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War of the Austrian Succession)
네덜란드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
스페인
독일
오스트리아
사건기간 : 1740년 12월 16일~1748년 10월 18일, 조회수 : 532, 등록일 : 2024-07-13
중세 유럽은 루터의 종교개혁과 [15]아우크스부르크화의, 30년 전쟁, [16]베스트팔렌조약으로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권위는 추락하였다. [9]프로이센, [10]작센, 바이에른 등과 같은 유력한 [8]선제후국들의 세력이 커지기 시작했다.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은 여성의 왕위 계승을 금지하는 '살리카법'에 따라 오스트리아 [1]합스부르크 왕가의 국왕이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3]카를 6세의 장녀인 [2]마리아 테레지아의 왕의 계승을 둘러싸고 각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개입되면서 시작되었다.
카를 6세는 유일한 아들이 일찌기 사망하여 딸인 [2]마리아 테레지아가 왕위를 계승하기를 원했다. 살라카법에 따라 [2]마리아 테레지아의 왕위 계승은 불가능했지만, [3]카를 6세는 즉위초인 1713년 여성 왕위 승계 금지 조항을 부정하는 [6]국사조칙을 내놓으며 재임 기간 내내 주변국인 선제후국들을 설득하여 승인받는다.
그러나 카를 6세 말년에 두차례의 전쟁(1737~38년의 폴란드 왕위 계승 전쟁, 오스만 전쟁)에서 모두 패배하면서 [6]국사조칙의 의미가 퇴색해 버렸다. 전쟁의 후휴증과 쇠약해진 카를 6세는 1740년 10월 20일 사망하고 [2]마리아 테레지아가 즉위하였다.
오스트리아 [1]합스부르크 왕가의 계승 문제는 신성로마제국의 제위 계승과도 관련이 있었다. 황제 자리는 계속 합스부르크 왕가가 독차지하고 있었고, [8]선제후들은 황제선거에서 왕가를 지지하면서 대가를 요구할 수도 있었다.
1740년 5월 31일 즉위한 [9]프로이센의 젊은 선제후인 [17]프리드리히 2세는 오스트리아령 [11]슐레지엔 지역을 요구하였으나 거부당하자 1740년 11월 16일 [11]슐레지엔을 침공하면서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를 계기로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은 확대되기 시작했다.
카를 6세의 형인 [4]요제프 1세의 차녀와 결혼한 바이에른 선제후 [5]카를 알브레히트(후 카를 7세)는 프랑스의 지원을 받아 비텔스바흐 가문이 오스트리아의 상속권에 대한 권리를 갖는다는 계약서를 내세우며 [6]국사조칙 승인을 번복하고 자신이 정당한 상속자라며 합스부르크 가문의 승계를 요구하며 황제선거에 출마하였다. [4]요제프 1세의 장녀와 결혼한 [10]작센 선제후 [13]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2세는 프랑스와 동맹을 맺었지만 1742년 선회하여 오스트리아를 지원하였다.
프랑스의 루이 15세는 오스트리아령 네덜란드로 진격할 준비와 함께 바이에른을 지원했다.
전쟁선포후 바이에른 선제후 [5]카를 알브레히트는 카를 7세로 신성로마제국 황제로 인정받았으나 1742년 대관식후 단 하루도 신성 로마 제국 황제로서의 권위와 권력을 전혀 누리지 못하고, 결국 통치할 영토를 잃었다. 초반에는 선전했으나 후반 수세에 몰리면서 지병으로 1745년에 사망한다.
바이에른을 지원한 프랑스는 카를 알브레히트의 죽음으로 얻은 것 없이 재정만 축내고 전쟁을 끝낼 수밖에 없었다.
북아메리카와 인도를 둘러싼 프랑스와 패권 경쟁중인 영국은 오스트리아령 네덜란드가 무너질 경우 영국과 [12]동군연합을 이루고 있는 하노버 선제후국이 위험해진다는 판단으로 오스트리아를 지원했다.
스페인과 나폴리 왕국의 군대는 이탈리아 북부로 진격하며 이탈리아의 오스트리아 세력을 밀어낼 기회를 노렸다.
[14]사르데냐 왕국은 오스트리아의 편을 들어 참전하였고, 이의 결과로 밀라노 근처까지 영토를 확장하였다.
