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사의 난(安史之亂)
사건기간 : 755년 12월 16일~763년 2월 17일, 조회수 : 429, 등록일 : 2025-06-03
중국 당나라의 절도사인 [1]안록산, [2]사사명등이 일으킨 대규모 반란이다. '안사의 난'이란 안록산과 사사명의 첫글자로 안녹산의 난이라고도 한다.
당시 황제였던 [3]현종은 재위 초기에 인재를 중용하고 정치를 안정시켜 당나라의 전성기를 이끈 군주였다. 그러나 말년에 [8]양귀비에게 깊이 빠져 정사를 멀리하게 되었고, 국정의 중심은 양귀비의 사촌오빠인 [9]양국충과 궁중 환관들에게 넘어갔으며 부정부패가 만연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절도사 안록산이 대규모 반란을 일으켰다. 안록산은 당시 [5]범양, [6]평로, [7]하동 등 3개 지역의 절도사로 군대를 장악하고 있었으며, 이는 북방 군사력의 절반 이상을 그가 통제하고 있었다.
755년에 안록산은 20만 대군을 이끌고 낙양을 함락한 뒤, 곧바로 당나라 수도인 장안을 공격했다. 방어는 무력했고 756년 장안은 무저항으로 함락되었다. 현종은 급히 황족과 일부 신하들을 이끌고 [10]촉 지방으로 도피하게 된다.
도피 중인 현종 행렬은 [11]마외라는 지역에 도착했는데, 여기서 병사들과 신하들이 반란의 책임을 물으며 [9]양국충의 처형을 요구했고, 이어서 반발의 불씨가 될 수 있는 양귀비의 처형까지 강하게 요구하였다. 결국 현종은 눈물을 머금고 양귀비에게 자결을 명한다. 이 사건은 '마외병변(馬嵬兵變)'으로 불리며, 정치적 혼란 속에서 국왕이 개인적 감정을 억누르고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가족을 희생한 사건이었 다.
756년에 아버지 현종이 [10]촉 지방으로 피난한 뒤 자신이 황제라 선언하고 [4]숙종으로 즉위하였다. 그는 [14]곽자의, [15]이광필 등 유능한 장수를 중심으로 토벌군을 조직하고 757년부터 본격적인 반격을 시작하였다. 중앙아시아의 유목 세력인 위구르족과 동맹을 맺어 지원군을 끌어들였다.
안록산은 낙양과 장안을 점령하고 스스로 [12]연 황제를 자처했다. 그러나 그의 통치는 급속히 무너지는 내적 균열을 안고 있었다. 권력 유지에 대한 강박으로 측근들을 자주 처형하거나 의심하는 등 공포정치를 펼쳤다. 특히 그의 아들 [12]안경서를 자신의 후계자로 여기면서도 점점 불신하게 되었다. 이에 불안을 느낀 안경서는 757년에 안록산을 살해하고 장안과 낙양을 점령하여 연의 황위를 이어받았다. 그러나 757년 후반에 당나라-위구르 연합군이 장안과 낙양을 탈환하면서 안경서는 낙양에서 도망쳤다.
759년에 [2]사사명은 안경서를 살해하고 사사명의 난을 일으켜 낙양을 장악하고 스스로 [12]연 황제를 자칭하며 정권을 이어갔다. 사사명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독단적이고 폭력적인 통치를 강화했고 심지어 측근 장수들과 가족들까지 의심을 품으며 숙청을 거듭했다. 이에 위협을 느낀 아들 [14]사조의는 결국 761년에 측근 세력과 함께 아버지인 사사명을 암살하고 연 정권을 장악했다.
당나라 군은 곽좌의, 이광필등을 중심으로 위구르족 원군과 협력하여 주요 전략 거점을 하나씩 회복했다. 특히 위구르 기병대는 낙양 탈환에 큰 역할을 하였다. 사조의는 점점 밀려났고 763년에는 주요 도시와 도로망을 대부분 상실한 채 산악지대나 외곽으로 밀려났다.
