일생을 조각하였다. 법회 장면을 새긴 탑의 몸체에는 현판, 용을 휘감은 기둥, 목조구조, 지붕을 두었는데, 마치 하나의 건물같다. 탑을 만든 재료는 흔치않은 대리석이며 독특한 형태와 조각솜씨는 조선시대 석탑의 백미로 꼽힌다. 이 석탑은 고려시대에 제작한 경천사 십층석탑과 여러 면에서 매우 비슷하다 (출처 : 서울탑골공원 원각사지 십층석탑 안내판)
대원각사비 : 대원각사비는 1471년(성종2)에 세조가 원각사를 창건한 경위를 적어 세운 비석이다. 불심이 돈독했던 세조는 양주 회암사에서 부신한 사리를 보고 감동하여 1465년(세조11)흥복사터에다 원각사를 지었다. 이어 1467년(세조13)에 13층 석탑이 완성되자 연등회를 열고 낙성식을 거행하였으며 그 전후사정을 적은 비석을 조성하게 하였다. 거북이 모양의 받침돌을 만들고 그 등위에 연잎을 새겨 비석 몸돌을 세울 자리를 만들었다. 몸돌은 머릿돌인 이수와 한 돌로 만들었다. 비석의 전체 높이는 494cm이며 거북은 화강암으로 몸돌과 머릿돌은 대리석으로 만들었다. 연산군대 궁궐에 인접한 민가를 철거하면서 원각사는 빈 절이 되었다 (출처 : 서울탑골공원 대원각사비 안내판)
[촬영일 : 2022-01-29]
대원각사비 : 대원각사비는 1471년(성종2)에 세조가 원각사를 창건한 경위를 적어 세운 비석이다. 불심이 돈독했던 세조는 양주 회암사에서 부신한 사리를 보고 감동하여 1465년(세조11)흥복사터에다 원각사를 지었다. 이어 1467년(세조13)에 13층 석탑이 완성되자 연등회를 열고 낙성식을 거행하였으며 그 전후사정을 적은 비석을 조성하게 하였다. 거북이 모양의 받침돌을 만들고 그 등위에 연잎을 새겨 비석 몸돌을 세울 자리를 만들었다. 몸돌은 머릿돌인 이수와 한 돌로 만들었다. 비석의 전체 높이는 494cm이며 거북은 화강암으로 몸돌과 머릿돌은 대리석으로 만들었다. 연산군대 궁궐에 인접한 민가를 철거하면서 원각사는 빈 절이 되었다 (출처 : 서울탑골공원 대원각사비 안내판)
대원각사비 : 대원각사비는 1471년(성종2)에 세조가 원각사를 창건한 경위를 적어 세운 비석이다. 불심이 돈독했던 세조는 양주 회암사에서 부신한 사리를 보고 감동하여 1465년(세조11)흥복사터에다 원각사를 지었다. 이어 1467년(세조13)에 13층 석탑이 완성되자 연등회를 열고 낙성식을 거행하였으며 그 전후사정을 적은 비석을 조성하게 하였다. 거북이 모양의 받침돌을 만들고 그 등위에 연잎을 새겨 비석 몸돌을 세울 자리를 만들었다. 몸돌은 머릿돌인 이수와 한 돌로 만들었다. 비석의 전체 높이는 494cm이며 거북은 화강암으로 몸돌과 머릿돌은 대리석으로 만들었다. 연산군대 궁궐에 인접한 민가를 철거하면서 원각사는 빈 절이 되었다 (출처 : 서울탑골공원 대원각사비 안내판)
[촬영일 : 2022-01-29]
대원각사비 : 대원각사비는 1471년(성종2)에 세조가 원각사를 창건한 경위를 적어 세운 비석이다. 불심이 돈독했던 세조는 양주 회암사에서 부신한 사리를 보고 감동하여 1465년(세조11)흥복사터에다 원각사를 지었다. 이어 1467년(세조13)에 13층 석탑이 완성되자 연등회를 열고 낙성식을 거행하였으며 그 전후사정을 적은 비석을 조성하게 하였다. 거북이 모양의 받침돌을 만들고 그 등위에 연잎을 새겨 비석 몸돌을 세울 자리를 만들었다. 몸돌은 머릿돌인 이수와 한 돌로 만들었다. 비석의 전체 높이는 494cm이며 거북은 화강암으로 몸돌과 머릿돌은 대리석으로 만들었다. 연산군대 궁궐에 인접한 민가를 철거하면서 원각사는 빈 절이 되었다 (출처 : 서울탑골공원 대원각사비 안내판)
의암 손병희(1861년~1922년) 선생 동상 : 천도교(동학) 지도자이자 대한제국의 독립운동가. 경기충청지역 동학군을 이끌고 전봉준과 합세하여 전과를 올림. 동학의 제3대 교주가 된 손병희는 1905년에 천도교로 개편하였다. 1919년 민족대표 33인의 대표로 3.1독립선언을 주도하여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른후 후유증으로 순국하였다
[촬영일 : 2022-01-29]
의암 손병희(1861년~1922년) 선생 동상 : 천도교(동학) 지도자이자 대한제국의 독립운동가. 경기충청지역 동학군을 이끌고 전봉준과 합세하여 전과를 올림. 동학의 제3대 교주가 된 손병희는 1905년에 천도교로 개편하였다. 1919년 민족대표 33인의 대표로 3.1독립선언을 주도하여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른후 후유증으로 순국하였다
의암 손병희(1861년~1922년) 선생 동상 : 천도교(동학) 지도자이자 대한제국의 독립운동가. 경기충청지역 동학군을 이끌고 전봉준과 합세하여 전과를 올림. 동학의 제3대 교주가 된 손병희는 1905년에 천도교로 개편하였다. 1919년 민족대표 33인의 대표로 3.1독립선언을 주도하여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른후 후유증으로 순국하였다
