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프랑스스페인사건기간 : 1805년 10월 21일, 조회수 : 754, 등록일 : 2020-03-31
나폴레옹 전쟁기간중 1805년 10월 21일에 호레이쇼 넬슨(Horatio Nelson, 1758~1805)의 영국함대와 프랑스-에스파이나 연합 함대를 상대로 영국해군이 결정적인 승리를 거둔 전투이다.
서유럽 대부분을 재패한 나폴레옹은 그의 제국을 동쪽으로 더 넓히고 영국을 정복하고자 했으나 트라팔가르 해전의 패배로 꿈이 되고 말았다.
범선 시대의 마지막 대해전이자 영국의 막강 해군력 신화를 대표하는 전투들 가운데 하나이자, 영국이 자랑하는 대제독 넬슨이 전사한 전투이기도 했다.
이 해전의 승리는 이후 100년 동안 영국이 해상 지배권을 유지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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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디언 전쟁은 17세기 초 유럽 식민자들이 북아메리카 대륙에 정착한 이래 19세기 말까지 이어진 일련의 무력 충돌과 갈등을 통칭하는 역사적 명칭이다. 이 전쟁들은 북아메리카 대륙에 거주하던 원주민(인디언) 부족들과 유럽계 정착민들 그리고 후에 미국 연방정부 간의 영토 분쟁, 문화 충돌, 자원 경쟁, 조약 위반 등을 둘러싸고 지속적으로 발생하였다.
초기 식민지 시기에는 영국, 프랑스, 스페인 등의 제국주의 국가들과 동맹을 맺은 인디언 부족들이 식민 전쟁에 참여하면서 갈등이 격화되었다. 대표적인 초기 충돌로는 킹 필립 전쟁(King Philip’s War, 1675~1678), 포하탄 전쟁(Powhatan Wars), 그리고 프랑스-인디언 전쟁(1754~1763)이 있다. 이 시기 인디언들은 대체로 식민지 세력의 군사적 동맹이자 적으로 활동하였으며 영토 보존을 위한 투쟁을 벌였다.
1776년에 독립한 신생 미국 정부는 서부 확장을 국가 정책으로 추진하면서 원주민과의 충돌이 더욱 잦아졌다. 미국-인디언 전쟁의 핵심은 "서부 개척"이라는 이름 아래 원주민들의 땅을 몰수하고 강제로 이주시켰다는 점에 있다. 이 과정에서 일어난 대표적인 전쟁으로는 북서부 인디언 전쟁(Northwest Indian War, 1785년~1795), 테쿰세 전쟁(Tecumseh's War), 제1차~제3차 세미놀 전쟁(Seminole Wars), 블랙 호크 전쟁(Black Hawk War), 수족 전쟁(Sioux Wars), 치페와 전쟁(Chippewa War), 아파치 전쟁(Apache Wars), 그리고 제로니모 항쟁(Geronimo's resistance) 등이 있다.
특히 19세기 후반 미국 정부는 원주민 부족들을 "보호구역"으로 강제로 이주시켰고 이를 거부한 부족들과의 충돌은 더욱 격렬해졌다. 1876년 리틀 빅혼 전투(Battle of the Little Bighorn)에서는 라코타 수우족과 샤이엔족이 조지 암스트롱 커스터 중령이 이끄는 미군을 전멸시키는 역사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이후 미군의 지속적인 공격과 식량 차단, 협상 파기 등으로 대부분의 부족이 항복하거나 멸족하였다.
1890년, 사우스다코타주 운디드니(Wounded Knee)에서 발생한 학살 사건은 미국-인디언 전쟁의 종지부를 찍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평가된다. 이 사건에서 미군은 대규모 무장 해제 중이던 라코타 수우족을 공격하여 남녀노소 수백 명을 살해하였다. 운디드니 학살사건 이후 사실상 전쟁은 막을 내렸지만 20세기 초까지도 소규모의 전투가 가끔 벌어졌다.
이 전쟁의 결과 수많은 원주민이 목숨을 잃거나 삶의 터전을 빼앗겼으며 미국 전역의 원주민 사회는 급격한 해체와 문화적 침탈을 경험하게 되었다. 미국-인디언 전쟁은 단순한 무력 충돌을 넘어 식민주의·제국주의·인종주의에 기초한 국가 건설과 정복의 역사로 평가되며 오늘날까지도 미국 사회 내에서 원주민 문제와 정체성 논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1801년에서 1805년까지 미합중국과 북아프리카의 바르바리 국가와 벌어진 전쟁으로 미국 역사상 최초의 국제전쟁으로 기록되고 있으며 세계 최강 미 해군이 처음 창설된 계기가 되었다. 트리폴리 전쟁으로도 알려져 있다.
