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회수 : 51   등록일 : 2020-12-04 ]
서대문형무소는 일본제국주의가 지은 근대식 감옥입니다.

1908년 10월에 문을 열어 1987년 11월에 폐쇄될 때까지 80년 동안 감옥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옥사는 붉은 벽돌로 지어졌고 수감자를 효과적으로 감시할 수 있는 원형 감옥 형태인 패놉티콘 구조로 만들어졌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식민 지배에 맞섰던 많은 항일 독립운동가들이 갇혔으며, 해방 후에는 독재 정권과 군사 정권에 저항했던 민주화 운동가들이 갇혔던 역사의 현장입니다.

1908년 경성감옥, 1912년 서대문감옥, 1923년 서대문형무소, 1945년 서울형무소, 1961년 서울교도소, 1967년 서울구치소로 이름이 여러 차례 바뀌었습니다. 1987년 11월 서울구치소가 경기도 의왕시로 이전한 뒤 역사성과 보존 가치를 고려하여 보안과 청사, 제9~12옥사, 공작사, 한센병사, 사형장 등을 남겨 두고 나머지 시설은 모두 철거되었습니다.

이후 서대문구에서 현장을 보존하고 역사의 교훈으로 삼고자 1998년 11월 5일 서대문형무소역사관으로 개관하였습니다. 과거의 역사를 교훈으로 삼고 독립운동가와 민주화운동가의 자유와 평화를 향한 신념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박물관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출처 : 서대문형무소 역사관(https://sphh.sscmc.or.kr)
서대문형무소 역사전시관 전경
[촬영일 : 2020-12-01]
서대문형무소 역사전시관 전경
서대문형무소 모형도
[촬영일 : 2020-12-01]
서대문형무소 모형도
서대문형무소 지하고문실(물고문) : 강제로 수조에 머리를 집어넣거나 코나 입에 물을 마구 들이부어 호흡을 곤란하게 하여 고통을 주었던 고문 방법. 심지어는 폐에 물이 차서 흉막염에 걸려 매우 고통스럽게 사망에 이르는 경우도 있었다.
[촬영일 : 2020-12-01]
서대문형무소 지하고문실(물고문) : 강제로 수조에 머리를 집어넣거나 코나 입에 물을 마구 들이부어 호흡을 곤란하게 하여 고통을 주었던 고문 방법. 심지어는 폐에 물이 차서 흉막염에 걸려 매우 고통스럽게 사망에 이르는 경우도 있었다.
서대문형무소 지하고문실(취조실) : 일제는 재판을 받기 전 미결로 수감되어 있었던 독립운동가를 일일이 경찰서로 이송하여 취조하는 번거로움을 없애기 위해 고등계 형사를 직접 서대문형무소에 파견하여 이곳 지하에서 취조를 하였다.
[촬영일 : 2020-12-01]
서대문형무소 지하고문실(취조실) : 일제는 재판을 받기 전 미결로 수감되어 있었던 독립운동가를 일일이 경찰서로 이송하여 취조하는 번거로움을 없애기 위해 고등계 형사를 직접 서대문형무소에 파견하여 이곳 지하에서 취조를 하였다.
서대문형무소 지하고문실(임시구금실) : 취조전 수감자를 임시로 잠시 구금하였던 곳. 임시구금실은 취조 과정에서 자행되는 고문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동지들의 비명소리와 일본경찰의 폭언이 들리도록 하여 독립운동가에게 심리적으로 압박을 가했다.
[촬영일 : 2020-12-01]
서대문형무소 지하고문실(임시구금실) : 취조전 수감자를 임시로 잠시 구금하였던 곳. 임시구금실은 취조 과정에서 자행되는 고문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동지들의 비명소리와 일본경찰의 폭언이 들리도록 하여 독립운동가에게 심리적으로 압박을 가했다.
