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포왜란(三浦倭亂)
대한민국
일본
사건기간 : 1510년 4월 4일~1510년 4월 19일, 조회수 : 400, 등록일 : 2024-05-26
고려말부터 무질서하게 들어오는 왜인들의 통제를 위해서 조선건국 이후 대마도를 정벌하는 강경책으로 맞서면서 1443년(세종 25)에 왜구들에게 삼포([1]부산포·[2]제포·[3]염포)에 무역 및 상업활동을 허가하는 유화책을 병행하였다.
그리고 무역과 상업활동이 끝나면 곧 돌아가게 하되, [4]항거 왜인이라 하여 거류한 지 오래된 60명 정도 잔류할 것을 허락하였다. 그러나 점차 무역이 성행하고 교류가 늘자 왜인들은 계속 삼포에 들어와 거류했으며, 그 수가 해마다 증가하여 커다란 정치적·사회적 문제로 제기되었다.
[14]중종반정 이후 정치 개혁의 일환으로 왜인에 대한 단속과 통제를 강화하였다. 이에 왜인들의 불만이 고조되어 충돌이 잦게 되었다.
특히 [1]부산포의 [5]첨절제사 [6]이우증은 왜인들에게 가학적인 처벌을 하여 왜인들의 불만을 더욱 고조시켰다.
1510년 4월 4일 일본 대마도 [8]다이칸의 아들인 [9]소모리를 대장으로 약 5,000명의 왜인들을 이끌고 부산포, 제포를 점령하고 여세를 몰아 [2]웅천과 [1]동래를 공격하였다. 이 과정에서 부산포 [5]첨절제사인 이우증이 살해되고 제포 [5]첨절제사인 김세균(金世均)이 납치되는 등 인명 손실과 민간에 대한 약탈이 자행되었다.
이에 조선 조정에서는 [12]황형과 [13]유담년을 각각 [11]경상좌도방어사·[11]우도방어사로 임명하여 이들을 진압하게 하였다. 1510년 4월 19일[2] 제포에 모여있는 왜인들을 세 갈래로 포위하여 8시간 동안 협공한 끝에 물리쳤다.
그 결과 [9]소모리는 사망했고 삼포에 거주하던 왜인들은 모두 대마도로 도주하여 난은 평정되었다.
이 난으로 조선측은 병사와 민간인 272명이 피살되고 민가 796호가 불타 파괴되었으며, 왜선 5척이 격침되고 295명이 사망 및 포로가 되었다.
[참조문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6916
- 나무위키, 위키백과 : 삼포왜란
[1] 부산포(富山浦) : 현재 부산의 동래
[2] 제포(薺浦) : 내이포(乃而浦)라고도 하며 현재의 경남 창원시 진해구 웅천동
[3] 염포(鹽浦) : 현재 울산 광역시 북구 염포동
[4] 항거 왜인(恒居倭人) : 조선에 상주하는 왜인
[5] 첨절제사(僉節制使) : 지방 군영(진영)의 장수. 종3품(從三品)으로 절도사 하위관직
[6] 이우증(李友曾, ?~1510) : 1509년(중종 4) 4월 12일 부산포 첨절제사에 임명
[8] 다이칸(代官) : 일본 에도 시대의 관직 중 하나로, 다이묘 밑에서 조세 징수 및 지방 행정을 담당하던 관리, 또는 막부의 직할지를 담당하던 지방관
[9] 소모리 히로시(宗盛弘, ?~1510) : 일본 전국시대의 무장
[10] 절도사(節度使) : 고려 전기 10도(道) ·12주(州)의 군사적으로 편성한 지방제도하의 지방장관
[11] 방어사(防御使) : 조선시대 군사요지인 지방에 파견하였던 관직
[12] 황형(黃衡, 1459년~1520년) : 조선전기 의주목사, 회령부사, 함경도병마절도사 등을 역임한 무신
[13] 유담년(柳聃年, ?~1526년) : 조선전기 공조판서, 병조판서, 한성부판윤 등을 역임한 무신
[14] 중종반정(中宗反正) : 1506년 9월 18일(음력 9월 2일) 성희안, 박원종, 유순정 등이 중심이 되어 연산군(조선 제10대왕, 재위 1494년~1506년)을 폐위시키고 연산군의 이복동생인 진성대군 이역을 왕으로 추대한 사건
그리고 무역과 상업활동이 끝나면 곧 돌아가게 하되, [4]항거 왜인이라 하여 거류한 지 오래된 60명 정도 잔류할 것을 허락하였다. 그러나 점차 무역이 성행하고 교류가 늘자 왜인들은 계속 삼포에 들어와 거류했으며, 그 수가 해마다 증가하여 커다란 정치적·사회적 문제로 제기되었다.
