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 데이비드 호텔 폭파 사건(King David Hotel Bombing)
이스라엘
영국
사건기간 : 1946년 7월 22일, 조회수 : 98, 등록일 : 2025-06-24
킹 데이비드 호텔 폭파 사건은 1946년 7월 22일, 당시 영국의 위임통치령이던 팔레스타인 예루살렘에서 발생한 대규모 폭탄 테러 사건이다. 유대 무장조직인 [1]이르군이 영국 행정본부을 겨냥해 주도한 공격이었다.
킹 데이비드 호텔은 1932년에 개장한 예루살렘 최초의 현대식 고급 6층짜리 호텔이다. 평면적으로 I자형으로 날개를 남북으로 연결하는 긴 중앙 축을 가지고 있었다. 주요 도로인 [2]줄리안스 웨이는 호텔 서쪽과 평행하게 뻗어 있었다.
영국 행정본부는 호텔 남쪽 건물의 대부분을 차지했고, 군사 본부는 남쪽 건물의 최상층과 호텔 중앙의 최상층, 2층, 3층을 차지하고 있었다.
1946년 7월 22일, 이르군 대원들은 영국군 복장을 하고 호텔의 지하 카페로 진입한 후, 우유통에 위장한 폭발물을 설치했다. 폭파 시각은 오전 12시 37분경으로, 경고 전화가 여러 곳에 사전에 전달되었지만, 영국 당국이 이를 무시했거나 적절히 대응하지 못해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폭발로 인해 호텔 남쪽 전체가 붕괴되었고, 총 91명이 사망하고 40명 이상이 부상당했다. 사망자 중에는 영국인뿐 아니라 유대인, 아랍인, 기타 외국인들도 포함되어 있어 민간인 피해가 상당했다.
이 사건은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영국의 지배에 저항하며 벌어진 폭력적인 행동으로, 특히 많은 피해를 초래하고 국제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영국은 유대 무장세력에 대한 강경 진압에 나섰고, 유대인 사회 내부에서도 이르군의 무차별적 폭력에 대해 비판 여론이 확산되었다. 그러나 일부는 이 사건을 영국 제국주의에 맞선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보기도 했다.
킹 데이비드 호텔 폭파 사건은 영국이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를 유지하는 데 한계를 느끼고 철수를 결정하게 되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으며, 이후 1947년 유엔의 팔레스타인 분할 결의안과 1948년 이스라엘 건국으로 이어지는 역사적 흐름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테러를 주도한 이르군의 지도자 [3]메나헴 베긴은 훗날 이스라엘 총리가 되어, 독립운동과 테러리즘 사이의 경계를 상징하는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1] 이르군(Irgun) : 1931년부터 1948년까지 영국 위임통치 기간 동안 팔레스타인에서 활동했던 시온주의 무장조직. 이르군의 주요 목표는 무력을 동원하여 유대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었으며, 영국군과 아랍인 모두를 공격했다. 이르군의 정치조직은 이스라엘 우파 집권 정당인 리쿠드당의 뿌리 중 하나가 됐다.
[2] 줄리안스 웨이(Julian's Way) : 현재 킹 데이비드 스트리트
[3] 메나헴 베긴(Menachem Begin, 1913년 8월 16일~1992년 3월 9일) : 이스라엘의 제7대 총리(임기, 1977년 6월 20일~1983년 10월 10일). 이스라엘-이집트 간의 평화에 기여한 공로로 이집트 사다트와 함께 1978년 노벨평화상을 공동수상했다
킹 데이비드 호텔은 1932년에 개장한 예루살렘 최초의 현대식 고급 6층짜리 호텔이다. 평면적으로 I자형으로 날개를 남북으로 연결하는 긴 중앙 축을 가지고 있었다. 주요 도로인 [2]줄리안스 웨이는 호텔 서쪽과 평행하게 뻗어 있었다.
영국 행정본부는 호텔 남쪽 건물의 대부분을 차지했고, 군사 본부는 남쪽 건물의 최상층과 호텔 중앙의 최상층, 2층, 3층을 차지하고 있었다.
1946년 7월 22일, 이르군 대원들은 영국군 복장을 하고 호텔의 지하 카페로 진입한 후, 우유통에 위장한 폭발물을 설치했다. 폭파 시각은 오전 12시 37분경으로, 경고 전화가 여러 곳에 사전에 전달되었지만, 영국 당국이 이를 무시했거나 적절히 대응하지 못해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폭발로 인해 호텔 남쪽 전체가 붕괴되었고, 총 91명이 사망하고 40명 이상이 부상당했다. 사망자 중에는 영국인뿐 아니라 유대인, 아랍인, 기타 외국인들도 포함되어 있어 민간인 피해가 상당했다.
이 사건은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영국의 지배에 저항하며 벌어진 폭력적인 행동으로, 특히 많은 피해를 초래하고 국제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영국은 유대 무장세력에 대한 강경 진압에 나섰고, 유대인 사회 내부에서도 이르군의 무차별적 폭력에 대해 비판 여론이 확산되었다. 그러나 일부는 이 사건을 영국 제국주의에 맞선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보기도 했다.
킹 데이비드 호텔 폭파 사건은 영국이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를 유지하는 데 한계를 느끼고 철수를 결정하게 되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으며, 이후 1947년 유엔의 팔레스타인 분할 결의안과 1948년 이스라엘 건국으로 이어지는 역사적 흐름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테러를 주도한 이르군의 지도자 [3]메나헴 베긴은 훗날 이스라엘 총리가 되어, 독립운동과 테러리즘 사이의 경계를 상징하는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1] 이르군(Irgun) : 1931년부터 1948년까지 영국 위임통치 기간 동안 팔레스타인에서 활동했던 시온주의 무장조직. 이르군의 주요 목표는 무력을 동원하여 유대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었으며, 영국군과 아랍인 모두를 공격했다. 이르군의 정치조직은 이스라엘 우파 집권 정당인 리쿠드당의 뿌리 중 하나가 됐다.
[2] 줄리안스 웨이(Julian's Way) : 현재 킹 데이비드 스트리트
[3] 메나헴 베긴(Menachem Begin, 1913년 8월 16일~1992년 3월 9일) : 이스라엘의 제7대 총리(임기, 1977년 6월 20일~1983년 10월 10일). 이스라엘-이집트 간의 평화에 기여한 공로로 이집트 사다트와 함께 1978년 노벨평화상을 공동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