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회의(Congress of Vienna)
러시아
영국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사건기간 : 1814년 9월 1일~1815년 6월 9일, 조회수 : 696, 등록일 : 2023-12-14
20여 년에 걸친 나폴레옹 전쟁을 마무리하고 유럽의 질서를 회복하기 위하여 오스트리아, 영국,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러시아 등이 오스트리아 수도 빈의 [5]발하우스플라츠에서 모여 개최한 회의이다.
빈 회의의 기본목적은 세력균형과 정통주의라는 원칙이다.
세력균형의 원칙은 프랑스의 재침략을 예방할 수 있는 장치 마련과 나폴레옹에 의해 개편된 유럽의 국경선을 어떻게 다시 정하느냐 하는 문제였다. 정통주의 원칙은 나폴레옹 전쟁으로 말미암아 퇴위한 과거 왕조들을 복귀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오스트리아는 회의 주재국으로 [1]메테르니히가, 영국은 [4]로버트 스튜어트, 러시아는 [13]알렉산드르 1세, [3]프로이센은 [14]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가 참석하였다
주요 현안은 러시아, [3]프로이센, 오스트리아, 영국 등 승전 4대강국에 의해 주도되었으나, 패전국인 프랑스는 [2]탈레랑페리고르의 유능함과 능란한 책략으로 강대국의 일원으로 협상에 참여하였다.
빈 회의는 각국 대표단이 하나둘씩 도착하는 데만 한 달여를 소비한 끝에 11월에 들어서야 공식개회를 선포하였다. 그러나 더디고 느린 진행이 계속되었으며, 이러한 틈새마다 축제와 연회가 이어졌다.
무엇보다 참가국이 많이 크고 작은 90개 왕국과 52개 공국, 교황령등이 참가했으나 전체 회의는 단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4대 강국과 패전국인 프랑스는 연일 머리를 맞댔지만 모두가 만족할 방안이 없었다. 각 국의 영토와 이권을 둘러싼 각국의 대립과 갈등으로 회의가 지속되었다.
프랑스는 나폴레옹이 무너지고 부르봉 왕조가 복귀했으나 민심을 얻지 못했다. 1815년 3월초 나폴레옹이 엘바 섬을 탈출해서 파리에 다시 입성했고 루이 18세는 벨기에로 도피했다. 이러한 소식이 전해지자 지지부진했던 각국들의 회의는 속도가 붙었다. 예상치 못한 나폴레옹의 재등장은 오히려 꼬여만 가던 열강들의 이해관계를 타결하는 촉매제가 되었다.
열강들을 비롯한 각국은 [12]워털루 전투를 열흘 남짓 앞두고 위기감에 한 마음 한 뜻으로 타협하여, 마침내 합의 사항들을 121개 조항과 17개 부속규정으로 이루어진 '최종의정서’, 이른바 '빈 조약'을 1815년 6월 9일에 공포했다.
빈 회의의 결과로 형성된 유럽의 체제를 빈 체제라 부른다.
최종의정서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러시아는 바르샤바 대공국의 대부분과 핀란드 영토를 차지한다.
② 프로이센은 작센의 북부와 [6]바르샤바 공국의 일부인 [7]포젠지역과 라인란트, [8]베스트팔렌, 단치히를 차지한다.
③ 옛 신성로마제국의 제후국인 38개의 공국으로 이루어진 독일연방을 구성한다. 연방의 의장은 오스트리아 황제가 맡는다.
④ 네덜란드와 [9]오스트리아령 네덜란드는 네덜란드 연합왕국으로 통합한다.
⑤ 오스트리아는 네덜란드를 포기하는 대신 이탈리아의 롬바르디아와 베네치아와 달마티아 지역의 라구사를 차지한다.
⑥ 스위스는 영세중립국의 지위를 8국위원회(영국,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러시아, 프랑스, 스웨덴, 포르투갈, 에스파냐)에 의해 인정받는다.
