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회수 : 131 등록일 : 2021-07-17 ]
창덕궁 후원은 1405년(태종 5년) 창덕궁 창건 당시 조성되었으며 창덕궁뿐만 아니라 창경궁의 후원이기도 하였다. 임진왜란때인 1592년(선조 24년)에 대부분의 정자가 불타버리고 1623년 인조 때부터 개수, 증축되어 현재의 모습을 이루었다.
창덕궁 후원은 자연지형을 그대로 살리면서 골짜기마다 정원을 조성하여 인위적인 손질을 최소화하면서도 자연을 더 크게 완성시킨 절묘한 솜씨를 자랑한다.
4개의 골짜기에 각각 부용지(芙蓉池), 애련지(愛蓮池), 관람지(觀纜池), 옥류천(玉流川) 정원이 펼쳐진다.
4개의 정원은 안으로 들어갈수록 크고 개방된 곳에서 작고 은밀한 곳으로, 인공적인 곳에서 자연적인 곳으로 점진적으로 변화하며 결국은 큰 자연인 뒷산 매봉으로 연결된다.
창덕궁 후원은 여러 복합적인 기능을 수용한 정원이었다. 시를 짓고 학문을 논하며 사색에 잠기던 곳이었고 때론 연회를 열고 활쏘기 놀이를 즐기던 곳이었다. 왕이 참관한 가운데 군사훈련도 행해졌고 황과 왕비가 백성들의 생업인 농사를 짓고 누에를 치기도 하였다.
창덕궁 후원의 명칭에 대하여는 역대 왕조실록에 후원·북원·금원(禁苑) 등이 보이는데 후원이라 부른 것이 가장 많다. 비원(秘苑)이란 명칭은 1904년(고종실록 광무 8년 7월 15일)부터 나타난다.
[출처]
-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창덕궁관리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창덕궁 후원은 자연지형을 그대로 살리면서 골짜기마다 정원을 조성하여 인위적인 손질을 최소화하면서도 자연을 더 크게 완성시킨 절묘한 솜씨를 자랑한다.
4개의 골짜기에 각각 부용지(芙蓉池), 애련지(愛蓮池), 관람지(觀纜池), 옥류천(玉流川) 정원이 펼쳐진다.
4개의 정원은 안으로 들어갈수록 크고 개방된 곳에서 작고 은밀한 곳으로, 인공적인 곳에서 자연적인 곳으로 점진적으로 변화하며 결국은 큰 자연인 뒷산 매봉으로 연결된다.
창덕궁 후원은 여러 복합적인 기능을 수용한 정원이었다. 시를 짓고 학문을 논하며 사색에 잠기던 곳이었고 때론 연회를 열고 활쏘기 놀이를 즐기던 곳이었다. 왕이 참관한 가운데 군사훈련도 행해졌고 황과 왕비가 백성들의 생업인 농사를 짓고 누에를 치기도 하였다.
창덕궁 후원의 명칭에 대하여는 역대 왕조실록에 후원·북원·금원(禁苑) 등이 보이는데 후원이라 부른 것이 가장 많다. 비원(秘苑)이란 명칭은 1904년(고종실록 광무 8년 7월 15일)부터 나타난다.
[출처]
-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창덕궁관리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촬영일 : 2021-06-16]
창덕궁 후원으로 가는 길의 왼쪽으로 보이는 담장은 창덕궁이며 오른쪽으로는 창경궁과 연결되어 있다.
