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회수 : 81   등록일 : 2021-05-20 ]
  조선 22대 국왕 정조는 아버지 장헌세자(사도세자)의 묘소를 현륭원(현재의 융릉)으로 옮기면서 수원 신도시를 건설하고 수원화성 성곽을 축조하면서 화성행궁을 건립했다.
  화성행궁은 수원화성안에 자리하고 있으며, 조선의 여러 행궁 중에서 규모나 기능면에서 단연 으뜸으로 꼽히고 있다.
  평상시에는 수원부 관아로 사용되다가 정조대왕 행차시에는 화성행궁에서 머무르며, 진찬연 및 과거시험 등 여러 행사를 거행하였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낙남헌을 제외한 시설이 일제의 민족문화와 역사 말살로 사라졌다.
  1996년 1단계 복원공사가 시작되어 2003년 10월 일반에게 공개되었으며, 현재도 복원공사가 진쟁중이다.
  한류열풍에  큰 공헌을 한 '대장금','이산','왕의남자','구르미 그린 달빛'등 영화와 드라마에서 화성행궁의 아름다움을 담고 있다.

[출처 : 수원문화재단 리플렛]
 
화성행궁의 정문인 신풍루(新豊樓) : 신풍루는 임금님의 새로운 고향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촬영일 : 2021-05-19]
화성행궁의 정문인 신풍루(新豊樓) : 신풍루는 임금님의 새로운 고향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화성행궁내부에서의 신풍루(新豊樓)
[촬영일 : 2021-05-19]
화성행궁내부에서의 신풍루(新豊樓)
화성행궁의 정문인 신풍루를 통과하면 한류의 보급에 많은 영향을 주었던 드라마 이산과 장금이 모형이 방문객을 반기고 있다
[촬영일 : 2021-05-19]
화성행궁의 정문인 신풍루를 통과하면 한류의 보급에 많은 영향을 주었던 드라마 이산과 장금이 모형이 방문객을 반기고 있다
화성행궁 좌익문(左翊門) : 행궁의 정문인 신풍루를 지나면 정면에 좌익문이 나타난다. [좌익은 곧 곁에서 돕는다]는 뜻으로 내삼문을 바로 앞에서 도(道)와 행궁을 지키는 중삼문(中三門)이다. 1790년 완성되었고 편액은 정동준이 정조의 명을 받들어 썼다
[촬영일 : 2021-05-19]
화성행궁 좌익문(左翊門) : 행궁의 정문인 신풍루를 지나면 정면에 좌익문이 나타난다. [좌익은 곧 곁에서 돕는다]는 뜻으로 내삼문을 바로 앞에서 도(道)와 행궁을 지키는 중삼문(中三門)이다. 1790년 완성되었고 편액은 정동준이 정조의 명을 받들어 썼다
화성행궁 중양문(中陽門) : 양문은 궁궐 건축의 삼문 설치 형식에 따라 행궁의 정전인 봉수당을 바로 앞에서 가로막아 굳게 지키는 역할을 하는 내삼문(內三門)이다. 1790년(정조 14)에 완성되었으며, 중앙의 정문과 좌우의 우협문, 좌협문으로 이루어져 있고 문 좌우로 긴 행각을 두어 출입을 통제 하였다
[촬영일 : 2021-05-19]
화성행궁 중양문(中陽門) : 양문은 궁궐 건축의 삼문 설치 형식에 따라 행궁의 정전인 봉수당을 바로 앞에서 가로막아 굳게 지키는 역할을 하는 내삼문(內三門)이다. 1790년(정조 14)에 완성되었으며, 중앙의 정문과 좌우의 우협문, 좌협문으로 이루어져 있고 문 좌우로 긴 행각을 두어 출입을 통제 하였다