⑦ 하노버 왕국은 라우엔부르크 공국을 덴마크에 내주는 대신 뮌스터 주교령과 프로이센령 동프리지아를 얻는다.
⑧ 바이에른 왕국은 팔라티나 지방, 뷔르츠부르크 공작령의 일부, 프랑크푸르트 공국을 차지하며, [11]헤센 대공국은 [8]베스트팔렌을 [3]프로이센에 내주는 대신 라인-헤센 지역을 차지한다.
⑨ 영국은 프랑스로부터 토바고, 모리셔스, 세인트루시아 등 대서양 식민지들을 차지하며, 네덜란드로부터 실론과 케이프 식민지를 얻는다.
⑩ 사르데냐 왕국은 피에몬테, 니스, 사부아, 제노아를 되찾는다.추가로 제노바 공화국을 왕국의 영토로 흡수한다.
⑪ 나폴리 왕국은 부르봉나폴리 왕가의 페르디난도 4세가 복위하며, 시칠리아 왕국을 합병한다.
⑫ 파르마, 모데나, 투스카니아 공국에는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조가 복귀한다.
[1] 클레멘스 폰 메테르니히(1773년 ~ 1859년) : 합스부르크 제국 - 오스트리아 제국의 외교관, 정치가
[2] 샤를모리스 드 탈레랑페리고르(Charles-Maurice de Talleyrand-Périgord, 1754년~1838년) : 프랑스의 정치가,
[3] 프로이센(Prussia) : 1701년부터 1918년까지 존속한 독일 제국 내의 왕국. 신성 로마 제국 동북쪽의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국에서 출발하여 독일 제국 수립의 주역으로 성장한 국가
[4] 로버트 스튜어트(Robert Stewart, 1769년~1822년) : 영국의 정치가·외교관. 흔히 캐슬레이 경(Lord Castlereagh) 혹은 캐슬레이 자작(Viscount Castlereagh)으로 림, 외무상으로 재임(1812년~1822년)하는 동안, 빈 체제 성립에 기여했다
[5] 발하우스플라츠(Ballhausplatz) : 오스트리아의 정치1번지. 현재 현재 오스트리아의 총리 관저
[6] 바르샤바 공국(Duchy of Warsaw) : 1807년부터 1815년까지 지금의 폴란드 지역에 존속했던 국가. 나폴레옹 전쟁 당시 나폴레옹이 폴란드 지역에 만든 국가
[7] 포젠(Posen) : 독일과 폴란드 두 국가의 역사가 겹치는 지역. 나폴레옹 전쟁시 바르샤바 공국의 영토로 편입. 현재는 폴란드 지역
[8] 베스트팔렌(Westfalen) : 독일의 서부 지역 중 하나.
[9] 오스트리아령 네덜란드(Austrian Netherlands) : 합스부르크 제국의 남네덜란드로 현재의 벨기에
[10] 라구사 공화국(Respublica Ragusina) : 현재 크로아티아의 달마티아 지역에 14세기부터 1808년까지 이어졌던 공화국. 수도 라구사는 오늘날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에 해당. 나폴레옹전쟁으로 1808년에 멸망
[11] 헤센 대공국(Grand Duchy of Hesse) : 1806년부터 1918년까지 존재했던 독일 서부의 대공국. 오늘날 독일의 헤센 주 지역을 구성
[12] 워털루 전투(Battle of Waterloo) : 1815년 6월 18일 오늘날의 벨기에 워털루 인근에서 벌어진 프랑스의 나폴레옹과 영국, 프로이센, 네덜란드의 대프랑스 연합군 간의 벌어진 전투. 이 전투로 나폴레옹은 완전히 종결되고, 길었던 나폴레옹 전쟁은 종식되었다
[13] 알렉산드르 1세(Alexander I of Russia, 1777년~1825년) : 러시아 제국의 황제(재위 1801년 3월 23일 ~ 1825년 12월 1일). 로마노프 왕조의 10대 황제
[14]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Frederick William III of Prussia, 1770년~1840년) : 프로이센의 제5대 국왕(재위 1797년 11월 16일~1840년 6월 7일)
빈 회의의 기본목적은 세력균형과 정통주의라는 원칙이다.
