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회수 : 361 등록일 : 2021-05-27 ]
창경궁은 성종 14년(1483)에 세조비 정희왕후, 예종비 안순왕후, 덕종비(추존왕) 소혜왕후 세분의 대비를 모시기 위해 옛 수강궁터에 창건한 궁이다. 수강궁은 세종 즉위년 1418년, 세종이 상왕으로 물러난 태종의 거처를 위해서 마련한 궁이다.
그래서인지 전체적으로 창경궁은 전각의 규모도 비교적 작은 편이고 경복궁이나 창덕궁과는 달리 정전과 정문이 동향으로 배치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창덕궁과 창경궁은 연결되어 궁성 안에서 동쪽에 위치하며 인접했기 때문에 묶어서 동궐이라는 하나의 궁역을 형성하면서, 독립적인 궁궐의 역할을 함과 동시에 창덕궁의 모자란 주거공간을 보충해주는 역할을 하였다.
동궐은 응봉자락 아래 구릉지에 입지함으로써 건물들의 축선이 정연하지 않고 주요 전각들이 횡적으로 연결된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는 평탄지에 자리잡아 정연한 구성을 띠며 중심건물이 종적으로 연결된 경복궁과 대비되는 부분이다.
성종대 창건된 창경궁은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으로 모든 전각이 소실되었고, 광해군 8년(1616)에 재건되었다. 그러나 인조2년(1624) 이괄의 난과 순조30년(1830) 대화재로 인하여 내전이 소실되었다.
화재에서 살아남은 명정전, 명정문, 홍화문은 17세기 조선시대 건축양식을 보여주며, 정전인 명정전은 조선왕궁 법전 중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참고문헌]
- 한국문화와 유물유적, 한국방송통신대학출판문화원,송찬섭외 14인, P.11
- 문화재청 창경궁관리소
* 성종(1457년~1495년) : 조선의 제9대 국왕(재위:1469년~1494년)
그래서인지 전체적으로 창경궁은 전각의 규모도 비교적 작은 편이고 경복궁이나 창덕궁과는 달리 정전과 정문이 동향으로 배치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창덕궁과 창경궁은 연결되어 궁성 안에서 동쪽에 위치하며 인접했기 때문에 묶어서 동궐이라는 하나의 궁역을 형성하면서, 독립적인 궁궐의 역할을 함과 동시에 창덕궁의 모자란 주거공간을 보충해주는 역할을 하였다.
동궐은 응봉자락 아래 구릉지에 입지함으로써 건물들의 축선이 정연하지 않고 주요 전각들이 횡적으로 연결된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는 평탄지에 자리잡아 정연한 구성을 띠며 중심건물이 종적으로 연결된 경복궁과 대비되는 부분이다.
성종대 창건된 창경궁은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으로 모든 전각이 소실되었고, 광해군 8년(1616)에 재건되었다. 그러나 인조2년(1624) 이괄의 난과 순조30년(1830) 대화재로 인하여 내전이 소실되었다.