스웨덴은 프로이센에 동조하여 오랜 숙적이자 오스트리아의 유일한 동맹국이었던 러시아와 전쟁(1741년~1743년)이 시작되어 러시아가 오스트리아를 지원할 수 없도록 견제하였다. 이 전쟁에서 스웨덴은 러시아에 대패하였다.
이 전쟁은 1748년 [17]엑스라샤펠 조약이 체결됨과 함께 종결되었다.
조약의 주요내용은 마리아 테레지아와 오스트리아는 프로이센에게 슐레지엔을 양도하는 대가로 합스부르크 왕가의 계승이 인정되었다. 이는 곧 7년 전쟁의 원인이 되었다.
프로이센이 유럽의 강대국으로 급성장하게 되었으며, 이후 20세기 초반까지 이어지는 유럽 주요 국가들의 구도가 형성되었다.
[1] 합스부르크(Habsburg) 왕가 : 1526년부터 1918년까지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가문이 통치한 영토를 통칭하여 부르는 말. 유럽 왕실 가문들 중 가장 영향력있던 가문 중 하나
[2] 마리아 테레지아(Maria Theresa, ) :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유일한 여성 군주이자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지막 군주. 재위기간(1745년 9월 13일~1765년 8월 18일)
[3] 카를 6세(Karl VI, 1685년~1740년) : 신성 로마 제국 합스부르크 왕가의 황제, 재위기간(1711년 10월 12일 ~ 1740년 10월 20일). 보헤미아의 국왕, 헝가리와 크로아티아의 국왕
[4] 요제프 1세(Joseph I, 1678년~1711년) : 신성 로마 제국 합스부르크 왕가의 황제. 카를 6세의 친형. 재위기간(1705년 5월 5일~1711년 4월 17일). 보헤미아의 국왕, 헝가리와 크로아티아의 국왕
[5] 카를 알브레히트(Karl Albrecht, 1697년~1745년) : 카를 7세. 신성로마제국의 비텔스바흐 가문의 황제. 재위기간(1742년 1월 24일 ~ 1745년 1월 20일). 바이에른 선제후
[6] 국사조칙(Pragmatic sanction) : 카를 6세가 1713년 발표한 칙령으로 당시 여성의 상속을 금지하는 살리카법을 부정하고 합스부르크 왕가에서 여성의 왕위 계승권을 인정하는 내용이다
[7] 신성로마제국(Holy Roman Empire) : 중앙유럽과 서유럽의 여러민족의 영지와 정치적 조직인 선제후국으로 형성되었으며 황제가 중심이 되어 이끌었다. 962년부터 1806년 해체될 때까지 약 800년 이상 존속되었다
[8] 선제후 : 신성로마제국 황제는 황제선거를 개최하여 투표에 의해 선출되었는데 황제를 선출할 선거권을 가진 신성로마제국 내의 영주
[9] 프로이센 왕국(Kingdom of Prussia) : 신성로마제국 동북족의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국에서 1701년 왕국을 성립해 1918년까지 존속했던 왕국.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프리드리히 3세는 1701년 1월 18일 쾨니히스베르크를 수도 로 삼아 그곳에서 대관식을 거행하여, 프로이센의 왕 프리드리히 1세가 되었다. 이후 프로이센 왕국은 독일제국의 선언을 이끌었으며, 1차대전의 패전과 함께 1918년 11월 9일에 종말을 맞이하였다
[10] 작센 왕국(Kingdom of Saxony) : 아스카니아 가문(Haus Askania)의 작센-비텐베르크 공국(Herzogtum Sachsen-Wittenberg)이 1356년 금인칙서(중세, 르네상스 시대의 유럽에서 군주가 수여한 문서)로 신성로마제국의 카를 4세로 부터 선제후 작위를 부여받아 성립된 국가. 1422년 아스카이나 가문의 마지막 선제후가 후손없이 사망하자, 베틴 가문의 프리드리히 4세가 선제후 프리드리히 1세로 임명되었다. 1806년 제국이 해체된 후, 프리드리히 3세는 작센 선제후국을 작센왕국으로 승격시켰다. 작센왕국은 1806년부터 1918년까지 독일 중부에 있던 왕국이다
[11] 슐레지엔(Silesia) : 중세 유럽 최대 공업지대. 프로이센 왕국 산하의 행정구역 중 하나로 독일 제국 시기까지 존재했으나 현재는 폴란드의 남서부, 독일 작센 주의 일부, 체코 북동부 일부에 걸친 역사적 지역으로 대부분 폴란드에 속해 있다
