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우리 차우라 사건(Chauri Chaura Incident)

인도 영국 사건기간 : 1922년 2월 4일, 조회수 : 218,   등록일 : 2025-06-15
1920년대 초, 인도는 영국의 식민 통치에 저항하는 비폭력 저항 운동, 즉 [5]비협력 운동을 격렬히 전개하고 있었다. 이 운동은 [4]마하트마 간디가 주도하였으며, 영국산 제품 불매, 세금 납부 거부, 정부 기관 참여 거부 등 비폭력적인 수단으로 진행되었다.
 
1922년 2월 2일, [5]비협력 운동에 참여한 자원봉사자들이 [1]영국령 인도 연합주내의 [3]가우리 바자르 지역의 높은 식료품 가격과 주류 판매에 항의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이 강경하게 진압에 나섰고, 여러 지도자들이 체포되어 [2]차우리 차우라 경찰서에 구금되었다. 이에 분노한 주민들과 운동 참가자들은 2월 4일, 경찰에 항의하기 위해 대규모 시위를 벌이게 되었다.
  
2월 4일, 약 2,000명에서 2,500명의 시위대가 [3]차우리 차우라 시장 골목으로 행진하기 시작했다. 무장한 경찰이 상황을 통제하기 위해 파견되었다. 경찰은 군중을 위협하고 해산시키기 위해 경고 사격을 하였다. 이는 오히려 군중을 자극하여 경찰에게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상황이 걷잡을 수 없게 되자 경찰은 군중에게 발포하여 3명을 사살하고 여러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이어진 혼란 속에서 수적으로 열세였던 경찰은 경찰서로 후퇴했고, 분노한 군중은 경찰서에 불을 질렀고, 안에 갇힌 경찰관 전원이 사망했다.
 
대부분의 희생자는 불에 타 사망했지만, 몇몇은 경찰서 입구에서 군중에 의해 살해된 후 시신을 불 속으로 다시 던져진 것으로 보이고 사망자 수는 22명 또는 23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마하트마 간디는 이 사건의 결과로 1922년 2월 12일 전국적인 비협력 운동을 중단했다.
 
이후 영국 식민 당국에 의해 225명이 체포되었다. 6명이 경찰 구금 중 사망했으며, 1923년 7월 재판 후 19명이 처형되었고, 99명이 징역형을 선고받았으며, 이 중 14명이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1] 영국령 인도 연합주 : 현재 인도의 우타르프라데시주(Uttar Pradesh, UP)로 인도 북부에 위치하고 있다
[2] 차우리 차우라(Chauri Chaura) : 인도 우타르프라데시 주 고락푸르(Gorakhpur)시 근처의 마을
[3] 가우리 바자르(Gauri Bazar) : 인도 우타르프라데시 주 데오리아(Deoria) 도시에 있는 마을
[4]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 1869년 10월 2일 ~ 1948년 1월 30일) : 인도의 독립을 이끈 비폭력 저항 운동의 정신적·정치적 지도자
[5] 비협력 운동(Non-Cooperation Movement) : 1920년 9월 4일 마하트마 간디가 인도 국민들이 영국 정부에 대한 협력을 철회하고 자치권을 부여하도록 설득하기 위해 시작한 정치 운동
 

Copyright 2020 TMSTORY.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