[촬영일 : 2021-06-16]
입구에서 후원으로 가는 길을 걷노라면 마음이 평온해지며 절로 힐링이 된다. 멀리 후원의 첫번째 연못인 부용지의 영화당(暎花堂)이 아름답게 자리잡고 있다
[촬영일 : 2021-06-16]
부용지(芙蓉池) : 후원의 첫 번째 중심 정원으로, 휴식뿐 아니라 학문과 교육을 하던 비교적 공개된 장소였다. 정면으로 주합루와 오른쪽으로 영화당이 위치하고 있다
[촬영일 : 2021-06-16]
부용지(芙蓉池) : 후원의 첫 번째 중심 정원으로, 휴식뿐 아니라 학문과 교육을 하던 비교적 공개된 장소였다. 좌측은 영화당, 중앙은 부용정(소나무에 가려져 있다), 우측은 사정기비각(四井記碑閣, 4개(四)의 우물(井)에 대해 기록한(記) 비각(碑閣))이 보인다
[촬영일 : 2021-06-16]
부용지(芙蓉池)의 정자인 부용정( 芙蓉亭) : 부용(芙蓉)의 뜻은 ‘활짝 핀 연꽃’이다
[촬영일 : 2021-06-16]
부용지(芙蓉池)의 정자인 부용정( 芙蓉亭) : 부용(芙蓉)의 뜻은 ‘활짝 핀 연꽃’이다
[촬영일 : 2021-06-16]
어수문(魚水門)과주합루(宙合樓) : 주합루는 1776년(정조 1년)에 창건한 2층의 누각건물이다. 아래층에는 황실 직속 기관인 규장각을 위층에는 누마루를 조성했다. 주합루로 오르는 길에는 작은 어수문이 있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 수 없다는 격언과 같이 항상 백성을 생각하라는 교훈이 담겨진 문이다
[촬영일 : 2021-06-16]
영화당(暎花堂)에서 바라본 어수문(魚水門)과주합루(宙合樓) : 주합루는 1776년(정조 1년)에 창건한 2층의 누각건물이다. 아래층에는 황실 직속 기관인 규장각을 위층에는 누마루를 조성했다. 주합루로 오르는 길에는 작은 어수문이 있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 수 없다는 격언과 같이 항상 백성을 생각하라는 교훈이 담겨진 문이다
[촬영일 : 2021-06-16]
하나의 돌을 깍아 만든 불로문은 연경당(演慶堂)으로 들어가는 길에 있다. 이 문을 통과하면 늙지 않고 장수하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
[촬영일 : 2021-06-16]
애련지(愛蓮池) : 1692년(숙종 18)에 연못 가운데 섬을 쌓고 정자를 지었다고 하는데, 지금 그 섬은 없고 정자는 연못 북쪽 끝에 걸쳐 있다. 연꽃을 특히 좋아했던 숙종이 이 정자에 애련(愛蓮)이라는 이름을 붙여 연못은 애련지가 되었다
[촬영일 : 2021-06-16]
장락문(長樂門) : 연경당(演慶堂)의 정문. 장락(長樂)이라는 말은 '무궁토록 즐거움을 누리라.'는 의미로 전각의 주인이 길이 복락을 누리기를 바라는 축원이 들어 있다
[촬영일 : 2021-06-16]
연경당(演慶堂) : 연경당은 효명세자가 아버지인 순조와 어머니인 순원왕후를 위한 잔치를 베풀고자 1827~8년(순조 27~8)경 지은 효심이 담긴 집이다. 창건 직후 연경당에서는 효명세자가 신하를 접견하거나 진작례(궁중잔치)를 거행하였다. 헌종 대 이후에는 익종(효명세자)의 어진과 모훈을 보관하는 곳으로 사용되다가 1857년(철종 8)에 터가 서늘하고 습하다는 이유로 익종의 초상화를 다른 곳으로 옮겨 한 동안 빈 집으로 남아 있었다. 현재의 연경당은 1865년 고종이 새롭게 건립했다. 고종 대에 이르러 외국 공사를 접견하고 연회를 베푸는 등 중요한 정치 공간으로 이용하였다[출처 : 국가문화유산포털]
[촬영일 : 2021-06-16]
