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회수 : 101 등록일 : 2022-01-16 ]
강화도령이라 불리던 조선의 25대 왕 철종(1849~1863)이 왕이 되기전가지 거처했던 곳이다. 왕위에 오르기 전까지는 초가였으나 철종이 왕위에 오르고 난 이후 강화유수 정기세가 지금과 같은 모습의 궁을 짓고 '용흥궁'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행랑채를 갖춘 용흥궁의 구조는 창덕궁의 연경당, 낙선재와 같이 살림집의 유형을 하고 있다.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내전 1동, 외전 1동, 별전 1동 등이며 궁 안에는 철종이 살았던 곳임을 알려주는 비석과 비각이 자리하고 있다. 1995년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20호로 지정됐다
행랑채를 갖춘 용흥궁의 구조는 창덕궁의 연경당, 낙선재와 같이 살림집의 유형을 하고 있다.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내전 1동, 외전 1동, 별전 1동 등이며 궁 안에는 철종이 살았던 곳임을 알려주는 비석과 비각이 자리하고 있다. 1995년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20호로 지정됐다
[촬영일 : 2022-01-14]
용흥궁(龍興宮) 현판
[촬영일 : 2022-01-14]
용흥궁(龍興宮) 외전: 일반 사대부 저택의 외전(사랑채)라고 할 수 있는 뒷편에 있는 별전. 앞면4칸에 누마루를 두고 있는 조선후기 양반가 사랑채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촬영일 : 2022-01-14]
용흥궁(龍興宮) 외전의 뒷 배경
[촬영일 : 2022-01-14]
용흥궁(龍興宮) 잠저비각(潛邸碑閣) :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살던 집을 잠저라고 하는데 용흥궁 내에는 잠저비각과 비가 서있다. 철종의 이름은 이원범이고 영조의 고손자이다
[촬영일 : 2022-01-14]
용흥궁(龍興宮) 내전(안채)
[촬영일 : 2022-01-14]
용흥궁(龍興宮) 내전(안채)
[촬영일 : 2022-01-14]
용흥궁(龍興宮) 담장이 있는 남쪽편(왼쪽)에는 행랑채로 하인들이 머무는 작은방과 마루가 구성되어 있고 정면으로 보이는 것은 3개의 광이다
[촬영일 : 2022-01-14]
용흥궁(龍興宮) 담장이 있는 남쪽편에 있는 행랑채이다. 왼쪽문은 안채에서 외부로 출입하는 출입문이다
[촬영일 : 2022-01-14]
용흥궁(龍興宮) 내전(안채) 오른쪽에는 우물이 있고 외전인 사랑채로 연결되는 쪽문을 볼 수 있다
[촬영일 : 2025-05-04]
용흥궁 입구에 위치한 정원용 생묘비와 정기세 생묘비
[촬영일 : 2025-05-04]
용흥궁 입구
[촬영일 : 2025-05-04]
용흥궁 입구에 세워진 강화유수 정기세 생묘비
[촬영일 : 2025-05-04]
용흥궁 입구에 세워진 정원용 생묘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