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회수 : 75   등록일 : 2020-08-09 ]
통도사는 대한민국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에 있는 사찰이며 영축산 남쪽 기슭에 있다. 부산 범어사, 합천 해인사, 순천 송광사와 더불어 한국 삼보사찰로 불리고 있다. 

총림이란? 총림(叢林)의 뜻은 범어 vindhyavana의 번역으로 빈타바나(貧陀婆那)라 음역하며 단림(壇林)이라고도 번하는데, 많은 승려와 속인들이 화합하여 함께 배우기 위해 모인 것 을 나무가 우거진 수풀에 비유한 것이다. 지금은 승려들의 참선수행 전문도량인 선원(禪院)과 경전 교육기관인 강원(講院), 계율 전문교육기관인 율원(律院)을 모두 갖춘 사찰을 지칭하는 말이다.
대한민국에는 총림이 8군데 있는데, 통도사, 해인사, 송광사, 수덕사, 백양사, 동화사, 범어사, 쌍계사를 8대 총림이라고 한다. 통도사는 1984년 총림으로 승격되었으며, 총림의 수장은 방장(方丈)이라고 한다. 모든 승려들은 행자교육을 마치고 사미계를 받으면 강원에서 4년 과정을 이수 후에 구족계(비구계)를 받고 선원이나 율원에서 수행생활을 할 수 있다.
- 참조 : http://tongdosa.or.kr/

* 삼보사찰 : 삼보는 불교의 신행 귀의대상인 불(佛)·법(法)·승(僧)을 가리키는 말로서 통도사가 불, 해인사가 법, 송광사가 승에 해당한다.
총림문(叢林門) - 부도원을 지나서 바로 나오는 문이다. 월하스님께서 쓰신 '영축총림'이란 편액이 걸려 있는데, 총림의 사격과 사찰의 시작을 표방한 총림문(叢林門)이라 하겠다.
[촬영일 : 2020-08-02]
총림문(叢林門) - 부도원을 지나서 바로 나오는 문이다. 월하스님께서 쓰신 '영축총림'이란 편액이 걸려 있는데, 총림의 사격과 사찰의 시작을 표방한 총림문(叢林門)이라 하겠다.
대웅전(大雄殿) - 국보 제290호
[촬영일 : 2020-08-02]
대웅전(大雄殿) - 국보 제290호
대웅전(大雄殿) 좌측 뒷 전경
[촬영일 : 2020-08-02]
대웅전(大雄殿) 좌측 뒷 전경
통도사 석등(通度寺 石燈): 관음전 전방에는 석등(石燈)이 있는데, 높이는 약 300㎝로서 그 조성수법은 용화전 앞의 석조봉발(石造奉鉢)과 비슷하여 고려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상부의 옥개(屋蓋)와 보주(寶珠)는 착실하게 고식(古式)을 따르고 있다. 등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8각의 받침돌을 3단으로 쌓고 위로는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었다. 아래받침돌의 옆면에는 안상(眼象)을 얕게 새겼고, 윗면에는 엎어놓은 연꽃무늬를 조각했으며, 가운데기둥은 중앙에 3줄의 테를 둘렀다. 윗 받침돌에는 위로 솟은 연꽃무늬를 장식하고, 4각의 화사석은 각 면에 네모난 창을 크게 뚫어 불빛이 퍼져 나오게 하였다. 지붕돌은 귀퉁이마다 꽃장식을 달았으며 꼭대기에는 노반(露盤)과 보주(寶珠)를 놓아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여러 가지 양식뿐만 아니라 화문(花紋)의 조식(彫飾)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짐작된다. 전체 높이는 약 350cm이고, 현재 경남유형문화재 제70호로 지정되어 있다(참조 : http://tongdosa.or.kr)
[촬영일 : 2020-08-02]