[12] 동군연합(同君聯合, Personal Union) : 군주 혹은 그 배우자가 되어, 결혼 관계를 매개로 둘 이상의 국가들을 하나로 병합하지 않고 연합하여 주권을 그대로 인정해 주고 통치하는 것
[13]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2세(Friedrich August II, 1696년~1763년) : 작센 선제후. 재위(1733년 2월 1일 ~ 1763년 10월 5일)
[14] 사르데냐 왕국(Kingdom of Sardinia) :1720년부터 1861년까지 수도 토리노를 중심으로 존재했던 이탈리아 왕국. 통일 이탈리아 왕국의 전신이 되는 국가이다
[15] 아우크스부르크 화의(The Peace of Augsburg, Augsburg Settlement) : 1555년 9월 25일 아우크스부르크에서 맺어진 카를 5세와 프로테스탄트(개신교) 제후들과 체결된 종교협약. 이는 로마 가톨릭교회와 개신교간의 갈등을 일시적으로 봉합한 것
[16] 베스트팔렌 조약(Peace of Westfalen) : 1648년 로마 가톨릭세력과 개신교세력간의 30년 전쟁을 끝마치기 위해 1648년에 체결된 평화 조약
[17] 프리드리히 2세(Friedrich II, 1712년~1786년) : 프로이센 왕국의 제3대 프로이센 국왕(재위:1740년 5월 31일~1786년 8월 17일). 유럽의 대표적인 계몽주의 군주. 신성 로마 제국의 해체와 독일 통일을 이루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후세에 독일인들로부터 프리드리히 대왕(Friedrich the Great), 영광의 프리드리히(honor of Frederick) 등으로 불리게 된다
[17] 엑스라샤펠 조약(Treaty of Aix-la-Chapelle) : 1748년 10월 18일 신성 로마 제국의 아헨에서 체결된 조약으로 아헨 조약(Treaty of Aachen)이라고도 한다.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공화국, 스페인, 사르데냐 왕국, 오스트리아(합스부르크 군주국)가 서명했다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은 여성의 왕위 계승을 금지하는 '살리카법'에 따라 오스트리아 [1]합스부르크 왕가의 국왕이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3]카를 6세의 장녀인 [2]마리아 테레지아의 왕의 계승을 둘러싸고 각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개입되면서 시작되었다.
카를 6세는 유일한 아들이 일찌기 사망하여 딸인 [2]마리아 테레지아가 왕위를 계승하기를 원했다. 살라카법에 따라 [2]마리아 테레지아의 왕위 계승은 불가능했지만, [3]카를 6세는 즉위초인 1713년 여성 왕위 승계 금지 조항을 부정하는 [6]국사조칙을 내놓으며 재임 기간 내내 주변국인 선제후국들을 설득하여 승인받는다.
그러나 카를 6세 말년에 두차례의 전쟁(1737~38년의 폴란드 왕위 계승 전쟁, 오스만 전쟁)에서 모두 패배하면서 [6]국사조칙의 의미가 퇴색해 버렸다. 전쟁의 후휴증과 쇠약해진 카를 6세는 1740년 10월 20일 사망하고 [2]마리아 테레지아가 즉위하였다.
오스트리아 [1]합스부르크 왕가의 계승 문제는 신성로마제국의 제위 계승과도 관련이 있었다. 황제 자리는 계속 합스부르크 왕가가 독차지하고 있었고, [8]선제후들은 황제선거에서 왕가를 지지하면서 대가를 요구할 수도 있었다.
1740년 5월 31일 즉위한 [9]프로이센의 젊은 선제후인 [17]프리드리히 2세는 오스트리아령 [11]슐레지엔 지역을 요구하였으나 거부당하자 1740년 11월 16일 [11]슐레지엔을 침공하면서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를 계기로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은 확대되기 시작했다.
