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회수 : 181 등록일 : 2022-03-07 ]
충주 탄금대는 본래 대문산이라 부르던 야산인데, 기암절벽을 휘감아돌며 유유히 흐르는 남한강과 울창한 송림으로 경치가 매우 좋은 곳이다. 신라 진흥왕 때 우리나라 [1]3대 악성 중 하나인 우륵(于勒)이 가야금을 연주하던 곳이라 하여 탄금대라는 명칭이 생겼다.
임진왜란 당시 신립장군(1546년~1592년)이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치고 왜군과 싸우다 패전하자 투신한 지역으로 역사적 가치가 큰 명소이다.
탄금대 전투 이후 조선은 평양까지 파죽지세로 밀리고 조정은 물론 각 지방군의 사기가 크게 저하되는 임진왜란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친 전투였다.
1986년 8월 공원으로 지정되고 충청북도 기념물 제4호로 지정되어 보호되다 2008년 7월 국가 명승 제42호로 승격되었으며 명승지 내에서는 통성 등 역사적 유적과 신립장군 순절비, 탄금대기비, 악성우륵선생 추모비, 감자꽃 노래비, 충혼탑, 판천고혼위령탑 등이 있어 역사탐방 코스 및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탄금대는 남한강이 절벽을 따라 휘감아 돌고, 울창한 송림이 우거져 경관이 아름다우며 열두대에서 조망되는 남한강과 계명산, 남산 및 충주 시가지와 넓은 평야지대가 절경인 곳으로 강줄기를 중심으로 자리한 중원 역사 문화권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역사유적이다.
[1] 3대 악성 : 왕산악, 우륵, 박연
임진왜란 당시 신립장군(1546년~1592년)이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치고 왜군과 싸우다 패전하자 투신한 지역으로 역사적 가치가 큰 명소이다.
탄금대 전투 이후 조선은 평양까지 파죽지세로 밀리고 조정은 물론 각 지방군의 사기가 크게 저하되는 임진왜란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친 전투였다.
1986년 8월 공원으로 지정되고 충청북도 기념물 제4호로 지정되어 보호되다 2008년 7월 국가 명승 제42호로 승격되었으며 명승지 내에서는 통성 등 역사적 유적과 신립장군 순절비, 탄금대기비, 악성우륵선생 추모비, 감자꽃 노래비, 충혼탑, 판천고혼위령탑 등이 있어 역사탐방 코스 및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탄금대는 남한강이 절벽을 따라 휘감아 돌고, 울창한 송림이 우거져 경관이 아름다우며 열두대에서 조망되는 남한강과 계명산, 남산 및 충주 시가지와 넓은 평야지대가 절경인 곳으로 강줄기를 중심으로 자리한 중원 역사 문화권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역사유적이다.
[1] 3대 악성 : 왕산악, 우륵, 박연
[촬영일 : 2022-03-06]
악성우륵선생추모비 : 귀부와 이수의 형태를 갖춘 비로서 가야지역에 살던 우륵이 신라로 귀화하여 낭성(지금의 청주)에 살다 진흥황에게 명성이 알려져 하림궁에서 악곡을 지어 연주하니 왕이 감동하여 국원(지금의 충주)에 살게 하였으며 우륵선생 사후 그의 위업과 넋을 기리기 위하여 이를 세웠다
[촬영일 : 2022-03-06]
탄금대사연노래비 : 충주를 대표하는 향토가요인 탄금대사연의 가사를 화강암과 오석으로 음표를 형상화한 비석에 새겨 놓은 노래비이다
[촬영일 : 2022-03-06]
충혼탑 : 광복 이후 전사한 충주 지역의 순직장병, 경찰관, 군속, 군노무자등의 1,930위의 넋을 추모하기 위하여 탄금대에 건립하였다. 매년 6월 6일 이곳에서 현충일 추념식이 열린다
[촬영일 : 2022-03-06]
충혼탑 : 광복 이후 전사한 충주 지역의 순직장병, 경찰관, 군속, 군노무자등의 1,930위의 넋을 추모하기 위하여 탄금대에 건립하였다. 매년 6월 6일 이곳에서 현충일 추념식이 열린다
[촬영일 : 2022-03-06]
