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회수 : 478 등록일 : 2021-04-03 ]
경복궁은 1395년에 창건된 조선의 [1]법궁으로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고 한양으로 천도하면서 조선시대에 가장 먼저 지은 궁궐이다.
위로는 백악산에 기대어 터를 잡았고 정문인 광화문 앞으로는 정치와 경제의 중심인 육조거리가 있었다.
[2]정도전이 지은 '경복'이란 이름에는 '새 왕조가 큰 복을 누려 번영할 것'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선조 25년(1592년) 임진왜란으로 전소되어 270여 년간 복구되지 못하다가 고종 4년(1867년) 흥선대원군의 주도로 중건되었다.
당시 경복궁에는 왕과 관리들이 업무를 보던 외전과 궐내각사들, 왕과 왕비 및 궁인들의 생활을 위한 전각들, 휴식을 위한 정원 등 500여 동의 건물들이 조성되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 의해 훼손되었고, 1915년에는 조선물산공지회를 개최한다는 구실로 90% 이상의 전각이 헐렸다.
1990년부터 본격적인 복원사업을 추진해 옛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하고 경복궁의 본래 모습으로 복원하고 있다.
광화문 [3]월대(光化門 月臺)100년 만에 제 모습을 되찾은 광화문 월대가 2023년 10월 15일 저녁 '광화문 월대 및 현판 복원' 기념행사를 통해 일반에게 공개됐다.
광화문 월대는 1867년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할 당시 광화문 앞에 월대를 조성하였으나 일제강점기인 1923년 전차선로를 설치한다는 이유로 훼손됐다. 2007년 월대 난간 일부를 복원하였다.
[1] 법궁 : 왕이 거처하는 궁궐 가운데 으뜸이 되는 궁궐
[2] 정도전(鄭道傳, 1342년 ~ 1398년) : 고려 말과 조선 초기의 문신. 조선 건국의 일등공신
[3] 월대(月臺) : 궁전앞에 두는 섬돌
위로는 백악산에 기대어 터를 잡았고 정문인 광화문 앞으로는 정치와 경제의 중심인 육조거리가 있었다.
[2]정도전이 지은 '경복'이란 이름에는 '새 왕조가 큰 복을 누려 번영할 것'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선조 25년(1592년) 임진왜란으로 전소되어 270여 년간 복구되지 못하다가 고종 4년(1867년) 흥선대원군의 주도로 중건되었다.
당시 경복궁에는 왕과 관리들이 업무를 보던 외전과 궐내각사들, 왕과 왕비 및 궁인들의 생활을 위한 전각들, 휴식을 위한 정원 등 500여 동의 건물들이 조성되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 의해 훼손되었고, 1915년에는 조선물산공지회를 개최한다는 구실로 90% 이상의 전각이 헐렸다.
1990년부터 본격적인 복원사업을 추진해 옛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하고 경복궁의 본래 모습으로 복원하고 있다.
광화문 [3]월대(光化門 月臺)100년 만에 제 모습을 되찾은 광화문 월대가 2023년 10월 15일 저녁 '광화문 월대 및 현판 복원' 기념행사를 통해 일반에게 공개됐다.
광화문 월대는 1867년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할 당시 광화문 앞에 월대를 조성하였으나 일제강점기인 1923년 전차선로를 설치한다는 이유로 훼손됐다. 2007년 월대 난간 일부를 복원하였다.
[1] 법궁 : 왕이 거처하는 궁궐 가운데 으뜸이 되는 궁궐
[2] 정도전(鄭道傳, 1342년 ~ 1398년) : 고려 말과 조선 초기의 문신. 조선 건국의 일등공신
[3] 월대(月臺) : 궁전앞에 두는 섬돌
[촬영일 : 2020-06-18]
광화문(光化門) : 광화문(光化門)은 경복궁의 남쪽에 있는 정문으로 임금의 큰 덕(德)이 온 나라를 비춘다는 의미를 갖고있다.
[촬영일 : 2020-06-18]
광화문(光化門) : 광화문(光化門)은 경복궁의 남쪽에 있는 정문으로 임금의 큰 덕(德)이 온 나라를 비춘다는 의미를 갖고있다.