[14]중종반정 이후 정치 개혁의 일환으로 왜인에 대한 단속과 통제를 강화하였다. 이에 왜인들의 불만이 고조되어 충돌이 잦게 되었다.
특히 [1]부산포의 [5]첨절제사 [6]이우증은 왜인들에게 가학적인 처벌을 하여 왜인들의 불만을 더욱 고조시켰다.
1510년 4월 4일 일본 대마도 [8]다이칸의 아들인 [9]소모리를 대장으로 약 5,000명의 왜인들을 이끌고 부산포, 제포를 점령하고 여세를 몰아 [2]웅천과 [1]동래를 공격하였다. 이 과정에서 부산포 [5]첨절제사인 이우증이 살해되고 제포 [5]첨절제사인 김세균(金世均)이 납치되는 등 인명 손실과 민간에 대한 약탈이 자행되었다.
이에 조선 조정에서는 [12]황형과 [13]유담년을 각각 [11]경상좌도방어사·[11]우도방어사로 임명하여 이들을 진압하게 하였다. 1510년 4월 19일[2] 제포에 모여있는 왜인들을 세 갈래로 포위하여 8시간 동안 협공한 끝에 물리쳤다.
그 결과 [9]소모리는 사망했고 삼포에 거주하던 왜인들은 모두 대마도로 도주하여 난은 평정되었다.
이 난으로 조선측은 병사와 민간인 272명이 피살되고 민가 796호가 불타 파괴되었으며, 왜선 5척이 격침되고 295명이 사망 및 포로가 되었다.
[참조문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6916
- 나무위키, 위키백과 : 삼포왜란
[1] 부산포(富山浦) : 현재 부산의 동래
[2] 제포(薺浦) : 내이포(乃而浦)라고도 하며 현재의 경남 창원시 진해구 웅천동
[3] 염포(鹽浦) : 현재 울산 광역시 북구 염포동
[4] 항거 왜인(恒居倭人) : 조선에 상주하는 왜인
[5] 첨절제사(僉節制使) : 지방 군영(진영)의 장수. 종3품(從三品)으로 절도사 하위관직
[6] 이우증(李友曾, ?~1510) : 1509년(중종 4) 4월 12일 부산포 첨절제사에 임명
[8] 다이칸(代官) : 일본 에도 시대의 관직 중 하나로, 다이묘 밑에서 조세 징수 및 지방 행정을 담당하던 관리, 또는 막부의 직할지를 담당하던 지방관
[9] 소모리 히로시(宗盛弘, ?~1510) : 일본 전국시대의 무장
[10] 절도사(節度使) : 고려 전기 10도(道) ·12주(州)의 군사적으로 편성한 지방제도하의 지방장관
[11] 방어사(防御使) : 조선시대 군사요지인 지방에 파견하였던 관직
[12] 황형(黃衡, 1459년~1520년) : 조선전기 의주목사, 회령부사, 함경도병마절도사 등을 역임한 무신
[13] 유담년(柳聃年, ?~1526년) : 조선전기 공조판서, 병조판서, 한성부판윤 등을 역임한 무신
[14] 중종반정(中宗反正) : 1506년 9월 18일(음력 9월 2일) 성희안, 박원종, 유순정 등이 중심이 되어 연산군(조선 제10대왕, 재위 1494년~1506년)을 폐위시키고 연산군의 이복동생인 진성대군 이역을 왕으로 추대한 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