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르모필레 전투(Battle of Thermopylae)
이란
그리스
사건기간 : 기원전 480년 8~9월경, 조회수 : 301, 등록일 : 2022-10-29
기원전 490년 제1차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인 마라톤 전투에서 아테네에게 패배한 페르시아는 [2]다리우스 1세의 아들 [3]크세르크세크 1세가 앙갚음을 하고자 200만명의 대군을 이끌고 2차 그리스를 침공하였다. 크세르크세스의 병력은 200만 명이라고 전해지지만 현대 학자들은 20~30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연합군 구성은 300명의 스파르타 시민, 1000명의 스파르타 외부 자유민, 인근 도시국가에서 모여든 6,000여명으로 총 7,300명 정도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그리스 연합군을 이끈 아테네의 대표인 [4]테미스토클레스의 제안으로 테르모필레 계곡에서 결전하기로 결정한다. 동시에 [8]아르테미시온 해협에서 페르시아 함대를 막고자 했다.
[1]테르모필레 서쪽은 경사가 70도에 달하는 험준한 산들이 벽처럼 서 있고, 동쪽은 바다다. 산과 바다 사이 평지는 100m도 되지 않는다. 이 평지는 남쪽으로 내려오면 툭 튀어나온 언덕 때문에 폭이 아주 좁아진다. 동쪽 바다와 육지의 경계는 바위 절벽이다. 고대 그리스는 이 좁은 길에 방어벽을 쌓아 관문을 만들었다.
그런데도 페르시아군에는 [1]테르모필레를 거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1]테르모필레는 페르시아 대군이 그리스 중남부로 진격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이다. 그리스 내륙을 통과하려면 산지가 험하고 척박해 나아가야 할 길은 멀어지고 군대는 잘게 흩어졌다. 그리스군으로부터 매복 공격을 당할 만한 험지는 곳곳에 있고 식량과 군수품 보급이 어려웠다.
스파르타의 왕 [5]레오니다스가 지휘하는 스파르타군 300명을 필두로 하여 그리스 연합군 약 7000명이 페르시아군을 저지하기 위해 테르모필레에 진을 쳤다.
페르시아 왕 크세르크세스 1세는 [1]테르모필레에 도착한 뒤 극소수 병력으로 자신을 가로막고 있는 스파르타군을 보고 크세르크세스가 마지막으로 [5]레오니다스에게 전갈을 보낸다. "투항하여 무기를 양도하라!" 이에 눈도 깜짝 않고 [5]레오니다스가 한 유명한 응답이 이러하다. "와서 가져가보라!"
첫날 전투에서 그리스 연합군은 이점을 이용해서 페르시아의 공격을 막아낸다. 그리스 연합군의 승리는 테르모필레의 지형을 전투에 백배 이용한 덕이다.
이틀 째 전투가 지나고 에피알테스라는 지역 주민이 보상을 받을 욕심으로 그리스 연합군의 진열 뒤로 이어지는 우회로를 크세르크세크에게 누설하였다. 그날밤 크세르크세스의 2만여 병력은 테르모필레를 우회한다.
3일째 아침에 포위당했음을 알게 된 스파르타군의 충격은 컸다. 레오니다스는 그때까지 살아남은 그리스 동맹 도시국가들의 군병을 해산시키고 자발적으로 남은 700명의 [6]테스피아에(Thespiae)군, 그리고 400명의 [7]테바이(Thebai) 군과 함께, 300명의 스파르타 전사만을 데리고 죽을 때까지 싸운다.
이 전투에서 페르시아군의 병력 손실은 약 2만명, 그리스군의 사상자는 4,000여명으로 추산된다.
테르모필레 전투는 조국의 땅과 시민을 지키기 위한 희생정신을 보여주는 본보기였으며 애국정신의 상징이 되었다.
[1] 테르모필레(Thermopyles) : 그리스 중동부에 위치하는 지명. 카리모도로스 산과 마리아코스 만에 끼인 협소한 당으로 방어에 적합한 요충지
[2] 다리우스 1세(Darius I, 기원전 550년경~기원전 486년경) : 페르시아 제국 아케메네스 왕조의 제7대 황제(재위, 기원전 522년~기원전 486년)
[3] 크세르크세스 1세(Xerxes I, 기원전 519년경~기원전 465년) : 페르시아 제국 아케메네스 왕조의 제8대 황제(재위,기원전 486년~기원전 465년)
[4] 테미스토클레스(Themistocles, 기원전 524년~기원전 459년) : 그리스 아테네의 정치가이자 군인. 살라미스 해전 승리의 명장. 페르시아 전쟁 승리의 일등 공신
[5] 레오니다스 1세(Leonidas I,기원전 540년경~기원전 480년) : 기원전 489년–기원전 480년
[6] 테스피아이 또는 테스피아 (Thespiae) : 고대 그리스의 보이오티아에 있었던 도시국가.
