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회수 : 13   등록일 : 2022-02-13 ]
강화산성은 고려가 몽골의 침입에 대항하여 개경에서 강화도로 수도를 옮겼을 때 도성으로 쌓은 것으로 내성, 중성, 외성으로 이루어졌다. 

내성은 1259년 몽골에 의해 헐린 후 조선시대에 돌로 다시 쌓았다. 그러나 병자호란 때 청나라 군대가 다시 파괴하여 조선 숙종 3년(1677년)에 크게 넓혀 고쳐 쌓았다. 강화산성 내성은 동서남북으로 난 대문 4개, 비밀통로인 암문 4개, 물이 흐르는 수문 2개, 관측소이자 지휘소인 남장대와 북장대가 있었다.

북문은 원래 누각이 없었으나 조선 정조 7년(1783)에 강화유수 김노진이 누각을 세우고 진송루(鎭松樓)라고 하였다. 그 뒤 북문은 전쟁으로 부서지고 석축만 남아 있었으나 1977년에 강화중요국방유적복원정화사업을 통하여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 출처 : 강화산성 북문 안내글
강화산성 북문은 원래 누각이 없었으나 조선 정조 7년(1783)에 강화유수 김노진이 누각을 세우고 진송루(鎭松樓)라고 하였다
[촬영일 : 2022-01-14]
강화산성 북문은 원래 누각이 없었으나 조선 정조 7년(1783)에 강화유수 김노진이 누각을 세우고 진송루(鎭松樓)라고 하였다
강화산성 북문은 원래 누각이 없었으나 조선 정조 7년(1783)에 강화유수 김노진이 누각을 세우고 진송루(鎭松樓)라고 하였다
[촬영일 : 2022-01-14]
강화산성 북문은 원래 누각이 없었으나 조선 정조 7년(1783)에 강화유수 김노진이 누각을 세우고 진송루(鎭松樓)라고 하였다
강화산성 북문은 원래 누각이 없었으나 조선 정조 7년(1783)에 강화유수 김노진이 누각을 세우고 진송루(鎭松樓)라고 하였다
[촬영일 : 2022-01-14]
강화산성 북문은 원래 누각이 없었으나 조선 정조 7년(1783)에 강화유수 김노진이 누각을 세우고 진송루(鎭松樓)라고 하였다
강화산성 북문은 원래 누각이 없었으나 조선 정조 7년(1783)에 강화유수 김노진이 누각을 세우고 진송루(鎭松樓)라고 하였다
[촬영일 : 2022-01-14]
강화산성 북문은 원래 누각이 없었으나 조선 정조 7년(1783)에 강화유수 김노진이 누각을 세우고 진송루(鎭松樓)라고 하였다
강화산성 북문은 원래 누각이 없었으나 조선 정조 7년(1783)에 강화유수 김노진이 누각을 세우고 진송루(鎭松樓)라고 하였다
[촬영일 : 2022-01-14]
강화산성 북문은 원래 누각이 없었으나 조선 정조 7년(1783)에 강화유수 김노진이 누각을 세우고 진송루(鎭松樓)라고 하였다
강화산성 북문은 원래 누각이 없었으나 조선 정조 7년(1783)에 강화유수 김노진이 누각을 세우고 진송루(鎭松樓)라고 하였다
[촬영일 : 2022-01-14]
강화산성 북문은 원래 누각이 없었으나 조선 정조 7년(1783)에 강화유수 김노진이 누각을 세우고 진송루(鎭松樓)라고 하였다
강화산성 북문은 원래 누각이 없었으나 조선 정조 7년(1783)에 강화유수 김노진이 누각을 세우고 진송루(鎭松樓)라고 하였다
[촬영일 : 2022-01-14]
강화산성 북문은 원래 누각이 없었으나 조선 정조 7년(1783)에 강화유수 김노진이 누각을 세우고 진송루(鎭松樓)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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