결국 사조의는 태행산 일대에서 포위당했고 항복이나 도피의 길도 끊긴 상태에서 자결을 하였다. 그의 죽음과 함께 연 나라 정권은 붕괴했다.
이로써 안사의 난은 종결되었으며, 당나라는 겨우 명맥을 유지하게 되었지만 국가 기강, 군사, 경제, 황실 권위등 모두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이후 당나라는 절도사들의 독립적인 권력 확대를 억제하지 못한 채 지방 분권과 중앙 쇠퇴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1] 안록산(安祿山, 703년 ~ 757년 1월 30일) : 안사의 난을 일으킨 무장으로 스스로 연(燕) 황제를 자처한 인물로 소그드계 또는 돌궐계 혼혈로 알려져 있으며, 북방 이민족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당나라에 충성하며 출세하였다.
[2] 사사명(史思明, ? ~ 761년) : 연 제3대 황제(재위:759년 ~ 761년). 당나라의 무장으로 안사의 난에서 안록산의 부장으로 활약을 했다. 안록산이 아들 안경서에게 살해된 후 당나라에 항복했다가 사사명의 난을 일으켰다. 이후 반군 세력을 재건하며 낙양을 다시 점령하고 반란의 2기 지도자가 되었다.
[3] 현종(玄宗, 685년 9월 8일 ~ 762년 5월 3일) : 중국 당나라의 제6대 황제(재위 : 712년 9월 8일 ~ 756년 8월 12일)
[4] 숙종(肅宗, 711년 10월 19일 ~ 762년 5월 16일) : 중국 당나라의 제7대 황제(재위 :725년 4월 27일 ~ 738년 6월 24일)
[5] 범양(范陽) : 베이징, 톈진, 허베이성 북부
[6] 평로(平盧) : 랴오닝성 서부 및 동북부 일부
[7] 하동(河東) : 산시성 중부, 특히 타이위안시를 중심으로 한 황하 중류 동쪽 일대
[8] 양귀비(楊貴妃, 719년 6월 26일 ~ 756년 7월 15일) : 당나라 현종의 후궁이자 며느리. 양귀비는 이름이 아니라 양(楊)씨 성에 귀비(貴妃)라는 직함이 붙은 호칭
[9] 양국충(楊國忠, ? ~ 756년 7월 15일) : 중국 당나라의 무관, 정치인으로 양귀비의 사촌 오빠. 본명은 양조(楊釗). 환관 고력사 등과 결탁한 환관 정치로 40여 개의 관직을 독점하여 외척 정치의 표본으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10] 촉 지방 : 오늘날 중국의 쓰촨성(사천성)의 대부분에 해당하며, 고대부터 정치·경제·군사적으로 중요한 거점이었다. 현종이 촉 지방으로 피난한 것도, 이 지역이 가지는 천혜의 방어 지형과 정치적 안정성 때문이었다
[11] 마외(馬嵬) : 당나라 시기 장안(오늘날 산시)에서 서쪽으로 가는 주요 교통로 상의 역참(驛站) 중 하나였다. 오늘날 중국 산시성 셴양시 싼위안현에 위치하며 양귀비의 죽음과 관련된 역사적 사건지로 유명하다
[12] 연(燕,기원전11세기~기원전222년) : 중국 춘추 시대 주나라의 제후국이자, 전국 시대의 전국 칠웅 가운데 하나
[13] 안경서(慶,723년 ~ 759년 3월 25일) : 연나라 2대황제. 안록산의 둘째아들. 사사명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재위 : 758년 ~ 759년 3월 25일)
[14] 사조의(史朝義, ? ~ 763년) : 사사명의 장남. 연 제4대 황제(재위 : 761년 ~ 763년)
[14] 곽좌의(郭子儀, 697년~781년) : 중국 당나라의 명장. 안사의 난에서 큰 공을 세우고 이후로도 잇따른 토번, 위구르의 침입을 막아냈다
[15] 이광필(李光弼, 708년 ~ 764년) : 중국 당나라의 명장. 곽자의와 함께 '이곽(李郭)'이라는 존칭으로 불린다
당시 황제였던 [3]현종은 재위 초기에 인재를 중용하고 정치를 안정시켜 당나라의 전성기를 이끈 군주였다. 그러나 말년에 [8]양귀비에게 깊이 빠져 정사를 멀리하게 되었고, 국정의 중심은 양귀비의 사촌오빠인 [9]양국충과 궁중 환관들에게 넘어갔으며 부정부패가 만연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절도사 안록산이 대규모 반란을 일으켰다. 안록산은 당시 [5]범양, [6]평로, [7]하동 등 3개 지역의 절도사로 군대를 장악하고 있었으며, 이는 북방 군사력의 절반 이상을 그가 통제하고 있었다.