충혼탑 : 광복 이후 전사한 충주 지역의 순직장병, 경찰관, 군속, 군노무자등의 1,930위의 넋을 추모하기 위하여 탄금대에 건립하였다. 매년 6월 6일 이곳에서 현충일 추념식이 열린다
[촬영일 : 2022-03-06]
충장공 신립장군과 팔천고혼위령탑 : 신립장군과 팔천 장병의 결사항쟁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위령탑이다. 상단에 형상화된 혼불은 산화한 영령들을 추모하는 모습으로 조국을 지키는 수호신을 상징하며 아래 부분의 신립장군과 4인 군상은 최후를 맞이하면서도 굴하지 않는 호국 충절을 나타내고 있다. 바단 부분의 원반 모양은 탄금대를 감싸고 도는 남한강과 단천강의 물결 모양을 형상화하여 구성하였으며 탑 뒷면의 부조벽은 임진왜란 당시의 전투장면을 재현하여 탄금대 전투를 한눈에 느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촬영일 : 2022-03-06]
충장공 신립장군과 팔천고혼위령탑 : 신립장군과 팔천 장병의 결사항쟁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위령탑이다. 상단에 형상화된 혼불은 산화한 영령들을 추모하는 모습으로 조국을 지키는 수호신을 상징하며 아래 부분의 신립장군과 4인 군상은 최후를 맞이하면서도 굴하지 않는 호국 충절을 나타내고 있다. 바단 부분의 원반 모양은 탄금대를 감싸고 도는 남한강과 단천강의 물결 모양을 형상화하여 구성하였으며 탑 뒷면의 부조벽은 임진왜란 당시의 전투장면을 재현하여 탄금대 전투를 한눈에 느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촬영일 : 2022-03-06]
감자꽃노래비 : 지대석 위에 침석을 놓고 반구형의 감자꽃을 만들어 돌기둥 상단에 배치하였다. 이 고장 출신 시인 권태응 선생의 감자꽃 노래말이 새겨져 있다
[촬영일 : 2022-03-06]
탄금대기비 : 탄금대기비는 충주의 역사와 지리, 인물과 자연환경을 예찬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비석의 높이는 183cm, 폭은 66cm, 두께는 34cm인 화강석으로 1954년에 세워졌다
[촬영일 : 2022-03-06]
열두대 : 열두대는 탄금대 서북편의 층암절벽을 지칭하는 이름이다.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신립장군이 1592년 임진왜란 탄금대 전투 당시 병사들을 격려하느라 열두 번이나 오르내리며 지휘를 했다고 하며, 뜨거워진 활시위를 식히기 위해 이 곳에서 강아래로 열두번이나 오르내렸다 하여 열두대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강과 열두대 사이의 경사가 너무 심해 오르내리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에 이는 후세에 만들어진 전설로 추정되고 있다
[촬영일 : 2022-03-06]
탄금정 : 기암절벽이 위치한 곳에 있는 정자이며 충주 시민들의 손꼽히는 휴식 공간으로 자리 잡은 명승지이자 사적지
[촬영일 : 2022-03-06]
탄금정과 탄금대기비 너머로 남한강이 흐르고 있다
[촬영일 : 2022-03-06]
충장공신립장군순절비
[촬영일 : 2022-03-06]
충장공신립장군순절비
[촬영일 : 2022-03-06]
대흥사 : 고려 시대 거란족의 침입시 소실되어 천여 년을 폐허로 있다가 1956년 범우 스님이 3월에 이 터에 절을 재건하고 대흥사로 했다. 대흥사 7층석탑, 기단위에 자리잡은 대웅전, 미륵불상과 범종각등이 보이고 있다
[촬영일 : 2022-03-06]
용섬 : 남한강과 달천이 만나는 합류점은 유속이 감소되는 구간으로 두 하천으로부터 공급되는 물질들이 퇴적될 만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특히 하류에 충주조정지댐을 건설함으로써 생겨난 탄금호 안에 있는 습지 성격을 띤 강 한 가운데 있는 섬(하중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