화성행궁의 정전 봉수당(奉壽堂) : 화성행궁의 정문인 신풍루(新豊樓, 임금님의 새로운 고향이라는 뜻)를 지나 좌익문(左翊門)과 중양문(中陽門)을 연이어 통과하면 봉수당(奉壽堂)이 등장한다.1789년(정조 13) 창건 1997년 복원 봉수당(奉壽堂)은 화성행궁에서 가장 위상이 높은 건물이다. 조선 정조 13년(1789)에 고을 수령이 나랏일을 살피는 동헌으로 지었다.봉수당(奉壽堂)은 임금 행차시 정전으로 쓰인 건물로 중심 4칸을 왕권을 상징하는 편전공간으로 연출하였다
[촬영일 : 2021-05-19]
화성행궁의 정전 봉수당(奉壽堂) : 화성행궁의 정문인 신풍루(新豊樓, 임금님의 새로운 고향이라는 뜻)를 지나 좌익문(左翊門)과 중양문(中陽門)을 연이어 통과하면 봉수당(奉壽堂)이 등장한다.1789년(정조 13) 창건 1997년 복원 봉수당(奉壽堂)은 화성행궁에서 가장 위상이 높은 건물이다. 조선 정조 13년(1789)에 고을 수령이 나랏일을 살피는 동헌으로 지었다.봉수당(奉壽堂)은 임금 행차시 정전으로 쓰인 건물로 중심 4칸을 왕권을 상징하는 편전공간으로 연출하였다
화성행궁 봉수당(奉壽堂)에서의 진찬연 연출공간 : 정조대왕이 어머니 혜경궁 홍씨에게 예를 드리고 있고, 여관들은 왕과 혜경궁 홍씨를 보좌하고 있다
[촬영일 : 2021-05-19]
화성행궁 봉수당(奉壽堂)에서의 진찬연 연출공간 : 정조대왕이 어머니 혜경궁 홍씨에게 예를 드리고 있고, 여관들은 왕과 혜경궁 홍씨를 보좌하고 있다
화성행궁 봉수당(奉壽堂)에서의 진찬연 연출공간 : 정조대왕이 어머니 혜경궁 홍씨에게 예를 드리고 있고, 여관들은 왕과 혜경궁 홍씨를 보좌하고 있다
[촬영일 : 2021-05-19]
화성행궁 봉수당(奉壽堂)에서의 진찬연 연출공간 : 정조대왕이 어머니 혜경궁 홍씨에게 예를 드리고 있고, 여관들은 왕과 혜경궁 홍씨를 보좌하고 있다
화성행궁 봉수당(奉壽堂)의 정조대왕의 처소. 정조대왕이 화성행궁 행차시 신하를 접견하고 쉬던 장소를 연출한 공간
[촬영일 : 2021-05-19]
화성행궁 봉수당(奉壽堂)의 정조대왕의 처소. 정조대왕이 화성행궁 행차시 신하를 접견하고 쉬던 장소를 연출한 공간
장락당(長樂堂) : 1794년(정조 18) 창건 1997년 복원 장락당은 조선 정조 19년(1795)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화성행궁에서 열면서 혜경궁 홍씨가 머물 처소로 사용하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정조는 중국 한나라의 고조가 어머니를 위해 장락궁을 지은 것을 본받아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위해 장락당을 짓고 현판의 글씨를 써서 내렸다. 장락당과 봉수당은 연결되어 있어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하다. 장락당은 임금이 화성에 내려오면 머무는 처소로도 사용되었다
[촬영일 : 2021-05-19]
장락당(長樂堂) : 1794년(정조 18) 창건 1997년 복원 장락당은 조선 정조 19년(1795)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화성행궁에서 열면서 혜경궁 홍씨가 머물 처소로 사용하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정조는 중국 한나라의 고조가 어머니를 위해 장락궁을 지은 것을 본받아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위해 장락당을 짓고 현판의 글씨를 써서 내렸다. 장락당과 봉수당은 연결되어 있어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하다. 장락당은 임금이 화성에 내려오면 머무는 처소로도 사용되었다