755년에 안록산은 20만 대군을 이끌고 낙양을 함락한 뒤, 곧바로 당나라 수도인 장안을 공격했다. 방어는 무력했고 756년 장안은 무저항으로 함락되었다. 현종은 급히 황족과 일부 신하들을 이끌고 [10]촉 지방으로 도피하게 된다.
도피 중인 현종 행렬은 [11]마외라는 지역에 도착했는데, 여기서 병사들과 신하들이 반란의 책임을 물으며 [9]양국충의 처형을 요구했고, 이어서 반발의 불씨가 될 수 있는 양귀비의 처형까지 강하게 요구하였다. 결국 현종은 눈물을 머금고 양귀비에게 자결을 명한다. 이 사건은 '마외병변(馬嵬兵變)'으로 불리며, 정치적 혼란 속에서 국왕이 개인적 감정을 억누르고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가족을 희생한 사건이었 다.
756년에 아버지 현종이 [10]촉 지방으로 피난한 뒤 자신이 황제라 선언하고 [4]숙종으로 즉위하였다. 그는 [14]곽자의, [15]이광필 등 유능한 장수를 중심으로 토벌군을 조직하고 757년부터 본격적인 반격을 시작하였다. 중앙아시아의 유목 세력인 위구르족과 동맹을 맺어 지원군을 끌어들였다.
안록산은 낙양과 장안을 점령하고 스스로 [12]연 황제를 자처했다. 그러나 그의 통치는 급속히 무너지는 내적 균열을 안고 있었다. 권력 유지에 대한 강박으로 측근들을 자주 처형하거나 의심하는 등 공포정치를 펼쳤다. 특히 그의 아들 [12]안경서를 자신의 후계자로 여기면서도 점점 불신하게 되었다. 이에 불안을 느낀 안경서는 757년에 안록산을 살해하고 장안과 낙양을 점령하여 연의 황위를 이어받았다. 그러나 757년 후반에 당나라-위구르 연합군이 장안과 낙양을 탈환하면서 안경서는 낙양에서 도망쳤다.
759년에 [2]사사명은 안경서를 살해하고 사사명의 난을 일으켜 낙양을 장악하고 스스로 [12]연 황제를 자칭하며 정권을 이어갔다. 사사명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독단적이고 폭력적인 통치를 강화했고 심지어 측근 장수들과 가족들까지 의심을 품으며 숙청을 거듭했다. 이에 위협을 느낀 아들 [14]사조의는 결국 761년에 측근 세력과 함께 아버지인 사사명을 암살하고 연 정권을 장악했다.
당나라 군은 곽좌의, 이광필등을 중심으로 위구르족 원군과 협력하여 주요 전략 거점을 하나씩 회복했다. 특히 위구르 기병대는 낙양 탈환에 큰 역할을 하였다. 사조의는 점점 밀려났고 763년에는 주요 도시와 도로망을 대부분 상실한 채 산악지대나 외곽으로 밀려났다.
결국 사조의는 태행산 일대에서 포위당했고 항복이나 도피의 길도 끊긴 상태에서 자결을 하였다. 그의 죽음과 함께 연 나라 정권은 붕괴했다.