통도사 석등(通度寺 石燈): 관음전 전방에는 석등(石燈)이 있는데, 높이는 약 300㎝로서 그 조성수법은 용화전 앞의 석조봉발(石造奉鉢)과 비슷하여 고려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상부의 옥개(屋蓋)와 보주(寶珠)는 착실하게 고식(古式)을 따르고 있다. 등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8각의 받침돌을 3단으로 쌓고 위로는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었다. 아래받침돌의 옆면에는 안상(眼象)을 얕게 새겼고, 윗면에는 엎어놓은 연꽃무늬를 조각했으며, 가운데기둥은 중앙에 3줄의 테를 둘렀다. 윗 받침돌에는 위로 솟은 연꽃무늬를 장식하고, 4각의 화사석은 각 면에 네모난 창을 크게 뚫어 불빛이 퍼져 나오게 하였다. 지붕돌은 귀퉁이마다 꽃장식을 달았으며 꼭대기에는 노반(露盤)과 보주(寶珠)를 놓아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여러 가지 양식뿐만 아니라 화문(花紋)의 조식(彫飾)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짐작된다. 전체 높이는 약 350cm이고, 현재 경남유형문화재 제70호로 지정되어 있다(참조 : http://tongdosa.or.kr)
대웅전(大雄殿)앞의 전경 - 통일 신라 후기의 석조문화재 연구의 귀중한 자료인 삼층석탑이 보인다
[촬영일 : 2020-08-02]
대웅전(大雄殿)앞의 전경 - 통일 신라 후기의 석조문화재 연구의 귀중한 자료인 삼층석탑이 보인다
성보박물관(聖寶博物館) - 통도사 성보박물관이 소장한 각 시대별, 유형별 불교회화는 국내 박물관뿐만 아니라 세계 박물관을 통틀어 가장 풍부한 자료로서 인정받고 있다. 통도사성보박물관은 현재 불교회화를 중심으로 전시실을 운영하고 있으며, 국내 박물관으로는 유일무이한 불교회화 전문박물관으로 성장해나가고 있다. 1988년 우리나라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이 정한 제1종 전문박물관이며, 1993년 유네스코 산하 ICOM((International Council of Museums, 국제박물관협의회)에 등록되어 있다(참조 : 통도사 홈페이지 - http://tongdosa.or.kr/)
[촬영일 : 2020-08-02]
성보박물관(聖寶博物館) - 통도사 성보박물관이 소장한 각 시대별, 유형별 불교회화는 국내 박물관뿐만 아니라 세계 박물관을 통틀어 가장 풍부한 자료로서 인정받고 있다. 통도사성보박물관은 현재 불교회화를 중심으로 전시실을 운영하고 있으며, 국내 박물관으로는 유일무이한 불교회화 전문박물관으로 성장해나가고 있다. 1988년 우리나라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이 정한 제1종 전문박물관이며, 1993년 유네스코 산하 ICOM((International Council of Museums, 국제박물관협의회)에 등록되어 있다(참조 : 통도사 홈페이지 - http://tongdosa.or.kr/)
삼층석탑(三層石塔) : 이 석탑은 큰 받침돌 위에 2층의 기단을 세우고 그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통일 신라 후기의 삼층석탑이다. 1987년 해체 수리 당시 원래의 위치에서 동북쪽으로 약 1.5m 정도 옮겨져 극락전과 약사전의 중심축에 맞추어 복원하였다. 당시 상층기단 안쪽에서는 조선시대 백자가 발견되었고, 하층기단의 다진 흙 속에서는 소형의 금동불상 2구와 청동 숟가락 등이 발견되었는 데 현재 통도사 성보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탑 앞에 있던 배례석(1085년 조성)과 함께 통일 신라 후기의 석조문화재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보물 제1471호)
[촬영일 : 2020-08-02]