화성행궁 장락당(長樂堂)에서 침소에 들기 전 혜경궁 홍씨 : 장락당이 지어진 다음해 1795년(정조19년) 을묘원행 때 혜경궁 홍씨가 실제로 이곳에서 머물렀다. 침소가 차려진 혜경궁 홍씨 방을 연출한 공간이다
[촬영일 : 2021-05-19]
화성행궁 장락당(長樂堂)에서 침소에 들기 전 혜경궁 홍씨 : 장락당이 지어진 다음해 1795년(정조19년) 을묘원행 때 혜경궁 홍씨가 실제로 이곳에서 머물렀다. 침소가 차려진 혜경궁 홍씨 방을 연출한 공간이다
채비하는 환관 : 봉수당(奉壽堂)과 장락당(長樂堂) 뒤편의 행각에 위치한 공간으로 환관이 채비를 서두르고 있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촬영일 : 2021-05-19]
채비하는 환관 : 봉수당(奉壽堂)과 장락당(長樂堂) 뒤편의 행각에 위치한 공간으로 환관이 채비를 서두르고 있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글 읽는 환관 : 봉수당(奉壽堂)과 장락당(長樂堂) 뒤편의 행각에 위치한 공간으로 환관이 서책을 보고 있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촬영일 : 2021-05-19]
글 읽는 환관 : 봉수당(奉壽堂)과 장락당(長樂堂) 뒤편의 행각에 위치한 공간으로 환관이 서책을 보고 있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단장하는 상궁 : 봉수당(奉壽堂)과 장락당(長樂堂) 뒤편의 행각에 위치한 공간으로 단장하는 상궁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촬영일 : 2021-05-19]
단장하는 상궁 : 봉수당(奉壽堂)과 장락당(長樂堂) 뒤편의 행각에 위치한 공간으로 단장하는 상궁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나인처소 : 봉수당(奉壽堂)과 장락당(長樂堂) 뒤편의 행각에 위치한 공간으로 침방나인이 바느질을하고 있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촬영일 : 2021-05-19]
나인처소 : 봉수당(奉壽堂)과 장락당(長樂堂) 뒤편의 행각에 위치한 공간으로 침방나인이 바느질을하고 있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화성행궁 유여택(維與宅) : 1790년(정조 14) 창건 1998년 복원 유여택은 수원읍을 옮긴 이듬해인 조선 정조 14년(1790)에 지은 건물로, 화성 축성을 시작하던 1794년 가을에 증축되었다. 처음 건물은 은약헌(隱若軒)으로 부르다가 증축 후 이름을 바꾸었다. 유여택이란 <시경>에서 주나라의 기산(岐山)을 가리켜 [하늘이 산을 만들고 주시어 거처하게 하였다]라는 고사를 인용해서 지은 이름이다. 정조는 유여택에서 신하들의 보고를 받고 과거 시험에 합격한 무사들에게 상을 내리기도 했다
[촬영일 : 2021-05-19]
