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회수 : 505   등록일 : 2021-01-02 ]
부소산성(扶蘇山城)은 백제 사비기 왕궁의 배후산성이다. 평상시에는 왕궁의 후원 역할을 하다가 위급할 때에는 왕궁의 방어시설로 이용되었다. 서쪽으로는 백마강을 끼고 부여의 가장 북쪽에 위치한 표고 106m의 부소산 정상에 축조되었다. 산성 내부에서는 많은 수의 건물지가 발견되었고, 슬픈 전설을 간직한 낙화암도 이 안에 있다.
1993~1994년에 걸쳐 실시된 고고학적 조사 결과, 계곡을 품으면서 외곽을 두르는 백제시대 성벽, 그리고 그 안에 만들어진 통일신라시대 ~ 조선시대 성벽으로 구성되어 있음이 밝혀졌다. 백제시대 산성의 전체 길이는 외곽선을 기준으로 2,495m이며, 바닥의 너비는 5~6m, 높이는 3m 내외이다.

부소산성(扶蘇山城)은 백제가 사비로 도읍을 옮긴 백제 성왕16(538년)이전에 이미 축조되었다. 부소산성은 군창지와 사자루의 산봉우리를 머리띠를 두르듯 쌓은 테뫼식 산성과 이를 둘러싸고 있는 포곡식 산성이 혼합된 복합식 산성이다. 포곡식 산성만이 백제시대의 것이고 나머지 두 테뫼식 산성은 통일신라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확인된다. 대부분 흙으로 다진 토성으로 평상시에는 궁궐의 후원으로 이용되었으며 유사시에 도성의 방어거점으로 사용되었다

출처 : (재)백제세계유산센터(http://www.baekje-heritage.or.kr/html/kr/bjheritage/bjheritage_010301.html)
 
세계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 관북리 유적과 부소산성
[촬영일 : 2021-01-02]
세계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 관북리 유적과 부소산성
부여 부소산성(扶餘 扶蘇山城) 입구 및 매표소
[촬영일 : 2021-01-02]
부여 부소산성(扶餘 扶蘇山城) 입구 및 매표소
부여 부소산성(扶餘 扶蘇山城) 에 입장하여 내부에서는 사비문(泗沘門)현판을 볼 수 있다.
[촬영일 : 2021-01-02]
부여 부소산성(扶餘 扶蘇山城) 에 입장하여 내부에서는 사비문(泗沘門)현판을 볼 수 있다.
낙화암(落花巖) : 부소산 북쪽 백마강을 향해 우뚝 서 있는 큰 바위이다. 바위는 50m 정도 높이의 절벽을 이루고 있으며 강물에 이르러 한 번 꺽인 단이 있다. 이 단을 이룬 암벽에 송시열이 '낙화암'이라고 쓴 글씨가 새겨져 있다(출처 :부여군)
[촬영일 : 2021-01-02]
낙화암(落花巖) : 부소산 북쪽 백마강을 향해 우뚝 서 있는 큰 바위이다. 바위는 50m 정도 높이의 절벽을 이루고 있으며 강물에 이르러 한 번 꺽인 단이 있다. 이 단을 이룬 암벽에 송시열이 '낙화암'이라고 쓴 글씨가 새겨져 있다(출처 :부여군)
백화정(百花亭) 1 : 낙화암(落花巖) 위에 있는 정자이다. 나당연합군의 공격으로 사비성이 함락될 때 이곳에서 목숨을 버린 궁인들의 넋을 추모하기 위해 1928년에 세운 것으로 전한다(출처 : 부여군)
[촬영일 : 2021-01-02]
백화정(百花亭) 1 : 낙화암(落花巖) 위에 있는 정자이다. 나당연합군의 공격으로 사비성이 함락될 때 이곳에서 목숨을 버린 궁인들의 넋을 추모하기 위해 1928년에 세운 것으로 전한다(출처 : 부여군)
백화정(百花亭) 2 : 백화정이란 이름은 중국 북송 시대의 시인 소동파가 혜주에 귀양을 갔을 때 성 밖의 호수를 보고 지은 '강금수자백화주(江錦水射百花州)'라는 시에서 유래한다. 이곳을 감싸고 도는 백마강과 주변의 산들이 어우러져 한 폭의 산수화 같은 풍경을 이루고 있다(출처 : 부여군)
[촬영일 : 2021-01-02]
백화정(百花亭) 2 : 백화정이란 이름은 중국 북송 시대의 시인 소동파가 혜주에 귀양을 갔을 때 성 밖의 호수를 보고 지은 '강금수자백화주(江錦水射百花州)'라는 시에서 유래한다. 이곳을 감싸고 도는 백마강과 주변의 산들이 어우러져 한 폭의 산수화 같은 풍경을 이루고 있다(출처 : 부여군)
백화정(百花亭) 3 : 백화정이란 이름은 중국 북송 시대의 시인 소동파가 혜주에 귀양을 갔을 때 성 밖의 호수를 보고 지은 '강금수자백화주(江錦水射百花州)'라는 시에서 유래한다. 이곳을 감싸고 도는 백마강과 주변의 산들이 어우러져 한 폭의 산수화 같은 풍경을 이루고 있다(출처 : 부여군)
