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회수 : 300 등록일 : 2023-11-19 ]
1. 영휘원(永徽園) : 의민황태자(영친왕) 생모 순헌황귀비의 [1]원
순헌[2]황귀비 엄씨(純獻皇貴妃 嚴氏, 1854~1911)는 엄진삼의 딸로 5세 때 궁녀로 입 궁하여 고종의 왕비 명성황후를 모시는 상궁이 되었다.
1895년(고종 32) 명성황후가 경복궁에서 일본에 의해 시해당한 사건(을미사변)이 일어나자 이듬해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하는 것(아관파천)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이후 정식으로 고종의 후궁이 되어 1897년 의민황태자(영친왕)를 낳았고, 1903년(광무 7)에 황귀비로 책봉되었다.
순헌황귀비는 신교육에 관심을 두어 [4]양정의숙(養正義塾)과 [5]진명여학교, 명신여학교(현 숙명여대)의 설립을 지원하였다. 58세의 나이로 덕수궁 즉조당에서 세상을 떠났다.
영휘원은 조선시대 왕의 생모 무덤을 조성하던 예에 따라 봉분에는 병풍석과 난간석없이 호석을 둘렀으며, 문석인, 장명등, 석상, 망주석, 석양과 석호를 배치하였다.
원래 영휘원 근처인 현재의 홍릉수목원 자리에는 1897년(광무 1)에 조성된 명성황후의 홍릉(洪陵)이 있었다. 1911년 순헌황귀비가 세상을 떠났을 때 홍릉 근처에 영휘원의 자리를 정한 것이었으나,
1919년 홍릉이 현재 자리인 남양주시 금곡동으로 옮겨져 영휘원만 남게 되었다.
2. 숭인원(崇仁園) : 의민황태자(영친왕)장남의 원
의민황태자(영친왕) 장남인 [3]원손 이진(元孫 李晉,1921~1922)은 의민황태자(영친왕)와 황태자비 이방자의 첫 째 아들로 일본에서 태어났다.
1922년 황태자와 함께 잠시 귀국하였으나 일본으로 돌아가기 하루 전 덕수궁 석조전에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순종은 원손의 죽음을 슬퍼하여 장례를 후하게 치르게 하고 현재의 자리에 원을 조성하였다.
숭인원은 간소하게 조성되어 봉분은 병풍석과 난간석, 호석을 생략하였고 문석 인, 석마, 장명등, 혼유석, 망주석, 석호를 배치하였다.
[1] 원(園) : 왕세자, 왕세자빈과 임금의 사친(私親, 생부모)의 무덤으로, 능과는 구분된다. 따라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도 등재되지 않았다
[2] 황귀비(皇貴妃) : 중국 명(明)·청(淸)·대남(大南)·대한제국 황제의 후궁 작위 중 하나
[3] 원손(元孫) : 세자의 적장자. 왕세손으로 책봉되지 않은 왕세자의 맏아들
[4] 양정의숙(養正義塾) :1905년 2월 엄주익(嚴柱益)이 창설한 근대식 사립학교로 현 양정고등학교와 양정중학교의 전신. 1907년엔 엄주익의 재당고모인 순헌황귀비가 자신이 가진 황실의 토지 일부를 양정의숙에 하사했다
[5] 진명여학교 : 창립자 엄준원은 순헌황귀비의 사촌 동생이며 순헌황귀비와 그녀의 친정 엄씨 가문은 교육사업에 관심이 많아, 1905년에는 양정의숙, 1906년에는 진명여학교와 숙명여학교를 설립했다. 이 3개의 학교는 1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학교이다
순헌[2]황귀비 엄씨(純獻皇貴妃 嚴氏, 1854~1911)는 엄진삼의 딸로 5세 때 궁녀로 입 궁하여 고종의 왕비 명성황후를 모시는 상궁이 되었다.
1895년(고종 32) 명성황후가 경복궁에서 일본에 의해 시해당한 사건(을미사변)이 일어나자 이듬해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하는 것(아관파천)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이후 정식으로 고종의 후궁이 되어 1897년 의민황태자(영친왕)를 낳았고, 1903년(광무 7)에 황귀비로 책봉되었다.
순헌황귀비는 신교육에 관심을 두어 [4]양정의숙(養正義塾)과 [5]진명여학교, 명신여학교(현 숙명여대)의 설립을 지원하였다. 58세의 나이로 덕수궁 즉조당에서 세상을 떠났다.
