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노사의 굴욕(Road to Canossa)

사건기간 : 1077년 1월 28일, 조회수 : 253,   등록일 : 2023-11-14
신성로마제국의 [2]하인리히 4세가 자신을 파문한 교황 [4]그레고리오 7세를 만나기 위해 이탈리아 북부의 [1]카노사 성으로 가서 파문취소를 요청하기 위하여 관용을 구한 사건이다. 기독교에 황제의 권력이 굴복한 대표적인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다.
 
성직자의 임명권은 [8]프랑크 왕국시대부터 존재했으며 계속해서 왕권에 포함되어 있었다. 즉, 교황청과 기독교 세력은 사실상 황권에 종속된 상태였다.

1056년 신성로마제국의 [3]하인리히 3세가 젊은 나이에 사망하자 하인리히 4세가 뒤를 이었다. 하인리히 4세는 6살의 어린나이에 즉위하였기에 모후 아그네스가 섭정하면서 황권은 약화되어 갔다. 이러한 상황에서 반전을 꾀하는 세력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이 세력엔 [4]그레고리오 7세 교황이 포함되어 있었다.
1073년 교황으로 선출된 [4]그레고리오 7세는 원칙주의와 교회의 개혁을 주장하였으며 당시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였던 [2]하인리히 4세가 작센에서 일어난 반란으로 혼란스런 상황에서 성직자 임명권은 교황과 교황청에게 있다고 선언을 한다.

2년 뒤인 1075년 반란을 모두 진압한 [4]하인리히 4세는 이러한 교황의 주장을 무시한 채 황권의 권리를 행사했다. 이에 교황 [4]그레고리오 7세는 1076년에 [2]하인리히 4세를 기독교에서 파문시킨다. 
사실 중세 유럽에서 파문이라는 것은 단순히 황제 한 명을 비종교인으로 만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존재 자체를 교회가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따라서 파문의 진정한 의미는 신성 로마 제국이 가진 가장 큰 대의명분 중 하나였던 '기독교의 수호자'라는 자격을 박탈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2]하인리히 4세는 반란을 진압한 위세와 능력으로 제국내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황권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이에 제국의 제후들이 위기감을 느끼면서 파문을 구실로 반발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인리히 4세는 적당히 화해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교황측에 만나자고 요청하였으나 교황은 위협으로 생각하여 거부하였다. 결국 하인리히 4세는 친히 이탈리아로 내려가야 했다. 이에 교황은 [5]마틸데 디 카노사 여백작의 [1]카노사성으로 피난을 갔다.
 
하인리히 4세는 1077년 1월 25일에 카노사성에 당도했고 그 추위에 누추한 옷과 맨발로 카노사 성문 앞에서 무릎을 꿇고 교황의 주선을 요청하였으나 성문은 열리지 않았다.  3일이 지나서야 성문이 열리고 황제를 성안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교황은 파문을 취소하였다.
 
하인리히 4세는 파문이 취소되자마자 바로 제국으로 귀환했으나 독일 제후들은 [9]슈바벤 공작인 루돌프를 황제로 추대하면서 내전이 일어났다. 황제와 제후파는 교황을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하여 우위를 차지하려고 했다. 그러나 교황의 모호한 행동을 취하면서 양측 모두에게 신뢰를 잃어버렸다. 3년 뒤인 1080년 그레고리오 7세는 하인리히 4세를 파문한다고 또 한 번 선언했다. 하지만 두 번째 파문은 아무런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이치에도 어긋났다.
 
루돌프 공작이 1080년 10월 사망하면서 제후파는 구심점을 잃었다.  하인리히 4세는 권력을  장악했으며, 이탈리아 원정을 통하여 카노사의 성주 [5]마틸데를 패퇴시켰다. 1081년에 로마로 진격하여 1084년 3월 21일 로마를 점령하였다. 로마 정복 후 [6]산탄젤로성으로 피신한 교황 그레고리오 7세를 폐위시키고 [7]라벤나의 주교를 교황 클레멘스 3세로 하여 새 교황으로 옹립한 후 1084년 3월 31일에 신성로마제국 황제로서 대관식을 거행한다.
 
[1] 카노사(Canossa) : 이탈리아 북부 에밀리아로마냐주 레조넬에밀리아도의 도시
[2] 하인리히 4세(Heinrich IV, 1050년~1106년) : 신성 로마 제국의 18대 황제이자 잘리어 왕조의 2대 황제(재위, 1056년 10월 5일 ~ 1105년 12월 31일). 이탈리아 국왕, 부르군트 국왕(재위, 1056년 10월 5일 ~ 1105년 12월 31일), 로마왕(재위, 1053년 11월 ~ 1105년 12월 31일)
[3] 하인리히 3세(Heinrich III, 1016년~1056년) : 신성 로마 제국의 17대 황제이자 잘리어 왕조의 2대 황제(재위, 1046년 12월 25일 ~ 1056년 10월 5일). 이탈리아 국왕, 부르군트 국왕(재위, 1039년 6월 4일 ~ 1056년 10월 5일). 로마왕(재위, 1028년 4월 14일 ~ 1056년 10월 5일)
[4] 그레고리오 7세(라틴어: Gregorius PP. VII, 이탈리아어: Papa Gregorio VII, 1015년 ~ 1085년) : 제173대 교황(재위: 1073년 4월 22일~1085년 5월 25일)
[5] 마틸데 디 카노사(Matilde di Canossa, 1046년~1115년) : 이탈리아의 여자 귀족. 이탈리아 투스카니지역의 영주
[6] 산탄젤로성(Castel Sant'Angelo ) : 로마 베드로 광장에서 약 800m 떨어진 테베레 강변에 위치해 있다. 요새화되어 있는 작은 성이며 베드로 성당에서부터 비밀통로가 놓여있어 교황에게 위급한 일이 발생하면 이 통로를 통하여 산탄젤로성으로 신속히 대피할 수 있게 되어 있다
[7] 라벤나(Ravenna) : 이탈리아의 도시. 서로마제국의 수도
[8] 프랑크왕국(Kingdom of the Franks) : 게르만족의 한 부족인 프랑크족이 5세기 말에 서유럽 지역에 세운 왕국. 신성로마제국의 모태. 오늘날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의 기원이 되는 국가
[9] 슈바벤(Schwaben) : 독일 남부의 역사적인 지역명. 중세 독일의 유력한 제후국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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