연경당(演慶堂) : 연경당은 효명세자가 아버지인 순조와 어머니인 순원왕후를 위한 잔치를 베풀고자 1827~8년(순조 27~8)경 지은 효심이 담긴 집이다. 창건 직후 연경당에서는 효명세자가 신하를 접견하거나 진작례(궁중잔치)를 거행하였다. 헌종 대 이후에는 익종(효명세자)의 어진과 모훈을 보관하는 곳으로 사용되다가 1857년(철종 8)에 터가 서늘하고 습하다는 이유로 익종의 초상화를 다른 곳으로 옮겨 한 동안 빈 집으로 남아 있었다. 현재의 연경당은 1865년 고종이 새롭게 건립했다. 고종 대에 이르러 외국 공사를 접견하고 연회를 베푸는 등 중요한 정치 공간으로 이용하였다[출처 : 국가문화유산포털]
[촬영일 : 2021-06-16]
연경당(演慶堂) : 연경당은 효명세자가 아버지인 순조와 어머니인 순원왕후를 위한 잔치를 베풀고자 1827~8년(순조 27~8)경 지은 효심이 담긴 집이다. 창건 직후 연경당에서는 효명세자가 신하를 접견하거나 진작례(궁중잔치)를 거행하였다. 헌종 대 이후에는 익종(효명세자)의 어진과 모훈을 보관하는 곳으로 사용되다가 1857년(철종 8)에 터가 서늘하고 습하다는 이유로 익종의 초상화를 다른 곳으로 옮겨 한 동안 빈 집으로 남아 있었다. 현재의 연경당은 1865년 고종이 새롭게 건립했다. 고종 대에 이르러 외국 공사를 접견하고 연회를 베푸는 등 중요한 정치 공간으로 이용하였다[출처 : 국가문화유산포털]
[촬영일 : 2021-06-16]
연경당(演慶堂) : 연경당은 효명세자가 아버지인 순조와 어머니인 순원왕후를 위한 잔치를 베풀고자 1827~8년(순조 27~8)경 지은 효심이 담긴 집이다. 창건 직후 연경당에서는 효명세자가 신하를 접견하거나 진작례(궁중잔치)를 거행하였다. 헌종 대 이후에는 익종(효명세자)의 어진과 모훈을 보관하는 곳으로 사용되다가 1857년(철종 8)에 터가 서늘하고 습하다는 이유로 익종의 초상화를 다른 곳으로 옮겨 한 동안 빈 집으로 남아 있었다. 현재의 연경당은 1865년 고종이 새롭게 건립했다. 고종 대에 이르러 외국 공사를 접견하고 연회를 베푸는 등 중요한 정치 공간으로 이용하였다[출처 : 국가문화유산포털]
[촬영일 : 2021-06-16]
연경당(演慶堂) : 연경당은 효명세자가 아버지인 순조와 어머니인 순원왕후를 위한 잔치를 베풀고자 1827~8년(순조 27~8)경 지은 효심이 담긴 집이다. 창건 직후 연경당에서는 효명세자가 신하를 접견하거나 진작례(궁중잔치)를 거행하였다. 헌종 대 이후에는 익종(효명세자)의 어진과 모훈을 보관하는 곳으로 사용되다가 1857년(철종 8)에 터가 서늘하고 습하다는 이유로 익종의 초상화를 다른 곳으로 옮겨 한 동안 빈 집으로 남아 있었다. 현재의 연경당은 1865년 고종이 새롭게 건립했다. 고종 대에 이르러 외국 공사를 접견하고 연회를 베푸는 등 중요한 정치 공간으로 이용하였다[출처 : 국가문화유산포털]
[촬영일 : 2021-06-16]
선향재(善香齋) : 서재인 선향재(善香齋)는 청나라풍 벽돌을 사용하였고 동판을 씌운 지붕에 도르래식 차양을 설치하여 이국적인 느낌이 든다. 선향재는 서쪽에 위치하고 있어 오후가 되면 강한 햇살이 들어와서 차양으로 햇빛을 조정하였다고 한다
[촬영일 : 2021-06-16]
선향재(善香齋) : 서재인 선향재(善香齋)는 청나라풍 벽돌을 사용하였고 동판을 씌운 지붕에 도르래식 차양을 설치하여 이국적인 느낌이 든다. 선향재는 서쪽에 위치하고 있어 오후가 되면 강한 햇살이 들어와서 차양으로 햇빛을 조정하였다고 한다
[촬영일 : 2021-06-16]
선향재(善香齋) : 서재인 선향재(善香齋)는 청나라풍 벽돌을 사용하였고 동판을 씌운 지붕에 도르래식 차양을 설치하여 이국적인 느낌이 든다. 선향재는 서쪽에 위치하고 있어 오후가 되면 강한 햇살이 들어와서 차양으로 햇빛을 조정하였다고 한다
[촬영일 : 2021-06-16]
