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유대-로마 전쟁(First Jewish–Roman War)

팔레스타인 이탈리아 이스라엘 사건기간 : 66년 6월~73년, 조회수 : 5386,   등록일 : 2025-06-08
기원전 63년 로마제국의 [1]폼페이우스가 [14]예루살렘 성전을 점령하고 [2]유대지방을 로마에 병합하여 유대지방은 로마 속국이 되었다. 로마 총독의 통치하에 유대의 왕권은 로마의 승인을 받아야 했다.
유대인은 유일신 [3]야훼에 대한 신앙을 기반으로 하는 민족으로 로마의 다신교와 황제 숭배는 이들에게 모독으로 여겼다.
이러한 상황에서 로마의 억압과 종교 탄압이 계속되자 유대인은 반감과 저항의 불씨가 점점 자라났다.
 
66년, 로마 총독 [4]케시우스 플로루스가 [14]예루살렘 성전에서 금을 약탈하자 이를 항의하는 유대인을 강경 진압하여 3,000여명을 살해하였다. 이에 격분한 유대인들은 66년 7월 예루살렘에서 대대적인 폭동이 일어났으며 예루살렘의 로마군 수비대를 포위하며 로마의 통치에 항거하였다. 
유대인들은 로마 수비대를 몰아내고 예루살렘을 장악했으며 유대 내 여러 지역으로 점령하며 대대적인 해방운동으로 확산되었다.
시리아 총독 [5]셰스티우스 갈루스가 이끄는 로마군이 예루살렘 인근에서 크게 패배하면서 유대인의 사기는 고조되었다.
 
67년, 로마 황제 [6]네로는 [7] 베스파시아누스를 반란 진압 책임자로 임명하고 대규모 군대를 파견했다. [7]베스파시아누스는 아들 [8]티투스와 함께 [9]갈릴리, [10]사마리아, [11]이두매를 차례로 점령하며 유대 저항 세력을 점점 압박해 들어갔다. 유대인의 최후 보루인 예루살렘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이 로마의 수중에 들어갔다.
 
한편 예루살렘 내부는 심각한 내분 상태에 빠져 있었다. 과격파 세력은 다른 유대 저항 세력과 충돌하며 도시 내에서 무력 충돌을 벌였다. 심지어 예루살렘 성전 안에서도 서로 다른 세력이 진지를 구축하고 싸웠고, 성전은 그 자체로도 전투의 피해를 입었다.
 
70년에 [7]베스파시아누스가 황제로 즉위하고 로마로 귀환하자 아들 [8]티투스가 예루살렘 포위를 지휘하게 되었다. 티투스는 예루살렘을 철저히 고립시키고, 토성을 쌓아 포위망을 좁혔다. 도시 안에서는 식량과 식수 부족으로 기근과 질병이 퍼졌고, 시민들의 고통은 극심해졌다. 결국 수 개월의 포위 끝에 예루살렘은 함락되었고 제2성전은 파괴되었다. 성전의 마지막 흔적으로 서쪽 축대였던 담장 한 장이 남았는데, 이것이 바로 통곡의 벽이다. 이는 유대인에게 있어 종교적·민족적 상징의 소멸을 의미했다.
참고로 제1성전은 솔로몬 왕이 세웠다고 하며 수차례 전쟁을 겪으며 기원전 586년에 파괴되었다
 
예루살렘이 함락된 이후 유대인은 [12]마사다 요새로 퇴각해 최후의 항전을 이어갔다. 마사다는 해발 400미터에 이르는 절벽 위에 세워진 요새로써 접근 자체가 어려웠다. 이에 로마군은 토단을 쌓으면서 요새가 함락될 위기에 처했다. 로마군이 성문을 부수고 쳐들어왔을 때, 그들은 허망한 승리로 만족해야만 했다. 900여 명의 유대인들은 집단 자결을 택하며 패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마사다 유적은 유대인의 저항정신을 반영하는 역사적 현장으로 이스라엘의 민족적 자긍심과 단결을 상징하는 장소가 되었다. 
 
