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회수 : 436 등록일 : 2024-07-21 ]
[1]명성황후 생가는 1973년 7월 10일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46호로 지정되었다.
조선 제19대 [2]숙종의 계비 [3]인현왕후의 아버지인 [4]민유중의 [5]묘막으로 1687(숙종13년)년에 건립되었고 명성황후가 출생하여 8세까지 살던 집이다.
당시 건물로는 안채만 남아 있었으나 1970년대에 두 차례에 걸쳐 중수했고 1996년에 행랑채와 사랑채, 별당 등을 함께 복원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명성황후가 어렸을 때 공부했다는 별당이 있었던 자리에 탄생을 기념해 세운 “명성황후 탄강구리(明成皇后 誕降舊里)”라 새겨진 비가 세워져 있다.
탄강(誕降)은 왕이나 성인이 세상에 태어났음을 말하고, 구리(舊里)는 고향이라는 뜻이다
생가 옆에는 민유중 묘·[6]신도비가 세워져 있다.
명성황후생가는 그리 크지 않은 재목을 사용한 아담한 규모이지만 구조물 형태와 짜임새 등에서 조선 중기 살림집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명성황후는 민치록의 딸로 1851(철종 2년)년에 여주에서 태어나 16살에 고종의 왕비가 되었다.
구한말 격동기속에서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가 1895(고종 32년)년 일본자객에 의해 시해되었다(을미사변).
고종 1897년(고종 34년)에 고종이 국호를 '대한제국'이라 선포하고 황제로 즉위하면서 '명성황후'로 추봉되었다.
능은 동대문구 회기로에 위치한 현재 국립산림과학원내에 있었다가 1919년 고종황제가 세상을 떠나자 현재의 남양주 경기도 남양주 금곡동에 위치한 홍릉으로 함께 합장되었다.
[참고] : 여주세종문화관광재단(https://www.yjcf.or.kr/cms/content/view/292)
[1] 명성황후(明成皇后, 1851년~1895년) : 조선의 26대 왕이자 대한제국의 초대 황제인 고종의 왕비. 휘는 민자영 (閔玆暎)
[2] 숙종(肅宗, 1661년~1720년) : 조선의 제19대 국왕, 재위: 1674년 9월 12일~1720년 7월 12일)
[3] 인현왕후(仁顯王后 閔氏, 1667년~1701년) : 조선 제19대 임금인 숙종의 계비
[4] 민유중(閔維重, 1630년~1687년) : 조선시대 중후기의 문신, 정치인으로 인현왕후의 아버지, 곧 숙종의 장인. 명성황후의 6대조 할아버지
[5] 묘막(墓幕) : 무덤 가까이에 세운 묘지기가 사는 집
[6] 신도비(神道碑) : 죽은 이의 업적을 기리는 비석
조선 제19대 [2]숙종의 계비 [3]인현왕후의 아버지인 [4]민유중의 [5]묘막으로 1687(숙종13년)년에 건립되었고 명성황후가 출생하여 8세까지 살던 집이다.
당시 건물로는 안채만 남아 있었으나 1970년대에 두 차례에 걸쳐 중수했고 1996년에 행랑채와 사랑채, 별당 등을 함께 복원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명성황후가 어렸을 때 공부했다는 별당이 있었던 자리에 탄생을 기념해 세운 “명성황후 탄강구리(明成皇后 誕降舊里)”라 새겨진 비가 세워져 있다.
탄강(誕降)은 왕이나 성인이 세상에 태어났음을 말하고, 구리(舊里)는 고향이라는 뜻이다
생가 옆에는 민유중 묘·[6]신도비가 세워져 있다.
명성황후생가는 그리 크지 않은 재목을 사용한 아담한 규모이지만 구조물 형태와 짜임새 등에서 조선 중기 살림집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명성황후는 민치록의 딸로 1851(철종 2년)년에 여주에서 태어나 16살에 고종의 왕비가 되었다.
구한말 격동기속에서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가 1895(고종 32년)년 일본자객에 의해 시해되었다(을미사변).
고종 1897년(고종 34년)에 고종이 국호를 '대한제국'이라 선포하고 황제로 즉위하면서 '명성황후'로 추봉되었다.
능은 동대문구 회기로에 위치한 현재 국립산림과학원내에 있었다가 1919년 고종황제가 세상을 떠나자 현재의 남양주 경기도 남양주 금곡동에 위치한 홍릉으로 함께 합장되었다.