화성행궁 유여택(維與宅) : 1790년(정조 14) 창건 1998년 복원 유여택은 수원읍을 옮긴 이듬해인 조선 정조 14년(1790)에 지은 건물로, 화성 축성을 시작하던 1794년 가을에 증축되었다. 처음 건물은 은약헌(隱若軒)으로 부르다가 증축 후 이름을 바꾸었다. 유여택이란 <시경>에서 주나라의 기산(岐山)을 가리켜 [하늘이 산을 만들고 주시어 거처하게 하였다]라는 고사를 인용해서 지은 이름이다. 정조는 유여택에서 신하들의 보고를 받고 과거 시험에 합격한 무사들에게 상을 내리기도 했다
화성행궁 경룡관(景龍館) : 1794년(정조 18) 창건 1997년 복원 경룡관은 장락당으로 들어가는 대문 상부에 지은 다락집이다. 당나라 태종 때 열여덟 명의 학사들이 임금의 시에 화답한 것을 본떠서 정조가 직접 이름을 지었다. 경룡관은 당 태종의 궁전 이름이기도 하다. 아래층 대문 이름은 지락문(至樂門)이다. 이는 즐거움에 이른다는 뜻으로 장락당으로 들어가는 것이 즐겁다는 의미이다. 문의 규모는 작으나 네모난 돌기둥 네 개를 우뚝 세워 위엄을 높였다
[촬영일 : 2021-05-19]
화성행궁 경룡관(景龍館) : 1794년(정조 18) 창건 1997년 복원 경룡관은 장락당으로 들어가는 대문 상부에 지은 다락집이다. 당나라 태종 때 열여덟 명의 학사들이 임금의 시에 화답한 것을 본떠서 정조가 직접 이름을 지었다. 경룡관은 당 태종의 궁전 이름이기도 하다. 아래층 대문 이름은 지락문(至樂門)이다. 이는 즐거움에 이른다는 뜻으로 장락당으로 들어가는 것이 즐겁다는 의미이다. 문의 규모는 작으나 네모난 돌기둥 네 개를 우뚝 세워 위엄을 높였다
수원 화령전(水原 華寧殿) : 화령전 입구. 화령전은 순조가 정조의 어진(御眞)을 봉안(奉安)하고 제사를 지내던 곳
[촬영일 : 2021-05-19]
수원 화령전(水原 華寧殿) : 화령전 입구. 화령전은 순조가 정조의 어진(御眞)을 봉안(奉安)하고 제사를 지내던 곳
정조대왕의 어진을 모신 화령전(華寧殿)의 정전인 운한각(雲漢閣) : 운한각은 정조의 어진을 모시고 제사지내는 건물이다. 순조는 1804년에 건물 이름을 운한각이라 짓고 현판의 글씨를 직접 써서 내렸다. 현재 운한각에 봉안되어 있는 어진은 2004년에 다시 그린 표준영정이다. 원래 모셔져 있던 정조 어진은 1908년에 서울로 옮겨졌으나 1954년 부산 피난처에서 소실되고 말았다 - 출처 : 화성행궁 운한각 소개 안내판
[촬영일 : 2021-05-19]
정조대왕의 어진을 모신 화령전(華寧殿)의 정전인 운한각(雲漢閣) : 운한각은 정조의 어진을 모시고 제사지내는 건물이다. 순조는 1804년에 건물 이름을 운한각이라 짓고 현판의 글씨를 직접 써서 내렸다. 현재 운한각에 봉안되어 있는 어진은 2004년에 다시 그린 표준영정이다. 원래 모셔져 있던 정조 어진은 1908년에 서울로 옮겨졌으나 1954년 부산 피난처에서 소실되고 말았다 - 출처 : 화성행궁 운한각 소개 안내판
정조대왕의 어진을 모신 화령전(華寧殿)의 정전인 운한각(雲漢閣) : 운한각은 정조의 어진을 모시고 제사지내는 건물이다. 순조는 1804년에 건물 이름을 운한각이라 짓고 현판의 글씨를 직접 써서 내렸다. 현재 운한각에 봉안되어 있는 어진은 2004년에 다시 그린 표준영정이다. 원래 모셔져 있던 정조 어진은 1908년에 서울로 옮겨졌으나 1954년 부산 피난처에서 소실되고 말았다 - 출처 : 화성행궁 운한각 소개 안내판
[촬영일 : 2021-05-19]
정조대왕의 어진을 모신 화령전(華寧殿)의 정전인 운한각(雲漢閣) : 운한각은 정조의 어진을 모시고 제사지내는 건물이다. 순조는 1804년에 건물 이름을 운한각이라 짓고 현판의 글씨를 직접 써서 내렸다. 현재 운한각에 봉안되어 있는 어진은 2004년에 다시 그린 표준영정이다. 원래 모셔져 있던 정조 어진은 1908년에 서울로 옮겨졌으나 1954년 부산 피난처에서 소실되고 말았다 - 출처 : 화성행궁 운한각 소개 안내판
