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레브레니차 집단학살(Srebrenica massacre)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사건기간 : 1995년 7월 11일~1995년 7월 22일, 조회수 : 239, 등록일 : 2023-01-14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공화국은 1991년 10월 15일 유고슬라비아 연방에서 분리 독립을 선언한 후 세르비아계는 연방 잔류를 원하면서 [2]스릅스카 공화국을 결성해 보스니아 내전이 시작되었다.
보스니아 민족은 각 종교에 따라 크게 보스니아 무슬림, 정교회를 믿는 세르비아인, 가톨릭의 크로아티아인 등으로 나눠지는 데, 과거 역사 속에서 이들은 혼란이 대두될 때마다 서로 간의 인종 청소 및 종교 개종을 강요해 왔었다. 즉 과거 역사적 경험에서 비롯된 공포는 서로 간의 불신과 집단적 자위 의식을 낳았으며, 이러한 점이 바로 이 지역 내 내전이 쉽게 해결되지 못하고 장기간, 잔인하게 이어진 배경 중 하나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1]스레브레니차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동부의 스릅스카 공화국에 속하는 산악 마을로 보스니아 전쟁 종료 이전까지 이 지역의 주된 민족은 무슬림인이었다.
보스니아 내전 중인 1995년 7월 세르비아 스릅스카 민병대가 UN 안전지역으로 지정된 스레브레니차 마을에서 8,000여명의 보스니아 민간인을 학살한 사건으로서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구 유고전범재판소에서 처형장면이 재판과정에서 공개되면서 국제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당시 UN 평화유지군으로서 400명의 네덜란드군 중 150여명의 병력이 약 4만명의 보스니아 무슬림들의 집단 난민 지역이자 UN이 안전지역으로 설정한 스레브레니차 인근에 주둔하고 있었다. 하지만, 네델란드군은 학살이 일어나기 직전 이미 30여명이 세르비아 스릅스카 민병대에 의해 포로로 잡히는 등 난민들을 보호하고 안전지대를 방어할 수 있는 능력이 한계점에 다다르고 있었다. 이어 1995년 7월부터 세르비아 민병대의 본격적인 대규모 공격이 시작되자, 스레브레니차 주둔 네덜란드군은 사태의 심각성을 알리고 UN군 소속 네덜란드 공군을 통해 공습을 요청하였다. 하지만, 7월 11일 네덜란드군 소속 F-16기 두 대의 공습 이후, 추가 공습시 30명의 네덜란드군 포로들을 사살하겠다는 세르비아 측의 경고에 따라 이 공습 또한 중단되는 사태에 이르게 된다.
결국 네덜란드군은 규모상 스릅스카 반군과 저항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난민들을 보호하는 데에도 실패했다. 그 결과 UN이 정한 안전지내에서 세르비아 민병대에 의한 보스니아 무슬림의 대량 학살이 자행되는 참상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세르비아 스릅스카 민병대는 인종 청소의 일환으로 곳곳에서 무슬림 난민의 남성과 소년들을 골라 처형했다. 불도저로 흙을 파낸 뒤 수천명의 시신을 암매장했다. 여성들과 소녀들은 인종 정화를 명분으로 강간 피해를 당한 뒤 사살당했다.
비공식적 통계에 따르면 스레브레니차 학살 사건 당시 희생자 수는 25,000명~30,000명에 달한다고 알려지고 있으며, 유럽의 킬링필드라고 불리며 '인종청소'라는 명목하에 세브비아인들에 의해 학살이 자행되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큰 학살로 비난받고어 있다.
보스니아 실종자 관련 연방위원회가 발표한 학살 피해자로 집계된 공식 실종자 및 사망자는 총 8,372명이 확인되어 있으며 발굴이 진행됨에 따라 계속 추가될 예정이다.