농수정(濃繡亭) : 선향재(善香齋) 뒤쪽 언덕위에 있는 정자이다. 겹처마의 네모지붕 정자로 농수는 짙은 빛을 수 놓는다는 의미라고 한다
[촬영일 : 2021-06-16]
승재정(勝在亭) : 승재(勝在)는 '아름답고 빼어난 경치(勝)가 있다(在)'는 뜻으로 창덕궁 높은 언덕위에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 올라서면 바로 아래로 연못과 그에 인접한 관람정(觀纜亭)이 보인다
[촬영일 : 2021-06-16]
승재정(勝在亭) : 승재(勝在)는 '아름답고 빼어난 경치(勝)가 있다(在)'는 뜻으로 창덕궁 높은 언덕위에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 올라서면 바로 아래로 연못과 그에 인접한 관람정(觀纜亭)이 보인다
[촬영일 : 2021-06-16]
폄우사砭愚榭) : 1828년 무렵 제작된 <동궐도>에 의하면 폄우사는 'ㄱ'자형으로 그려져 있다. 지금은 부속채가 없어져 단출한 모습이다. '어리석음에 돌침을 놓는 정자'. 즉, 임금이 자신을 되돌아 보고 어리석음을 깨우치고 덕을 높이라는 의미를 갖고있다
[촬영일 : 2021-06-16]
존덕정(尊德亭) : 존덕정은 겹지붕의 육각형 정자로 '덕(德)을 높이다(尊)'이다. 임금이 덕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훌륭한 정치를 하라는 마음을 담았다. 인조 때 지어진 건물로 지붕이 두 개이다. 존덕정 북쪽에 있는 작은 연못은 '반월지(半月池)'라 하는데 이 물이 관람정(觀纜亭)앞 연못인 반도지(半島池)라 불리는 관람지(觀纜池)로 흘러 간다
[촬영일 : 2021-06-16]
폄우사砭愚榭)와 존덕정(尊德亭)
[촬영일 : 2021-06-16]
존덕정(尊德亭) 돌다리 : 존덕정 뒷편으로 반월지(半月池)라는 작은 연못이 있고 수로를 통해 반월지에서 반도지(半月池)로 물이 흐르는 수로위에 아치형 돌다리를 세웠다
[촬영일 : 2021-06-16]
존덕정(尊德亭) 돌다리 : 존덕정 뒷편으로 반월지(半月池)라는 작은 연못이 있고 수로를 통해 반월지에서 반도지(半月池)로 물이 흐르는 수로위에 아치형 돌다리를 세웠다. 돌다리 너머로 관람정(觀纜亭)과 반도지 연못이 보인다
[촬영일 : 2021-06-16]
관람정(觀纜亭) : 나뭇잎 모양의 초록색 현판이 있는 부채꼴 정자이다. '관람(觀纜)'의 '람'은 닻줄을 가리키며, 여기서는 뱃놀이를 의미한다. 따라서 관람정은 뱃놀이를 구경하는 정자라는 의미이다. 관람정의 연못은 관람지(觀纜池)이다. 한반도 모양이라 반도지(半島池)로도 부른다
[촬영일 : 2021-06-16]
관람정(觀纜亭) : 나뭇잎 모양의 초록색 현판이 있는 부채꼴 정자이다. '관람(觀纜)'의 '람'은 닻줄을 가리키며, 여기서는 뱃놀이를 의미한다. 따라서 관람정은 뱃놀이를 구경하는 정자라는 의미이다. 관람정의 연못은 관람지(觀纜池)이다. 한반도 모양이라 반도지(半島池)로도 부른다
[촬영일 : 2021-06-16]
관람정(觀纜亭) : 나뭇잎 모양의 초록색 현판이 있는 부채꼴 정자이다. '관람(觀纜)'의 '람'은 닻줄을 가리키며, 여기서는 뱃놀이를 의미한다. 따라서 관람정은 뱃놀이를 구경하는 정자라는 의미이다. 관람정의 연못은 관람지(觀纜池)이다. 한반도 모양이라 반도지(半島池)로도 부른다
[촬영일 : 2021-06-16]
취규정(聚奎亭) : '취규(聚奎)'는 '별들이 규성(奎星)으로 모여 든다'는 의미다. 규성은 하늘의 28수 별자리 가운데 하나로 문운(文運)을 주관하는 별이며 서쪽 하늘에 있다. 따라서 다른 별들이 규성 주위로 모여 든다는 것은 인재가 모여들어 천하가 태평해짐을 의미한다. 휴식과 독서의 공간으로 추정된다
