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회수 : 19 등록일 : 2021-02-27 ]
1970년 10월 26일 당시 박정희대통령의 지시와 국민의 성금 등으로 일제시기 민족정기를 탄압하는 조선신궁이 있던 서울 남산 현 위치에 안중근의사기념관을 건립·개관하게 되었으며, 세월이 흘러 기념관이 노후·협소해짐에 따라 2004년 (사)안중근의사숭모회와 광복회의 요청을 받은 노무현대통령의 지시로 국가보훈처에서 2010년 10월 26일 새 기념관을 개관하였다
전시관 입구인 지하2층(강당), 지하1층(중앙홀, 제1전시실)부터 지상1층(제2전시실), 지상2층(제3전시실)으로 총4개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출처 : 안중근의사 기념관(http://www.ahnjunggeun.or.kr/)
한국 독립운동의 영원한 상징 안중근은 처음에는 계몽운동을 펼치다가 1907년 국외로 망명하고 의병을 일으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으며, 1909년 한국침략의 원흉이자 동양 평화의 파괴자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면서 민족과 인류의 구원 앞에 자신을 산화시켜 간 의사이다.
1879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난 안중근은 문명개화론자인 아버지 안태훈의 영향아래 어린 시절을 황해도 신천의 청계동 산골 마을에서 학문을 수학하고 무술 연마에 힘을 기울이며 성장했다. 1894년 동학농민전쟁 때에는 동학군의 공격으로 부터 청계동을 지키는데 선봉으로 활약했으며 1897년 프랑스인 빌렘 신부로 부터 영세를 받고 천주교에 입문하였다. 전도활동을 벌이던 무렵 그는 한국인의 지식 계발을 위해 '대학'설립을 계획하기도 했다.
러일전쟁이 끝날 무렵 안중근은 아버지 안태훈과 상의하여 중국 산둥이나 상하이로 가족을 옮겨놓고 항일투쟁을 전개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으나 국내에서 계몽운동을 펼치기로 계획을 바꿨다. 1906년 봄, 평안남도 진남포에서 삼흥학교와 돈의학교를 통해 민족교육운동을 전개하였으며, 국채보상운동에도 적극 참여하였다.
1907년 광무황제의 강제퇴위, 군대해산 등으로 나라가 위기를 맞자 국외 망명을 단행하였다. 북간도를 거쳐 연해주로 망명한 그는 각 마을을 돌며 의병 모집을 위해 힘을 쏟아 의병부대를 창설하였다. 구는 의병부대를 이끌고 국내진입작전을 전개하여 여러차례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의병 활동을 지속하기 어려운 환경 속에서 1908년 초 단지동맹을 맺고 의병 재기의 의지를 다져 나갔다. 그러던 중 이토 히로부미가 하얼빈을 찾는다는 소식을 접하고 1909년 10월 26일, 의거를 결행하니 안중근의사의 하얼빈의거가 그것이다. 또한 안중근은 해외 망명 이래 만주, 연해주 일대에서 끊임없이 구국운동을 전개하면서 독립운동의 철학을 정립할 수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동양평화론'이다.
안중근의 동양평화른은 동서양을 떠나 국가와 민족 간의 전쟁과 분쟁의 원인을 제거하자는 것으로, 인종주의에 매몰되거나 세계평화사상과 대치되는 것이 아니었다. 안중근은 한국의 의사만이 아닌 동양과 세계의 의사였다. 제국주의 침략에 맞서 외롭게 동양평화를 지켜내고자 했던 안중근의사는 시대를 앞서간 선각자이자 진정한 평화주의자였다.
- 출처 : 안중근의사 기념관 안내판 -
* 조선신궁 : 일제 강점기에 남산에 세워졌던 일본의 신토신앙에 근거해 만들어진 종교시설
* 광무황제 : 대한제국 고종으로 광무는 대한제국의 첫 번째 연호이다
* 북간도 : 두만강 북쪽 지역일대이며 현재의 연변 조선족 자치주 지역. 압록강 북쪽을 서간도라 한다
* 연해주 : 바다 연안에 있는 땅이란 뜻으로 블라디보스토크를 주도로 하는 러시아 프리모르스키 지역을 말한다
* 만주 : 1932년 일본이 세운 괴뢰국을 통칭하며 현재의 중국 랴오닝, 지린,헤이룽장 지역과 내몽고 일부지역이다
* 니콜라 빌렘(Nicolas Joseph Marie Willhelm, 1860년~1936년) : 프랑스인 천주교 신부이자 선교사. 안중근 토마스 의사와 친밀한 관계를 맺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안중근이 순국할 때 고해성사를 집전해 주었던 신부이기도 하다. 한국명은 홍석구
* 돈의학교 : 진남포 천주교회가 1900년에 설립한 초등 교육기관
* 삼흥학교 : 1906년에 진남포에 설립한 야학교
* 동양평화론(東洋平和論) : 안중근의사가 1910년 3월 옥중에서 쓴 동양평화 실현을 위한 미완성의 저서. 사형이 집행되었기 때문에 완성되지 못했다
전시관 입구인 지하2층(강당), 지하1층(중앙홀, 제1전시실)부터 지상1층(제2전시실), 지상2층(제3전시실)으로 총4개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출처 : 안중근의사 기념관(http://www.ahnjunggeun.or.kr/)
한국 독립운동의 영원한 상징 안중근은 처음에는 계몽운동을 펼치다가 1907년 국외로 망명하고 의병을 일으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으며, 1909년 한국침략의 원흉이자 동양 평화의 파괴자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면서 민족과 인류의 구원 앞에 자신을 산화시켜 간 의사이다.