세력균형의 원칙은 프랑스의 재침략을 예방할 수 있는 장치 마련과 나폴레옹에 의해 개편된 유럽의 국경선을 어떻게 다시 정하느냐 하는 문제였다. 정통주의 원칙은 나폴레옹 전쟁으로 말미암아 퇴위한 과거 왕조들을 복귀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오스트리아는 회의 주재국으로 [1]메테르니히가, 영국은 [4]로버트 스튜어트, 러시아는 [13]알렉산드르 1세, [3]프로이센은 [14]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가 참석하였다
주요 현안은 러시아, [3]프로이센, 오스트리아, 영국 등 승전 4대강국에 의해 주도되었으나, 패전국인 프랑스는 [2]탈레랑페리고르의 유능함과 능란한 책략으로 강대국의 일원으로 협상에 참여하였다.
빈 회의는 각국 대표단이 하나둘씩 도착하는 데만 한 달여를 소비한 끝에 11월에 들어서야 공식개회를 선포하였다. 그러나 더디고 느린 진행이 계속되었으며, 이러한 틈새마다 축제와 연회가 이어졌다.
무엇보다 참가국이 많이 크고 작은 90개 왕국과 52개 공국, 교황령등이 참가했으나 전체 회의는 단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4대 강국과 패전국인 프랑스는 연일 머리를 맞댔지만 모두가 만족할 방안이 없었다. 각 국의 영토와 이권을 둘러싼 각국의 대립과 갈등으로 회의가 지속되었다.
프랑스는 나폴레옹이 무너지고 부르봉 왕조가 복귀했으나 민심을 얻지 못했다. 1815년 3월초 나폴레옹이 엘바 섬을 탈출해서 파리에 다시 입성했고 루이 18세는 벨기에로 도피했다. 이러한 소식이 전해지자 지지부진했던 각국들의 회의는 속도가 붙었다. 예상치 못한 나폴레옹의 재등장은 오히려 꼬여만 가던 열강들의 이해관계를 타결하는 촉매제가 되었다.
열강들을 비롯한 각국은 [12]워털루 전투를 열흘 남짓 앞두고 위기감에 한 마음 한 뜻으로 타협하여, 마침내 합의 사항들을 121개 조항과 17개 부속규정으로 이루어진 '최종의정서’, 이른바 '빈 조약'을 1815년 6월 9일에 공포했다.
빈 회의의 결과로 형성된 유럽의 체제를 빈 체제라 부른다.
최종의정서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러시아는 바르샤바 대공국의 대부분과 핀란드 영토를 차지한다.
② 프로이센은 작센의 북부와 [6]바르샤바 공국의 일부인 [7]포젠지역과 라인란트, [8]베스트팔렌, 단치히를 차지한다.
③ 옛 신성로마제국의 제후국인 38개의 공국으로 이루어진 독일연방을 구성한다. 연방의 의장은 오스트리아 황제가 맡는다.
④ 네덜란드와 [9]오스트리아령 네덜란드는 네덜란드 연합왕국으로 통합한다.
⑤ 오스트리아는 네덜란드를 포기하는 대신 이탈리아의 롬바르디아와 베네치아와 달마티아 지역의 라구사를 차지한다.
⑥ 스위스는 영세중립국의 지위를 8국위원회(영국,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러시아, 프랑스, 스웨덴, 포르투갈, 에스파냐)에 의해 인정받는다.
⑦ 하노버 왕국은 라우엔부르크 공국을 덴마크에 내주는 대신 뮌스터 주교령과 프로이센령 동프리지아를 얻는다.