[촬영일 : 2022-01-29]
의암 손병희(1861년~1922년) 선생 동상 : 천도교(동학) 지도자이자 대한제국의 독립운동가. 경기충청지역 동학군을 이끌고 전봉준과 합세하여 전과를 올림. 동학의 제3대 교주가 된 손병희는 1905년에 천도교로 개편하였다. 1919년 민족대표 33인의 대표로 3.1독립선언을 주도하여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른후 후유증으로 순국하였다
서울탑골공원 석재유구 : 탑골공원내에 모아둔 여러 석물들은 이 일대의 도시개발과정에서 출토되었던 부재들이다. 이중 대리석으로 된 인물상(3점)은 원각사탑의 주위를 호위하던 신장상(神將像)이나 보살상으로 추정되고 연화문(蓮花紋)이 새겨진 난간석은 원각사탑 외곽을 둘린 부재가 아닌가 여겨진다. 현재 이곳에 모아둔 각종 석물들은 출처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전통 석조물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있다 (출처 : 탑골공원내 석재유구 안내글)
[촬영일 : 2022-01-29]
서울탑골공원 석재유구 : 탑골공원내에 모아둔 여러 석물들은 이 일대의 도시개발과정에서 출토되었던 부재들이다. 이중 대리석으로 된 인물상(3점)은 원각사탑의 주위를 호위하던 신장상(神將像)이나 보살상으로 추정되고 연화문(蓮花紋)이 새겨진 난간석은 원각사탑 외곽을 둘린 부재가 아닌가 여겨진다. 현재 이곳에 모아둔 각종 석물들은 출처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전통 석조물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있다 (출처 : 탑골공원내 석재유구 안내글)
서울탑골공원 석재유구 : 탑골공원내에 모아둔 여러 석물들은 이 일대의 도시개발과정에서 출토되었던 부재들이다. 이중 대리석으로 된 인물상(3점)은 원각사탑의 주위를 호위하던 신장상(神將像)이나 보살상으로 추정되고 연화문(蓮花紋)이 새겨진 난간석은 원각사탑 외곽을 둘린 부재가 아닌가 여겨진다. 현재 이곳에 모아둔 각종 석물들은 출처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전통 석조물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있다 (출처 : 탑골공원내 석재유구 안내글)
[촬영일 : 2022-01-29]
서울탑골공원 석재유구 : 탑골공원내에 모아둔 여러 석물들은 이 일대의 도시개발과정에서 출토되었던 부재들이다. 이중 대리석으로 된 인물상(3점)은 원각사탑의 주위를 호위하던 신장상(神將像)이나 보살상으로 추정되고 연화문(蓮花紋)이 새겨진 난간석은 원각사탑 외곽을 둘린 부재가 아닌가 여겨진다. 현재 이곳에 모아둔 각종 석물들은 출처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전통 석조물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있다 (출처 : 탑골공원내 석재유구 안내글)
용운당대선사비(龍雲堂大禪師碑) : 만해 한용운(1879년~1944년)선생의 비. 한국말년에 산중불교를 도시로 끌어내어 대중화하고 아울러 쇄망하는 국운을 만회하여 민주사회를 실현하려던 큰 지도자가 이었느니 그가 곧 선과 교를 겸통하고 진과 속을 쌍융한 용운당대선사이다
[촬영일 : 2022-01-29]
용운당대선사비(龍雲堂大禪師碑) : 만해 한용운(1879년~1944년)선생의 비. 한국말년에 산중불교를 도시로 끌어내어 대중화하고 아울러 쇄망하는 국운을 만회하여 민주사회를 실현하려던 큰 지도자가 이었느니 그가 곧 선과 교를 겸통하고 진과 속을 쌍융한 용운당대선사이다
서울탑골공원 : 3.1운동 기념부조
[촬영일 : 2022-01-29]
서울탑골공원 : 3.1운동 기념부조
서울탑골공원 : 3.1운동 기념부조
[촬영일 : 2022-01-29]
서울탑골공원 : 3.1운동 기념부조
서울탑골공원 : 3.1정신 찬양비
[촬영일 : 2022-01-29]
서울탑골공원 : 3.1정신 찬양비
삼일(3.1)운동 기념탑 - 독립선언서
[촬영일 : 2022-08-20]
삼일(3.1)운동 기념탑 - 독립선언서
삼일(3.1)운동 기념탑 - 우측
[촬영일 : 2022-08-20]
삼일(3.1)운동 기념탑 - 우측
삼일(3.1)운동 기념탑 - 좌측
[촬영일 : 2022-08-20]
삼일(3.1)운동 기념탑 - 좌측

Copyright 2020 TMSTORY.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