이로써 안사의 난은 종결되었으며, 당나라는 겨우 명맥을 유지하게 되었지만 국가 기강, 군사, 경제, 황실 권위등 모두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이후 당나라는 절도사들의 독립적인 권력 확대를 억제하지 못한 채 지방 분권과 중앙 쇠퇴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1] 안록산(安祿山, 703년 ~ 757년 1월 30일) : 안사의 난을 일으킨 무장으로 스스로 연(燕) 황제를 자처한 인물로 소그드계 또는 돌궐계 혼혈로 알려져 있으며, 북방 이민족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당나라에 충성하며 출세하였다.
[2] 사사명(史思明, ? ~ 761년) : 연 제3대 황제(재위:759년 ~ 761년). 당나라의 무장으로 안사의 난에서 안록산의 부장으로 활약을 했다. 안록산이 아들 안경서에게 살해된 후 당나라에 항복했다가 사사명의 난을 일으켰다. 이후 반군 세력을 재건하며 낙양을 다시 점령하고 반란의 2기 지도자가 되었다.
[3] 현종(玄宗, 685년 9월 8일 ~ 762년 5월 3일) : 중국 당나라의 제6대 황제(재위 : 712년 9월 8일 ~ 756년 8월 12일)
[4] 숙종(肅宗, 711년 10월 19일 ~ 762년 5월 16일) : 중국 당나라의 제7대 황제(재위 :725년 4월 27일 ~ 738년 6월 24일)
[5] 범양(范陽) : 베이징, 톈진, 허베이성 북부
[6] 평로(平盧) : 랴오닝성 서부 및 동북부 일부
[7] 하동(河東) : 산시성 중부, 특히 타이위안시를 중심으로 한 황하 중류 동쪽 일대
[8] 양귀비(楊貴妃, 719년 6월 26일 ~ 756년 7월 15일) : 당나라 현종의 후궁이자 며느리. 양귀비는 이름이 아니라 양(楊)씨 성에 귀비(貴妃)라는 직함이 붙은 호칭
[9] 양국충(楊國忠, ? ~ 756년 7월 15일) : 중국 당나라의 무관, 정치인으로 양귀비의 사촌 오빠. 본명은 양조(楊釗). 환관 고력사 등과 결탁한 환관 정치로 40여 개의 관직을 독점하여 외척 정치의 표본으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10] 촉 지방 : 오늘날 중국의 쓰촨성(사천성)의 대부분에 해당하며, 고대부터 정치·경제·군사적으로 중요한 거점이었다. 현종이 촉 지방으로 피난한 것도, 이 지역이 가지는 천혜의 방어 지형과 정치적 안정성 때문이었다
[11] 마외(馬嵬) : 당나라 시기 장안(오늘날 산시)에서 서쪽으로 가는 주요 교통로 상의 역참(驛站) 중 하나였다. 오늘날 중국 산시성 셴양시 싼위안현에 위치하며 양귀비의 죽음과 관련된 역사적 사건지로 유명하다
[12] 연(燕,기원전11세기~기원전222년) : 중국 춘추 시대 주나라의 제후국이자, 전국 시대의 전국 칠웅 가운데 하나
[13] 안경서(慶,723년 ~ 759년 3월 25일) : 연나라 2대황제. 안록산의 둘째아들. 사사명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재위 : 758년 ~ 759년 3월 25일)
[14] 사조의(史朝義, ? ~ 763년) : 사사명의 장남. 연 제4대 황제(재위 : 761년 ~ 763년)
[14] 곽좌의(郭子儀, 697년~781년) : 중국 당나라의 명장. 안사의 난에서 큰 공을 세우고 이후로도 잇따른 토번, 위구르의 침입을 막아냈다
[15] 이광필(李光弼, 708년 ~ 764년) : 중국 당나라의 명장. 곽자의와 함께 '이곽(李郭)'이라는 존칭으로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