[촬영일 : 2020-06-18]
광화문(光化門) : 광화문(光化門)은 경복궁의 남쪽에 있는 정문으로 임금의 큰 덕(德)이 온 나라를 비춘다는 의미이다.
[촬영일 : 2020-06-18]
영추문(迎秋門) : 영추문은 가을에 해당하는 경복궁의 서쪽문이다. 주로 문무백관들이 이용했다. 임진왜란으로 전소된 것을 고종2년(1865년)에 중건되었다. 일제강점기인 1926년에 철거되었다가 1975년에 원래 자리보다 50m 북쪽으로 옮겨 복원하여 오늘에 이른다
[촬영일 : 2021-03-31]
광화문(光化門) : 광화문(光化門)은 경복궁의 남쪽에 있는 정문으로 임금의 큰 덕(德)이 온 나라를 비춘다는 의미이다. 경복궁 내부의 광화문
[촬영일 : 2021-03-31]
광화문(光化門) 5 : 광화문(光化門)은 경복궁의 남쪽에 있는 정문으로 임금의 큰 덕(德)이 온 나라를 비춘다는 의미이다. 경복궁 내부의 광화문
[촬영일 : 2021-03-31]
흥례문(興禮門) :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과 근정전의 정문인 근정문 사이에 있는 중문
[촬영일 : 2021-03-31]
근정전(勤政殿) : 근정전은 경복궁의 정전으로 가장 화려하고 권위가 있어 왕의 위엄을 드러내는 곳이이기도 하다. 왕의 즉위식이나 문무백관의 조회, 과거 및 외국 사절의 접견 등 국가의 공식행사를 치르던 곳이다. 현재의 근정전은 임진왜란으로 전소된 것을 고종4년(1867년)에 중건한 것이다
[촬영일 : 2021-03-31]
근정전(勤政殿) : 근정전은 경복궁의 정전으로 가장 화려하고 권위가 있어 왕의 위엄을 드러내는 곳이이기도 하다. 왕의 즉위식이나 문무백관의 조회, 과거 및 외국 사절의 접견 등 국가의 공식행사를 치르던 곳이다. 현재의 근정전은 임진왜란으로 전소된 것을 고종4년(1867년)에 중건한 것이다
[촬영일 : 2021-03-31]
근정전(勤政殿) : 근정전은 경복궁의 정전으로 가장 화려하고 권위가 있어 왕의 위엄을 드러내는 곳이이기도 하다. 왕의 즉위식이나 문무백관의 조회, 과거 및 외국 사절의 접견 등 국가의 공식행사를 치르던 곳이다. 현재의 근정전은 임진왜란으로 전소된 것을 고종4년(1867년)에 중건한 것이다
[촬영일 : 2021-03-31]
집옥재(集玉齋) : 고종 28년(1891년)에 창덕궁 함녕전의 별당이었던 집옥재, 협길당을 옮겨와 서재와 외국 사신 접견소로 사용되었다. 집옥재는 양옆벽을 벽돌로 쌓아 전통양식에 중국풍의 요소들이 많이 섞여 있으며 궐내에서 이국적인 지역을 형성하며 좌우의 팔우정과 협길당이 복도를 통해 하나의 내부로 연결된다
[촬영일 : 2021-03-31]
집옥재(集玉齋) : 고종 28년(1891년)에 창덕궁 함녕전의 별당이었던 집옥재, 협길당을 옮겨와 서재와 외국 사신 접견소로 사용되었다. 집옥재는 양옆벽을 벽돌로 쌓아 전통양식에 중국풍의 요소들이 많이 섞여 있으며 궐내에서 이국적인 지역을 형성하며 좌우의 팔우정과 협길당이 복도를 통해 하나의 내부로 연결된다
[촬영일 : 2021-03-31]