⑧ 바이에른 왕국은 팔라티나 지방, 뷔르츠부르크 공작령의 일부, 프랑크푸르트 공국을 차지하며, [11]헤센 대공국은 [8]베스트팔렌을 [3]프로이센에 내주는 대신 라인-헤센 지역을 차지한다.
⑨ 영국은 프랑스로부터 토바고, 모리셔스, 세인트루시아 등 대서양 식민지들을 차지하며, 네덜란드로부터 실론과 케이프 식민지를 얻는다.
⑩ 사르데냐 왕국은 피에몬테, 니스, 사부아, 제노아를 되찾는다.추가로 제노바 공화국을 왕국의 영토로 흡수한다.
⑪ 나폴리 왕국은 부르봉나폴리 왕가의 페르디난도 4세가 복위하며, 시칠리아 왕국을 합병한다.
⑫ 파르마, 모데나, 투스카니아 공국에는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조가 복귀한다.
[1] 클레멘스 폰 메테르니히(1773년 ~ 1859년) : 합스부르크 제국 - 오스트리아 제국의 외교관, 정치가
[2] 샤를모리스 드 탈레랑페리고르(Charles-Maurice de Talleyrand-Périgord, 1754년~1838년) : 프랑스의 정치가,
[3] 프로이센(Prussia) : 1701년부터 1918년까지 존속한 독일 제국 내의 왕국. 신성 로마 제국 동북쪽의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국에서 출발하여 독일 제국 수립의 주역으로 성장한 국가
[4] 로버트 스튜어트(Robert Stewart, 1769년~1822년) : 영국의 정치가·외교관. 흔히 캐슬레이 경(Lord Castlereagh) 혹은 캐슬레이 자작(Viscount Castlereagh)으로 림, 외무상으로 재임(1812년~1822년)하는 동안, 빈 체제 성립에 기여했다
[5] 발하우스플라츠(Ballhausplatz) : 오스트리아의 정치1번지. 현재 현재 오스트리아의 총리 관저
[6] 바르샤바 공국(Duchy of Warsaw) : 1807년부터 1815년까지 지금의 폴란드 지역에 존속했던 국가. 나폴레옹 전쟁 당시 나폴레옹이 폴란드 지역에 만든 국가
[7] 포젠(Posen) : 독일과 폴란드 두 국가의 역사가 겹치는 지역. 나폴레옹 전쟁시 바르샤바 공국의 영토로 편입. 현재는 폴란드 지역
[8] 베스트팔렌(Westfalen) : 독일의 서부 지역 중 하나.
[9] 오스트리아령 네덜란드(Austrian Netherlands) : 합스부르크 제국의 남네덜란드로 현재의 벨기에
[10] 라구사 공화국(Respublica Ragusina) : 현재 크로아티아의 달마티아 지역에 14세기부터 1808년까지 이어졌던 공화국. 수도 라구사는 오늘날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에 해당. 나폴레옹전쟁으로 1808년에 멸망
[11] 헤센 대공국(Grand Duchy of Hesse) : 1806년부터 1918년까지 존재했던 독일 서부의 대공국. 오늘날 독일의 헤센 주 지역을 구성
[12] 워털루 전투(Battle of Waterloo) : 1815년 6월 18일 오늘날의 벨기에 워털루 인근에서 벌어진 프랑스의 나폴레옹과 영국, 프로이센, 네덜란드의 대프랑스 연합군 간의 벌어진 전투. 이 전투로 나폴레옹은 완전히 종결되고, 길었던 나폴레옹 전쟁은 종식되었다
[13] 알렉산드르 1세(Alexander I of Russia, 1777년~1825년) : 러시아 제국의 황제(재위 1801년 3월 23일 ~ 1825년 12월 1일). 로마노프 왕조의 10대 황제
[14]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Frederick William III of Prussia, 1770년~1840년) : 프로이센의 제5대 국왕(재위 1797년 11월 16일~1840년 6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