서대문형무소 지하고문실(손톱찌르기 고문) 1 : 가늘고 날카로운 꼬챙이를 손톱 밑으로 찔러 고통을 주었던 고문 방법. 심할 경우 손톱뿐 아니라 입 속까지 마구찔러 고통을 주기도 했으며, 심지어 그 고통으로 기절하는 경우도 있었다
[촬영일 : 2020-12-01]
서대문형무소 지하고문실(손톱찌르기 고문) 1 : 가늘고 날카로운 꼬챙이를 손톱 밑으로 찔러 고통을 주었던 고문 방법. 심할 경우 손톱뿐 아니라 입 속까지 마구찔러 고통을 주기도 했으며, 심지어 그 고통으로 기절하는 경우도 있었다
서대문형무소 지하고문실(손톱찌르기 고문) 2 : 가늘고 날카로운 꼬챙이를 손톱 밑으로 찔러 고통을 주었던 고문 방법. 심할 경우 손톱뿐 아니라 입 속까지 마구찔러 고통을 주기도 했으며, 심지어 그 고통으로 기절하는 경우도 있었다
[촬영일 : 2020-12-01]
서대문형무소 지하고문실(손톱찌르기 고문) 2 : 가늘고 날카로운 꼬챙이를 손톱 밑으로 찔러 고통을 주었던 고문 방법. 심할 경우 손톱뿐 아니라 입 속까지 마구찔러 고통을 주기도 했으며, 심지어 그 고통으로 기절하는 경우도 있었다
서대문형무소 지하고문실(상자고문) 1 : 상자 안쪽에 날카로운 못을 박아 놓고 사람을 상자안에 집어넣어 마구 흔들며 못에 찔리게 하여 고통을 주었던 고문도구
[촬영일 : 2020-12-01]
서대문형무소 지하고문실(상자고문) 1 : 상자 안쪽에 날카로운 못을 박아 놓고 사람을 상자안에 집어넣어 마구 흔들며 못에 찔리게 하여 고통을 주었던 고문도구
서대문형무소 지하고문실(상자고문) 2 : 상자 안쪽에 날카로운 못을 박아 놓고 사람을 상자안에 집어넣어 마구 흔들며 못에 찔리게 하여 고통을 주었던 고문도구
[촬영일 : 2020-12-01]
서대문형무소 지하고문실(상자고문) 2 : 상자 안쪽에 날카로운 못을 박아 놓고 사람을 상자안에 집어넣어 마구 흔들며 못에 찔리게 하여 고통을 주었던 고문도구
서대문형무소 지하고문실(지하독방) 1 : 취조후 옥사로 이동하기 전 감금했던 곳. 곳곳에서 들려오는 고통의 비명소리와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고문의 공포로 휩싸인 공간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지하독방에서도 독립운동가는 만세소리를 멈추지 않았고 독립의 다짐을 되새겼다
[촬영일 : 2020-12-01]
서대문형무소 지하고문실(지하독방) 1 : 취조후 옥사로 이동하기 전 감금했던 곳. 곳곳에서 들려오는 고통의 비명소리와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고문의 공포로 휩싸인 공간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지하독방에서도 독립운동가는 만세소리를 멈추지 않았고 독립의 다짐을 되새겼다
서대문형무소 지하고문실(지하독방) 2  : 취조후 옥사로 이동하기 전 감금했던 곳. 곳곳에서 들려오는 고통의 비명소리와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고문의 공포로 휩싸인 공간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지하독방에서도 독립운동가는 만세소리를 멈추지 않았고 독립의 다짐을 되새겼다
[촬영일 : 2020-12-01]
서대문형무소 지하고문실(지하독방) 2 : 취조후 옥사로 이동하기 전 감금했던 곳. 곳곳에서 들려오는 고통의 비명소리와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고문의 공포로 휩싸인 공간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지하독방에서도 독립운동가는 만세소리를 멈추지 않았고 독립의 다짐을 되새겼다
서대문형무소 지하고문실(지하독방) 3 : 취조후 옥사로 이동하기 전 감금했던 곳. 곳곳에서 들려오는 고통의 비명소리와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고문의 공포로 휩싸인 공간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지하독방에서도 독립운동가는 만세소리를 멈추지 않았고 독립의 다짐을 되새겼다
[촬영일 : 2020-12-01]
서대문형무소 지하고문실(지하독방) 3 : 취조후 옥사로 이동하기 전 감금했던 곳. 곳곳에서 들려오는 고통의 비명소리와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고문의 공포로 휩싸인 공간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지하독방에서도 독립운동가는 만세소리를 멈추지 않았고 독립의 다짐을 되새겼다
서대문형무소 지하고문실(벽관고문) 1 : 옴짝달싹할 수도 없이 좁은 공간에 사람을 감금하여 앉을 수도 움직일 수도 없는 고통을 주었던 고문도구. 벽에 서 있는 관이라 하여 '벽관'이라 이름 붙여졌다.