1879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난 안중근은 문명개화론자인 아버지 안태훈의 영향아래 어린 시절을 황해도 신천의 청계동 산골 마을에서 학문을 수학하고 무술 연마에 힘을 기울이며 성장했다. 1894년 동학농민전쟁 때에는 동학군의 공격으로 부터 청계동을 지키는데 선봉으로 활약했으며 1897년 프랑스인 빌렘 신부로 부터 영세를 받고 천주교에 입문하였다. 전도활동을 벌이던 무렵 그는 한국인의 지식 계발을 위해 '대학'설립을 계획하기도 했다.
러일전쟁이 끝날 무렵 안중근은 아버지 안태훈과 상의하여 중국 산둥이나 상하이로 가족을 옮겨놓고 항일투쟁을 전개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으나 국내에서 계몽운동을 펼치기로 계획을 바꿨다. 1906년 봄, 평안남도 진남포에서 삼흥학교와 돈의학교를 통해 민족교육운동을 전개하였으며, 국채보상운동에도 적극 참여하였다.
1907년 광무황제의 강제퇴위, 군대해산 등으로 나라가 위기를 맞자 국외 망명을 단행하였다. 북간도를 거쳐 연해주로 망명한 그는 각 마을을 돌며 의병 모집을 위해 힘을 쏟아 의병부대를 창설하였다. 구는 의병부대를 이끌고 국내진입작전을 전개하여 여러차례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의병 활동을 지속하기 어려운 환경 속에서 1908년 초 단지동맹을 맺고 의병 재기의 의지를 다져 나갔다. 그러던 중 이토 히로부미가 하얼빈을 찾는다는 소식을 접하고 1909년 10월 26일, 의거를 결행하니 안중근의사의 하얼빈의거가 그것이다. 또한 안중근은 해외 망명 이래 만주, 연해주 일대에서 끊임없이 구국운동을 전개하면서 독립운동의 철학을 정립할 수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동양평화론'이다.
안중근의 동양평화른은 동서양을 떠나 국가와 민족 간의 전쟁과 분쟁의 원인을 제거하자는 것으로, 인종주의에 매몰되거나 세계평화사상과 대치되는 것이 아니었다. 안중근은 한국의 의사만이 아닌 동양과 세계의 의사였다. 제국주의 침략에 맞서 외롭게 동양평화를 지켜내고자 했던 안중근의사는 시대를 앞서간 선각자이자 진정한 평화주의자였다.
- 출처 : 안중근의사 기념관 안내판 -
* 조선신궁 : 일제 강점기에 남산에 세워졌던 일본의 신토신앙에 근거해 만들어진 종교시설
* 광무황제 : 대한제국 고종으로 광무는 대한제국의 첫 번째 연호이다
* 북간도 : 두만강 북쪽 지역일대이며 현재의 연변 조선족 자치주 지역. 압록강 북쪽을 서간도라 한다
* 연해주 : 바다 연안에 있는 땅이란 뜻으로 블라디보스토크를 주도로 하는 러시아 프리모르스키 지역을 말한다
* 만주 : 1932년 일본이 세운 괴뢰국을 통칭하며 현재의 중국 랴오닝, 지린,헤이룽장 지역과 내몽고 일부지역이다
* 니콜라 빌렘(Nicolas Joseph Marie Willhelm, 1860년~1936년) : 프랑스인 천주교 신부이자 선교사. 안중근 토마스 의사와 친밀한 관계를 맺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안중근이 순국할 때 고해성사를 집전해 주었던 신부이기도 하다. 한국명은 홍석구
* 돈의학교 : 진남포 천주교회가 1900년에 설립한 초등 교육기관
* 삼흥학교 : 1906년에 진남포에 설립한 야학교
* 동양평화론(東洋平和論) : 안중근의사가 1910년 3월 옥중에서 쓴 동양평화 실현을 위한 미완성의 저서. 사형이 집행되었기 때문에 완성되지 못했다
[촬영일 : 2020-10-11]
안중근의사의 빈 무덤 : 효창공원의 삼의사 묘는 조국 광복을 위해 모 바친 이봉창,윤봉길,백정기 의사를 모신 묘역이다. 삼의사 묘 왼편에는 1910년 3월 26일 중국 뤼순 감옥에서 순국한 안중근의사의 유해를 찾으면 안장하고자 마련한 빈 무덤이다
[촬영일 : 2021-02-27]
안중근의사 기념관 전경과 상징물
[촬영일 : 2021-02-27]
안중근의사 기념관 입구
[촬영일 : 2021-02-27]
안중근의사 기념관 입구 2
[촬영일 : 2021-02-27]
지하1층 중앙홀의 안중근 의사 좌상
[촬영일 : 2021-02-27]
안중근의사의 상징이 된 절단된 약지의 손도장 : 안중근체(한국저작위원회 공유마당, CC BY)
[촬영일 : 2021-02-27]
하얼빈역의 안중근의사 의거현장1
[촬영일 : 2021-02-27]
하얼빈역의 안중근의사 의거현장2
[촬영일 : 2021-02-27]
재판장앞에서 당당했던 안중근의사 : 일본은 안중근의사를 처형하기 위해 국제법을 어기면서 재판을 진행했다. 그러나 안중의사는 죽을을 두려워하지 않고 이토히로부미의 15가지 죄목을 요목조목 나열하였다
[촬영일 : 2021-02-27]
체험전시실 : 감사합니다.안중근의사님!. 안중근의사의 나라사랑을 다시 생각하며 직접접은 무궁화와 감사의 말을 담은 편지를 달아드려요
[촬영일 : 2021-02-27]
남산에 위치한 안중근의사 동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