삼층석탑(三層石塔) : 이 석탑은 큰 받침돌 위에 2층의 기단을 세우고 그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통일 신라 후기의 삼층석탑이다. 1987년 해체 수리 당시 원래의 위치에서 동북쪽으로 약 1.5m 정도 옮겨져 극락전과 약사전의 중심축에 맞추어 복원하였다. 당시 상층기단 안쪽에서는 조선시대 백자가 발견되었고, 하층기단의 다진 흙 속에서는 소형의 금동불상 2구와 청동 숟가락 등이 발견되었는 데 현재 통도사 성보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탑 앞에 있던 배례석(1085년 조성)과 함께 통일 신라 후기의 석조문화재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보물 제1471호)
일주문(一株門) : 靈鷲山通度寺 영축산통도사(흥선대원군필). 일주문은 절에 들어오는 첫 번째 문으로 기둥의 배열이 한 줄로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촬영일 : 2020-08-02]
일주문(一株門) : 靈鷲山通度寺 영축산통도사(흥선대원군필). 일주문은 절에 들어오는 첫 번째 문으로 기둥의 배열이 한 줄로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일주문(一株門) 입구의 고목
[촬영일 : 2020-08-02]
일주문(一株門) 입구의 고목
극락보전(極樂寶殿) : 극락세계에 머물며 중생을 위해 자비를 베푸는 아미타불을 주불로 모신 전각이다. 이 건물은 1369년(고려 공민왕 18년)에 성곡대사가 창건하였고, 1801년(조선 순조 1) 지홍스님이 고쳐 지은후 20세기 초에 다시 수리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 건물은 일반적인 건물과 달리 측면의 어칸에 출입문을 두는 점이 특징적이다. 컨물의 뒤쪽 외벽에는 험한 바다를 건너 극락세계로 향하는 모습의 반야용선(般若龍船)도가 그려져 있어 극락전의 건축세계를 잘 보여준다(경남유형문화재 제194호)
[촬영일 : 2020-08-02]
극락보전(極樂寶殿) : 극락세계에 머물며 중생을 위해 자비를 베푸는 아미타불을 주불로 모신 전각이다. 이 건물은 1369년(고려 공민왕 18년)에 성곡대사가 창건하였고, 1801년(조선 순조 1) 지홍스님이 고쳐 지은후 20세기 초에 다시 수리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 건물은 일반적인 건물과 달리 측면의 어칸에 출입문을 두는 점이 특징적이다. 컨물의 뒤쪽 외벽에는 험한 바다를 건너 극락세계로 향하는 모습의 반야용선(般若龍船)도가 그려져 있어 극락전의 건축세계를 잘 보여준다(경남유형문화재 제194호)
영산전(靈山殿) : 하로전의 중심 전각으로 고려 초 이전에 처음 지은 후 1704년(숙종 30년)에 송곡대사가 중창한 것으로 전한다. 1716년 <영산전천왕문양중창겸단확기(靈山殿天王門兩重創兼丹?記)>에 따르면 1713년(숙종 39년)봄에 발생한 화재로 영산전과 천왕문이 불에 타서 1714년에 청인(淸印), 정안(正眼), 낭일(朗日), 치원(致源) 등 4분의 대선사의 노력으로 건물을 다시 지었다고 한다. 그 후 총안스님이 1715년에 단청을 올려 1716년에 모든 공사를 마쳤다. 내부에는 보물 제 1711호로 지정된 영산전 벽화를 비록하여 천장과 대들보 등에 뛰어난 단청이 장엄되어 있다
[촬영일 : 2020-08-02]
영산전(靈山殿) : 하로전의 중심 전각으로 고려 초 이전에 처음 지은 후 1704년(숙종 30년)에 송곡대사가 중창한 것으로 전한다. 1716년 <영산전천왕문양중창겸단확기(靈山殿天王門兩重創兼丹?記)>에 따르면 1713년(숙종 39년)봄에 발생한 화재로 영산전과 천왕문이 불에 타서 1714년에 청인(淸印), 정안(正眼), 낭일(朗日), 치원(致源) 등 4분의 대선사의 노력으로 건물을 다시 지었다고 한다. 그 후 총안스님이 1715년에 단청을 올려 1716년에 모든 공사를 마쳤다. 내부에는 보물 제 1711호로 지정된 영산전 벽화를 비록하여 천장과 대들보 등에 뛰어난 단청이 장엄되어 있다