지중해 연안의 북아프리카는 오스만 제국의 준독립 국가 상태에 있었다. 바르바리 국가는 트리폴리, 튀니스, 알제리 세 지역으로 구성되었으며 각각 오스만 제국 본국에서 파샤가 임명되어 통치를 하고 있었다.
이 시기에 지중해 일대에는 바르바리 국가들의 보호아래 바르바리 해적들이 난립하였으며 지중해를 통과하는 상선의 통행료를 명목삼아 상납금을 징수했을 뿐만 아니라 상선을 습격하여 포로들을 인질로 삼아 해당 국가와 협상을 벌여 몸값을 받아내고 있었다.
당시 세계 최강 영국 해군 때문에 바르바리 해적들은 영국 국적의 상선은 건드리지 않았으나 독립 직후의 미국 상선을 집중 공격하였다. 미국은 신생 국가로 나라 재정이 열악한 형편이었기 때문에 1796년에 미국 정부는 바르바리 해적에게 매년 8만여 달러를 상납하는 조건의 트리폴리 조약을 맺으며 미국 국적의 선박이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하지만 이 조약에도 불구하고 바르바리 해적들은 미국 선박을 계속해서 공격했고 이에 격분한 미국은 해군 창설과 군비를 증강하기 시작하였다.
트리폴리이 파샤인 유수프 카라만르는 1801에 토머스 제퍼슨이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하자 마자 상납요구를 했다. 미국이 이를 거부하자 1801년 5월 10일 미국에 선전포고를 한다. 이에 대응하기 위하여 1801년 6월 1일 미 해군은 4척의 함선을 구성하여 지중해로 들어왔다. 이는 미군 역사상 최초의 해외 원정이기도 하다.
8월 1일 미 해군은 함포의 포격으로 바르바리 함선은 전투불능한 상태가 되었다. 미국의 호쾌한 승전이었다. 이후 1803년에는 전함 7척으로 구성된 미 해군 함대가 트리폴리를 봉쇄했고 1805년에는 리비아 북동부 지역을 공격했다. 이것은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미국군이 외국 땅에서 이룬 첫 승리였다. 이 전투에서 패한 트리폴리 파샤 유수프 카라만르는 300명에 이르는 미국 포로들을 석방하고 배상금 6만 달러를 지불하는 조건으로 휴전 조약에 조인하면서 1차 바르바리 전쟁은 종결된다.
제1차 바르바리 전쟁은 미국 군대의 국제적인 평판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고 미국이 전쟁을 수행하는 시스템을 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미국이 고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역량이 있음을 입증했고 미해군과 해병대는 미국의 군사조직으로 위상을 확립하였다.
* 오스만 제국 : 14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발칸 반도와 아나톨리아(고대 그리스에서 아시아라고 불렸던 지방으로서 오늘날의 터키 영토에 속하는 반도)를 중심으로 유럽동남부, 서아시아, 북아프리카 3대륙에 걸쳐 광대한 영역을 지배하던 국가. 터키제국, 오스만튀르크라고도 불린다
* 바르바리(Barbary) : 유럽에서 베르베르인(북아프리카의 토착민)들이 살던 지역을 부르던 말. 특히 아프리카의 북아프리카의 중서부 해안국가인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 리비아의 해안 지역을 말한다.
* 바르바리 해적(Barbary pirates, Barbary corsairs) : 알제리, 튀니지, 리비아, 모로코등 북아프리카 서부지역의 지중해 연안에 있는 항구들을 거점으로 삼아서 활동하던 해적
* 트리폴리(Tripoli) : 리비아의 수도
* 파샤 : 오스만 제국의 최고위층 귀족에게 주어진 호칭. 주로 장군이나 지방 총독에게 주어졌다. 영국의 경(lord)과 비슷하다
*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1743년~1826년) : 미국의 제3대 대통령. 재임 : 1801년~1809년. 미국 독립 선언서의 기초자이며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한 사람이다.루이지애나 매입(Louisiana Purchase,1803년)이 재임 기간중 일어난 큰 사건이다
* 튀니스(Tunis) : 튀니지의 수도
프랑스 혁명에서 전쟁으로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하여 나폴레옹 전쟁에서 절정에 이르렀다.이 전쟁은 5개 항목으로 분류된다.
제3차 대프랑스 동맹 전쟁
- 오스트리아 전쟁 (1805)
제4차 대프랑스 동맹 전쟁
- 독일·폴란드 원정 (1806 ~ 1807)
- 이베리아 반도 전쟁 (1808 ~ 1814)
제5차 대프랑스 동맹 전쟁
- 제2차 오스트리아 전쟁 (1809)
- 러시아 원정 (1812)
제6차 대프랑스 동맹 전쟁
- 나폴레옹의 몰락 (1813 ~ 1814)
- 빈 회의 (1814. 9. 1 ~ 1815. 6.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