화재에서 살아남은 명정전, 명정문, 홍화문은 17세기 조선시대 건축양식을 보여주며, 정전인 명정전은 조선왕궁 법전 중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참고문헌]
- 한국문화와 유물유적, 한국방송통신대학출판문화원,송찬섭외 14인, P.11
- 문화재청 창경궁관리소
* 성종(1457년~1495년) : 조선의 제9대 국왕(재위:1469년~1494년)
[촬영일 : 2020-06-18]
창경궁 홍화문(弘化門) : 창경궁의 정문이다
[촬영일 : 2021-05-05]
창경궁 숭문당(崇文堂) : 숭문당은 문(文)을 숭상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국왕의 경연(經筵)을 벌이던 곳이다. 특히 영조는 성균관 유생이나 종친들을 접견하고 유생들을 시험했다.숭문당의 창건연대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으며 순조 때(1830년) 화재로 불탄 것을 그 해 가을에 재건하였다.(출처 : 문화재청 창경궁관리소)
[촬영일 : 2021-05-05]
창경궁 경춘전(景春殿) : 1484년(성종 15) 창건 당시에 건립된 침전 건물로 주로 왕대비, 왕비 또는 세자빈 등이 거처했던 것으로 보인다. 임진왜란, 이괄의 난 등으로 여러 차례 소실되었다가 1834년(순조 34)에 중건되었다. 편액의 글씨는 순조의 어필이다. 이곳에서는 22대 정조와 24대 헌종이 태어났고 성종의 생모 소혜왕후, 즉, 인수대비 한씨와 숙종비 인현왕후 민씨, 정조의 생모 헌경왕후, 즉 혜경궁 홍씨 등이 승하하였다(출처 : 문화재청 창경궁관리소)
[촬영일 : 2021-05-05]
창경궁 춘당지(春塘池) : 이 연못은 춘당지라 부르는 연못으로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그렇지만 이 두 연못이 전부 춘당지는 아니었다. 아래쪽의 큰 연못은 원래 내농포로 국왕이 궁궐 안에서 직접 농사짓는 의식을 행했던 곳이었다. 1909년에 일본인들이 이곳에 연못을 만들었고, 1986년에 우리 전통양식에 가깝게 재조성한 것이다. 위쪽의 작은 연못이 원래의 춘당지로, 백련지/백련담 등으로 부른 기록도 있다(출처 : 문화재청 창경궁관리소)
[촬영일 : 2021-05-05]
창경궁 춘당지(春塘池) : 이 연못은 춘당지라 부르는 연못으로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그렇지만 이 두 연못이 전부 춘당지는 아니었다. 아래쪽의 큰 연못은 원래 내농포로 국왕이 궁궐 안에서 직접 농사짓는 의식을 행했던 곳이었다. 1909년에 일본인들이 이곳에 연못을 만들었고, 1986년에 우리 전통양식에 가깝게 재조성한 것이다. 위쪽의 작은 연못이 원래의 춘당지로, 백련지/백련담 등으로 부른 기록도 있다(출처 : 문화재청 창경궁관리소)
[촬영일 : 2021-05-26]
창경궁 홍화문(弘化門) : 창경궁의 정문이다
[촬영일 : 2021-05-26]
창경궁 옥천교(玉川橋) : 1484년(성종 15)에 건립된 것으로 '구슬과 같은 맑은 물이 흘러간다'하여 옥천교라 하였다. 다리 양쪽 아래에 아치(무지개) 모양 사이에는 도깨비 얼굴의 귀면이 조각되어 있는데, 이것은 물길을 타고 들어오는 귀신을 쫓아내어 궁궐을 보호하고 수호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출처 : 문화재청 창경궁관리소)
[촬영일 : 2021-05-26]
창경궁 옥천교(玉川橋) : 1484년(성종 15)에 건립된 것으로 '구슬과 같은 맑은 물이 흘러간다'하여 옥천교라 하였다. 다리 양쪽 아래에 아치(무지개) 모양 사이에는 도깨비 얼굴의 귀면이 조각되어 있는데, 이것은 물길을 타고 들어오는 귀신을 쫓아내어 궁궐을 보호하고 수호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출처 : 문화재청 창경궁관리소)
[촬영일 : 2021-05-26]
창경궁 명정문(明政門) : 창경궁의 정전인 명정전의 정문이며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보다 안쪽에 놓여 중문의 기능을 갖는 평삼문이다
[촬영일 : 2021-05-26]
