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회수 : 44   등록일 : 2020-06-27 ]
남한산성 행궁(南漢山城 行宮)은 사적 제480호로 소재지는 경기 광주시 중부면 남한산성로 784-29 일대이다.
남한산성의 본성은 신라 주장성(672년 축조)의 옛터를 기초로 하여 인조 2년(1624년)에서 인조4년(1626년)까지 대대적으로 축성되었다. 남한상성행궁 역시 축성과 함께 인조3년(1625년) 상궐과 하궐이 건립되었다.
행궁이란 왕이 서울의 궁궐을 떠나 도성밖으로 행차할 때 임시로 거처하는 곳을 말한다. 조선시대의 행궁은 20여개로 전시기에 걸쳐 조성되고 이용되었는데, 능행,전란,휴양등을 목적으로 한다. 이 중 남한산성행궁, 북한산성행궁, 강화행궁 등이 전란을 대비하여 건립한 행궁이다.
인조14년(1636)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난하여 47일간 항전하였다. 이후 숙종37년(1711)좌전과 우실건립을 비롯하여 남한산성 시설물을 보수,관리,증축하는데 이는 조선의 배도이자 보장처로서 역할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함이다.
숙종, 영조, 정조, 철종, 고종이 능행길에 남한산성행궁을 이용하였으며, 특히 정조는 남한산성 사대문의 이름을 짓고, 과거시험을 시행하면서 남한산성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다. 또한 승군의 진법 및 매화포와 같은 무기를 확인하고 야간군사훈련을 실시하였으며, 남한산성의 관리상태를 점검하였다. 이후 정조18년(1795)광주부와 수어청의 이원적 관리체계를 일원화하여 광주유수부로 승격하고 서울 외곽의 남쪽 방어를 책임지는 군사요충지로 자리매김하였다.

* 배도(陪都) : 중국에서, 행정 조직상 수도(首都)에 준하는 취급을 받던 도시. 명나라 때의 금릉(金陵), 청나라 때의 심양(瀋陽), 제이 차 세계 대전 때의 중경(重慶) 따위가 있다.(네이버 어학사전)
* 보장(堡障) : 성(城)의 밖에다 임시로 지은 소규모의 요새. 목책(木柵)을 둘러치고 속에는 병영을 이루었다.
 
한남루(행궁입구) : 상, 하궐을 포괄하는 행궁 외곽 담장의 정문에 해당하는 행궁 외삼문의 누각이다. 정조 22년에 광주 유수 홍억이 행궁 입구에 한남루라는 누문을 대문으로 세웠으나 20세기 초반에 붕괴되었다. 한남루란 한강 남쪽 성진(城鎭)의 누대라는 뜻이며 프랑스 영사 프랑뎅(Hippolyte Frandin)이 찍은 사진을 바탕으로 2011년 같은 위치에 한남루를 복원하였다(내용참조- 경기도청, https://www.gg.go.kr/)
[촬영일 : 2020-05-06]
한남루(행궁입구) : 상, 하궐을 포괄하는 행궁 외곽 담장의 정문에 해당하는 행궁 외삼문의 누각이다. 정조 22년에 광주 유수 홍억이 행궁 입구에 한남루라는 누문을 대문으로 세웠으나 20세기 초반에 붕괴되었다. 한남루란 한강 남쪽 성진(城鎭)의 누대라는 뜻이며 프랑스 영사 프랑뎅(Hippolyte Frandin)이 찍은 사진을 바탕으로 2011년 같은 위치에 한남루를 복원하였다(내용참조- 경기도청, https://www.gg.go.kr/)
외삼문(外三門) : 한남루(행궁입구)에서 외삼문을 지나면 외행전 방향으로 들어가게 된다. 동헌이나 객사 앞에는 통로가 셋 있는 삼문(三門)이 설치되었다. 가운데 문으로는 수령과 사신,빈객들이  왼쪽 문으로는 향토의 양반이나 아전들이 오른쪽 문으로는 군관이나 장교 또는 백성들이 드나들었다. 용어참고 : 문화콘텐츠닷컴(http://www.culturecontent.com)
[촬영일 : 2020-05-06]
외삼문(外三門) : 한남루(행궁입구)에서 외삼문을 지나면 외행전 방향으로 들어가게 된다. 동헌이나 객사 앞에는 통로가 셋 있는 삼문(三門)이 설치되었다. 가운데 문으로는 수령과 사신,빈객들이 왼쪽 문으로는 향토의 양반이나 아전들이 오른쪽 문으로는 군관이나 장교 또는 백성들이 드나들었다. 용어참고 : 문화콘텐츠닷컴(http://www.culturecontent.com)
