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이란전쟁(The 2025 Iran–Israel War)
미국
이란
이스라엘
사건기간 : 2025년 6월 13일~2025년 6월 25일, 조회수 : 125, 등록일 : 2025-07-13
[10]팔라비 왕조 시기의 이란과 이스라엘은 중동 내 우호적 관계였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 이란은 중동 이슬람 국가 중 두 번째로 이스라엘을 사실상 인정하고 경제·군사·정보 협력을 진행하며 우호를 다져왔다.
그러나 1979년 이란은 혁명을 통해 [11]호메이니가 집권하면서 관계는 급격히 악화되었다. 호메이니 정권은 이스라엘을 불법적인 [12]시온주의 정권으로 규정하고 외교 관계를 즉각 단절했으며 이스라엘을 팔레스타인 침략자로 보고 이스라엘 국가자체를 부정하였다.
이란은 지리적으로 이스라엘하고 떨어져 있기 때문에 이란을 대신해서 레바논의 헤즈볼라, 하마스, 주변국인 시리아등을 지원하여 이들 무장단체들이 이스라엘을 공격하였다. 이스라엘도 자국 안보를 위해 군사 작전과 정보 활동으로 대항하며 오늘날까지 분쟁이 이어져 오고 있다.
이란은 2000년대 초부터 핵무기 개발 의혹을 받아왔으며, 이를 둘러싼 국제사회의 긴장이 지속되어 왔다.
2025년 6월 13일 새벽, 이스라엘은 [1]'일어나는 사자'라는 작전명으로 전투기 수십 대와 이란 영토에 숨겨놓은 드론을 이용해 이란의 핵시설과 핵과학자, 군사령부 등을 기습 공격했다. 이 공격으로 이란 정규군 참모총장, 혁명수비대 총사령관, 부사령관, 핵과학자등 주요인사가 사망했다.
이란도 14일 새벽 탄도미사일 약 150~200기와 드론 수십 대를 동원해 이스라엘 공군기지와 [2]텔아비브, 예루살렘 등 주요 도시를 공격했다.
개전 사흘째인 15일에 이스라엘은 테헤란 석유 저장시설, 가스전 등 에너지 시설을 공격했다. 이란도 새로운 미사일 발사로 응대하였다.
이스라엘은 모사드를 이용하여 이란내에 침투하여 이란의 군 시설, 주요 군 인사들, 과학자의 동선까지 수년에 걸쳐서 파악해 왔으며, 그 계획을 지금 실행했다고 발표했다.
이스라엘과 이란이 충돌한 지 9일째인 6월 21일 미국은 ‘한밤의 망치 작전’이라는 작전명으로 이란의 핵시설 3곳인 [3]포르도·나탄즈·[4]이스파한을 기습 공습하였다. 미국은 이란의 근접 해상의 잠수함에서 [8]토마호크 미사일 30기로 [4]이스파한을 폭격했다. 이스파한 폭격 직후 22일 새벽에 스텔스 폭격기인 [6]B-2스피릿 7대를 동원하여 90m 지하에 건설된 [3]포르도 핵 시설을 파괴하기 위하여 초대형 폭탄인 [5]벙커버스터 4기를 투하했고, 2기는 나탄즈 핵시설에 투하됐다.
벙커버스터 폭탄은 실전에서 처음으로 투하되었다.
이란의 핵시설 3곳 중 포르도와 나탄즈는 우라늄 농축 시설이, 이스파한은 우라늄 저장소 및 가공시설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의 핵심 핵농축 시설을 완벽하고 완전히 제거했다"고 밝힌 반면, 이란은 [3]포르도 핵시설이 심각한 손상을 입지 않았으며 복구 가능한 지상부에만 피해가 집중되었다고 전했다. 또한 이란이 공습 이전에 고농축 우라늄 중 상당 부분을 다른 장소로 옮겼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러한 미국의 공격에 이란은 보복을 예고했다. 중동내에 주둔 중인 여러 미군기지중에 4만여 미군이 모두 이란 미사일의 사거리 내에 있다. 즉,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카타르 등에 주둔한 미군기지를 타격할 수 있다. 또한 세계 해상 원유 수송의 30% 를 점유하고 있는 호르무즈해협에 대한 봉쇄도 가능하다. 이는 전 세계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
이란은 23일에 카타르내 미군 기지에 보복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란은 카타르에 사전 통보를 했고, 카타르는 미국에 이 정보를 알렸다. 이란은 이 공격으로 카타르내 미군 기지를 초토화했다라고 주장했으며 미국은 사망자나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란은 미국과 전쟁을 확대하고 싶지 않았다.
다음날인 6월 24일 트럼프는 휴전을 선언하였다. 트럼프는 먼저 이스라엘로부터 얻어낸 휴전 동의를 카타르를 통해 이란에 전달하면서 휴전되었다.