창경궁 명정전(明政殿) : 명정전은 창경궁의 으뜸 전각인 정전(正殿)으로, 국왕의 즉위식, 신하들의 하례, 과거시험, 궁중연회 등의 공식적 행사를 치렀던 장소이다. 인종이 1544년(중종 39) 이곳에서 즉위했으며, 1759년(영조 35) 6월 66세의 영조가 15세의 정순왕후를 맞이하는 혼례(또는 가례(嘉禮))가 치러지기도 했다. 1484년(성종 15)에 창건되어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16년(광해 8)에 재건되어 현재에 이르니, 현존하는 조선 궁궐의 정전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출처 : 문화재청 창경궁관리소)
[촬영일 : 2021-05-26]
창경궁 명정전(明政殿) : 명정전은 창경궁의 으뜸 전각인 정전(正殿)으로, 국왕의 즉위식, 신하들의 하례, 과거시험, 궁중연회 등의 공식적 행사를 치렀던 장소이다. 인종이 1544년(중종 39) 이곳에서 즉위했으며, 1759년(영조 35) 6월 66세의 영조가 15세의 정순왕후를 맞이하는 혼례(또는 가례(嘉禮))가 치러지기도 했다. 1484년(성종 15)에 창건되어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16년(광해 8)에 재건되어 현재에 이르니, 현존하는 조선 궁궐의 정전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출처 : 문화재청 창경궁관리소)
[촬영일 : 2021-05-26]
창경궁 명정전(明政殿) : 명정전은 창경궁의 으뜸 전각인 정전(正殿)으로, 국왕의 즉위식, 신하들의 하례, 과거시험, 궁중연회 등의 공식적 행사를 치렀던 장소이다. 인종이 1544년(중종 39) 이곳에서 즉위했으며, 1759년(영조 35) 6월 66세의 영조가 15세의 정순왕후를 맞이하는 혼례(또는 가례(嘉禮))가 치러지기도 했다. 1484년(성종 15)에 창건되어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16년(광해 8)에 재건되어 현재에 이르니, 현존하는 조선 궁궐의 정전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출처 : 문화재청 창경궁관리소)
[촬영일 : 2021-05-26]
창경궁 명정전(明政殿) : 명정전은 창경궁의 으뜸 전각인 정전(正殿)으로, 국왕의 즉위식, 신하들의 하례, 과거시험, 궁중연회 등의 공식적 행사를 치렀던 장소이다. 인종이 1544년(중종 39) 이곳에서 즉위했으며, 1759년(영조 35) 6월 66세의 영조가 15세의 정순왕후를 맞이하는 혼례(또는 가례(嘉禮))가 치러지기도 했다. 1484년(성종 15)에 창건되어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16년(광해 8)에 재건되어 현재에 이르니, 현존하는 조선 궁궐의 정전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출처 : 문화재청 창경궁관리소)
[촬영일 : 2021-05-26]
창경궁 문정전(文政殿) : 문정전은 창경궁의 편전으로, 국왕이 관리들과 만나 업무 보고를 받고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던 집무실이었다. 문정전은 동향인 명정전과 방향이 다른 남향을 하고 있다. 문정전은 임진왜란 때 불에 타 광해군 8년(1616) 다시 지었고, 현재의 건물은 일제 강점기에 철거되었던 것을 1986년에 다시 지은 것이다. 이곳은 영조가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라고 명한 곳이기도 하다. 그 후 뒤주는 홍화문 남쪽에 있는 선인문 안뜰로 옮겨졌고, 사도세자는 8일 동안 굶주림과 더위에 신음하다가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출처 : 문화재청 창경궁관리소)
[촬영일 : 2021-05-26]
창경궁 문정전(文政殿) : 문정전은 창경궁의 편전으로, 국왕이 관리들과 만나 업무 보고를 받고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던 집무실이었다. 문정전은 동향인 명정전과 방향이 다른 남향을 하고 있다. 문정전은 임진왜란 때 불에 타 광해군 8년(1616) 다시 지었고, 현재의 건물은 일제 강점기에 철거되었던 것을 1986년에 다시 지은 것이다. 이곳은 영조가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라고 명한 곳이기도 하다. 그 후 뒤주는 홍화문 남쪽에 있는 선인문 안뜰로 옮겨졌고, 사도세자는 8일 동안 굶주림과 더위에 신음하다가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출처 : 문화재청 창경궁관리소)