[촬영일 : 2023-12-31]
부용지(芙蓉池) 겨울풍경 : 후원의 첫 번째 중심 정원으로, 휴식뿐 아니라 학문과 교육을 하던 비교적 공개된 장소였다. 정면으로 주합루와 오른쪽으로 영화당이 위치하고 있다
[촬영일 : 2023-12-31]
부용지(芙蓉池) 겨울풍경 : 후원의 첫 번째 중심 정원으로, 휴식뿐 아니라 학문과 교육을 하던 비교적 공개된 장소였다. 정면으로 주합루와 오른쪽으로 영화당이 위치하고 있다
[촬영일 : 2023-12-31]
어수문(魚水門)과주합루(宙合樓) : 주합루는 1776년(정조 1년)에 창건한 2층의 누각건물이다. 아래층에는 황실 직속 기관인 규장각을 위층에는 누마루를 조성했다. 주합루로 오르는 길에는 작은 어수문이 있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 수 없다는 격언과 같이 항상 백성을 생각하라는 교훈이 담겨진 문이다
[촬영일 : 2023-12-31]
영화당(暎花堂) : 영화당의 방과 기둥, 그리고 들보에는 인조와 선조, 효종, 현종, 숙종 임금의 글씨가 남아있다. 또 현판은 1754년(영조 30)에 영조 임금이 지어 올렸으니 한 건물에 여섯 임금의 어필이 남아 있다. 영화당은 임금이 신하들과 함께 큰 잔치를 열거나, 특별과거를 실시하고, 활쏘기 대회를 하였 곳이다.
[촬영일 : 2023-12-31]
금마문(金馬門) : 의두합(倚斗閤)으로 들어가는 출입문. 금마문은 중국 한나라 때 미앙궁에 있던 문으로 왕세자가 있음을 상징한다
[촬영일 : 2023-12-31]
애련지(愛蓮池)와 애련정(愛蓮亭) : 애련지는 두개의 연못이 나란히 연결되어 있다
[촬영일 : 2023-12-31]
연경당 앞 마당에서 보이는 애련지. 두개의 연못이 나란히 연결되어 있다
[촬영일 : 2023-12-31]
의두합(倚斗閤) : 순조의 세자 효명세자가 대리청정할 당시에 독서와 공부를 하려고 지은 서재이다.의두합 맞은편으로 애련정이 있다
[촬영일 : 2023-12-31]
의두합(倚斗閤) 전경 : 왼쪽이 (倚斗閤), 오른쪽이 부속건물 운경거(韻磬居)이다.순조의 세자 효명세자가 대리청정할 당시에 독서와 공부를 하려고 지은 서재이다
[촬영일 : 2023-12-31]
관람지(觀纜池) : 연못의 형태가 한반도를 닮았다. 본래는 한반도 모습이 아니었으나 고종말 혹은 순종초기에 세개의 연못을 합쳐 지금의 모습으로 만들어졌다고 전해진다
[촬영일 : 2023-12-31]
존덕정(尊德亭) : 존덕정은 겹지붕의 육각형 정자로 '덕(德)을 높이다(尊)'이다. 임금이 덕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훌륭한 정치를 하라는 마음을 담았다. 인조 때 지어진 건물로 지붕이 두 개이다. 존덕정 북쪽에 있는 작은 연못은 '반월지(半月池)'라 하는데 이 물이 관람정(觀纜亭)앞 연못인 반도지(半島池)라 불리는 관람지(觀纜池)로 흘러 간다
[촬영일 : 2023-12-31]
존덕정(尊德亭) : 존덕정의 내부에는 정조가 쓴 만천명월주인옹자서(萬川明月主人翁自序)가 걸려있다. '만천명월 주인옹'이란 냇물은 만 개여도 거기에 비치는 달은 하나인 것처럼 임금은 만백성의 늙은 주인이라는 뜻이다
[촬영일 : 2023-12-31]
관람지(觀纜池) : 연못의 형태가 한반도를 닮았다. 본래는 한반도 모습이 아니었으나 고종말 혹은 순종초기에 세개의 연못을 합쳐 지금의 모습으로 만들어졌다고 전해진다
[촬영일 : 2024-10-02]
고요한 부용지(芙蓉池)는 거울처럼 고즈넉하다. 그 위에 비친 어수문(魚水門)과 주합루(宙合樓)가 마치 살아 숨 쉬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