정조대왕의 어진을 모신 화령전(華寧殿)의 정전인 운한각(雲漢閣) : 운한각은 정조의 어진을 모시고 제사지내는 건물이다. 순조는 1804년에 건물 이름을 운한각이라 짓고 현판의 글씨를 직접 써서 내렸다. 현재 운한각에 봉안되어 있는 어진은 2004년에 다시 그린 표준영정이다. 원래 모셔져 있던 정조 어진은 1908년에 서울로 옮겨졌으나 1954년 부산 피난처에서 소실되고 말았다 - 출처 : 화성행궁 운한각 소개 안내판
[촬영일 : 2021-05-19]
정조대왕의 어진을 모신 화령전(華寧殿)의 정전인 운한각(雲漢閣) : 운한각은 정조의 어진을 모시고 제사지내는 건물이다. 순조는 1804년에 건물 이름을 운한각이라 짓고 현판의 글씨를 직접 써서 내렸다. 현재 운한각에 봉안되어 있는 어진은 2004년에 다시 그린 표준영정이다. 원래 모셔져 있던 정조 어진은 1908년에 서울로 옮겨졌으나 1954년 부산 피난처에서 소실되고 말았다 - 출처 : 화성행궁 운한각 소개 안내판
화령정 어정 : 화령전 제사에 사용하는 물을 길어 올리는 우물로 깊이는 약 5.4m이다
[촬영일 : 2021-05-19]
화령정 어정 : 화령전 제사에 사용하는 물을 길어 올리는 우물로 깊이는 약 5.4m이다
화성행궁의 내포사(內鋪舍) :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행궁에 소식을 알리는 역할을 하던 군사 시설
[촬영일 : 2021-05-19]
화성행궁의 내포사(內鋪舍) :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행궁에 소식을 알리는 역할을 하던 군사 시설
화성행궁의 미로한정(未老閒亭) : 화성행궁 후원에 세운 소박한 정자.정조 재위 기간 동안에 활약한 화가 김홍도는 미로한정 주변에 가을 국화가 가득한 모습을 [한정품국(閒亭品菊)]이라는 그림으로 남겼다
[촬영일 : 2021-05-19]
화성행궁의 미로한정(未老閒亭) : 화성행궁 후원에 세운 소박한 정자.정조 재위 기간 동안에 활약한 화가 김홍도는 미로한정 주변에 가을 국화가 가득한 모습을 [한정품국(閒亭品菊)]이라는 그림으로 남겼다
화성행궁 남군영(南軍營) 1 : 화성행궁의 정문인 신풍루 좌우에 남군영과 북군영 건물을 짓고 약 100명의 군사가 교대로 행궁을 지켰다. 남군영은 국왕 친위 부대인 장용영 외영 군사들이 주둔하는 건물이다. 장용영 군사는 왕이 화성에 내려올 때는 물론 평소에도 화성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 출처 : 화성행궁 안내판
[촬영일 : 2021-05-19]
화성행궁 남군영(南軍營) 1 : 화성행궁의 정문인 신풍루 좌우에 남군영과 북군영 건물을 짓고 약 100명의 군사가 교대로 행궁을 지켰다. 남군영은 국왕 친위 부대인 장용영 외영 군사들이 주둔하는 건물이다. 장용영 군사는 왕이 화성에 내려올 때는 물론 평소에도 화성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 출처 : 화성행궁 안내판
화성행궁 남군영(南軍營) 2 : 화성행궁의 정문인 신풍루 좌우에 남군영과 북군영 건물을 짓고 약 100명의 군사가 교대로 행궁을 지켰다. 남군영은 국왕 친위 부대인 장용영 외영 군사들이 주둔하는 건물이다. 장용영 군사는 왕이 화성에 내려올 때는 물론 평소에도 화성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 출처 : 화성행궁 안내판