[촬영일 : 2021-05-26]
창경궁 숭문당(崇文堂) : 숭문당은 문(文)을 숭상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국왕의 경연(經筵)을 벌이던 곳이다. 특히 영조는 성균관 유생이나 종친들을 접견하고 유생들을 시험했다.숭문당의 창건연대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으며 순조 때(1830년) 화재로 불탄 것을 그 해 가을에 재건하였다.(출처 : 문화재청 창경궁관리소)
[촬영일 : 2021-05-26]
창경궁 빈양문(賓陽門) : 명정전 뒤쪽에는 빈양문이 있는데, 이 문은 국왕의 공적 공간인 명정전과 사적 공간인 내전을 연결하는 문이다.빈양(賓陽)은 ‘밝음을 공경히 맞이한다’는 뜻으로, 밝음인 양은 국왕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 문을 지나면 왕의 사적 생활공간으로 통하기 때문에 출입이 엄격히 제한되었다(출처 : 문화재청 창경궁관리소)
[촬영일 : 2021-05-26]
창경궁 함인정(涵仁亭) : 창경궁의 정자이다. 함인(涵仁)뜻은 [인(仁)에 흠뻑 젖는다(涵)]이다
[촬영일 : 2021-05-26]
창경궁 환경전(歡慶殿) : 환경전은 창경궁의 내전(內殿) 건물 중 하나로 세자나 국왕이 생활하던 곳이며 중종과 소현세자가 승하한 곳이기도 하다. 성종 때(1484년) 창건되었다가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지고 1616년(광해군 8)에 중건되었다가 1830년(순조 30)에 화재를 당한 후 1834년(순조 34)에 다시 중건되었다(출처 : 문화재청 창경궁관리소)
[촬영일 : 2021-05-26]
창경궁 환경전(歡慶殿) : 환경전은 창경궁의 내전(內殿) 건물 중 하나로 세자나 국왕이 생활하던 곳이며 중종과 소현세자가 승하한 곳이기도 하다. 성종 때(1484년) 창건되었다가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지고 1616년(광해군 8)에 중건되었다가 1830년(순조 30)에 화재를 당한 후 1834년(순조 34)에 다시 중건되었다(출처 : 문화재청 창경궁관리소)
[촬영일 : 2021-05-26]
창경궁 영춘헌(迎春軒)과 집복헌(集福軒) : 남향인 영춘헌은 내전 건물이며, 집복헌은 영춘헌의 서쪽 방향에 5칸으로 연결된 서행각이다.이 건물들의 창건 연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1830년(순조 30)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834년(순조 34)에 재건되었다. 집복헌은 1735년(영조 11) 1월에 사도세자, 1790년(정조 14)에 6월 순조가 탄생한 곳이기도 하다. 영춘헌은 정조가 즉위 후 자주 머물렀던 장소이자 1800년 49세의 나이로 승하한 곳이다. 정조는 영춘헌을 독서실 겸 집무실로 이용 하였다(출처 : 문화재청 창경궁관리소)
[촬영일 : 2021-05-26]
창경궁 영춘헌(迎春軒)과 집복헌(集福軒) : 남향인 영춘헌은 내전 건물이며, 집복헌은 영춘헌의 서쪽 방향에 5칸으로 연결된 서행각이다.이 건물들의 창건 연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1830년(순조 30)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834년(순조 34)에 재건되었다. 집복헌은 1735년(영조 11) 1월에 사도세자, 1790년(정조 14)에 6월 순조가 탄생한 곳이기도 하다. 영춘헌은 정조가 즉위 후 자주 머물렀던 장소이자 1800년 49세의 나이로 승하한 곳이다. 정조는 영춘헌을 독서실 겸 집무실로 이용 하였다(출처 : 문화재청 창경궁관리소)
[촬영일 : 2021-05-26]
창경궁 통명전(通明殿) : 내전 가장 깊숙한 곳에 남향으로 위치한 통명전은 왕비의 침전으로 내전의 으뜸 전각이다. 이곳에서는 희빈 장씨의 인현왕후 저주사건이 있었다. 1694년 (숙종 20) 갑술환국으로 인현왕후가 복위되자 희빈으로 강등된 장씨는 인현왕후를 저주하며 처소인 취선당에 신당을 차리고 통명전 일대에 흉물을 파묻었다. 희빈 장씨는 이로 인하여 사약을 받게 되고, 희빈 장씨의 시신은 정문인 홍화문 남쪽에 있는 선인문을 통해 나가게 된다(출처 : 문화재청 창경궁관리소)