전쟁의 결과는 수십만 명의 유대인이 죽고 수많은 포로가 노예로 팔려갔으며 유대 지방은 로마의 직접 통치를 받게 되었다. 예루살렘과 성전이 파괴되면서 유대교는 제사 중심의 종교 체계에서 랍비 중심의 율법 해석 체계로 전환되었다. 동시에 유대인은 팔레스타인을 떠나 세계 곳곳으로 흩어지게 되었고 [13]디아스포라의 시작이었다.
 
[1] 폼페이우스(Gnaeus Pompeius Magnus, 기원전 106년 9월 29일 ~ 기원전 48년 9월 28일) : 로마 공화정 말기의 유명한 장군이자 정치가. 율리우스 카이사르, 크라수스와 함께 제1차 삼두정치의 일원이었다
[2] 유대지방(Judea) : 오늘날의 이스라엘 중부와 서안 지구(요르단강 서안 지역)의 남부에 해당하는 지역
[3] 야훼(Yahweh) : 고대 이스라엘 민족이 섬긴 유일신으로, 히브리어 성경(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고유한 이름
[4] 게시우스 플로루스(Gessius Florus) : 유대 속국의 총독.재임 기간은 대략 서기 64년부터 66년까지로 추정
[5] 셰스티우스 갈루스(Gaius Cestius Gallus, 67년 사망) : 로마 제국의 원로원 의원이자 시리아 속국의 장군
[6] 네로(Nero, 37년 12월 15일 ~ 68년 6월 9일) : 로마 제국의 제5대 황제(재위 54년 10월 13일 ~ 68년 6월 9일)이자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의 마지막 황제
[7] 베스파시아누스(Vespasianus, 9년 11월 17일 ~ 79년 6월 23일) : 로마 제국의 제9대 황제. 네로 황제 사후에 벌어진 내전인 네명의 황제중 최후의 승자
[8] 티투스 (Titus, 39년 12월 30일 ~ 81년 9월 13일) : 로마 제국의 제10대 황제
[9] 갈릴리(Galilee) : 이스라엘 북부 지방의 이름
[10] 사마리아(Samaria) : 북쪽은 갈릴리, 서쪽은 지중해, 동쪽은 요단강, 남쪽은 유대와 경계를 이루는 이스라엘 왕국의 중심 지역. 200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11] 이두매(Idumea) : 유대의 남쪽 지역
[12] 마사다(Masada) : 이스라엘의 국립공원 겸 성지. 이스라엘 남부, 유대 사막 동쪽에 우뚝솟은 거대한 바위 절벽에 자리잡은 고대의 왕궁이자 요새. 마사다는 히브리어로 '요새'라는 뜻
[13] 디아스포라(Diaspora) : 특정 민족이 원래 살던 땅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흩어져 살면서도 고유한 문화나 정체성을 유지하는 집단을 가리키는 말. 유대인들의 경우, 고대 팔레스타인(오늘날 이스라엘과 요르단 지역)을 떠나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면서도 유대교를 지키고 공동체 의식을 유지하는 것
[14] 예루살렘 성전(Temple in Jerusalem) : 솔로몬 왕이 세운 제1성전은 기원전 586년 바빌로니아가 침공하여 완전히 파괴되었다. 기원전 516년에 유대의 총독인 스룹바벨이 성전을 재건하였는데, 이때 세워진 성전이 제2성전이다. 유대의 왕인 히로데가 증축하기 시작하여 서기 63년에 완공되었다. 이렇게 확장된 건물을 히로데 성전이라 부른다. 예루살렘이 로마 제국에 편입된 뒤 서기 73년 로마 장군 티투스가 제1차 유대-로마 전쟁시 진압하면서 성전이 파괴되었다. 이때 성전의 서쪽의 축대 겸 담장 한 장이 남았는데 이것이 바로 통곡의 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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