[촬영일 : 2021-05-19]
화성행궁 남군영(南軍營) 2 : 화성행궁의 정문인 신풍루 좌우에 남군영과 북군영 건물을 짓고 약 100명의 군사가 교대로 행궁을 지켰다. 남군영은 국왕 친위 부대인 장용영 외영 군사들이 주둔하는 건물이다. 장용영 군사는 왕이 화성에 내려올 때는 물론 평소에도 화성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 출처 : 화성행궁 안내판
화성행궁 득중정(得中亭) 1 : 득중정은 활을 쏘는 정자로서 조선 정조 14년(1790)에 지었다. [활을 쏘아 맞으면 제후가 될 수 있고 맞지 않으면 제후가 될 수 없다]라는 구절을 본떠서 이름을 지었다. 본래 낙남헌 터에 있었으며 정조가 글씨를 쓴 현판이 걸려 있었다. 1794년에 건물을 지금의 위치로 옮기고 임금이 활을 쏘는 어사대를 특별히 마련했다. 정조는 수원에 올 때면 득중정에서 활을 쏘았다 - 출처 : 화성행궁 안내판
[촬영일 : 2021-05-19]
화성행궁 득중정(得中亭) 1 : 득중정은 활을 쏘는 정자로서 조선 정조 14년(1790)에 지었다. [활을 쏘아 맞으면 제후가 될 수 있고 맞지 않으면 제후가 될 수 없다]라는 구절을 본떠서 이름을 지었다. 본래 낙남헌 터에 있었으며 정조가 글씨를 쓴 현판이 걸려 있었다. 1794년에 건물을 지금의 위치로 옮기고 임금이 활을 쏘는 어사대를 특별히 마련했다. 정조는 수원에 올 때면 득중정에서 활을 쏘았다 - 출처 : 화성행궁 안내판
화성행궁 득중정(得中亭) 2 : 득중정은 활을 쏘는 정자로서 조선 정조 14년(1790)에 지었다. [활을 쏘아 맞으면 제후가 될 수 있고 맞지 않으면 제후가 될 수 없다]라는 구절을 본떠서 이름을 지었다. 본래 낙남헌 터에 있었으며 정조가 글씨를 쓴 현판이 걸려 있었다. 1794년에 건물을 지금의 위치로 옮기고 임금이 활을 쏘는 어사대를 특별히 마련했다. 정조는 수원에 올 때면 득중정에서 활을 쏘았다 - 출처 : 화성행궁 안내판
[촬영일 : 2021-05-19]
화성행궁 득중정(得中亭) 2 : 득중정은 활을 쏘는 정자로서 조선 정조 14년(1790)에 지었다. [활을 쏘아 맞으면 제후가 될 수 있고 맞지 않으면 제후가 될 수 없다]라는 구절을 본떠서 이름을 지었다. 본래 낙남헌 터에 있었으며 정조가 글씨를 쓴 현판이 걸려 있었다. 1794년에 건물을 지금의 위치로 옮기고 임금이 활을 쏘는 어사대를 특별히 마련했다. 정조는 수원에 올 때면 득중정에서 활을 쏘았다 - 출처 : 화성행궁 안내판
화성행궁 노래당(老來堂) : 노래당은 낙남헌에 잇대어서 지은 화성행궁의 별당이다. 조선 정조 18년(1794)에 행궁을 증축하며 낙남헌과 함께 지었다. 정조는 화성에서 노년을 보내기 위해 [늙음이 찾아온다] 라는 뜻을 지닌 노래당을 짓고, 그 뜻을 종종 신하들에게 말했다. 노래당은 아들의 나이가 15세가 되면 왕위를 물려주고 화성에서 내려와 지내려 했던 정조의 뜻이 담긴 건축물이다. 출입문은 길이 젊음을 보존한다는 의미로 난로문(難老門)이라 이름 지었다. 노래당은 건물의 원형이 잘 남아 있다 - 출처 : 화성행궁 안내판
[촬영일 : 2021-05-19]
