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대기근(Irish Great Famine)

아일랜드 사건기간 : 1845년 ~ 1852년, 조회수 : 255,   등록일 : 2024-02-11
아일랜드에서 발생한 대기근으로 100만명 이상이 사망하고 다수가 해외로 집단이주하였다. 아일랜드 감자 대기근(Irish Potato Femine)이라고도 한다.
 
1801년 연합법에 의해 아일랜드는 영국에 합병되었다.
 
1843년 북아메리카에서 시작된 감자역병은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졌다. 흰 곰팡이가 생겨 잎파리는 물로 땅속의 씨감자까지 죽게 만들었다. 당시 아일랜드는 영국출신의 대지주가 농지를 독점하고 있을 정도로 빈부격차 심했으며 생산되는 농작물은 영국으로 수탈당하는 구조였다. 감자가 유일한 식량이었던 아일랜드인들에게는 치명적이었다. 무려 5년간 이어진 감자역병으로 아일랜드인 100만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더구나 장티푸스, 발진티푸스, 콜레라, 이질병등의 전염병이 급속하게 확산되면서 아사자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희생시켰다.
 
결국 생존을 위해 아일랜드를 떠나 이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들은 주로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로 이주했는데, 아메리카로 향하는 배에 올랐던 20여만명이 열악한 환경으로 배 안에서 사망하였다. 아메리카에 정착해서도 현실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이들은 기존 이민자, 토착민들과는 다른 언어, 다른 종교를 믿는 이방인이었으며, 이들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배제는 더욱 심화되었다. 캐나다 몬트리올에는 아일랜드 이민자들을 함께 매장된 공동묘지가 있다.
 
대기근이 일어나기 직전인 1840년대 후반의 아일랜드 인구는 850만 명이었다. 대기근 기간 중에 사망 또는 이주로 인해 전체인구의 약 20%~25% 정도가 줄어들었다.
 
기근의 주된 원인은 감자 역병 이었으나 그 외에도 영국의 정치적, 민족적, 종교적, 사회적, 경제적 차별정책이 사태가 심각해지도록 만든 또 다른 원인이었다. 
이 사건으로 아일랜드인들은 영국에 대한 적개심은 더욱 커졌으며 독립의 열망이 증가하였다.
 
감자 역병을 보낸 건 물론 신이었지만, 그것을 대기근으로 바꾼 것은 잉글랜드인들이다
The almighty indeed sent the potato blight but the english created the famine.
- 아일랜드의 민족주의자 존 미첼(John Mitch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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