영휘원은 조선시대 왕의 생모 무덤을 조성하던 예에 따라 봉분에는 병풍석과 난간석없이 호석을 둘렀으며, 문석인, 장명등, 석상, 망주석, 석양과 석호를 배치하였다.
원래 영휘원 근처인 현재의 홍릉수목원 자리에는 1897년(광무 1)에 조성된 명성황후의 홍릉(洪陵)이 있었다. 1911년 순헌황귀비가 세상을 떠났을 때 홍릉 근처에 영휘원의 자리를 정한 것이었으나,
1919년 홍릉이 현재 자리인 남양주시 금곡동으로 옮겨져 영휘원만 남게 되었다.
2. 숭인원(崇仁園) : 의민황태자(영친왕)장남의 원
의민황태자(영친왕) 장남인 [3]원손 이진(元孫 李晉,1921~1922)은 의민황태자(영친왕)와 황태자비 이방자의 첫 째 아들로 일본에서 태어났다.
1922년 황태자와 함께 잠시 귀국하였으나 일본으로 돌아가기 하루 전 덕수궁 석조전에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순종은 원손의 죽음을 슬퍼하여 장례를 후하게 치르게 하고 현재의 자리에 원을 조성하였다.
숭인원은 간소하게 조성되어 봉분은 병풍석과 난간석, 호석을 생략하였고 문석 인, 석마, 장명등, 혼유석, 망주석, 석호를 배치하였다.
[1] 원(園) : 왕세자, 왕세자빈과 임금의 사친(私親, 생부모)의 무덤으로, 능과는 구분된다. 따라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도 등재되지 않았다
[2] 황귀비(皇貴妃) : 중국 명(明)·청(淸)·대남(大南)·대한제국 황제의 후궁 작위 중 하나
[3] 원손(元孫) : 세자의 적장자. 왕세손으로 책봉되지 않은 왕세자의 맏아들
[4] 양정의숙(養正義塾) :1905년 2월 엄주익(嚴柱益)이 창설한 근대식 사립학교로 현 양정고등학교와 양정중학교의 전신. 1907년엔 엄주익의 재당고모인 순헌황귀비가 자신이 가진 황실의 토지 일부를 양정의숙에 하사했다
[5] 진명여학교 : 창립자 엄준원은 순헌황귀비의 사촌 동생이며 순헌황귀비와 그녀의 친정 엄씨 가문은 교육사업에 관심이 많아, 1905년에는 양정의숙, 1906년에는 진명여학교와 숙명여학교를 설립했다. 이 3개의 학교는 1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학교이다
[촬영일 : 2023-11-12]
영휘원(永徽園) : 고종의 후궁이자 의민황태자(영친왕) 생모인 순헌황귀비의 원
[촬영일 : 2023-11-12]
어정(御井) : 임금이 마시는 우물
[촬영일 : 2023-11-12]
영휘원(永徽園) 비각 : 비각은 원 주인의 행적을 기록한 신도비나 표석을 세워둔 곳이다. 영휘원 표석은 1911년에 순헌황귀비가 세상을 떠나고 세운 표석이다
[촬영일 : 2023-11-12]
영휘원(永徽園) 홍살문(紅箭門) : 홍살문은 능(陵)·원(園)·묘(廟)·궁전(宮殿)·관아(官衙)등의 입구등 신성한 곳임을 표시하기 위해 세운 문이다
[촬영일 : 2023-11-12]
영휘원(永徽園) · 숭인원(崇仁園) 재실
[촬영일 : 2023-11-12]
영휘원(永徽園) · 숭인원(崇仁園) 재실
[촬영일 : 2023-11-12]
영휘원(永徽園) 정자각
[촬영일 : 2023-11-12]
영휘원(永徽園) 정자각과 비각
[촬영일 : 2023-11-12]
영휘원(永徽園) 정자각에서 바라본 홍살문
[촬영일 : 2023-11-12]
숭인원(崇仁園)의 홍살문(紅箭門)
[촬영일 : 2023-11-12]
숭인원(崇仁園)의 정자각
[촬영일 : 2023-11-12]
숭인원(崇仁園)의 비각
[촬영일 : 2023-11-12]
숭인원(崇仁園)의 정자각에서 바라본 홍살문
[촬영일 : 2023-11-12]
숭인원(崇仁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