하향정(荷香亭) : 하향정은 경회루 연지 북쪽에 있는 정자로 1959년에 지어졌다. 하향정은 일반 정자에서는 보기 드문 육각형의 형태이며 규모는 작지만 건축 기법이 섬세하고, 익공형식(목조건축 양식으로 창방과 직교하여 보방향으로 새 날개처럼 뾰족하게 생긴 공포)의 조선후기 궁권 건출양식을 따랐다
[촬영일 : 2021-03-31]
경회루(慶會樓) : 경회루는 왕이 신하들에게 큰 연회를 베풀거나 외국 사신을 접대하던 곳이다. 그 밖에 과거 시험이라든가 기우제 등이 설행되기도 하였다. 창건당시에는 작은 누각이었으나 태종12년(1412년)에 연못을 새로 만들고 누각도 크게 지었다. 지금의 경회루는 임진왜란으로 전소된 것을 고종4년(1867년)에 중건된 것이다
[촬영일 : 2021-03-31]
경회루(慶會樓) : 경회루는 왕이 신하들에게 큰 연회를 베풀거나 외국 사신을 접대하던 곳이다. 그 밖에 과거 시험이라든가 기우제 등이 설행되기도 하였다. 창건당시에는 작은 누각이었으나 태종12년(1412년)에 연못을 새로 만들고 누각도 크게 지었다. 지금의 경회루는 임진왜란으로 전소된 것을 고종4년(1867년)에 중건된 것이다
[촬영일 : 2021-03-31]
경회루(慶會樓) : 경회루는 왕이 신하들에게 큰 연회를 베풀거나 외국 사신을 접대하던 곳이다. 그 밖에 과거 시험이라든가 기우제 등이 설행되기도 하였다. 창건당시에는 작은 누각이었으나 태종12년(1412년)에 연못을 새로 만들고 누각도 크게 지었다. 지금의 경회루는 임진왜란으로 전소된 것을 고종4년(1867년)에 중건된 것이다
[촬영일 : 2021-03-31]
신무문(神武門) : 신무문은 경복궁의 북문이며 임진왜란으로 전소된 것을 고종2년(1865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중건된 것이다. 청와대 정문과 마주하고 있으며 2006년 9월 29일 당시 대통령이던 노무현의 의지에 따라 집옥재 권역과 함께 개방되었다. 신무문의 개방을 끝으로 경복궁에는 비공개 권역이 사라지게 되었다
[촬영일 : 2021-03-31]
신무문(神武門) : 신무문은 경복궁의 북문이며 임진왜란으로 전소된 것을 고종2년(1865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중건된 것이다. 청와대 정문과 마주하고 있으며 2006년 9월 29일 당시 대통령이던 노무현의 의지에 따라 집옥재 권역과 함께 개방되었다. 신무문의 개방을 끝으로 경복궁에는 비공개 권역이 사라지게 되었다
[촬영일 : 2021-03-31]
교태전(交泰殿) : 왕비의 침전으로 왕비는 내명부의 수장으로서 궐 안의 살림살이를 총지휘하였다. 세종 22년(1440)경에 건립되었으나 임진왜란으로 전소되었다가 고종 2년(1865)에 중건되었다. 현재의 교태전은 1995년에 복원한 것이다
[촬영일 : 2021-03-31]
함원전(含元殿) : 경복궁 교태전의 부속 건물이 '원기(元)를 간직(含)한다'는 뜻이다. 교태전 서쪽, 흠경각 북쪽에 위치한다.
