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상륙작전(Battle of Jangsari)

대한민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건기간 : 1950년 9월 14일~1950년 9월 19일, 조회수 : 181,   등록일 : 2025-01-26
장사 상륙작전은 한국전쟁 당시 1950년 9월 14일부터 9월 19일까지 경상북도 영덕군 장사리 해변에서 상륙작전을 포함한 전툭이다. 이 작전은 대한민국 국군 제1유격대대(772명의 대원)가 주축이 되었으며, 병력은 대부분 훈련 기간이 짧았던 학생병들로 구성되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남침으로 전쟁이 시작되며 대한민국과 유엔군은 밀리는 상황이었다. 전세를 뒤집기 위해 당시 유엔군 사령관인  [2]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이 기획한 인천상륙작전은 북한군의 후방을 교란하고 수도 서울을 탈환하는 데 중대한 의미를 가진 작전이었다. 그러나 북한군의 방어를 분산시키고 작전 성공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추가적인 작전이 필요했다. 이에 따라 장사 상륙작전이 기획되었다.
 
장사 상륙작전은[1] LST 문산호 1척을 이용해 이루어졌다. 상륙함은 목선으로 위장되었고, 9월 14일 부산항을 출발한 이후, 9월 15일 06:00에 상륙작전이 개시되었다.  대원들은 해변에 상륙하자마자 북한군의 후방 교란을 목표로 주요 도로와 철도 시설을 파괴하고 북한군의 병참선을 끊는 활동을 시작했다. 이들은 경상북도 영덕 지역에서 심리전을 수행하며 북한군의 주의를 분산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작전 과정에서 몇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기상 악화로 인해 LST가 암초에 좌초되었고, 장비와 물자가 충분히 상륙하지 못했다. 또한 북한군의 예상보다 강력한 저항으로 인해 많은 대원이 전사하거나 부상을 입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원들은 끝까지 작전을 수행하며 북한군의 혼란을 유발했다.
 
장사 상륙작전은 작전 자체로는 제한적인 성과를 거두었으나, 북한군의 병력을 분산시키는 데 성공하여 인천상륙작전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데 중요한 기여를 했다.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면서 전세는 유엔군과 대한민국 국군에게 유리하게 전환되었다.
 
장사 상륙작전에 참여한 많은 대원들은 전사하거나 부상을 입었고, 그 희생은 이후 오랜 시간 동안 주목받지 못했다. LST 문산호는 좌초된 뒤 그대로 잊혀졌다가, 시간이 지나 1997년 3월 6일에 발견되어 인양되었다. 1997년, 작전에 대한 공로가 공식적으로 인정되었고, 이후 이를 기념하기 위해 경상북도 영덕군 장사리에는 장사상륙작전 전승기념공원이 조성되었다. 이곳에는 작전 당시 대원들의 희생과 헌신을 기리는 추모비와 전시물이 마련되어 있다.
 
장사 상륙작전은 전투의 성공 여부를 떠나, 국가를 위해 희생한 젊은이들의 용기와 애국심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이다. 오늘날 이 작전은 인천상륙작전과 함께 한국전쟁 당시 대한민국의 저항과 생존 의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받고 있다.
 
[1] LST 문산 : LST-120(Landing Ship, Tank 120)은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미국 해군 USS LST-120, 한국 전쟁 당시 대한민국 해군에서 LST 문산으로서 활동했던 전차상륙함이었다
[2] 더글라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 1880년 1월 26일~1964년 4월 5일) :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미합중국군과 연합군의 지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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