[촬영일 : 2021-05-26]
창경궁 통명전(通明殿) : 내전 가장 깊숙한 곳에 남향으로 위치한 통명전은 왕비의 침전으로 내전의 으뜸 전각이다. 이곳에서는 희빈 장씨의 인현왕후 저주사건이 있었다. 1694년 (숙종 20) 갑술환국으로 인현왕후가 복위되자 희빈으로 강등된 장씨는 인현왕후를 저주하며 처소인 취선당에 신당을 차리고 통명전 일대에 흉물을 파묻었다. 희빈 장씨는 이로 인하여 사약을 받게 되고, 희빈 장씨의 시신은 정문인 홍화문 남쪽에 있는 선인문을 통해 나가게 된다(출처 : 문화재청 창경궁관리소)
[촬영일 : 2021-05-26]
창경궁 양화당(養和堂) : 통명전 옆의 양화당은 내전의 한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인조가 병자호란 후 남한산성에서 돌아와 이곳에서 장기간 머물렀다.이후 인조는 청나라 사신을 이곳에서 접견하기도 하였다. 또한 이곳은 25대 철종의 왕비 철인왕후 김씨가 간병을 받다 승하한 곳이기도 하다. 지금의 양화당은 1830년(순조 30)화재로 불탄 것을 1834년(순조 34)에 재건한 것이다(출처 : 문화재청 창경궁관리소)
[촬영일 : 2021-05-26]
창경궁 양화당(養和堂) : 통명전 옆의 양화당은 내전의 한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인조가 병자호란 후 남한산성에서 돌아와 이곳에서 장기간 머물렀다.이후 인조는 청나라 사신을 이곳에서 접견하기도 하였다. 또한 이곳은 25대 철종의 왕비 철인왕후 김씨가 간병을 받다 승하한 곳이기도 하다. 지금의 양화당은 1830년(순조 30)화재로 불탄 것을 1834년(순조 34)에 재건한 것이다(출처 : 문화재청 창경궁관리소)
[촬영일 : 2021-05-26]
창경궁 양화당(養和堂)과 통명전(通明殿)이 바위와 어우러진 풍취있는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촬영일 : 2021-10-30]
창경궁 옥천교(玉川橋) : 1484년(성종 15)에 건립된 것으로 '구슬과 같은 맑은 물이 흘러간다'하여 옥천교라 하였다. 다리 양쪽 아래에 아치(무지개) 모양 사이에는 도깨비 얼굴의 귀면이 조각되어 있는데, 이것은 물길을 타고 들어오는 귀신을 쫓아내어 궁궐을 보호하고 수호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출처 : 문화재청 창경궁관리소)
[촬영일 : 2021-10-30]
창경궁 통명전(通明殿)내부 : 내전 가장 깊숙한 곳에 남향으로 위치한 통명전은 왕비의 침전으로 내전의 으뜸 전각이다. 이곳에서는 희빈 장씨의 인현왕후 저주사건이 있었다. 1694년 (숙종 20) 갑술환국으로 인현왕후가 복위되자 희빈으로 강등된 장씨는 인현왕후를 저주하며 처소인 취선당에 신당을 차리고 통명전 일대에 흉물을 파묻었다. 희빈 장씨는 이로 인하여 사약을 받게 되고, 희빈 장씨의 시신은 정문인 홍화문 남쪽에 있는 선인문을 통해 나가게 된다(출처 : 문화재청 창경궁관리소)
[촬영일 : 2021-10-30]
팔각칠층석탑 : 춘당지를 따라 왼쪽으로 걸어가다 보면 팔각칠층석탑이 보인다. 이 탑은 일제 강점기 이왕가박물관을 만들 때 만주(滿洲)에서 가지고 온 상인으로부터 매입하여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라마식 탑으로 중국 명나라(1470년)때 만들어졌다는 글귀가 탑신에 들어있다. 기단은 사각형의 지대석과 팔각의 2중 기단으로 되어 있다(출처: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창경궁관리소)
[촬영일 : 2021-10-30]
가을단풍과 춘당지 : 아래쪽의 큰 연못은 원래 내농포로 국왕이 궁궐 안에서 직접 농사짓는 의식을 행했던 곳이었다. 1909년에 일본인들이 이곳에 연못을 만들었고, 1986년에 우리 전통양식에 가깝게 재조성한 것이다. 위쪽의 작은 연못이 원래의 춘당지로, 백련지/백련담 등으로 부른 기록도 있다.
[촬영일 : 2021-10-30]
가을단풍과 춘당지 : 아래쪽의 큰 연못은 원래 내농포로 국왕이 궁궐 안에서 직접 농사짓는 의식을 행했던 곳이었다. 1909년에 일본인들이 이곳에 연못을 만들었고, 1986년에 우리 전통양식에 가깝게 재조성한 것이다. 위쪽의 작은 연못이 원래의 춘당지로, 백련지/백련담 등으로 부른 기록도 있다.