[촬영일 : 2021-01-02]
백화정(百花亭) 3 : 백화정이란 이름은 중국 북송 시대의 시인 소동파가 혜주에 귀양을 갔을 때 성 밖의 호수를 보고 지은 '강금수자백화주(江錦水射百花州)'라는 시에서 유래한다. 이곳을 감싸고 도는 백마강과 주변의 산들이 어우러져 한 폭의 산수화 같은 풍경을 이루고 있다(출처 : 부여군)
삼충사(三忠詞)입구 의열문(義烈門)
[촬영일 : 2021-01-02]
삼충사(三忠詞)입구 의열문(義烈門)
삼충사(三忠詞) 가운데 충의문(忠義門)
[촬영일 : 2021-01-02]
삼충사(三忠詞) 가운데 충의문(忠義門)
삼충사(三忠詞) 1 : 백제의 충신인 성충(?~656), 흥수(?~?), 계백(?~660)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1957년에 세운 사당
[촬영일 : 2021-01-02]
삼충사(三忠詞) 1 : 백제의 충신인 성충(?~656), 흥수(?~?), 계백(?~660)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1957년에 세운 사당
삼충사(三忠詞) 2 : 성충(왼쪽)은 백제 의자왕 때 좌평으로 잘못된 정치를 바로 잡기 위해 애쓰다가 투옥되어 식음을 전폐하고 죽은 충신. 흥수(중앙)는 나당 연합군이 공격해오자 탄현을 지키라고 의장왕에게 간곡하게 당부하였던 것으로 유명하다. 계백(오른쪽)은 신라 김유신장군의 5만군이 황산벌로 쳐들어오자 5천 결사대로 싸우다 황산벌에서 장렬히 죽은 장군
[촬영일 : 2021-01-02]
삼충사(三忠詞) 2 : 성충(왼쪽)은 백제 의자왕 때 좌평으로 잘못된 정치를 바로 잡기 위해 애쓰다가 투옥되어 식음을 전폐하고 죽은 충신. 흥수(중앙)는 나당 연합군이 공격해오자 탄현을 지키라고 의장왕에게 간곡하게 당부하였던 것으로 유명하다. 계백(오른쪽)은 신라 김유신장군의 5만군이 황산벌로 쳐들어오자 5천 결사대로 싸우다 황산벌에서 장렬히 죽은 장군
반월루(半月樓) : 부소산 서남쪽 언덕위에 자리잡은 누각이다.이곳에서는 부여읍의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반월루는 부소산의 옛 이름인 반월성에서 따온 이름으로 반월은 멀리 흐르는 백마강의 모습이 마치 달과 같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촬영일 : 2021-01-02]
반월루(半月樓) : 부소산 서남쪽 언덕위에 자리잡은 누각이다.이곳에서는 부여읍의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반월루는 부소산의 옛 이름인 반월성에서 따온 이름으로 반월은 멀리 흐르는 백마강의 모습이 마치 달과 같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영일루(迎日樓) : 계룡산 연천봉에서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던 누각으로 백제 시대의 영일대(迎日臺)가 있던 곳이다
[촬영일 : 2021-01-02]
영일루(迎日樓) : 계룡산 연천봉에서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던 누각으로 백제 시대의 영일대(迎日臺)가 있던 곳이다
궁녀사(宮女祠) 입구
[촬영일 : 2021-01-02]
궁녀사(宮女祠) 입구
궁녀사(宮女祠) 1 : 백제 의자왕 20년(660) 나당연합군에 의해 사비성이 함락되던 날, 낙화암에서 꽃처럼 떨어진 백제 궁녀들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1965년에 세운 사당
[촬영일 : 2021-01-02]
궁녀사(宮女祠) 1 : 백제 의자왕 20년(660) 나당연합군에 의해 사비성이 함락되던 날, 낙화암에서 꽃처럼 떨어진 백제 궁녀들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1965년에 세운 사당
궁녀사(宮女祠) 2 : 백제 의자왕 20년(660) 나당연합군에 의해 사비성이 함락되던 날, 낙화암에서 꽃처럼 떨어진 백제 궁녀들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1965년에 세운 사당