남한산성 행궁 외부에서 바라본 외삼문
[촬영일 : 2020-05-06]
남한산성 행궁 외부에서 바라본 외삼문
상궐 내행전(임금의 침전) : 왕이 잠을 자고 생활하던 공간으로 인조 2년에 처음 지어졌으며 정면 7칸, 측면 4칸으로 전체 28칸의 건물이다. 가운데 3칸은 대청을 되어있고, 좌우 2칸씩은 온돌방과 마루방이다. 대청을 제외한 3면에는 퇴칸을 두었고 내행전의 기동 위쪽 공포는 새의 날개처럼 생긴 부재를 두 개 겹쳐 쌓은 이익공 형식으로 행궁 내 건물 중 가장 격식이 높다. 기단은 장방형으로 가공한 돌을 3단 쌓아 경사가급하고 평지가 협소한 약점을 보완하면서 동시에 장엄한 외관과 안정감을 주도록 하였다. 팔작지붕에는 용문양과 봉황문양의 막새기와를 사용하였다. 현재 내행전은 2002년에 중건되었다(내용참조 - 경기도청, https://www.gg.go.kr/)
[촬영일 : 2020-05-06]
상궐 내행전(임금의 침전) : 왕이 잠을 자고 생활하던 공간으로 인조 2년에 처음 지어졌으며 정면 7칸, 측면 4칸으로 전체 28칸의 건물이다. 가운데 3칸은 대청을 되어있고, 좌우 2칸씩은 온돌방과 마루방이다. 대청을 제외한 3면에는 퇴칸을 두었고 내행전의 기동 위쪽 공포는 새의 날개처럼 생긴 부재를 두 개 겹쳐 쌓은 이익공 형식으로 행궁 내 건물 중 가장 격식이 높다. 기단은 장방형으로 가공한 돌을 3단 쌓아 경사가급하고 평지가 협소한 약점을 보완하면서 동시에 장엄한 외관과 안정감을 주도록 하였다. 팔작지붕에는 용문양과 봉황문양의 막새기와를 사용하였다. 현재 내행전은 2002년에 중건되었다(내용참조 - 경기도청, https://www.gg.go.kr/)
상궐 내행전(임금의 침전) : 대청
[촬영일 : 2020-05-06]
상궐 내행전(임금의 침전) : 대청
상궐 내행전 : 왕의 침소로서 내행전 대청 왼쪽에 있다.
[촬영일 : 2020-05-06]
상궐 내행전 : 왕의 침소로서 내행전 대청 왼쪽에 있다.
상궐 내행전 : 세자의 침소로서 내행전 대청 오른쪽에 있다.
[촬영일 : 2020-05-06]
상궐 내행전 : 세자의 침소로서 내행전 대청 오른쪽에 있다.
외행전(外行殿) : 하궐의 중심 건물로 인조 3년에 준공되었으며 정면 7칸, 측면 4칸으로 상궐 내행전과 동일한 전체 28칸 건물이지만 바닥 면적이 내행전 보다 작고, 내행전에 비해 6m 정도 낮은 곳에 지었다. 병자호란 당시 왕이 병사들에게 음식을 베푸는 호궤를 이곳에서 행하였으며, 한봉에서 청나라 군이 홍이포를 쏘아 포환이 외행전 기둥을 맞추었다는 기록이 있다. 좌승당이 지어지기 전에는 광주부 유수의 집무실로 사용되었으며 현재 외행전은 2010년에 중건된 것으로, 발굴과정에서 통일신라 관련 유구들이 확인되어 건물지와 기와를 쌓은 곳 일부를 보존하고 있다(내용참조 - 경기도청, https://www.gg.go.kr/)
[촬영일 : 2020-05-06]
외행전(外行殿) : 하궐의 중심 건물로 인조 3년에 준공되었으며 정면 7칸, 측면 4칸으로 상궐 내행전과 동일한 전체 28칸 건물이지만 바닥 면적이 내행전 보다 작고, 내행전에 비해 6m 정도 낮은 곳에 지었다. 병자호란 당시 왕이 병사들에게 음식을 베푸는 호궤를 이곳에서 행하였으며, 한봉에서 청나라 군이 홍이포를 쏘아 포환이 외행전 기둥을 맞추었다는 기록이 있다. 좌승당이 지어지기 전에는 광주부 유수의 집무실로 사용되었으며 현재 외행전은 2010년에 중건된 것으로, 발굴과정에서 통일신라 관련 유구들이 확인되어 건물지와 기와를 쌓은 곳 일부를 보존하고 있다(내용참조 - 경기도청, https://www.gg.go.kr/)