[참고] : 여주세종문화관광재단(https://www.yjcf.or.kr/cms/content/view/292)
[1] 명성황후(明成皇后, 1851년~1895년) : 조선의 26대 왕이자 대한제국의 초대 황제인 고종의 왕비. 휘는 민자영 (閔玆暎)
[2] 숙종(肅宗, 1661년~1720년) : 조선의 제19대 국왕, 재위: 1674년 9월 12일~1720년 7월 12일)
[3] 인현왕후(仁顯王后 閔氏, 1667년~1701년) : 조선 제19대 임금인 숙종의 계비
[4] 민유중(閔維重, 1630년~1687년) : 조선시대 중후기의 문신, 정치인으로 인현왕후의 아버지, 곧 숙종의 장인. 명성황후의 6대조 할아버지
[5] 묘막(墓幕) : 무덤 가까이에 세운 묘지기가 사는 집
[6] 신도비(神道碑) : 죽은 이의 업적을 기리는 비석
[촬영일 : 2024-06-16]
명성황후 생가 종합안내
[촬영일 : 2024-06-16]
명성황후 생가 연못
[촬영일 : 2024-06-16]
명성황후 추모비
[촬영일 : 2024-06-16]
명성황후 기념관
[촬영일 : 2024-06-16]
명성황후 기념관 : 명성황후와 고종
[촬영일 : 2024-06-16]
명성황후 기념관 : 명성황후와 여흥민씨
[촬영일 : 2024-06-16]
명성황후 기념관 : 고종과 명성황후 가례
[촬영일 : 2024-06-16]
명성황후 기념관 : 명성황후 관련 궁중유물
[촬영일 : 2024-06-16]
명성황후 기념관 : 개항
[촬영일 : 2024-06-16]
명성황후 기념관 : 외국인이 바라본 명성황후
[촬영일 : 2024-06-16]
명성황후 기념관 : 명성황후 국장
[촬영일 : 2024-06-16]
명성황후 기념관 : 명성황후 시해도
[촬영일 : 2024-06-16]
명성황후 기념관 : 명성황후 순국숭모비
[촬영일 : 2024-06-16]
명성황후 생가
[촬영일 : 2024-06-16]
명성황후 생가 대문 : 대문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행랑채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촬영일 : 2024-06-16]
명성황후 생가 : 생가 안쪽 대문 오른쪽에 사랑채가 위치해 있으며 사랄채는 남자 주인과 외부 손님들을 접대하는 생활공간
[촬영일 : 2024-06-16]
명성황후 생가 곳간 : 고방이라고도 한다. 규모가 작은 집은 보통 안방과 부억 가까운 곳에 있어 잡다한 기구나 곡식등을 넣었는데 채광과 환기가 잘 되도록 하였다
[촬영일 : 2024-06-16]
명성황후 생가 부엌
[촬영일 : 2024-06-16]
명성황후 생가 안채 - 안방 : 집안의 주인마님을 비롯한 주로 여성들의 공간. 안채는 안방, 대청, 건넌방, 윗방, 다락, 부엌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촬영일 : 2024-06-16]
명성황후 생가 안채 - 대청마루 : 집안의 주인마님을 비롯한 주로 여성들의 공간. 안채는 안방, 대청, 건넌방, 윗방, 다락, 부엌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촬영일 : 2024-06-16]
명성황후 생가 헛간 : 농기구등 여러가지 물건을 넣어 두는 곳
[촬영일 : 2024-06-16]
명성황후 생가 사랑채 : 바깥주인이 주로 거처하면서 외부의 손님들을 접대하는 생활공간이자 방
[촬영일 : 2024-06-16]
명성황후 생가 : 부엌, 안방, 대청, 건넌방
[촬영일 : 2024-06-16]
명성황후 생가 별당 : 명성황후 아버지가 영천군수 벼슬을 끝으로 한양 감고당에서 사망했으니 8세 이전에 이곳에서 글공부를 하며 어린시절을 보내고, 여주를 떠나 한양에서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촬영일 : 2024-06-16]
명성황후 생가 : 별당 안마당 맞은편의 생가
[촬영일 : 2024-06-16]
명성황후 탄강구리비(明成皇后 誕降舊里碑) : 명성황후의 탄생을 기념하기 위해 고종 41년(1904년)에 명성황후의 고향집에 세운비이다
[촬영일 : 2024-06-16]
명성황후 탄강구리비(明成皇后 誕降舊里碑) : 명성황후의 탄생을 기념하기 위해 고종 41년(1904년)에 명성황후의 고향집에 세운비이다. 뒷면에는 '1904년 5월 어느 날 두 손을 맞잡고 절하며 눈물을 머금고 공경히 쓰다'라는 뜻으로 '광무팔년갑진오월일배수음체경서(光武八年甲辰五月日拜手飲涕敬書)'라고 새겨져 있다. 글씨는 명성황후의 아들이자 조선 제27대 임금인 순종 황제의 친필이라 전한다. 비각은 1970년에 새로 보수한 것이다
[촬영일 : 2024-06-16]
민유중 묘·신도비(閔維重 墓·神道碑) : 민유중은 인현왕후의 아버지로 조선 제19대 임금인 숙종의 장인이며 명성황후의 6대조 할아버지이다. 용의 머리는 오른쪽으로 틀어져 묘소를 향하고 있는데 이곳에서 150m 지점에 민유중의 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