[촬영일 : 2021-03-31]
강녕전(康寧殿) : 임금의 침전. 오복중 하나로서 침전과 같은 사적 공간에서야말로 국왕이 도덕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수양하면 편안함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촬영일 : 2021-03-31]
강녕전(康寧殿) : 임금의 침전. 오복중 하나로서 침전과 같은 사적 공간에서야말로 국왕이 도덕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수양하면 편안함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촬영일 : 2021-03-31]
흥복전(興福殿) : 흥복전은 경복궁의 내전 안에 있던 편전이었다. 1860년대 고종 초 경복궁을 중건할 때 처음 지었다. 홍복전은 임금이 관원들을 만나 국정을 처리하거나 경연을 열거나 서울에 조재하던 각국 사절들을 만나는데 주로 쓰였다. 그 밖에 부마를 간택하거나 대왕대비에게 존호를 올리는 등의 행사를 열기도 하였다. 1890년(고종 27)에는 당시 대왕대비 신정왕후 조씨가 여기서 승하하였다. 1917년 창덕궁 내전에 큰 불이 났을 때 경녕전, 교태전 등 경복궁의 다른 건물들과 함께 내전 건물들을 다시 짓는 자재로 쓰여 없어졌다. 2018년에 복원하였다 - [출처] 경복궁 흥복전 현판
[촬영일 : 2021-04-28]
흥례문(興禮門) :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과 근정전의 정문인 근정문 사이에 있는 중문
[촬영일 : 2021-04-28]
건춘문(建春門) : 경복궁의 동쪽문이다. 건춘은 봄(春)을 세운다(建)는 뜻이다. 오행에서 동쪽은 봄을 나타내므로 동쪽 문에 춘(春)자를 붙였으며 주로 왕실의 친인척이나 궁인들이 이용했다
[촬영일 : 2021-04-28]
건춘문(建春門) : 경복궁의 동쪽문이다. 건춘은 봄(春)을 세운다(建)는 뜻이다. 오행에서 동쪽은 봄을 나타내므로 동쪽 문에 춘(春)자를 붙였으며 주로 왕실의 친인척이나 궁인들이 이용했다
[촬영일 : 2021-04-28]
소주방 우물 : 경복궁 소주방 우물은 동궁권역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확인되었으며 2005년에 발굴조사를 거쳐 2015년 소주방 권역 건물과 함께 복원한 것이다. 우물 규모는 상면 전체 지름 4m, 내부 지름 1.2m, 전체 높이 4m이다. 이 우물은 내소주방과 외소주방(궁궐의 수라상을 만드는 곳) 사이에 위치하고 있어 소주방에서 필요한 생활용수로 사용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현재 경복궁안에는 소주방 우물을 포함해 총 7개의 우물을 볼 수 있다
[촬영일 : 2021-04-28]
아미산 굴뚝 : 아미산은 교태전의 후원으로 화단을 계단식으로 쌓아 만든 정원이다. 현재 4개의 굴뚝이 서 있는데 6각형으로 된 굴뚝벽에는 덩굴무늬, 학, 박쥐, 봉황, 소나무, 매화, 국화, 불로초, 바위, 새, 사슴등의 무늬를 조화롭게 배치하였다
[촬영일 : 2021-04-28]