[촬영일 : 2021-01-02]
궁녀사(宮女祠) 2 : 백제 의자왕 20년(660) 나당연합군에 의해 사비성이 함락되던 날, 낙화암에서 꽃처럼 떨어진 백제 궁녀들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1965년에 세운 사당
사자루(泗泚樓) 1 : 부소산성에서 가장 높은 곳인 송월대(전설에 의하면 정사에 지친 왕이 다락에 올라 달을 보내면 휴식을 했다고 함)에 있는 누각
[촬영일 : 2021-01-02]
사자루(泗泚樓) 1 : 부소산성에서 가장 높은 곳인 송월대(전설에 의하면 정사에 지친 왕이 다락에 올라 달을 보내면 휴식을 했다고 함)에 있는 누각
사자루(泗泚樓) 2 : 부소산성에서 가장 높은 곳인 송월대(전설에 의하면 정사에 지친 왕이 다락에 올라 달을 보내면 휴식을 했다고 함)에 있는 누각
[촬영일 : 2021-01-02]
사자루(泗泚樓) 2 : 부소산성에서 가장 높은 곳인 송월대(전설에 의하면 정사에 지친 왕이 다락에 올라 달을 보내면 휴식을 했다고 함)에 있는 누각
부소산성(扶餘 扶蘇山城) 의 겨울풍경 1
[촬영일 : 2021-01-02]
부소산성(扶餘 扶蘇山城) 의 겨울풍경 1
부소산성(扶餘 扶蘇山城) 의 겨울풍경 2
[촬영일 : 2021-01-02]
부소산성(扶餘 扶蘇山城) 의 겨울풍경 2
부소산성(扶餘 扶蘇山城) 의 겨울풍경 3
[촬영일 : 2021-01-02]
부소산성(扶餘 扶蘇山城) 의 겨울풍경 3
부소산성(扶餘 扶蘇山城) 의 겨울풍경 4
[촬영일 : 2021-01-02]
부소산성(扶餘 扶蘇山城) 의 겨울풍경 4
낙화암(落花巖) : 부소산 북쪽 백마강을 향해 우뚝 서 있는 큰 바위이다. 바위는 50m 정도 높이의 절벽을 이루고 있으며 강물에 이르러 한 번 꺽인 단이 있다. 이 단을 이룬 암벽에 송시열이 '낙화암'이라고 쓴 글씨가 새겨져 있다(출처 :부여군)
[촬영일 : 2021-10-24]
낙화암(落花巖) : 부소산 북쪽 백마강을 향해 우뚝 서 있는 큰 바위이다. 바위는 50m 정도 높이의 절벽을 이루고 있으며 강물에 이르러 한 번 꺽인 단이 있다. 이 단을 이룬 암벽에 송시열이 '낙화암'이라고 쓴 글씨가 새겨져 있다(출처 :부여군)
백화정(百花亭) 4 : 백화정이란 이름은 중국 북송 시대의 시인 소동파가 혜주에 귀양을 갔을 때 성 밖의 호수를 보고 지은 '강금수자백화주(江錦水射百花州)'라는 시에서 유래한다. 이곳을 감싸고 도는 백마강과 주변의 산들이 어우러져 한 폭의 산수화 같은 풍경을 이루고 있다(출처 : 부여군)
[촬영일 : 2021-10-24]
백화정(百花亭) 4 : 백화정이란 이름은 중국 북송 시대의 시인 소동파가 혜주에 귀양을 갔을 때 성 밖의 호수를 보고 지은 '강금수자백화주(江錦水射百花州)'라는 시에서 유래한다. 이곳을 감싸고 도는 백마강과 주변의 산들이 어우러져 한 폭의 산수화 같은 풍경을 이루고 있다(출처 : 부여군)
백화정(百花亭) 5 : 백화정이란 이름은 중국 북송 시대의 시인 소동파가 혜주에 귀양을 갔을 때 성 밖의 호수를 보고 지은 '강금수자백화주(江錦水射百花州)'라는 시에서 유래한다. 이곳을 감싸고 도는 백마강과 주변의 산들이 어우러져 한 폭의 산수화 같은 풍경을 이루고 있다(출처 : 부여군)
[촬영일 : 2021-10-24]
백화정(百花亭) 5 : 백화정이란 이름은 중국 북송 시대의 시인 소동파가 혜주에 귀양을 갔을 때 성 밖의 호수를 보고 지은 '강금수자백화주(江錦水射百花州)'라는 시에서 유래한다. 이곳을 감싸고 도는 백마강과 주변의 산들이 어우러져 한 폭의 산수화 같은 풍경을 이루고 있다(출처 : 부여군)
부여 백마강 구드래 나루터애서 나화암을 거쳐 고란사까지 완복운행하는 황포돗단배
[촬영일 : 2021-10-24]
부여 백마강 구드래 나루터애서 나화암을 거쳐 고란사까지 완복운행하는 황포돗단배
부여 백마강의 절경
[촬영일 : 2021-10-24]
부여 백마강의 절경
고란사 선착장 : 부여 백마강 구드래 나루터애서 나화암을 거쳐 고란사까지 완복운행하는 황포돗단배
[촬영일 : 2021-10-24]
고란사 선착장 : 부여 백마강 구드래 나루터애서 나화암을 거쳐 고란사까지 완복운행하는 황포돗단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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