카를 6세의 형인 [4]요제프 1세의 차녀와 결혼한 바이에른 선제후 [5]카를 알브레히트(후 카를 7세)는 프랑스의 지원을 받아 비텔스바흐 가문이 오스트리아의 상속권에 대한 권리를 갖는다는 계약서를 내세우며 [6]국사조칙 승인을 번복하고 자신이 정당한 상속자라며 합스부르크 가문의 승계를 요구하며 황제선거에 출마하였다. [4]요제프 1세의 장녀와 결혼한 [10]작센 선제후 [13]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2세는 프랑스와 동맹을 맺었지만 1742년 선회하여 오스트리아를 지원하였다.
프랑스의 루이 15세는 오스트리아령 네덜란드로 진격할 준비와 함께 바이에른을 지원했다.
전쟁선포후 바이에른 선제후 [5]카를 알브레히트는 카를 7세로 신성로마제국 황제로 인정받았으나 1742년 대관식후 단 하루도 신성 로마 제국 황제로서의 권위와 권력을 전혀 누리지 못하고, 결국 통치할 영토를 잃었다. 초반에는 선전했으나 후반 수세에 몰리면서 지병으로 1745년에 사망한다.
바이에른을 지원한 프랑스는 카를 알브레히트의 죽음으로 얻은 것 없이 재정만 축내고 전쟁을 끝낼 수밖에 없었다.
북아메리카와 인도를 둘러싼 프랑스와 패권 경쟁중인 영국은 오스트리아령 네덜란드가 무너질 경우 영국과 [12]동군연합을 이루고 있는 하노버 선제후국이 위험해진다는 판단으로 오스트리아를 지원했다.
스페인과 나폴리 왕국의 군대는 이탈리아 북부로 진격하며 이탈리아의 오스트리아 세력을 밀어낼 기회를 노렸다.
[14]사르데냐 왕국은 오스트리아의 편을 들어 참전하였고, 이의 결과로 밀라노 근처까지 영토를 확장하였다.
스웨덴은 프로이센에 동조하여 오랜 숙적이자 오스트리아의 유일한 동맹국이었던 러시아와 전쟁(1741년~1743년)이 시작되어 러시아가 오스트리아를 지원할 수 없도록 견제하였다. 이 전쟁에서 스웨덴은 러시아에 대패하였다.
이 전쟁은 1748년 [17]엑스라샤펠 조약이 체결됨과 함께 종결되었다.
조약의 주요내용은 마리아 테레지아와 오스트리아는 프로이센에게 슐레지엔을 양도하는 대가로 합스부르크 왕가의 계승이 인정되었다. 이는 곧 7년 전쟁의 원인이 되었다.
프로이센이 유럽의 강대국으로 급성장하게 되었으며, 이후 20세기 초반까지 이어지는 유럽 주요 국가들의 구도가 형성되었다.
[1] 합스부르크(Habsburg) 왕가 : 1526년부터 1918년까지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가문이 통치한 영토를 통칭하여 부르는 말. 유럽 왕실 가문들 중 가장 영향력있던 가문 중 하나
[2] 마리아 테레지아(Maria Theresa, ) :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유일한 여성 군주이자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지막 군주. 재위기간(1745년 9월 13일~1765년 8월 18일)
[3] 카를 6세(Karl VI, 1685년~1740년) : 신성 로마 제국 합스부르크 왕가의 황제, 재위기간(1711년 10월 12일 ~ 1740년 10월 20일). 보헤미아의 국왕, 헝가리와 크로아티아의 국왕
[4] 요제프 1세(Joseph I, 1678년~1711년) : 신성 로마 제국 합스부르크 왕가의 황제. 카를 6세의 친형. 재위기간(1705년 5월 5일~1711년 4월 17일). 보헤미아의 국왕, 헝가리와 크로아티아의 국왕
[5] 카를 알브레히트(Karl Albrecht, 1697년~1745년) : 카를 7세. 신성로마제국의 비텔스바흐 가문의 황제. 재위기간(1742년 1월 24일 ~ 1745년 1월 20일). 바이에른 선제후
[6] 국사조칙(Pragmatic sanction) : 카를 6세가 1713년 발표한 칙령으로 당시 여성의 상속을 금지하는 살리카법을 부정하고 합스부르크 왕가에서 여성의 왕위 계승권을 인정하는 내용이다
[7] 신성로마제국(Holy Roman Empire) : 중앙유럽과 서유럽의 여러민족의 영지와 정치적 조직인 선제후국으로 형성되었으며 황제가 중심이 되어 이끌었다. 962년부터 1806년 해체될 때까지 약 800년 이상 존속되었다