화성행궁 노래당(老來堂) : 노래당은 낙남헌에 잇대어서 지은 화성행궁의 별당이다. 조선 정조 18년(1794)에 행궁을 증축하며 낙남헌과 함께 지었다. 정조는 화성에서 노년을 보내기 위해 [늙음이 찾아온다] 라는 뜻을 지닌 노래당을 짓고, 그 뜻을 종종 신하들에게 말했다. 노래당은 아들의 나이가 15세가 되면 왕위를 물려주고 화성에서 내려와 지내려 했던 정조의 뜻이 담긴 건축물이다. 출입문은 길이 젊음을 보존한다는 의미로 난로문(難老門)이라 이름 지었다. 노래당은 건물의 원형이 잘 남아 있다 - 출처 : 화성행궁 안내판
화성행궁 집사청(執事廳) : 집사청은 관청에서 치르는 제사나 행사를 준비하는 집사들이 근무하는 건물로 조선 정조 14년(1790)에 건립되었다. 정조의 현륭원 행차를 비롯해서 왕이 화성에 내려와 진행하는 모든 행사를 준비했다 - 출처 : 화성행궁 안내판
[촬영일 : 2021-05-19]
화성행궁 집사청(執事廳) : 집사청은 관청에서 치르는 제사나 행사를 준비하는 집사들이 근무하는 건물로 조선 정조 14년(1790)에 건립되었다. 정조의 현륭원 행차를 비롯해서 왕이 화성에 내려와 진행하는 모든 행사를 준비했다 - 출처 : 화성행궁 안내판
화성행궁 복내당(福內堂) : 복내당은 수원읍 고을 수령과 가족이 거처하는 건물이다. 조선 정조 18년(1794) 화성행궁에 장락당을 만들기 전까지는 왕의 숙소로도 쓰였다. 정조가 건물의 이름을 직접 짓고 현판의 글씨를 써서 내렸는데, 복내福內란 ‘모든 일이 밖에서 제대로 이루어지면 복이 안에서 생겨난다.’는 뜻이다. 그러나 정조가 쓴 현판은 현재 남아 있지 않다
[촬영일 : 2021-05-19]
화성행궁 복내당(福內堂) : 복내당은 수원읍 고을 수령과 가족이 거처하는 건물이다. 조선 정조 18년(1794) 화성행궁에 장락당을 만들기 전까지는 왕의 숙소로도 쓰였다. 정조가 건물의 이름을 직접 짓고 현판의 글씨를 써서 내렸는데, 복내福內란 ‘모든 일이 밖에서 제대로 이루어지면 복이 안에서 생겨난다.’는 뜻이다. 그러나 정조가 쓴 현판은 현재 남아 있지 않다
화성행궁 복내당(福內堂) 부엌 : 복내당에 딸린 부억으로 당시의 부엌살림들이 연출되어 있어 수원부 유수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촬영일 : 2021-05-19]
화성행궁 복내당(福內堂) 부엌 : 복내당에 딸린 부억으로 당시의 부엌살림들이 연출되어 있어 수원부 유수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풍취가 있는 5월의 화성행궁 외곽
[촬영일 : 2021-05-19]
풍취가 있는 5월의 화성행궁 외곽
화성행궁 서리청(書吏廳) : 1796년(정조 20) 창건 2002년 복원 서리청은 화성유수부 관청의 여러 사무를 담당하는 하급 관리들이 근무하는 건물이다. 조선 정조 13년(1789) 수원읍을 옮길 당시에는 장남헌 동쪽에 서리청을 지었다
[촬영일 : 2021-05-19]
화성행궁 서리청(書吏廳) : 1796년(정조 20) 창건 2002년 복원 서리청은 화성유수부 관청의 여러 사무를 담당하는 하급 관리들이 근무하는 건물이다. 조선 정조 13년(1789) 수원읍을 옮길 당시에는 장남헌 동쪽에 서리청을 지었다
화성행궁 비장청(裨將廳) : 1789년(정조 13) 창건 2002년 복원 비장청은 고을 수령을 보좌하는 비장들이 근무하는 건물이다. 화성 유수는 정2품 당상관이었기 때문에 여러 명의 비장을 두었다. 조선 정조 19년(1795)에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치를 때 비장은 음식을 차리는 일을 비롯해서 행사의 모든 절차를 담당했다
