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회수 : 186 등록일 : 2025-10-06 ]
충장공 어재연(魚在淵, 1823년 3월 8일 ~ 1871년 6월 11일)은 조선 말기의 무신으로 1871년 신미양요 당시 강화도 광성보를 지키다 전사하였다.
어재연은 충남 홍성 출신으로 형 어재순과 함께 조선 말기의 대표적인 형제 무관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은 1866년 제너럴 셔먼호 사건을 명분으로 조선에 통상 요구를 하였다. 1871년, 미국은 병력 약 1,200명과 군함 5척을 이끌고 6월 10일 강화도의 초지진, 덕진진 등을 차례로 점령한 후 6월 11일 광성보에 도달하면서 교전을 벌어졌다.
당시 광성보를 지키던 어재연장군은 황룡기를 앞세우고 병사들과 함께 최후의 저항을 지휘했다. 압도적인 병력과 화력을 앞세운 미군과 치열한 전투 끝에 조선군은 패배했고 어재연은 전사했다. 그의 죽음은 "가장 용감했던 적장"으로 남아 있을 정도로 인상 깊은 항전이었다라고 미군 병사들의 기록에 남아 있었다. 이 전투에서 미군은 어재연 황룡기를 전리품으로 가져갔는데 미국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에 136년간 보관하고 있던 황룡기가 2007년 한국에 반환되면서 그의 저항 정신은 다시 조명되었다(2024년 3월에 다시 반납되었다).
조선 조정은 그의 충절을 기려 충장공이라는 시호를 내렸으며 그의 형 어재순은 초지진 전투에서 패하고 포로가 되었으나 후에 석방되었다.
어재연 장군이 전사한 광성보에는 현재 그의 전적비가 세워져 있으며 대한민국의 사적으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어재연은 충남 홍성 출신으로 형 어재순과 함께 조선 말기의 대표적인 형제 무관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은 1866년 제너럴 셔먼호 사건을 명분으로 조선에 통상 요구를 하였다. 1871년, 미국은 병력 약 1,200명과 군함 5척을 이끌고 6월 10일 강화도의 초지진, 덕진진 등을 차례로 점령한 후 6월 11일 광성보에 도달하면서 교전을 벌어졌다.
당시 광성보를 지키던 어재연장군은 황룡기를 앞세우고 병사들과 함께 최후의 저항을 지휘했다. 압도적인 병력과 화력을 앞세운 미군과 치열한 전투 끝에 조선군은 패배했고 어재연은 전사했다. 그의 죽음은 "가장 용감했던 적장"으로 남아 있을 정도로 인상 깊은 항전이었다라고 미군 병사들의 기록에 남아 있었다. 이 전투에서 미군은 어재연 황룡기를 전리품으로 가져갔는데 미국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에 136년간 보관하고 있던 황룡기가 2007년 한국에 반환되면서 그의 저항 정신은 다시 조명되었다(2024년 3월에 다시 반납되었다).
조선 조정은 그의 충절을 기려 충장공이라는 시호를 내렸으며 그의 형 어재순은 초지진 전투에서 패하고 포로가 되었으나 후에 석방되었다.
어재연 장군이 전사한 광성보에는 현재 그의 전적비가 세워져 있으며 대한민국의 사적으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촬영일 : 2025-05-04]
충장공 어재연 장군상
[촬영일 : 2025-05-04]
충장공 어재연 장군상
[촬영일 : 2025-05-04]
충장공 어재연 장군상
[촬영일 : 2025-05-04]
충장공 어재연 장군상
[촬영일 : 2025-05-04]
충장공 어재연 장군상
[촬영일 : 2025-05-04]
충장공 어재연 장군상
[촬영일 : 2025-05-04]
충장공 어재연 장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