[1] 일어나는 사자(Operation Rising Lion)작전 : 구약성경 민수기 23장 24절의 "백성이 암사자 같이 일어나고 수사자 같이 일어나서 움킨 것을 먹으며 죽인 피를 마시기 전에는 눕지 아니하리로다"라는 구절에서 유래했다. 이스라엘은 이 구절을 인용하여 자신들의 투쟁 정신과 회복력을 강조하며, 작전명으로 사용했다
[2] 텔아비브(Tel Aviv) : 이스라엘 서부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도시. 이스라엘의 수도. 텔아비브는 히브리어로 '봄의 언덕'이라는 뜻
[3] 포르도(Fordow) : 이란 테헤란 남쪽 160km 떨어진 산악 지대에 위치하며, 쿰주에 위치한 도시. 2006년, 이란은 이 지역 근처에 2번째 우라늄 농축 시설이 건설했고. 2009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이 사실을 공개했다
[4] 이스파한(Isfahan) : 이란 중부에 위치한 역사적 도시로, 사파비 왕조 시기 수도였으며 페르시아 건축과 예술의 중심지로 번영하였다. 현대에는 이란의 우랴늄 저장소 및 가공시설이 있는 전략적 요충지이다
[5] 벙커버스터(bunker buster) : 땅속에 있는 벙커 등의 방호력이 높은 구조물을 부수기 위해 개발된 폭탄
[6] B-2 스피릿(Northrop Grumman B-2 Spirit) : 미국의 다목적 스텔스 폭격기
[7] 모사드(Mossad) : 이스라엘의 대외 정보기관으로 이스라엘 총리의 직속 기관. 해외 정보 수집과 공작을 담당
[8] 토마호크 미사일(Tomahawk missile) : 1970년대에 개발한 장거리, 전천후 순항 미사일
[9] 호르무즈 해협(Strait of Hormuz) : 북쪽에는 이란이 있고 남쪽에는 오만과 아랍 에미리트가 있는 해협이다. 가장 좁은 곳의 폭은 54km이다
[10] 팔라비 왕조(Pahlavi dynasty) : 1925년부터 1979년까지 거의 54년 동안 통치한 이란의 마지막 왕조. 1979년 2월 11일 이란 혁명으로 막을 내렸다.
[11] 루홀라 호메이니(Ruhollah Khomeini, 1902년 92월 24일~1989년 6월 3일) : 팔라비 왕조에 반대하여 망명했다가 이란혁명으로 최고지도자로 군림하였다. 임기 : 1979년 12월 3일~1989년 6월 3일
[12] 시온주의(Zionism) : 유대 민족의 국가 건설을 목표로 하는 민족주의 운동. 특히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 국가를 건설하려는 움직임을 의미하고 있다. 19세기 후반 유럽에서 시작되어 1948년 이스라엘 건국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1979년 이란은 혁명을 통해 [11]호메이니가 집권하면서 관계는 급격히 악화되었다. 호메이니 정권은 이스라엘을 불법적인 [12]시온주의 정권으로 규정하고 외교 관계를 즉각 단절했으며 이스라엘을 팔레스타인 침략자로 보고 이스라엘 국가자체를 부정하였다.
이란은 지리적으로 이스라엘하고 떨어져 있기 때문에 이란을 대신해서 레바논의 헤즈볼라, 하마스, 주변국인 시리아등을 지원하여 이들 무장단체들이 이스라엘을 공격하였다. 이스라엘도 자국 안보를 위해 군사 작전과 정보 활동으로 대항하며 오늘날까지 분쟁이 이어져 오고 있다.
이란은 2000년대 초부터 핵무기 개발 의혹을 받아왔으며, 이를 둘러싼 국제사회의 긴장이 지속되어 왔다.
2025년 6월 13일 새벽, 이스라엘은 [1]'일어나는 사자'라는 작전명으로 전투기 수십 대와 이란 영토에 숨겨놓은 드론을 이용해 이란의 핵시설과 핵과학자, 군사령부 등을 기습 공격했다. 이 공격으로 이란 정규군 참모총장, 혁명수비대 총사령관, 부사령관, 핵과학자등 주요인사가 사망했다.
이란도 14일 새벽 탄도미사일 약 150~200기와 드론 수십 대를 동원해 이스라엘 공군기지와 [2]텔아비브, 예루살렘 등 주요 도시를 공격했다.
개전 사흘째인 15일에 이스라엘은 테헤란 석유 저장시설, 가스전 등 에너지 시설을 공격했다. 이란도 새로운 미사일 발사로 응대하였다.
이스라엘은 모사드를 이용하여 이란내에 침투하여 이란의 군 시설, 주요 군 인사들, 과학자의 동선까지 수년에 걸쳐서 파악해 왔으며, 그 계획을 지금 실행했다고 발표했다.