범종각(梵鍾閣) : 2층 누각 형태의 건물. 건물의 초창은 1686년(숙종 12년) 수오대사에 의해 이루어졌으나 현재의 범종각은 이후 여러 차례 중수된 것으로 보인다. 내부 상하층에는 범종, 법고, 목어, 운판등 사물을 비치하였다. 불전사물은 조석예불 의식에 사용되는 불구로 모두 소리를 내는 도구이다. 범종을 치는 것은 지옥중생을 위하여 법고는 축생의 무리를 위하여 목어는 수중의 중생을 위하여 그리고 운판은 허공의 날짐승을 위하여 사용된다
[촬영일 : 2020-08-02]
범종각(梵鍾閣) : 2층 누각 형태의 건물. 건물의 초창은 1686년(숙종 12년) 수오대사에 의해 이루어졌으나 현재의 범종각은 이후 여러 차례 중수된 것으로 보인다. 내부 상하층에는 범종, 법고, 목어, 운판등 사물을 비치하였다. 불전사물은 조석예불 의식에 사용되는 불구로 모두 소리를 내는 도구이다. 범종을 치는 것은 지옥중생을 위하여 법고는 축생의 무리를 위하여 목어는 수중의 중생을 위하여 그리고 운판은 허공의 날짐승을 위하여 사용된다
봉발탑(奉鉢塔) : 석가모니의 옷과 그릇을 받들어 둔 곳이라 하여 일명 의발탑이라고 한다. 의발은 스승이 제자에게 불법을 전하는 상징물로 미륵보살이 석가여래의 의발을 전해 받아 성불하여 불법을 전한다는 의미를 담고있다. 봉발탑이 용화전 앞에 세워진 것은 미륵불이 석가여래를 이어 중생을 제도할 미래불임을 상징하는 것이다. 전체적인 구조는 하대석과 간석, 상대석과 그 위의 뚜껑있는 밥그릇 형상의 구조물로 이루어져 있다. 연곷 조각과 간석의 형태로 보아 고려 시대로 추정되지만, 받침 부분과 그릇 모양의 조형물과는 차이가 있어 같은 시기에 만든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보물 제471호)
[촬영일 : 2020-08-02]
봉발탑(奉鉢塔) : 석가모니의 옷과 그릇을 받들어 둔 곳이라 하여 일명 의발탑이라고 한다. 의발은 스승이 제자에게 불법을 전하는 상징물로 미륵보살이 석가여래의 의발을 전해 받아 성불하여 불법을 전한다는 의미를 담고있다. 봉발탑이 용화전 앞에 세워진 것은 미륵불이 석가여래를 이어 중생을 제도할 미래불임을 상징하는 것이다. 전체적인 구조는 하대석과 간석, 상대석과 그 위의 뚜껑있는 밥그릇 형상의 구조물로 이루어져 있다. 연곷 조각과 간석의 형태로 보아 고려 시대로 추정되지만, 받침 부분과 그릇 모양의 조형물과는 차이가 있어 같은 시기에 만든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보물 제471호)
삼십칠 조도품탑(三十七 助道品塔) :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수행하는 37가지의 방법을 말한다. 즉 4염처(念處), 4정근(正勤), 4여의족(如意足), 5근(根), 5역(力), 7각지(覺支), 8정도(正道) 등을 모두 합한 것이다. 37보리도법(菩提道法)이라고도 하는데, 이러한 수행 방법을 통해서 깨달음을 성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참조 : http://tongdosa.or.kr)
[촬영일 : 2020-08-02]
삼십칠 조도품탑(三十七 助道品塔) :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수행하는 37가지의 방법을 말한다. 즉 4염처(念處), 4정근(正勤), 4여의족(如意足), 5근(根), 5역(力), 7각지(覺支), 8정도(正道) 등을 모두 합한 것이다. 37보리도법(菩提道法)이라고도 하는데, 이러한 수행 방법을 통해서 깨달음을 성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참조 : http://tongdosa.or.kr)
