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즈버러 참사(Hillsborough disaster)

영국 사건기간 : 1989년 4월 15일, 조회수 : 268,   등록일 : 2025-04-23
힐스버러 참사는 잉글랜드 셰필드의 힐스버러 스타디움(Hillsborough Stadium)에서 발생한 대형 군중 압사 사고로 총 97명이 사망하고 766명이 부상을 입은 최악의 축구 경기 참사다. 이 참사는 [1]FA컵 준결승 경기인 리버풀 FC와 노팅엄 포레스트 FC의 경기 도중 발생했다.
 
당시 힐스버러 스타디움은 리그가 아닌 중립 구장에서 열린 경기였으며, 양 팀의 팬들이 각각 다른 스탠드에 배정되었다. 리버풀 팬들이 들어가기로 되어 있던 곳의 출입문은 회전식이라 몰려드는 인파 때문에 많은 사람이 들어가기 힘들었다. 경찰은 빠르게 입장시키기 위해 출구로 사용하던 출입문(게이트 C)을 개방하였다.
 
이로 인해 수천 명의 인파가 한꺼번에 좁은 입구와 터널을 통해 밀려 들어갔고, 중앙 앞쪽에 위치한 스탠드에서 극심한 압박이 발생했다. 앞쪽 구역의 관중들은 난간과 철제 울타리에 갇혀 움직일 수 없었고 구조나 퇴장도 불가능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관중이 압사하거나 압박으로 인한 질식사로 숨졌다.
 
경기 시작 6분 만에 상황이 심각했지, 경기장 내부에서 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경찰과 경기 관계자들은 경기를 중단하지 않았다. 경기 중단과 구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참사가 이미 발생한 이후였다.
 
사고 직후 영국 언론은 리버풀 팬들의 난동과 술에 취한 행동이 사고의 원인이라고 보도했으며, 특히 더 선(The Sun)의 보도는 "팬들이 죽은 사람의 지갑을 훔쳤다"는 등의 허위 주장으로 리버풀 시민들의 분노를 샀다. 이는 리버풀 지역에서 수십 년간 더 선 신문이 불매당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이후 여러 차례의 조사와 독립적 진상조사 보고서를 통해 밝혀진 바에 따르면 참사의 주된 원인은 경찰과 경기 운영 측의 잘못된 군중 관리, 비효율적인 경기장 구조, 늦은 응급 대응이었다. 팬들은 오히려 참사의 피해자였으며, 초동 대처의 실패와 경찰의 은폐 시도가 추가 피해를 키웠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2016년 4월 26일 법원 배심원단이 "사망자 97명은 경찰의 과실과 조직적 실패에 의해 불법적으로 사망했다"고 공식 판결하였다. 이후 경찰과 관련자들에 대한 재판이 이어졌지만 많은 이들이 실질적인 처벌을 피하면서 피해자 가족과 시민사회는 여전히 정의 실현을 요구하고 있다.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리버풀의 홈구장 안필드에 힐스버러 추모비를 세워 구단 차원에서 매년 4월 15일 추모제를 열고있다.
 
힐스버러 참사는 영국 내 스포츠 경기장 안전 기준과 군중 통제 방식에 큰 영향을 미쳤다. 경기장 좌석화 정책(standing 구역 폐지)과 안전 설계 기준의 개정을 이끌어냈고, 이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전체 구조와 팬 문화를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1] FA컵(Football Association Challenge Cup) : 잉글랜드 축구 협회 챌리지 컵. 잉글랜드 축구 협회에 속한 모든 구단들이 우승팀을 가리는 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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