[촬영일 : 2020-12-01]
서대문형무소 지하고문실(벽관고문) 1 : 옴짝달싹할 수도 없이 좁은 공간에 사람을 감금하여 앉을 수도 움직일 수도 없는 고통을 주었던 고문도구. 벽에 서 있는 관이라 하여 '벽관'이라 이름 붙여졌다.
서대문형무소 지하고문실(벽관고문) 2 : 옴짝달싹할 수도 없이 좁은 공간에 사람을 감금하여 앉을 수도 움직일 수도 없는 고통을 주었던 고문도구. 벽에 서 있는 관이라 하여 '벽관'이라 이름 붙여졌다.
[촬영일 : 2020-12-01]
서대문형무소 지하고문실(벽관고문) 2 : 옴짝달싹할 수도 없이 좁은 공간에 사람을 감금하여 앉을 수도 움직일 수도 없는 고통을 주었던 고문도구. 벽에 서 있는 관이라 하여 '벽관'이라 이름 붙여졌다.
서대문형무소 중앙사 : 옥사를 감시하고 통제하는 중앙 간수소 건물로 10, 11, 12옥사와 연결되어 있으며, 1920년대 중반에 2층으로 지어졌다. 1층은 간수의 사무공간으로 사용하였고 간수들이 이곳을 통해 옥사를 출입했다. 2층은 수감자들을 모아 교육하는 강당으로 사용하였다.
[촬영일 : 2020-12-01]
서대문형무소 중앙사 : 옥사를 감시하고 통제하는 중앙 간수소 건물로 10, 11, 12옥사와 연결되어 있으며, 1920년대 중반에 2층으로 지어졌다. 1층은 간수의 사무공간으로 사용하였고 간수들이 이곳을 통해 옥사를 출입했다. 2층은 수감자들을 모아 교육하는 강당으로 사용하였다.
서대문형무소 11옥사 1
[촬영일 : 2020-12-01]
서대문형무소 11옥사 1
서대문형무소 11옥사 2
[촬영일 : 2020-12-01]
서대문형무소 11옥사 2
서대문형무소 11옥사 3
[촬영일 : 2020-12-01]
서대문형무소 11옥사 3
서대문형무소 11옥사 4
[촬영일 : 2020-12-01]
서대문형무소 11옥사 4
서대문형무소 11옥사 5
[촬영일 : 2020-12-01]
서대문형무소 11옥사 5
서대문형무소 11옥사 6
[촬영일 : 2020-12-01]
서대문형무소 11옥사 6
서대문형무소 11옥사 7
[촬영일 : 2020-12-01]
서대문형무소 11옥사 7
서대문형무소 11옥사 독방 : 1평도 안되는 좁은 공간으로 일제가 애국지사들에게 육체적인 고문과 심리적, 정신적 고통을 주기 위해 설치한 독방이다. 특히 애국지사들을 특수범죄자로 분류하여 전기와 변기도 없고 햇빛조차 들어오지 않는 독방에 투옥시킨 후 고문과 폭행 등 갖은 악행을 일삼았다.
[촬영일 : 2020-12-01]
서대문형무소 11옥사 독방 : 1평도 안되는 좁은 공간으로 일제가 애국지사들에게 육체적인 고문과 심리적, 정신적 고통을 주기 위해 설치한 독방이다. 특히 애국지사들을 특수범죄자로 분류하여 전기와 변기도 없고 햇빛조차 들어오지 않는 독방에 투옥시킨 후 고문과 폭행 등 갖은 악행을 일삼았다.