세존비각(世尊碑閣): 관조선(1706년) 양산 통도사 석가여래 영골 사리 부도비 , 경남 유형문화재 제544호. 이 비각(碑閣)은 1706(숙종 32) 계파대사(桂坡大師)가 금강계단(金剛戒壇)을 중수(重修)하고 석가여래의 영골사리비(靈骨舍利碑)를 세우면서 건립(建立)한 것으로 비석(碑石)에는 불사리의 행적을 소상히 밝히고 있다. 곧 자장율사가 중국에서 사리를 모셔온 일과 임진왜란 당시 사명대사(泗溟大師)가 불사리(佛舍利)를 왜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크고 작은 2개의 함에 봉안하여 보관하였다. 그 후 한 개의 함은 문수대성(文殊大聖)께서 자장스님께 부촉하신 승지(勝地)이므로 통도사 금강계단에 다시 봉안토록 하였고, 또 다른 한 개의 함은 태백산(太白山) 갈반사에 봉안되었음을 석비(石碑) 전면(前面)에 기록(記錄)을 통해 알 수 있다. 비문은 수사간(守司諫) 채팽윤(蔡彭胤 1669~1731)이 짓고 글씨는 승정원(承政院) , 도승지(都承旨) 이진휴(李震休)가 썼다. 석비 뒷면의 비음(碑陰)은 성능대사(性能大師)가 짓고 보윤대사(普允大師)가 썼는데, 이곳에서는 석가모니의 행적(行蹟)과 함께 각지(各地)의 시주(施主)내용을 적고 있어 참고된다. 석비의 건립은 숙종(肅宗) 32년(1706)이며 높이는 2.5m, 폭 1m이다.(참조 : http://tongdosa.or.kr)
[촬영일 : 2020-08-02]
세존비각(世尊碑閣): 관조선(1706년) 양산 통도사 석가여래 영골 사리 부도비 , 경남 유형문화재 제544호. 이 비각(碑閣)은 1706(숙종 32) 계파대사(桂坡大師)가 금강계단(金剛戒壇)을 중수(重修)하고 석가여래의 영골사리비(靈骨舍利碑)를 세우면서 건립(建立)한 것으로 비석(碑石)에는 불사리의 행적을 소상히 밝히고 있다. 곧 자장율사가 중국에서 사리를 모셔온 일과 임진왜란 당시 사명대사(泗溟大師)가 불사리(佛舍利)를 왜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크고 작은 2개의 함에 봉안하여 보관하였다. 그 후 한 개의 함은 문수대성(文殊大聖)께서 자장스님께 부촉하신 승지(勝地)이므로 통도사 금강계단에 다시 봉안토록 하였고, 또 다른 한 개의 함은 태백산(太白山) 갈반사에 봉안되었음을 석비(石碑) 전면(前面)에 기록(記錄)을 통해 알 수 있다. 비문은 수사간(守司諫) 채팽윤(蔡彭胤 1669~1731)이 짓고 글씨는 승정원(承政院) , 도승지(都承旨) 이진휴(李震休)가 썼다. 석비 뒷면의 비음(碑陰)은 성능대사(性能大師)가 짓고 보윤대사(普允大師)가 썼는데, 이곳에서는 석가모니의 행적(行蹟)과 함께 각지(各地)의 시주(施主)내용을 적고 있어 참고된다. 석비의 건립은 숙종(肅宗) 32년(1706)이며 높이는 2.5m, 폭 1m이다.(참조 : http://tongdosa.or.kr)
세존비각(世尊碑閣) 내의 비석
[촬영일 : 2020-08-02]
세존비각(世尊碑閣) 내의 비석
부도원(浮屠院): 통도사 경내 아래쪽에 마련된 주차장에서 개울을 건너면 남향한 터에 자리한 부도원을 만난다. 이곳은 통도사의 역대 고승들의 사리탑과 탑비를 봉안한 곳이다. 이곳에 있는 부도와 탑비들은 원래 통도사 주변과 산내암자에 흩어져 있던 것인데, 1993년 가람을 정비하면서 모두 이곳으로 이전하여 부도원(浮屠院)으로 조성한 것이다. 현재 부도원에는 역대 고승들의 부도 60여 기와 탑비 및 중수비ㆍ공덕비 등 석비(石碑)가 60여 기가 즐비하게 줄지어 있다(양산 통도사 부도 , 경남 유형문화재 제585호) - 참조 : http://tongdosa.or.kr
[촬영일 : 2020-08-02]
부도원(浮屠院): 통도사 경내 아래쪽에 마련된 주차장에서 개울을 건너면 남향한 터에 자리한 부도원을 만난다. 이곳은 통도사의 역대 고승들의 사리탑과 탑비를 봉안한 곳이다. 이곳에 있는 부도와 탑비들은 원래 통도사 주변과 산내암자에 흩어져 있던 것인데, 1993년 가람을 정비하면서 모두 이곳으로 이전하여 부도원(浮屠院)으로 조성한 것이다. 현재 부도원에는 역대 고승들의 부도 60여 기와 탑비 및 중수비ㆍ공덕비 등 석비(石碑)가 60여 기가 즐비하게 줄지어 있다(양산 통도사 부도 , 경남 유형문화재 제585호) - 참조 : http://tongdos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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