건청궁(乾淸宮) : 경복궁 중건사업이 끝난 이듬해인 1873년, 고종은 경복궁 북쪽 동산정원인 녹산과 향원정사이에 건청궁을 건립케하고 명성황후와 기거하였다. 건청궁의 건축양식은 궁궐의 침전양식과는 달리 양반가옥 살림집을 응용하여 사랑채(장안당), 안채(곤녕합),부속건물(복수당),행각등으로 구성되었는데 그 규모는 양반가옥 상한선인 99칸의 2.5배되는 250칸이다. 건청궁이 건립된 지 3년이 지난 1876년, 경복궁에 큰 불이 나자 고종은 창덕궁으로 생활공간을 옮겼으며, 1885년에 다시 건청궁으로 돌아와 1896년 아관파천 때 러시아공관으로 피신할 때까지 10여 년간 줄곧 이곳에서 지냈다. 한편 건청궁은 1887년 을미산변 때 명성황후가 곤녕합에서 일본인 자객에게 시해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일제시대에 들아와 경복궁의 건물들이 차례로 파괴되면서 건청궁은 1909년 철거되어 이 자리에 조선총독부 미술관이 지어졌으며 한동안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사용되다가 1998년에 철거되었다. 문화재청은 건청궁을 원래 모습대로 복원하여 2007년 10월부터 일반에게 공개하고 있다
[촬영일 : 2021-04-28]
장안당(長安堂) : 장안당은 고종이 휴식을 취할 목적으로 일반 사대부 대저택의 사랑채와 비슷하게 지은 건물이며 왕비가 머무르는 안채인 곤녕합, 부속건물이 복수당, 행각등과 함께 건청궁일원을 구성하고 있다. 을미사변 당시 고종은 이 곳에 감금된 상태였다고 전해진다
[촬영일 : 2021-04-28]
건청궁 곤녕합(坤寧閤) : 곤녕합은 명성황후가 일상 생활공간으로 사용하던 건물이다. 누마루인 옥호루(玉壺樓, 옥으로 만든 호리병)에서 1895년 10월 8일 명성황후가 일본인 자객에 의해 시해되었다. 곤녕합은 장안당, 복수당, 행각등과 함께 건청궁일원을 구성하고 있다
[촬영일 : 2021-04-28]
건청궁 복수당(福綏堂) : 별채에 해당되는 건물이다. 궁인들의 거소로 추정된다. 복수당은 장안당, 곤녕합, 행각등과 함께 건청궁일원을 구성하고 있다
[촬영일 : 2021-04-28]
건청궁 녹금당(綠琴堂) : 건청궁일원인 복수당 서행각(서쪽에 지은 행랑)에 있는 건물
[촬영일 : 2021-04-28]
자경전(慈慶殿) : 국왕이 승하하면 교태전에 있던 왕비는 대비로 승격되어 교태전을 중전이 된 왕비에게 물려주게 되는데, 이때 대비가 주로 사용하던 곳이 자경전이다. 현재의 자경전은 경복궁을 재건하면서 고종의 양어머니가 되었던 조대비(신정왕후)를 위하여 1865년에 지은 건물이다. 준공 후 고종 10년(1873년) 12월 화재로 인해 고종 13년 다시 세웠으며, 다시 불에 탄 것을 고종 25년(1888년)에 다시 지어 지금까지 남아 있다. 44간의 규모로 지어진 이 건물은 온돌방으로 꾸며진 복안당과 자경전, 동남쪽의 청연루로 구성되어 있으며 청연루의 동측으로 협경당이 연결되어 있다. 자경전 남쪽으로 행각이 자리하고 있으며 그 가운데에 여자들이 여닫기 쉽게 가벼운 당판문으로 된 만세문이 있다
[촬영일 : 2021-04-28]
자선당(資善堂) : 동궁은 왕세자와 왕세자빈의 생활공간이며, 왕세자의 교육이 이루어지던 곳이다. 동궁은 세자궁이라 불리기도 하였으며 자선당(資善堂)과 비현각(丕顯閣)이 주 전각이고, 세자의 교육을 담당하는 세자시강원(춘방)과 경호 임무를 수행하던 세자익위사(계방)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경복궁 창건 시에는 궁내에 동궁이 마련되지 않았으며, 세종대(1427년)에 와서 창건된다. 자선당에서는 문종이 세자시절 단종을 낳기도 하였으며, 고종대 경복궁 중건 후에는 순종이 거처를 하였다. 고종 25년(1888)중건되었으나 일본인에 의해서 동경으로 옮겨져서 사설미술관으로 사용되다가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건물이 소실되어 기단과 주춧돌만 남게 되었다. 이것을 1993년 김정동 교수가 발견하여 1995년에 반환되어 경복궁으로 다시 옮겨왔다. 그러나 자선당을 복원할 때 구조안전 상의 문제로 기단과 주춧돌로 재활용하지 못하고 지금은 건청궁 동쪽에 전시하고 있다