[촬영일 : 2021-05-19]
화성행궁 비장청(裨將廳) : 1789년(정조 13) 창건 2002년 복원 비장청은 고을 수령을 보좌하는 비장들이 근무하는 건물이다. 화성 유수는 정2품 당상관이었기 때문에 여러 명의 비장을 두었다. 조선 정조 19년(1795)에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치를 때 비장은 음식을 차리는 일을 비롯해서 행사의 모든 절차를 담당했다
외정리소 : 정조를 비롯한 역대 임금이 행차시 화성행궁의 행사를 담당하는 관청이다. 정리사가 행사의 준비를 위해 행사 기물을 기록하고 정리하는 장면을 연출한 공간이다
[촬영일 : 2021-05-19]
외정리소 : 정조를 비롯한 역대 임금이 행차시 화성행궁의 행사를 담당하는 관청이다. 정리사가 행사의 준비를 위해 행사 기물을 기록하고 정리하는 장면을 연출한 공간이다
화성행궁 낙남헌(洛南轩) : 1794년(정조 18) 창건 낙남헌은 화성행궁에서 공식 행사나 연회를 열 때 사용하는 건물이다. 중국 한나라를 세운 유방이 부하들 덕분에 나라를 세울 수 있었음을 감사하며 낙양(洛陽)의 남궁(南宮)에서 연회를 베풀었다는 이야기를 본떠서 이름을 지었다. 정조는 1795년 을묘원행 당시 낙남헌에서 수원의 백성들을 위해 잔치를 베풀고, 무과 시험을 치르고 상을 내리는 등 다양한 행사를 열었다. 낙남헌 건물은 벽이 없는 개방된 구조로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있다
[촬영일 : 2021-05-19]
화성행궁 낙남헌(洛南轩) : 1794년(정조 18) 창건 낙남헌은 화성행궁에서 공식 행사나 연회를 열 때 사용하는 건물이다. 중국 한나라를 세운 유방이 부하들 덕분에 나라를 세울 수 있었음을 감사하며 낙양(洛陽)의 남궁(南宮)에서 연회를 베풀었다는 이야기를 본떠서 이름을 지었다. 정조는 1795년 을묘원행 당시 낙남헌에서 수원의 백성들을 위해 잔치를 베풀고, 무과 시험을 치르고 상을 내리는 등 다양한 행사를 열었다. 낙남헌 건물은 벽이 없는 개방된 구조로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있다
낙성연 : 1976년 10월 16일 화성행궁 낙남헌(洛南軒)에서 열린 수원화성의 완공을 축하하는 잔치모습이다. 이 자리에는 축성에 관여했던 관료 및 낙성연에 초대받은 손님, 공사에 참여한 일꾼들, 구경 온 백성까지 모두 함께하였다. 더욱이 이 날을 위하여 음식은 물론 춤과 음악이 준비되었고 모두가 한데 어우러져 흥겨운 자치를 즐겼다(출처 : 수원화성박물관)
[촬영일 : 2021-05-19]
낙성연 : 1976년 10월 16일 화성행궁 낙남헌(洛南軒)에서 열린 수원화성의 완공을 축하하는 잔치모습이다. 이 자리에는 축성에 관여했던 관료 및 낙성연에 초대받은 손님, 공사에 참여한 일꾼들, 구경 온 백성까지 모두 함께하였다. 더욱이 이 날을 위하여 음식은 물론 춤과 음악이 준비되었고 모두가 한데 어우러져 흥겨운 자치를 즐겼다(출처 : 수원화성박물관)
화성행궁 광장 바닥의 그림과 저녁노을
[촬영일 : 2021-05-19]
화성행궁 광장 바닥의 그림과 저녁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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