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니 사건(Outrage of Anagn)

바티칸 시국 이탈리아 프랑스 사건기간 : 1303년 9월 7일, 조회수 : 698,   등록일 : 2023-10-22
아나니 사건은 중세 유럽에서 교황권과 세속 왕권 사이의 갈등으로 당시 로마교황 [1]보니파시오 8세가 이탈리아 [2]아나니에서 체포·굴욕을 당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프랑스 국왕 [3]필리프 4세와 교황 사이의 장기적 대립의 결과였으며 교황권의 정치적 위상을 약화시키고 이후 이탈리아 로마와 프랑스 아비뇽에 각각 교황이 존재하면서 양측이 모두 정통성을 주장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이로 인해 교회는 약 40여 년간 지속된 [4]서방 교회 대분열의 국면에 들어섰으며 교황권의 권위는 심각하게 손상되었다.
 
프랑스 [3]필리프 4세는 왕권 강화와 재정 조달을 위해 1295년에 면세의 특권을 누리던 성직자에도 과세를 부여하고 교황권의 간섭 최소화를 추진했다. 이에 대해 교회의 권위와  교구로부터 들어오는 자금으로 운영되던 교황청 입장에서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교황 [1]보니파시오 8세는 교황청의 동의없이 성직자가 세금을 낼 수 없으며 세금을 내는 주교는 파문에 처한다고 선포했다. 1302년에 교황이 세속 권위보다 절대적인 우월권을 가진다라고 하는 [5]우남상탐을 발표하였다.
 
반포한 교황 교서들은 프랑스 왕권과 직결된 문제를 일으켰고, 두 권력은 점차 격렬하게 충돌하였다. 또한 보니파시오 8세는 내부적으로 [6]카에타니가문에 속하는 강력한 파벌로서 로마 귀족 가문들과도 대립을 빚었다. 이 같은 정치·법적·가문적 대립이 복합적으로 얽혀 사건의 직접적 원인이 되었다.
 
필리프 4세는 [7]삼부회를 소집하여 동의를 얻은 후 보니파시오 8세의 간통죄, 부정부패, 살인죄등을 들어 고발하는 기소장을 작성하여 1303년 9월 초에 법률 고문 겸 장관 겸 사절였던 [8]기욤 드 노가레와 교황 보니파시오 8세와 오랜 원한이 있던 로마의 [9]콜론나 가문의 시욘나 콜론나가 지휘하는 군대를 이끌고 보니파시오 8세 교황이 있는 이탈리아의 [2]아나니를 급습해 교황이 머물던 주교 건물을 장악하였다. 그들은 보니파시오 8세의 구금과 심문을 통해 그를 프랑스로 압송하거나 교회회의에 회부해 퇴위를 강요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사건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장면은 "아나니의 뺨(schiaffo)" 즉 시요나 콜로나가 교황의 얼굴을 때렸다는 일화이다. 현지와 후대의 기록은 이 "뺨 때리기" 이야기를 전하지만, 현대 사학자들은 이 사건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일지에 대해 신중하다. 일부 기록은 물리적 구타를 증언하나, 다른 연구들은 그것을 심대한 모욕 또는 정치적 굴욕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다시 말해, 실제로 손으로 때렸는지 여부는 출처에 따라 다르며, 사건 자체가 교황에 대한 공개적 모욕과 구금·학대의 성격을 가졌다는 점은 분명하다.(Encyclopedia Britannica)
 
아나니 시민과 주변 세력의 반발로 며칠 뒤에 보니파시오 8세는 풀려났으나, 이 사건으로 심신이 크게 상한 그는 한달 후인 10월 11일 사망했다. 뒤이은 교황 선출 과정의 불안은 프랑스 왕권의 영향력을 키웠고, 결국 1305년 [10]클레멘스 5세가 선출되어 교황청이 점차 프랑스 쪽으로 기운 끝에 1309년경부터 아비뇽으로 옮겨 장기간 체류하는 [11]아비뇽 유수로 이어지면서 서방 교회의 대분열로 교황권의 권위는 심각하게 실추되었다.
 