[촬영일 : 2021-04-28]
자선당(資善堂) : 동궁은 왕세자와 왕세자빈의 생활공간이며, 왕세자의 교육이 이루어지던 곳이다. 동궁은 세자궁이라 불리기도 하였으며 자선당(資善堂)과 비현각(丕顯閣)이 주 전각이고, 세자의 교육을 담당하는 세자시강원(춘방)과 경호 임무를 수행하던 세자익위사(계방)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경복궁 창건 시에는 궁내에 동궁이 마련되지 않았으며, 세종대(1427년)에 와서 창건된다. 자선당에서는 문종이 세자시절 단종을 낳기도 하였으며, 고종대 경복궁 중건 후에는 순종이 거처를 하였다. 고종 25년(1888)중건되었으나 일본인에 의해서 동경으로 옮겨져서 사설미술관으로 사용되다가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건물이 소실되어 기단과 주춧돌만 남게 되었다. 이것을 1993년 김정동 교수가 발견하여 1995년에 반환되어 경복궁으로 다시 옮겨왔다. 그러나 자선당을 복원할 때 구조안전 상의 문제로 기단과 주춧돌로 재활용하지 못하고 지금은 건청궁 동쪽에 전시하고 있다
[촬영일 : 2021-04-28]
자선당(資善堂) : 동궁은 왕세자와 왕세자빈의 생활공간이며, 왕세자의 교육이 이루어지던 곳이다. 동궁은 세자궁이라 불리기도 하였으며 자선당(資善堂)과 비현각(丕顯閣)이 주 전각이고, 세자의 교육을 담당하는 세자시강원(춘방)과 경호 임무를 수행하던 세자익위사(계방)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경복궁 창건 시에는 궁내에 동궁이 마련되지 않았으며, 세종대(1427년)에 와서 창건된다. 자선당에서는 문종이 세자시절 단종을 낳기도 하였으며, 고종대 경복궁 중건 후에는 순종이 거처를 하였다. 고종 25년(1888)중건되었으나 일본인에 의해서 동경으로 옮겨져서 사설미술관으로 사용되다가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건물이 소실되어 기단과 주춧돌만 남게 되었다. 이것을 1993년 김정동 교수가 발견하여 1995년에 반환되어 경복궁으로 다시 옮겨왔다. 그러나 자선당을 복원할 때 구조안전 상의 문제로 기단과 주춧돌로 재활용하지 못하고 지금은 건청궁 동쪽에 전시하고 있다
[촬영일 : 2021-04-28]
비현각(丕顯閣) : 왕세자가 업무를 보고 공부를 하는 동궁의 전각이다. 쉽게 말해 공부방 겸 사무실이다. 창건당시 동궁의 처소인 자선당의 북쪽에 있었으나 고종25년(1888) 중건한 이후 현재는 동쪽에 위치해있다
[촬영일 : 2021-06-09]
영추문(迎秋門) : 영추문은 가을에 해당하는 경복궁의 서쪽문이다. 주로 문무백관들이 이용했다. 임진왜란으로 전소된 것을 고종2년(1865년)에 중건되었다. 일제강점기인 1926년에 철거되었다가 1975년에 원래 자리보다 50m 북쪽으로 옮겨 복원하여 오늘에 이른다
[촬영일 : 2023-09-28]
향원정(香遠亭) : 1873년 고종이 건청궁을 지을 때 그 앞에 연못을 파서 연못 가운데에 섬을 만들고 2층의 육각형 정자를 지었다. 향원정은 '향기가 멀리 퍼저나간다'의미가 있으며 향원정으로 가는 섬에는 다리를 만들어 '향기에 취한다'라는 뜻으로 취향교(醉香橋)라 하였다. 연못은 향원지(香遠池)라 한다
[촬영일 : 2023-10-02]