서대문형무소 10옥사 1
[촬영일 : 2020-12-01]
서대문형무소 10옥사 1
서대문형무소 10옥사 2
[촬영일 : 2020-12-01]
서대문형무소 10옥사 2
서대문형무소 10옥사 3
[촬영일 : 2020-12-01]
서대문형무소 10옥사 3
서대문형무소 10옥사 4
[촬영일 : 2020-12-01]
서대문형무소 10옥사 4
서대문형무소 10옥사 5
[촬영일 : 2020-12-01]
서대문형무소 10옥사 5
서대문형무소 12옥사 : 독립운동가 전시관으로 이용하고 있다
[촬영일 : 2020-12-01]
서대문형무소 12옥사 : 독립운동가 전시관으로 이용하고 있다
서대문형무소 11, 10, 9 옥사 외부
[촬영일 : 2020-12-01]
서대문형무소 11, 10, 9 옥사 외부
서대문형무소 11,10옥사 : 10옥사앞의 연못
[촬영일 : 2020-12-01]
서대문형무소 11,10옥사 : 10옥사앞의 연못
서대문형무소 한센병사 : 한센병에 걸린 수감자를 따로 수용한 건물로 1923년 즈음 지어졌다. 건물 안의 앞쪽에 복도가 있고 그 뒤로 작은 감방 2개와 큰 감방 1개가 있다
[촬영일 : 2020-12-01]
서대문형무소 한센병사 : 한센병에 걸린 수감자를 따로 수용한 건물로 1923년 즈음 지어졌다. 건물 안의 앞쪽에 복도가 있고 그 뒤로 작은 감방 2개와 큰 감방 1개가 있다
서대문형무소의 뒤쪽 망루 : 수감자들의 탈옥을 막고 동태를 감시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높이는 10m입니다. 총 6개 중 현재는 정문과 배면담장 2곳만 남아 있습니다. 망루의 8면에는 감시창이 설치되어 있고 정문의 망루는 1923년에 뒤쪽의 망루는 1930년에 설치한 것입니다
[촬영일 : 2020-12-01]
서대문형무소의 뒤쪽 망루 : 수감자들의 탈옥을 막고 동태를 감시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높이는 10m입니다. 총 6개 중 현재는 정문과 배면담장 2곳만 남아 있습니다. 망루의 8면에는 감시창이 설치되어 있고 정문의 망루는 1923년에 뒤쪽의 망루는 1930년에 설치한 것입니다
서대문형무소 우물 :  식수로 쓰거나 청소, 빨래 등을 할 때 사용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서대문형무소 안에 모두 3개의 우물이 있었으나 1987년 서울구치소가 경기도 의왕시로 이전하면서 철거되어 지금은 1개만 남아있다
[촬영일 : 2020-12-01]
서대문형무소 우물 : 식수로 쓰거나 청소, 빨래 등을 할 때 사용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서대문형무소 안에 모두 3개의 우물이 있었으나 1987년 서울구치소가 경기도 의왕시로 이전하면서 철거되어 지금은 1개만 남아있다
서대문형무소 추모비 :  작품명(민족의 혼 그릇), 작가(임승오, 2010년 작),자유와 평화, 정의를 위해 일제에 맞서 싸우다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한 독립운동가를 기억하고 기념하기 위해 제작되었다. 대한민국이라는 큰 그릇안에 순국선열의 이름을 하나씩 새겨 그들의 민족정신과 신념이 발전된 미래로 나아가는 원동력이 되어야 한다는 바람을 표현했다. 지금까지 찾아낸 순국지사 165분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촬영일 : 2020-12-01]
서대문형무소 추모비 : 작품명(민족의 혼 그릇), 작가(임승오, 2010년 작),자유와 평화, 정의를 위해 일제에 맞서 싸우다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한 독립운동가를 기억하고 기념하기 위해 제작되었다. 대한민국이라는 큰 그릇안에 순국선열의 이름을 하나씩 새겨 그들의 민족정신과 신념이 발전된 미래로 나아가는 원동력이 되어야 한다는 바람을 표현했다. 지금까지 찾아낸 순국지사 165분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서대문형무소 격벽장 1 :  수감자들이 햇볕을 쬐거나 간단한 운동을 했던 운동장으로 1920년대에 만들어졌다. 운동할 때 대화하거나 도주하는 것을 막으려고 격벽을 세워 수감자들을 분리하고 감시했다. 전형적인 원형 감옥 구조인 부채꼴 모양으로 만들어졌고 가운데에 높은 간수 감시대를 세워 손쉽게 수감자를 감시하고 통제했다. 해방 이후 철거되었던 것을 2011년에 원래 위치에서 약 20m 떨어진 이곳에 본디 모습 그대로 복원했다
[촬영일 : 2020-12-01]
