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회수 : 77   등록일 : 2021-11-08 ]
 도봉서원은 서울에 소재한 현존하는 유일한 서원으로 1573년(선조6년) 양주 목사로 부임한 남언경이 조광조의 학문과 행적을 기리는 뜻으로 도봉서원을 건립하고 이듬해에 도봉이라는 사액을 받았다.  도봉서원이 서울에 설립된 계기는 조광조가 어릴 때부터 도봉산 영국동에 있는 천석을 좋아하여 왕래하며 즐기던 연고가 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영국서원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으나 사액을 받은 후에 도봉서원이 되었다.  사액을 받은 시기는 기록마다 차이를 보인다. “신중동국여지승람”에서는 건립한 해로, “연려실기술”에서는 1613년으로 사액시기를 파악하고 있다.

 이후 권상하, 이재등이 이 곳에서 유학을 강론하였고 1696년(숙종 22년)에는 도봉서원에 우암 송시열(1607~1689)을 추가 배향하는 등 명실상부한 최고 서원의 위상을 가지게 되었다. 19세기말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71년 헐어내기까지 약 260여 년간 유지되었던 서원이다. 2009년 10월 22일에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29호로 지정되었다.

 도봉구는 2011년도에 학술적 고증을 통한 조선시대 중건 당시의 서원으로 복원하기 위해 기존에 있던 도봉서원의 사우, 담장, 홍살문등을 철거하고 복원을 추진 중 2017년 터 발굴조사중에 고려초기 고승 혜거국사의 비석파편이 발견되었고 비문의 내용 중 도봉산 영국사라는 명문이 판독됨에 따라 이 터가 고려시대 사찰 영국사의 터였음이 새롭게 밝혀졌다.
이에 문화재청은 이 터에서 발굴된 금동제 금강저(불교의식에 사용되는 용구)와 금강령(금강저에 붙은 방울)을 비롯하여 '서울 영국사지 출토 의식 공양구 일괄'을 2021년에 보물로 지정 예고하였다.

 현재(2021년) 도봉구는 지난 10여년간 3차에 걸쳐 발굴조사를 완료하고 사단법인 도봉서원, 서울시와 함께 도봉서원 정비사업을 추진중에 있다

 도봉서원터는 서울시 도봉구 도봉산길 90-3 도봉동 512번지. 북한산 국립공원내 도봉산입구에 위치하고 있다. 서울시 지하철 1호선, 7호선 도봉산역에서 도봉산 방향으로 도보로 약 30분 거리에 있다.

[참고문헌]
- 조광조 평전, 신병주, 한겨레출판, P.223
- 도봉산 도봉서원터 안내판

* 혜거(899년~974년) : 고려전기 제3대 정종의 왕사, 제4대 광종의 국사로 책봉된 승려
* 사우(寺宇): 사찰
* 목사 : 조선시대 지방의 행정단위인 목에 파견되었던 관직. 12목 : 광주,충주,청주,양주,공주,승주,전주,나주,진주,상주,황주,해주
* 사액서원 : 조선시대 국왕으로부터 서원명현판과 노비와 서적등을 받은 서원
* 권상하(1641년~1721년) : 조선시대 후기의 학자, 교육자, 성리학자
* 이재(1680년~1746년) : 조선후기 대사헌, 이조참판, 대제학 등을 역임한 문신
* 조광조(1482년~1520년) : 조선의 문신, 사상가이자 교육자, 성리학자, 정치가
도봉서원터 : 봉서원은 서울에 소재한 현존하는 유일한 서원으로 1573년(선조6년) 양주 목사로 부임한 남언경이 조광조의 학문과 행적을 기리는 뜻으로 도봉서원을 건립하고 이듬해에 도봉이라는 사액을 받았다. 처음 방문하는 방문객은 도봉서원 터만 남아있고 문화재 보호차원으로 철망으로 담장을 두르고 입구옆 철망에 붙여놓은 안내판을 자세히 찾아보지 않으면 무심코 지나칠 수 밖에 없다. 담장 둘레에서 먼 발치로 문화재 발굴현장과 비석만 바라볼 수 밖에 없다
[촬영일 : 2021-11-06]
도봉서원터 : 봉서원은 서울에 소재한 현존하는 유일한 서원으로 1573년(선조6년) 양주 목사로 부임한 남언경이 조광조의 학문과 행적을 기리는 뜻으로 도봉서원을 건립하고 이듬해에 도봉이라는 사액을 받았다. 처음 방문하는 방문객은 도봉서원 터만 남아있고 문화재 보호차원으로 철망으로 담장을 두르고 입구옆 철망에 붙여놓은 안내판을 자세히 찾아보지 않으면 무심코 지나칠 수 밖에 없다. 담장 둘레에서 먼 발치로 문화재 발굴현장과 비석만 바라볼 수 밖에 없다
도봉서원터 : 문화재 발굴조사로 인하여 터 주위의 철담장으로 내부에 입장하지 못하였다.처음 방문하는 방문객은 도봉서원 터만 남아있고 문화재 보호차원으로 철망으로 담장을 두르고 입구옆 철망에 붙여놓은 안내판을 자세히 찾아보지 않으면 무심코 지나칠 수 밖에 없다. 담장 둘레에서 먼 발치로 문화재 발굴현장과 비석만 바라볼 수 밖에 없다
[촬영일 : 2021-11-06]
도봉서원터 : 문화재 발굴조사로 인하여 터 주위의 철담장으로 내부에 입장하지 못하였다.처음 방문하는 방문객은 도봉서원 터만 남아있고 문화재 보호차원으로 철망으로 담장을 두르고 입구옆 철망에 붙여놓은 안내판을 자세히 찾아보지 않으면 무심코 지나칠 수 밖에 없다. 담장 둘레에서 먼 발치로 문화재 발굴현장과 비석만 바라볼 수 밖에 없다
서원과 담을 경계로 김수영(1921년~1968년) 시인의 시비가 있다. 비판적이고 철학적인 시를 통해 당대의 상황을 표현하였으며 자유주의를 노래하였다. 뒤로 철담장로 둘러싸인 도봉서원터가 보인다
[촬영일 : 2021-11-06]
서원과 담을 경계로 김수영(1921년~1968년) 시인의 시비가 있다. 비판적이고 철학적인 시를 통해 당대의 상황을 표현하였으며 자유주의를 노래하였다. 뒤로 철담장로 둘러싸인 도봉서원터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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