[7] 테바이 또는 테베(Thebai) : 아테네의 북서쪽, 보이오티아 평원 동쪽에 위치한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
[8] 아르테미시온(Artemisium) : 그리스 에비아 북부에 있는 지명 중 하나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연합군 구성은 300명의 스파르타 시민, 1000명의 스파르타 외부 자유민, 인근 도시국가에서 모여든 6,000여명으로 총 7,300명 정도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그리스 연합군을 이끈 아테네의 대표인 [4]테미스토클레스의 제안으로 테르모필레 계곡에서 결전하기로 결정한다. 동시에 [8]아르테미시온 해협에서 페르시아 함대를 막고자 했다.
[1]테르모필레 서쪽은 경사가 70도에 달하는 험준한 산들이 벽처럼 서 있고, 동쪽은 바다다. 산과 바다 사이 평지는 100m도 되지 않는다. 이 평지는 남쪽으로 내려오면 툭 튀어나온 언덕 때문에 폭이 아주 좁아진다. 동쪽 바다와 육지의 경계는 바위 절벽이다. 고대 그리스는 이 좁은 길에 방어벽을 쌓아 관문을 만들었다.
그런데도 페르시아군에는 [1]테르모필레를 거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1]테르모필레는 페르시아 대군이 그리스 중남부로 진격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이다. 그리스 내륙을 통과하려면 산지가 험하고 척박해 나아가야 할 길은 멀어지고 군대는 잘게 흩어졌다. 그리스군으로부터 매복 공격을 당할 만한 험지는 곳곳에 있고 식량과 군수품 보급이 어려웠다.
스파르타의 왕 [5]레오니다스가 지휘하는 스파르타군 300명을 필두로 하여 그리스 연합군 약 7000명이 페르시아군을 저지하기 위해 테르모필레에 진을 쳤다.
페르시아 왕 크세르크세스 1세는 [1]테르모필레에 도착한 뒤 극소수 병력으로 자신을 가로막고 있는 스파르타군을 보고 크세르크세스가 마지막으로 [5]레오니다스에게 전갈을 보낸다. "투항하여 무기를 양도하라!" 이에 눈도 깜짝 않고 [5]레오니다스가 한 유명한 응답이 이러하다. "와서 가져가보라!"
첫날 전투에서 그리스 연합군은 이점을 이용해서 페르시아의 공격을 막아낸다. 그리스 연합군의 승리는 테르모필레의 지형을 전투에 백배 이용한 덕이다.
이틀 째 전투가 지나고 에피알테스라는 지역 주민이 보상을 받을 욕심으로 그리스 연합군의 진열 뒤로 이어지는 우회로를 크세르크세크에게 누설하였다. 그날밤 크세르크세스의 2만여 병력은 테르모필레를 우회한다.
3일째 아침에 포위당했음을 알게 된 스파르타군의 충격은 컸다. 레오니다스는 그때까지 살아남은 그리스 동맹 도시국가들의 군병을 해산시키고 자발적으로 남은 700명의 [6]테스피아에(Thespiae)군, 그리고 400명의 [7]테바이(Thebai) 군과 함께, 300명의 스파르타 전사만을 데리고 죽을 때까지 싸운다.
이 전투에서 페르시아군의 병력 손실은 약 2만명, 그리스군의 사상자는 4,000여명으로 추산된다.
테르모필레 전투는 조국의 땅과 시민을 지키기 위한 희생정신을 보여주는 본보기였으며 애국정신의 상징이 되었다.
[1] 테르모필레(Thermopyles) : 그리스 중동부에 위치하는 지명. 카리모도로스 산과 마리아코스 만에 끼인 협소한 당으로 방어에 적합한 요충지
[2] 다리우스 1세(Darius I, 기원전 550년경~기원전 486년경) : 페르시아 제국 아케메네스 왕조의 제7대 황제(재위, 기원전 522년~기원전 486년)
[3] 크세르크세스 1세(Xerxes I, 기원전 519년경~기원전 465년) : 페르시아 제국 아케메네스 왕조의 제8대 황제(재위,기원전 486년~기원전 465년)
[4] 테미스토클레스(Themistocles, 기원전 524년~기원전 459년) : 그리스 아테네의 정치가이자 군인. 살라미스 해전 승리의 명장. 페르시아 전쟁 승리의 일등 공신
[5] 레오니다스 1세(Leonidas I,기원전 540년경~기원전 480년) : 기원전 489년–기원전 480년
[6] 테스피아이 또는 테스피아 (Thespiae) : 고대 그리스의 보이오티아에 있었던 도시국가.
[7] 테바이 또는 테베(Thebai) : 아테네의 북서쪽, 보이오티아 평원 동쪽에 위치한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
[8] 아르테미시온(Artemisium) : 그리스 에비아 북부에 있는 지명 중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