참고문헌 : 보스니아 스레브레니차 대학살, 그 배경과 교훈, 김철민 (한국외국어대학교 동유럽학대학 교수), 작성일: 2013년 8월 19일
[1] 스레브레니차(Srebrenica)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스르프스카 공화국의 동쪽 끝에 위치한 도시
[2] 스릅스카 공화국(Republika Srpska)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를 구성하고 있는 세르비아계 자치 공화국 공화국.국명인 스릅스카(Српска)는 세르비아인에 접미사 '-ска'가 붙은 형태의 단어로 '세르비아인의 땅'을 의미한다. 1992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가 유고슬라비아 연방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자 보스니아 내 세르비아인들이 반발하여 스릅스카 공화국을 결성해 보스니아 내전이 시작되었다
[3] 라트코 믈라디치(Ratko Mladić, 1943년 ~) : 유고슬라비아 및 스릅스카 공화국의 군인이으로 보스니아 내전 당시 스레브레니차 학살을 주도한 세르비아계 보스니아인.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라도반 카라지치와 함께 보스니아 내전의 최고위 전범 3명 중 한 명이다. 2011년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 근교에서 체포되어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보스니아 민족은 각 종교에 따라 크게 보스니아 무슬림, 정교회를 믿는 세르비아인, 가톨릭의 크로아티아인 등으로 나눠지는 데, 과거 역사 속에서 이들은 혼란이 대두될 때마다 서로 간의 인종 청소 및 종교 개종을 강요해 왔었다. 즉 과거 역사적 경험에서 비롯된 공포는 서로 간의 불신과 집단적 자위 의식을 낳았으며, 이러한 점이 바로 이 지역 내 내전이 쉽게 해결되지 못하고 장기간, 잔인하게 이어진 배경 중 하나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1]스레브레니차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동부의 스릅스카 공화국에 속하는 산악 마을로 보스니아 전쟁 종료 이전까지 이 지역의 주된 민족은 무슬림인이었다.
보스니아 내전 중인 1995년 7월 세르비아 스릅스카 민병대가 UN 안전지역으로 지정된 스레브레니차 마을에서 8,000여명의 보스니아 민간인을 학살한 사건으로서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구 유고전범재판소에서 처형장면이 재판과정에서 공개되면서 국제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당시 UN 평화유지군으로서 400명의 네덜란드군 중 150여명의 병력이 약 4만명의 보스니아 무슬림들의 집단 난민 지역이자 UN이 안전지역으로 설정한 스레브레니차 인근에 주둔하고 있었다. 하지만, 네델란드군은 학살이 일어나기 직전 이미 30여명이 세르비아 스릅스카 민병대에 의해 포로로 잡히는 등 난민들을 보호하고 안전지대를 방어할 수 있는 능력이 한계점에 다다르고 있었다. 이어 1995년 7월부터 세르비아 민병대의 본격적인 대규모 공격이 시작되자, 스레브레니차 주둔 네덜란드군은 사태의 심각성을 알리고 UN군 소속 네덜란드 공군을 통해 공습을 요청하였다. 하지만, 7월 11일 네덜란드군 소속 F-16기 두 대의 공습 이후, 추가 공습시 30명의 네덜란드군 포로들을 사살하겠다는 세르비아 측의 경고에 따라 이 공습 또한 중단되는 사태에 이르게 된다.
결국 네덜란드군은 규모상 스릅스카 반군과 저항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난민들을 보호하는 데에도 실패했다. 그 결과 UN이 정한 안전지내에서 세르비아 민병대에 의한 보스니아 무슬림의 대량 학살이 자행되는 참상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세르비아 스릅스카 민병대는 인종 청소의 일환으로 곳곳에서 무슬림 난민의 남성과 소년들을 골라 처형했다. 불도저로 흙을 파낸 뒤 수천명의 시신을 암매장했다. 여성들과 소녀들은 인종 정화를 명분으로 강간 피해를 당한 뒤 사살당했다.
비공식적 통계에 따르면 스레브레니차 학살 사건 당시 희생자 수는 25,000명~30,000명에 달한다고 알려지고 있으며, 유럽의 킬링필드라고 불리며 '인종청소'라는 명목하에 세브비아인들에 의해 학살이 자행되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큰 학살로 비난받고어 있다.
보스니아 실종자 관련 연방위원회가 발표한 학살 피해자로 집계된 공식 실종자 및 사망자는 총 8,372명이 확인되어 있으며 발굴이 진행됨에 따라 계속 추가될 예정이다.
참고문헌 : 보스니아 스레브레니차 대학살, 그 배경과 교훈, 김철민 (한국외국어대학교 동유럽학대학 교수), 작성일: 2013년 8월 19일
[1] 스레브레니차(Srebrenica)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스르프스카 공화국의 동쪽 끝에 위치한 도시
[2] 스릅스카 공화국(Republika Srpska)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를 구성하고 있는 세르비아계 자치 공화국 공화국.국명인 스릅스카(Српска)는 세르비아인에 접미사 '-ска'가 붙은 형태의 단어로 '세르비아인의 땅'을 의미한다. 1992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가 유고슬라비아 연방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자 보스니아 내 세르비아인들이 반발하여 스릅스카 공화국을 결성해 보스니아 내전이 시작되었다
[3] 라트코 믈라디치(Ratko Mladić, 1943년 ~) : 유고슬라비아 및 스릅스카 공화국의 군인이으로 보스니아 내전 당시 스레브레니차 학살을 주도한 세르비아계 보스니아인.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라도반 카라지치와 함께 보스니아 내전의 최고위 전범 3명 중 한 명이다. 2011년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 근교에서 체포되어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