이스라엘과 이란이 충돌한 지 9일째인 6월 21일 미국은 ‘한밤의 망치 작전’이라는 작전명으로 이란의 핵시설 3곳인 [3]포르도·나탄즈·[4]이스파한을 기습 공습하였다. 미국은 이란의 근접 해상의 잠수함에서 [8]토마호크 미사일 30기로 [4]이스파한을 폭격했다. 이스파한 폭격 직후 22일 새벽에 스텔스 폭격기인 [6]B-2스피릿 7대를 동원하여 90m 지하에 건설된 [3]포르도 핵 시설을 파괴하기 위하여 초대형 폭탄인 [5]벙커버스터 4기를 투하했고, 2기는 나탄즈 핵시설에 투하됐다.
벙커버스터 폭탄은 실전에서 처음으로 투하되었다.
이란의 핵시설 3곳 중 포르도와 나탄즈는 우라늄 농축 시설이, 이스파한은 우라늄 저장소 및 가공시설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의 핵심 핵농축 시설을 완벽하고 완전히 제거했다"고 밝힌 반면, 이란은 [3]포르도 핵시설이 심각한 손상을 입지 않았으며 복구 가능한 지상부에만 피해가 집중되었다고 전했다. 또한 이란이 공습 이전에 고농축 우라늄 중 상당 부분을 다른 장소로 옮겼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러한 미국의 공격에 이란은 보복을 예고했다. 중동내에 주둔 중인 여러 미군기지중에 4만여 미군이 모두 이란 미사일의 사거리 내에 있다. 즉,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카타르 등에 주둔한 미군기지를 타격할 수 있다. 또한 세계 해상 원유 수송의 30% 를 점유하고 있는 호르무즈해협에 대한 봉쇄도 가능하다. 이는 전 세계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
이란은 23일에 카타르내 미군 기지에 보복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란은 카타르에 사전 통보를 했고, 카타르는 미국에 이 정보를 알렸다. 이란은 이 공격으로 카타르내 미군 기지를 초토화했다라고 주장했으며 미국은 사망자나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란은 미국과 전쟁을 확대하고 싶지 않았다.
다음날인 6월 24일 트럼프는 휴전을 선언하였다. 트럼프는 먼저 이스라엘로부터 얻어낸 휴전 동의를 카타르를 통해 이란에 전달하면서 휴전되었다.
[1] 일어나는 사자(Operation Rising Lion)작전 : 구약성경 민수기 23장 24절의 "백성이 암사자 같이 일어나고 수사자 같이 일어나서 움킨 것을 먹으며 죽인 피를 마시기 전에는 눕지 아니하리로다"라는 구절에서 유래했다. 이스라엘은 이 구절을 인용하여 자신들의 투쟁 정신과 회복력을 강조하며, 작전명으로 사용했다
[2] 텔아비브(Tel Aviv) : 이스라엘 서부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도시. 이스라엘의 수도. 텔아비브는 히브리어로 '봄의 언덕'이라는 뜻
[3] 포르도(Fordow) : 이란 테헤란 남쪽 160km 떨어진 산악 지대에 위치하며, 쿰주에 위치한 도시. 2006년, 이란은 이 지역 근처에 2번째 우라늄 농축 시설이 건설했고. 2009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이 사실을 공개했다
[4] 이스파한(Isfahan) : 이란 중부에 위치한 역사적 도시로, 사파비 왕조 시기 수도였으며 페르시아 건축과 예술의 중심지로 번영하였다. 현대에는 이란의 우랴늄 저장소 및 가공시설이 있는 전략적 요충지이다
[5] 벙커버스터(bunker buster) : 땅속에 있는 벙커 등의 방호력이 높은 구조물을 부수기 위해 개발된 폭탄
[6] B-2 스피릿(Northrop Grumman B-2 Spirit) : 미국의 다목적 스텔스 폭격기
[7] 모사드(Mossad) : 이스라엘의 대외 정보기관으로 이스라엘 총리의 직속 기관. 해외 정보 수집과 공작을 담당
[8] 토마호크 미사일(Tomahawk missile) : 1970년대에 개발한 장거리, 전천후 순항 미사일
[9] 호르무즈 해협(Strait of Hormuz) : 북쪽에는 이란이 있고 남쪽에는 오만과 아랍 에미리트가 있는 해협이다. 가장 좁은 곳의 폭은 54km이다
[10] 팔라비 왕조(Pahlavi dynasty) : 1925년부터 1979년까지 거의 54년 동안 통치한 이란의 마지막 왕조. 1979년 2월 11일 이란 혁명으로 막을 내렸다.
[11] 루홀라 호메이니(Ruhollah Khomeini, 1902년 92월 24일~1989년 6월 3일) : 팔라비 왕조에 반대하여 망명했다가 이란혁명으로 최고지도자로 군림하였다. 임기 : 1979년 12월 3일~1989년 6월 3일
[12] 시온주의(Zionism) : 유대 민족의 국가 건설을 목표로 하는 민족주의 운동. 특히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 국가를 건설하려는 움직임을 의미하고 있다. 19세기 후반 유럽에서 시작되어 1948년 이스라엘 건국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