[1] 보니파시오 8세(Papa Bonifacio VIII, 1235년~ 1303년 10월 11일) : 제193대 교황(재위: 1294년 12월 24일~1303년 10월 11일)
[2] 아나니(Anagni) : 로마 동남동쪽 구릉지 라티움(Latium, 이탈리아 반도 중부 서안에 위치한 곳)의 프로시노네 도시에 있는 코무네(이탈리아의 행정 구역으로 도 아래에 있는 기초 지방 자치체). 교황 보니파시오 8세의 고향이자 별장이 있는 곳이다
[3] 필리프 4세(Philippe IV, 1268년~1314년 11월 29일) : 프랑스 카페 왕조 제11대 국왕(재위 : 1285년~1314년). 프랑스 최초의 삼부회를 개최했다
[4] 서방 교회 대분열(Magnum schisma occidentale, 1378년~1417년) : 아비뇽 유수로 인하여 이탈리아 로마와 프랑스의 아비뇽에 두개의 교황청과 두 명의 교황이 존재하게 되면서 서방교회가 분열하고 서유럽 전역에 걸쳐 대혼란이 일어났던 시기
[5] 우남 상탐(Unam Sanctam) :교황 보니파치오 8세가 1302년 11월 18일 반포한 교황 칙서이며 중세 교황권의 권위-주장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낸 문헌중 하나이다. 이 칙서는 교회와 세속 권력의 관계에 관해 교황의 우위(특히 영적 권위가 세속 권위보다 상위에 있다는 주장)를 강하게 주장했다
[6] 카에타니(Caetani) 가문 : 중세·르네상스 시기의 로마 및 이탈리아 중부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한 귀족 가문. 교황 보니파치오 8세를 배출한 귀족 가문으로 중세 말 교황권과 세속 권력의 대립 속에서 중요한 정치적·교회적 역할을 담당한 가문. 특히 교황과 깊은 연관을 맺었으며 로마와 주변 지역의 권력 다툼에 깊숙이 관여했다
[7] 삼부회(Estates General) : 국왕의 주도로 제1신분(성직자), 제2신분(귀족), 제3신분(평민)의 신분별 대표들이 모여 국가의 중요 사안에 관해 토론하며 협력·자문하는 의회이다. 1302년 4월 10일 프랑스 왕 필리프 4세는 교황 보니파시오 8세와 분쟁시에 지지를 얻을 수 있도록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에 각 신분의 대표를 소집시킨 것이 시초가 되고 있다. 실제로 1614년 이래 거의 소집되지 않다가 1789년 루이 16세에 의해 소집되었다. 그러나 신분별 대표 간의 표결방식을 두고 대립하여 결렬되고 제3신분은 삼부회에서 벗어나 국민의회를 조직했다
[8] 기욤 드 노가레(Guillaume de Nogaret, 1260년~1313년) : 프랑스 왕국의 정치가. 1303년에 프랑스 국왕 필리프 4세 명을 받고 아나니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
[9] 콜론나 가문(Colonna) : 르네상스 시대 로마에서 세력 있는 귀족 가문으로 교황과 많은 지도자를 배출하였다. 교황 보니파시오 8세는 자신에게 반대한다는 이유로 군대까지 동원하여 콜론나 가문의 근거지역을 공격했다. 가문의 영지와 재산은 몰수당했고 간신히 살아남은 나머지 일족들은 이탈리아 밖으로 달아났다
[10] 클레멘스 5세(Papa Clemens V) : 제195대 교황.  프랑스의 왕 필리프 4세의 강한 압력으로 선출되었다. 아비뇽 유수 및 아비뇽 교황 시대를 열었다
[11] 아비용 유수(Avignon Papacy) : 이탈리아 로마에 있었던 교황청이 프랑스 아비뇽으로 옮겨 1309년부터 1377년까지 7명의 교황이 아비뇽에서 생활하게 된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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