[촬영일 : 2021-10-30]
창경궁 느티나무 : 약 300살의 이 느티나무는 창경궁 역사와 함께하였다
[촬영일 : 2025-10-08]
창경궁 춘당지(春塘池) : 이 연못은 춘당지라 부르는 연못으로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그렇지만 이 두 연못이 전부 춘당지는 아니었다. 아래쪽의 큰 연못은 원래 내농포로 국왕이 궁궐 안에서 직접 농사짓는 의식을 행했던 곳이었다. 1909년에 일본인들이 이곳에 연못을 만들었고, 1986년에 우리 전통양식에 가깝게 재조성한 것이다. 위쪽의 작은 연못이 원래의 춘당지로, 백련지/백련담 등으로 부른 기록도 있다(출처 : 문화재청 창경궁관리소)
[촬영일 : 2025-10-08]
창경궁 춘당지(春塘池) : 이 연못은 춘당지라 부르는 연못으로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그렇지만 이 두 연못이 전부 춘당지는 아니었다. 아래쪽의 큰 연못은 원래 내농포로 국왕이 궁궐 안에서 직접 농사짓는 의식을 행했던 곳이었다. 1909년에 일본인들이 이곳에 연못을 만들었고, 1986년에 우리 전통양식에 가깝게 재조성한 것이다. 위쪽의 작은 연못이 원래의 춘당지로, 백련지/백련담 등으로 부른 기록도 있다(출처 : 문화재청 창경궁관리소)
[촬영일 : 2025-10-08]
창경궁 명정전(明政殿) : 명정전은 창경궁의 으뜸 전각인 정전(正殿)으로, 국왕의 즉위식, 신하들의 하례, 과거시험, 궁중연회 등의 공식적 행사를 치렀던 장소이다. 인종이 1544년(중종 39) 이곳에서 즉위했으며, 1759년(영조 35) 6월 66세의 영조가 15세의 정순왕후를 맞이하는 혼례(또는 가례(嘉禮))가 치러지기도 했다. 1484년(성종 15)에 창건되어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16년(광해 8)에 재건되어 현재에 이르니, 현존하는 조선 궁궐의 정전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출처 : 문화재청 창경궁관리소)
[촬영일 : 2025-10-08]
창경궁 명정전(明政殿) : 명정전은 창경궁의 으뜸 전각인 정전(正殿)으로, 국왕의 즉위식, 신하들의 하례, 과거시험, 궁중연회 등의 공식적 행사를 치렀던 장소이다. 인종이 1544년(중종 39) 이곳에서 즉위했으며, 1759년(영조 35) 6월 66세의 영조가 15세의 정순왕후를 맞이하는 혼례(또는 가례(嘉禮))가 치러지기도 했다. 1484년(성종 15)에 창건되어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16년(광해 8)에 재건되어 현재에 이르니, 현존하는 조선 궁궐의 정전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출처 : 문화재청 창경궁관리소)
[촬영일 : 2025-10-08]
대온실(大溫室)은 1909년(융희 3)에 완공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온실로, 철골구조와 목조가 혼합된 구조체를 유리로 둘러싼 서양식 온실이다. 준공 당시에는 열대지방의 관상식물을 비롯한 희귀한 식물을 전시하였다. 1986년 창경궁 복원 이후에는 국내 자생 식물을 전시하고 있다(출처 :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
[촬영일 : 2025-10-08]
팔각칠층석탑 : 춘당지를 따라 왼쪽으로 걸어가다 보면 팔각칠층석탑이 보인다. 이 탑은 일제 강점기 이왕가박물관을 만들 때 만주(滿洲)에서 가지고 온 상인으로부터 매입하여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라마식 탑으로 중국 명나라(1470년)때 만들어졌다는 글귀가 탑신에 들어있다. 기단은 사각형의 지대석과 팔각의 2중 기단으로 되어 있다(출처: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창경궁관리소)
[촬영일 : 2025-10-08]
창경궁 전경
[촬영일 : 2025-10-08]
창경궁내 오래된 나무 : 나무뒤 담을 넘으면 창덕궁이 위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