서대문형무소 격벽장 1 : 수감자들이 햇볕을 쬐거나 간단한 운동을 했던 운동장으로 1920년대에 만들어졌다. 운동할 때 대화하거나 도주하는 것을 막으려고 격벽을 세워 수감자들을 분리하고 감시했다. 전형적인 원형 감옥 구조인 부채꼴 모양으로 만들어졌고 가운데에 높은 간수 감시대를 세워 손쉽게 수감자를 감시하고 통제했다. 해방 이후 철거되었던 것을 2011년에 원래 위치에서 약 20m 떨어진 이곳에 본디 모습 그대로 복원했다
서대문형무소 격벽장 2 :  수감자들이 햇볕을 쬐거나 간단한 운동을 했던 운동장으로 1920년대에 만들어졌다. 운동할 때 대화하거나 도주하는 것을 막으려고 격벽을 세워 수감자들을 분리하고 감시했다. 전형적인 원형 감옥 구조인 부채꼴 모양으로 만들어졌고 가운데에 높은 간수 감시대를 세워 손쉽게 수감자를 감시하고 통제했다. 해방 이후 철거되었던 것을 2011년에 원래 위치에서 약 20m 떨어진 이곳에 본디 모습 그대로 복원했다
[촬영일 : 2020-12-01]
서대문형무소 격벽장 2 : 수감자들이 햇볕을 쬐거나 간단한 운동을 했던 운동장으로 1920년대에 만들어졌다. 운동할 때 대화하거나 도주하는 것을 막으려고 격벽을 세워 수감자들을 분리하고 감시했다. 전형적인 원형 감옥 구조인 부채꼴 모양으로 만들어졌고 가운데에 높은 간수 감시대를 세워 손쉽게 수감자를 감시하고 통제했다. 해방 이후 철거되었던 것을 2011년에 원래 위치에서 약 20m 떨어진 이곳에 본디 모습 그대로 복원했다
서대문형무소내 우물, 추모비, 격벽장 모습
[촬영일 : 2020-12-01]
서대문형무소내 우물, 추모비, 격벽장 모습
서대문형무소 사형장 : 1923년 지어진 목조건물로 5m높이의 담장으로 둘러싸여 외부와 철저히 격리되었다
[촬영일 : 2020-12-01]
서대문형무소 사형장 : 1923년 지어진 목조건물로 5m높이의 담장으로 둘러싸여 외부와 철저히 격리되었다
서대문형무소 사형장 : 1923년 지어진 목조건물로 5m높이의 담장으로 둘러싸여 외부와 철저히 격리되었다
[촬영일 : 2020-12-01]
서대문형무소 사형장 : 1923년 지어진 목조건물로 5m높이의 담장으로 둘러싸여 외부와 철저히 격리되었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담장과 정문의  망루
[촬영일 : 2020-12-01]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담장과 정문의 망루
시구문 : 일제강점기에 사형 집행 후 시신을 바깥의 공동묘지로 내보내기 위해 밖으로 연결한 통로입니다. 붕괴되었던 것을 1992년에 독립공원을 만들 때 발굴하여 40m를 복원하였는데 원래 길이는 약 200m라고 전해집니다. 일제는 시신에 구타나 고문의 흔적이 많은 경우, 사형 사실이 알려져 사회적으로 문제가 생길 우려가 되는 경우, 시신을 받아갈 유족이 없는 경우에 이 문을 통해 시신을 바깥으로 내보냈습니다 (참조 : https://sphh.sscmc.or.kr)
[촬영일 : 2023-10-08]
시구문 : 일제강점기에 사형 집행 후 시신을 바깥의 공동묘지로 내보내기 위해 밖으로 연결한 통로입니다. 붕괴되었던 것을 1992년에 독립공원을 만들 때 발굴하여 40m를 복원하였는데 원래 길이는 약 200m라고 전해집니다. 일제는 시신에 구타나 고문의 흔적이 많은 경우, 사형 사실이 알려져 사회적으로 문제가 생길 우려가 되는 경우, 시신을 받아갈 유족이 없는 경우에 이 문을 통해 시신을 바깥으로 내보냈습니다 (참조 : https://sphh.sscmc.or.kr)
서대문 형무소 전경
[촬영일 : 2023-10-08]
서대문 형무소 전경
서대문 형무소 구치감 발굴조사 : 구치감 옥사는 2층 규모로 총 6개동이 건축되었다. 전체 감방 283개 중 242개의 감방이 독방으로 건축되어 독립운동가 격리수감을 위한 용도로 사용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촬영일 : 2023-10-08]
서대문 형무소 구치감 발굴조사 : 구치감 옥사는 2층 규모로 총 6개동이 건축되었다. 전체 감방 283개 중 242개의 감방이 독방으로 건축되어 독립운동가 격리수감을 위한 용도로 사용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인왕산에서 바라본 서대문형무소 역사전시관 전경
[촬영일 : 2025-11-16]
인왕산에서 바라본 서대문형무소 역사전시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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