향원정(香遠亭) : 1873년 고종이 건청궁을 지을 때 그 앞에 연못을 파서 연못 가운데에 섬을 만들고 2층의 육각형 정자를 지었다. 향원정은 '향기가 멀리 퍼저나간다'의미가 있으며 향원정으로 가는 섬에는 다리를 만들어 '향기에 취한다'라는 뜻으로 취향교(醉香橋)라 하였다. 연못은 향원지(香遠池)라 한다
[촬영일 : 2023-10-02]
경회루(慶會樓) : 경회루는 왕이 신하들에게 큰 연회를 베풀거나 외국 사신을 접대하던 곳이다. 그 밖에 과거 시험이라든가 기우제 등이 설행되기도 하였다. 창건당시에는 작은 누각이었으나 태종12년(1412년)에 연못을 새로 만들고 누각도 크게 지었다. 지금의 경회루는 임진왜란으로 전소된 것을 고종4년(1867년)에 중건된 것이다. 청명한 가을하늘 아래 연못에 비친 경회루 전각이 대비를 이루어 아름다움을 자아내고 있다
[촬영일 : 2023-10-02]
경회루(慶會樓) : 경회루는 왕이 신하들에게 큰 연회를 베풀거나 외국 사신을 접대하던 곳이다. 그 밖에 과거 시험이라든가 기우제 등이 설행되기도 하였다. 창건당시에는 작은 누각이었으나 태종12년(1412년)에 연못을 새로 만들고 누각도 크게 지었다. 지금의 경회루는 임진왜란으로 전소된 것을 고종4년(1867년)에 중건된 것이다. 청명한 가을하늘 아래 연못에 비친 경회루 전각이 대비를 이루어 아름다움을 자아내고 있다
[촬영일 : 2023-10-02]
집옥재(集玉齋) 협길당(協吉堂) : 고종 28년(1891년)에 창덕궁 함녕전의 별당이었던 집옥재, 협길당을 옮겨와 서재와 외국 사신 접견소로 사용되었다. 집옥재는 양옆벽을 벽돌로 쌓아 전통양식에 중국풍의 요소들이 많이 섞여 있으며 궐내에서 이국적인 지역을 형성하며 좌우의 팔우정과 협길당이 복도를 통해 하나의 내부로 연결된다
[촬영일 : 2024-02-08]
광화문(光化門) : 경복궁의 정문이자 남문
[촬영일 : 2024-02-08]
광화문(光化門) : 경복궁의 정문이자 남문
[촬영일 : 2024-02-08]
광화문(光化門) : 경복궁의 정문이자 남문
[촬영일 : 2024-02-08]
광화문(光化門) : 경복궁의 정문이자 남문
[촬영일 : 2024-02-08]
광화문 월대(光化門 月臺)100년 만에 제 모습을 되찾은 광화문 월대가 2023년 10월 15일 저녁 '광화문 월대 및 현판 복원' 기념행사를 통해 일반에게 공개됐다. 광화문 월대는 일제강점기인 1923년 전차선로가 설치되며 훼손됐다. 월대는 궁전앞에 두는 섬돌
[촬영일 : 2024-02-08]
광화문 월대(光化門 月臺)100년 만에 제 모습을 되찾은 광화문 월대가 2023년 10월 15일 저녁 '광화문 월대 및 현판 복원' 기념행사를 통해 일반에게 공개됐다. 광화문 월대는 일제강점기인 1923년 전차선로가 설치되며 훼손됐다. 월대는 궁전앞에 두는 섬돌
[촬영일 : 2024-02-08]
광화문 월대(光化門 月臺) : 100년 만에 제 모습을 되찾은 광화문 월대가 2023년 10월 15일 저녁 '광화문 월대 및 현판 복원' 기념행사를 통해 일반에게 공개됐다. 광화문 월대는 일제강점기인 1923년 전차선로가 설치되며 훼손됐다. 월대는 궁전앞에 두는 섬돌
[촬영일 : 2024-02-08]
광화문 월대(光化門 月臺)100년 만에 제 모습을 되찾은 광화문 월대가 2023년 10월 15일 저녁 '광화문 월대 및 현판 복원' 기념행사를 통해 일반에게 공개됐다. 광화문 월대는 일제강점기인 1923년 전차선로가 설치되며 훼손됐다. 월대는 궁전앞에 두는 섬돌
[촬영일 : 2025-01-05]
설경의 광화문(光化門) : 광화문(光化門)은 경복궁의 남쪽에 있는 정문으로 임금의 큰 덕(德)이 온 나라를 비춘다는 의미를 갖고있다
[촬영일 : 2025-01-05]
설경의 광화문(光化門) : 광화문(光化門) 수문장
[촬영일 : 2025-01-05]