좌승당(坐勝堂) : 상궐 내행전의 북쪽, 담장의 밖에 있었던 좌승당은 광주부 유수의 집무용 건물로 순조 17년 광주부 유수 심상규가 건립하였다. 뜰로 나서면 좌우 문이 있는데 왼쪽문은 좌숙문이라 하여 북쪽 담밖으로 나무다리를 놓아서 통했다. 오른쪽 문은 의정문이라 하여 하궐 뒤로 통했다. 좌승이란 ‘앉아서도 싸우지 않고 이길 수 있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발굴 조사 결과 건물의 기초부분이 잘 남아 있음이 확인되었고 정면 6칸, 측면 3칸으로 된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복원이 완료된 상태이다.(내용참조 - 경기도청, https://www.gg.go.kr/)
[촬영일 : 2020-05-06]
좌승당(坐勝堂) : 상궐 내행전의 북쪽, 담장의 밖에 있었던 좌승당은 광주부 유수의 집무용 건물로 순조 17년 광주부 유수 심상규가 건립하였다. 뜰로 나서면 좌우 문이 있는데 왼쪽문은 좌숙문이라 하여 북쪽 담밖으로 나무다리를 놓아서 통했다. 오른쪽 문은 의정문이라 하여 하궐 뒤로 통했다. 좌승이란 ‘앉아서도 싸우지 않고 이길 수 있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발굴 조사 결과 건물의 기초부분이 잘 남아 있음이 확인되었고 정면 6칸, 측면 3칸으로 된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복원이 완료된 상태이다.(내용참조 - 경기도청, https://www.gg.go.kr/)
명위문(明威門) : 좌승당의 동쪽 방향으로 계단을 오르면 명위문이 있다. 명위문 사이로 이위정이 보인다
[촬영일 : 2020-05-06]
명위문(明威門) : 좌승당의 동쪽 방향으로 계단을 오르면 명위문이 있다. 명위문 사이로 이위정이 보인다
이위정(以威亭) : 좌승당 뒤편 후원에 2010년 중건되었다. 순조 17년 광주부 유수부 심상규가 활을 쏘기 위해 세운 정자이다. 건축 당시에 지은 ‘이위정기以威亭記’가 탁본과 함께 「중정남한지重訂南漢志」에 그 내용이 전해지고 있는데, 기문은 심상규가 짓고 글씨는 추사 김정희가 썼다. ‘이위(以威)’란 ‘활로써 천하를 위압할 만하지만, 활과 화살이 아닌 인의와 충용으로써도 능히 천하를 위압할 수 있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내용참조 - 경기도청, https://www.gg.go.kr/)
[촬영일 : 2020-05-06]
이위정(以威亭) : 좌승당 뒤편 후원에 2010년 중건되었다. 순조 17년 광주부 유수부 심상규가 활을 쏘기 위해 세운 정자이다. 건축 당시에 지은 ‘이위정기以威亭記’가 탁본과 함께 「중정남한지重訂南漢志」에 그 내용이 전해지고 있는데, 기문은 심상규가 짓고 글씨는 추사 김정희가 썼다. ‘이위(以威)’란 ‘활로써 천하를 위압할 만하지만, 활과 화살이 아닌 인의와 충용으로써도 능히 천하를 위압할 수 있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내용참조 - 경기도청, https://www.gg.go.kr/)
남한산성 행궁 외부에서 바라본 이위정
[촬영일 : 2020-05-06]
남한산성 행궁 외부에서 바라본 이위정
남한산성 행궁 후원
[촬영일 : 2020-05-06]
남한산성 행궁 후원
남한산성 행궁 후원
[촬영일 : 2020-05-06]
남한산성 행궁 후원
남한산성 행궁 전경의 조화
[촬영일 : 2020-05-06]
남한산성 행궁 전경의 조화
남한산성 행궁전경 - 임금이 서울의 궁궐을 떠나 도성 밖으로 행차하는 경우 임시로 거처하는 곳
[촬영일 : 2020-05-06]
남한산성 행궁전경 - 임금이 서울의 궁궐을 떠나 도성 밖으로 행차하는 경우 임시로 거처하는 곳
남한산성 행궁 외부에서 바라본 전경
[촬영일 : 2020-05-06]
남한산성 행궁 외부에서 바라본 전경
남한산성 행궁에서 발견된 통일신라시대 유적
[촬영일 : 2020-05-06]
남한산성 행궁에서 발견된 통일신라시대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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