[8] 선제후 : 신성로마제국 황제는 황제선거를 개최하여 투표에 의해 선출되었는데 황제를 선출할 선거권을 가진 신성로마제국 내의 영주
[9] 프로이센 왕국(Kingdom of Prussia) : 신성로마제국 동북족의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국에서 1701년 왕국을 성립해 1918년까지 존속했던 왕국.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프리드리히 3세는 1701년 1월 18일 쾨니히스베르크를 수도 로 삼아 그곳에서 대관식을 거행하여, 프로이센의 왕 프리드리히 1세가 되었다. 이후 프로이센 왕국은 독일제국의 선언을 이끌었으며, 1차대전의 패전과 함께 1918년 11월 9일에 종말을 맞이하였다
[10] 작센 왕국(Kingdom of Saxony) : 아스카니아 가문(Haus Askania)의 작센-비텐베르크 공국(Herzogtum Sachsen-Wittenberg)이 1356년 금인칙서(중세, 르네상스 시대의 유럽에서 군주가 수여한 문서)로 신성로마제국의 카를 4세로 부터 선제후 작위를 부여받아 성립된 국가. 1422년 아스카이나 가문의 마지막 선제후가 후손없이 사망하자, 베틴 가문의 프리드리히 4세가 선제후 프리드리히 1세로 임명되었다. 1806년 제국이 해체된 후, 프리드리히 3세는 작센 선제후국을 작센왕국으로 승격시켰다. 작센왕국은 1806년부터 1918년까지 독일 중부에 있던 왕국이다
[11] 슐레지엔(Silesia) : 중세 유럽 최대 공업지대. 프로이센 왕국 산하의 행정구역 중 하나로 독일 제국 시기까지 존재했으나 현재는 폴란드의 남서부, 독일 작센 주의 일부, 체코 북동부 일부에 걸친 역사적 지역으로 대부분 폴란드에 속해 있다
[12] 동군연합(同君聯合, Personal Union) : 군주 혹은 그 배우자가 되어, 결혼 관계를 매개로 둘 이상의 국가들을 하나로 병합하지 않고 연합하여 주권을 그대로 인정해 주고 통치하는 것
[13]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2세(Friedrich August II, 1696년~1763년) : 작센 선제후. 재위(1733년 2월 1일 ~ 1763년 10월 5일)
[14] 사르데냐 왕국(Kingdom of Sardinia) :1720년부터 1861년까지 수도 토리노를 중심으로 존재했던 이탈리아 왕국. 통일 이탈리아 왕국의 전신이 되는 국가이다
[15] 아우크스부르크 화의(The Peace of Augsburg, Augsburg Settlement) : 1555년 9월 25일 아우크스부르크에서 맺어진 카를 5세와 프로테스탄트(개신교) 제후들과 체결된 종교협약. 이는 로마 가톨릭교회와 개신교간의 갈등을 일시적으로 봉합한 것
[16] 베스트팔렌 조약(Peace of Westfalen) : 1648년 로마 가톨릭세력과 개신교세력간의 30년 전쟁을 끝마치기 위해 1648년에 체결된 평화 조약
[17] 프리드리히 2세(Friedrich II, 1712년~1786년) : 프로이센 왕국의 제3대 프로이센 국왕(재위:1740년 5월 31일~1786년 8월 17일). 유럽의 대표적인 계몽주의 군주. 신성 로마 제국의 해체와 독일 통일을 이루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후세에 독일인들로부터 프리드리히 대왕(Friedrich the Great), 영광의 프리드리히(honor of Frederick) 등으로 불리게 된다
[17] 엑스라샤펠 조약(Treaty of Aix-la-Chapelle) : 1748년 10월 18일 신성 로마 제국의 아헨에서 체결된 조약으로 아헨 조약(Treaty of Aachen)이라고도 한다.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공화국, 스페인, 사르데냐 왕국, 오스트리아(합스부르크 군주국)가 서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