설경의 광화문(光化門) : 광화문(光化門) 수문장
[촬영일 : 2025-01-05]
설경의 광화문(光化門) : 경복궁내에서 광화문(光化門)
[촬영일 : 2025-01-05]
흥례문(興禮門) :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과 근정전의 정문인 근정문 사이에 있는 중문
[촬영일 : 2025-01-05]
설경의 경복궁(景福宮)
[촬영일 : 2025-01-05]
설경의 경복궁(景福宮)
[촬영일 : 2025-01-05]
설경의 경복궁(景福宮)
[촬영일 : 2025-01-05]
설경의 경복궁(景福宮)
[촬영일 : 2025-01-05]
설경의 경복궁(景福宮)
[촬영일 : 2025-01-05]
설경의 경복궁(景福宮)
[촬영일 : 2025-01-05]
향원정(香遠亭) : 1873년 고종이 건청궁을 지을 때 그 앞에 연못을 파서 연못 가운데에 섬을 만들고 2층의 육각형 정자를 지었다. 향원정은 '향기가 멀리 퍼저나간다'의미가 있으며 향원정으로 가는 섬에는 다리를 만들어 '향기에 취한다'라는 뜻으로 취향교(醉香橋)라 하였다. 연못은 향원지(香遠池)라 한다
[촬영일 : 2025-01-05]
향원정(香遠亭) : 1873년 고종이 건청궁을 지을 때 그 앞에 연못을 파서 연못 가운데에 섬을 만들고 2층의 육각형 정자를 지었다. 향원정은 '향기가 멀리 퍼저나간다'의미가 있으며 향원정으로 가는 섬에는 다리를 만들어 '향기에 취한다'라는 뜻으로 취향교(醉香橋)라 하였다. 연못은 향원지(香遠池)라 한다
[촬영일 : 2025-01-05]
경회루(慶會樓) : 경회루는 왕이 신하들에게 큰 연회를 베풀거나 외국 사신을 접대하던 곳이다. 그 밖에 과거 시험이라든가 기우제 등이 설행되기도 하였다. 창건당시에는 작은 누각이었으나 태종12년(1412년)에 연못을 새로 만들고 누각도 크게 지었다. 지금의 경회루는 임진왜란으로 전소된 것을 고종4년(1867년)에 중건된 것이다
[촬영일 : 2025-01-05]
경회루(慶會樓) : 경회루는 왕이 신하들에게 큰 연회를 베풀거나 외국 사신을 접대하던 곳이다. 그 밖에 과거 시험이라든가 기우제 등이 설행되기도 하였다. 창건당시에는 작은 누각이었으나 태종12년(1412년)에 연못을 새로 만들고 누각도 크게 지었다. 지금의 경회루는 임진왜란으로 전소된 것을 고종4년(1867년)에 중건된 것이다
[촬영일 : 2025-01-05]
경회루(慶會樓) : 경회루는 왕이 신하들에게 큰 연회를 베풀거나 외국 사신을 접대하던 곳이다. 그 밖에 과거 시험이라든가 기우제 등이 설행되기도 하였다. 창건당시에는 작은 누각이었으나 태종12년(1412년)에 연못을 새로 만들고 누각도 크게 지었다. 지금의 경회루는 임진왜란으로 전소된 것을 고종4년(1867년)에 중건된 것이다
[촬영일 : 2025-01-05]
경회루(慶會樓) : 경회루는 왕이 신하들에게 큰 연회를 베풀거나 외국 사신을 접대하던 곳이다. 그 밖에 과거 시험이라든가 기우제 등이 설행되기도 하였다. 창건당시에는 작은 누각이었으나 태종12년(1412년)에 연못을 새로 만들고 누각도 크게 지었다. 지금의 경회루는 임진왜란으로 전소된 것을 고종4년(1867년)에 중건된 것이다
[촬영일 : 2025-01-05]
경회루(慶會樓) : 경회루는 왕이 신하들에게 큰 연회를 베풀거나 외국 사신을 접대하던 곳이다. 그 밖에 과거 시험이라든가 기우제 등이 설행되기도 하였다. 창건당시에는 작은 누각이었으나 태종12년(1412년)에 연못을 새로 만들고 누각도 크게 지었다. 지금의 경회루는 임진왜란으로 전소된 것을 고종4년(1867년)에 중건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