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근리 양민학살사건(No Gun Ri massacre)

미국 대한민국 사건기간 : 1950년 7월 25일~1950년 7월 29일, 조회수 : 192,   등록일 : 2023-06-08

1950년 한국전쟁중 미군의 [1]소개령에 따라 1950년 7월 25일 충청남도 영동읍 임계리로 모인 피난민중 500~600명을 미군이 남쪽(후방)으로 피난을 유도하였다. 이에 따라 7월 26일 정오경 4번 국도를 통해 황간면 서송원리 부근에 도착한 피난민들은 미 육군의 유도에 따라 국도에서 경부선 철로로 행로를 변경해 피난을 계속하던 중 미군은 피난민 속에 북한군이 숨어있다고 주장하며 미 공군의 폭격과 기관총 사격으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게 됐다. 
피난민은 미군의 공격을 피해 황간면 노근리에 있는 [2]개근철교(쌍굴다리)밑으로 피신했고, 미군 제1기병사단 제7기병연대 예하 부대는 26일 오후부터 29일 오전까지 쌍굴다리 밑으로 피신한 피난민들을 향해 기관총 사격을 하여 다수의 피난민이 사망했다.

이후 몇 년 동안 생존자와 목격자들이 증언했으나 묻혀있다가 1999년 9월 30일 [3]AP통신이 노근리 사건을 특종 보도하며 그 참상이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2001년 1월 한미 양국 정부의 진상 조사결과가 공동 발표되었으며, 당시 미국 대통령인 [5]빌 클린턴이 유감을 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1년간 조사가 이뤄졌으나 사실관계와 책임소재를 명확히 하지는 못한 채 마무리되었다. 2001년 한국 정부는 노근리 학살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희생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공개적으로 사과했다.

노근리 [2]개근철교(쌍굴다리) 2003년 6월 25일, 대한민국의 등록문화재 제59호로 지정되었으며 2004년 2월 9일 노근리사건 희생자심사 및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여 같은 해 3월 5일 노근리사건특별법이 공포되었다. 
노근리사건특별법이 제정된 이후 개근철교(쌍굴다리) 건너편에는 희생자 추념을 위한 노근리평화공원이 건립되었다. 4만여 평에 이르는 공원 내에는 학살사건의 전모와, 사건의 진실을 밝혀낸 과정이 전시되어 있는 평화기념관이 세워져 있으며 평화와 인권에 대해 교육할 수 있는 교육관, 위령탑 등이 있다. 이곳에는 해마다 노근리 희생자 추모행사가 열리고 있다.

1999년 이 사건을 보도한 [3]AP통신 취재팀은 2000년에 탐사 보도 부문 [4]퓰리처상을 수상했다.

[1]소개령 : 비전투 인력의 대피. 미국 시민과 미국 국무부에 의거한 한국 구적의 인원들이 대피하는 것
[2]노근리 쌍굴다리 : 충청북도 영동군 경부선 철도에 1934년 건설되었다. 황간면 노근리와 영동읍 주곡리를 연결하기 위해 개근천(愷勤川)위에 놓인 철도교각이다. 미군의 총탄과 파편 흔적(○, △ 표시)이 아직도 남아있다. 노근리 쌍굴다리는 2003년 6월 30일, 대한민국의 등록문화재 제59호로 지정되었다
[3] AP(Associated Press, AP)통신 : 미국 뉴욕에 본부를 둔 세계 최대 규모의 다국적 비영리 뉴스통신사. 미국에서 가장 오랜된 최대의 통신사. 1846년 5월에 신문사와 방송국의 협동조합 형태로 설립되었다
[4] 퓰리처상(Pulitzer Prize) : 미국의 신문 저널리즘, 문학적 업적과 명예, 음악적 구성에서 가장 높은 기여자로 선정되는 사람에게 주는 상. 1917년 미국의 언론인인 조지프 퓰리처의 유언에 따라 제정되었으며, 미국 뉴욕 시에 위치한 컬럼비아 대학교 언론대학원 퓰리처상 선정위원회에 의해 관리한다. 매년 21개 부문으로 수여되며 권위와 신뢰도가 높아 기자들의 노벨상이라 불린다. 수상자는 인증서와 함께 미화 1만 달러를 받는다
[5]빌 클린턴(Bill Clinton, 1946년~) : 미국 제42대 대통령(재임, 1993년 1월 20일 ~ 2001년 1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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