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사화(甲子士禍)
대한민국
사건기간 : 1504년 3월 20일 ~ 1504년 7월 6일, 조회수 : 259, 등록일 : 2020-03-21
연산군의 친모이자 성종 비 윤씨가 질투가 심해 왕비의 체모에 벗어난 행동을 많이 했다 하여, 1479년(성종 10) 윤씨를 폐했다가 다음 해에 사사(賜死)하였다.
연산군은 이 사실을 왕이 되기전에 알고 있었다. 성종의 뒤를 이어 즉위한 후 어머니 사사사건에 직접 연루된 자와 폐비를 지지한 훈구 세력들을 가혹하게 처벌하였다.
1504년 음력 3월 20일 연산군은 윤씨 사사 사건에 관련된 성종의 후궁 [2] 귀인 엄(嚴)씨 · [3]귀인 정(鄭)씨를 창경궁 뜰에서 때려 죽이고, 그들의 아들 안양군(安陽君) 이항(李㤚)과 봉안군(鳳安君) 이봉(李㦀)도 귀양을 보낸 뒤 1년 후 사사하였다. 연산군이 할머니인 [1] 인수대비의 침전으로 가서 폭언을 하자, 병세가 깊었던 인수대비는 한달후 세상을 떠났다.
갑자사화로 인해 [4] 윤필상 · [5]이극균 · [6]이세좌를 비롯하여 여러 신하들이 극형에 처해졌다. 사화는 점점 확대되어 240여 명이 처벌받았으며 이중 122명이 목숨을 잃거나 [7] 부관참시, [8]부관능지를 당했다고 한다.
이 사화를 계기로 더 심해진 연산군의 실정은 새로운 정치 변동과 정치 문화를 요청하게 되었고, 이로써 마침내 [9] 중종반정(中宗反正)이 일어나게 되었다.
[1] 인수대비(仁粹大妃, 1437년 ~ 1504년) : 추존 왕 덕종의 비. 세조의 맏며느리이자 성종의 어머니. 소혜왕후 한씨(昭惠王后 韓氏)
[2] 귀인엄씨(貴人嚴氏, ? ~ 1504년) : 성종(조선 제9대왕)의 후궁
[3] 귀인정씨(貴人鄭氏, ? ~ 1504년) : 성종(조선 제9대왕)의 후궁
[4] 윤필상(尹弼商, 1427년 ~ 1504년)은 조선시대 전기의 문신이자 성종의 장인. 무오사화를 주도하여 신진사림파를 숙청하는데 가담하고 정적을 숙청하였다. 자신도 폐비 윤씨 폐위 사건에 연루되어 유배되었다가 사사되었다
[5] 이극균(李克均, 1437년 ~ 1504년) : 조선의 문신. 1503년에는 좌의정. 조카 이세좌와 함께 연루되어 유배되었다가 사사되었다
[6] 이세좌(李世佐, 1445년 ∼ 1504년): 조선의 문신. 1503년 인정전에서 열린 양로연(養老宴)에 참석, 어사주를 회배(回盃)할 때 어의(御衣)에 술을 엎지른 실수로 연산군의 분노를 사서 유배되었다. 1504년 조정에 복귀하는 듯 했지만 폐비윤씨에게 사약을 직접 전달하였다는 죄목으로 유배되었다가 자결하였다
[7] 부관참시(剖棺斬屍) : 직역하여 관을 쪼개고, 시체를 벤다. 이미 죽은 사람이 생전에 저질렀던 죄상이 뒤늦게 드러난 경우 시신을 무덤에서 꺼내어 극형에 처하는 것
[8] 부관능지(剖棺凌遲) : 부관참시는 시신의 목을 자르는 것이 비해 부관능지는 시신 전체를 잘라 버린다
[9] 중종반정 (中宗反正) : 1506년(연산군 12) 성희안(成希顔)·박원종(朴元宗)등 이른바 훈구세력이 학정을 거듭하던 연산군을 폐위시시키고 연산군의 이복동생인 진성대군을 왕으로 추대한 사건
연산군은 이 사실을 왕이 되기전에 알고 있었다. 성종의 뒤를 이어 즉위한 후 어머니 사사사건에 직접 연루된 자와 폐비를 지지한 훈구 세력들을 가혹하게 처벌하였다.
1504년 음력 3월 20일 연산군은 윤씨 사사 사건에 관련된 성종의 후궁 [2] 귀인 엄(嚴)씨 · [3]귀인 정(鄭)씨를 창경궁 뜰에서 때려 죽이고, 그들의 아들 안양군(安陽君) 이항(李㤚)과 봉안군(鳳安君) 이봉(李㦀)도 귀양을 보낸 뒤 1년 후 사사하였다. 연산군이 할머니인 [1] 인수대비의 침전으로 가서 폭언을 하자, 병세가 깊었던 인수대비는 한달후 세상을 떠났다.
갑자사화로 인해 [4] 윤필상 · [5]이극균 · [6]이세좌를 비롯하여 여러 신하들이 극형에 처해졌다. 사화는 점점 확대되어 240여 명이 처벌받았으며 이중 122명이 목숨을 잃거나 [7] 부관참시, [8]부관능지를 당했다고 한다.
이 사화를 계기로 더 심해진 연산군의 실정은 새로운 정치 변동과 정치 문화를 요청하게 되었고, 이로써 마침내 [9] 중종반정(中宗反正)이 일어나게 되었다.
[1] 인수대비(仁粹大妃, 1437년 ~ 1504년) : 추존 왕 덕종의 비. 세조의 맏며느리이자 성종의 어머니. 소혜왕후 한씨(昭惠王后 韓氏)
[2] 귀인엄씨(貴人嚴氏, ? ~ 1504년) : 성종(조선 제9대왕)의 후궁
[3] 귀인정씨(貴人鄭氏, ? ~ 1504년) : 성종(조선 제9대왕)의 후궁
[4] 윤필상(尹弼商, 1427년 ~ 1504년)은 조선시대 전기의 문신이자 성종의 장인. 무오사화를 주도하여 신진사림파를 숙청하는데 가담하고 정적을 숙청하였다. 자신도 폐비 윤씨 폐위 사건에 연루되어 유배되었다가 사사되었다
[5] 이극균(李克均, 1437년 ~ 1504년) : 조선의 문신. 1503년에는 좌의정. 조카 이세좌와 함께 연루되어 유배되었다가 사사되었다
[6] 이세좌(李世佐, 1445년 ∼ 1504년): 조선의 문신. 1503년 인정전에서 열린 양로연(養老宴)에 참석, 어사주를 회배(回盃)할 때 어의(御衣)에 술을 엎지른 실수로 연산군의 분노를 사서 유배되었다. 1504년 조정에 복귀하는 듯 했지만 폐비윤씨에게 사약을 직접 전달하였다는 죄목으로 유배되었다가 자결하였다
[7] 부관참시(剖棺斬屍) : 직역하여 관을 쪼개고, 시체를 벤다. 이미 죽은 사람이 생전에 저질렀던 죄상이 뒤늦게 드러난 경우 시신을 무덤에서 꺼내어 극형에 처하는 것
[8] 부관능지(剖棺凌遲) : 부관참시는 시신의 목을 자르는 것이 비해 부관능지는 시신 전체를 잘라 버린다
[9] 중종반정 (中宗反正) : 1506년(연산군 12) 성희안(成希顔)·박원종(朴元宗)등 이른바 훈구세력이 학정을 거듭하던 연산군을 폐위시시키고 연산군의 이복동생인 진성대군을 왕으로 추대한 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