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혁명(雨傘革命, Umbrella revolution)

홍콩 중국 사건기간 : 2014년 9월 28일~2014년 12월 15일, 조회수 : 399,   등록일 : 2022-06-08
우산혁명이라 불리는 홍콩 민주화 운동은 홍콩자치정부의 수반인 행정장관 선출 방식이 원인이 되었다.

중국, 1942년 당시 청나라는 아편전쟁 패전의 결과로 홍콩은 영국으로 양도되어 1997년까지 영국에 의해 통치되었다.
1997년 7월 홍콩은 다시 중국으로 반환되었고, 반환 당시 중국 [1]덩샤오핑은 홍콩의 경제권과 자치권을 50년간 보장하는 일국양제를 유지하기로 약속하였다.

홍콩의 수반인 행정장관은 '홍콩 기본법 제45조'에 따라 선거인단에 의한 간선제를 통해 선출되므로 상대적으로 친중파가 당선되기 용이한 구조였다. 홍콩의 야당 세력인 '민주파'는 직선제를 꾸준히 요구하여 2017년부터 직접선거를 통한 홍콩의 행정장관 선출을 약속받았다.

그러나 중국의 의회인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과반수 지지를 얻은 2~3인의 후보를 선정하고, 홍콩구민은 이들 중 1명을 직접선거로 선출하도록 하는 선거제도로 개편하게 된다. 이것은 직접선거를 하더라도 친중성향의 후보만 추천하게 되어 중국이 원하는 후보가 행정장관으로 선출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는 친중파 행정장관을 통해 일국양제에서 일국일제로 가는 단초가 되는 것이다. 홍콩구민들은 강하게 반발하여 대대적인 시위에 나서게 된다.

초기에는 홍콩사회 지식인 계층과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나 후에 중, 고등학생들과 일반 시민들까지 참여하여 홍콩 사회의 전체적인 시위로 확대되었다. 당시 행정장관인 [2]렁춘잉은 이 시위를 불법으로 규정하여 강경진압으로 나섰다. 시위 과정에서 홍콩 경찰들이 최루탄과 살수액으로 시위에 나선 시민들을 진압하려 하였으나, 시민들이 지참하고 나온 우산으로 이를 막아내는 모습이 매스컴에 의해 조명되면서 '우산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12월 15일까지 이어진 민주화시위는 자생력을 잃어가며 종료되었다. 시위대는 어떤 요구도 관철하지 못한 채 자진 해산했으며 지도부 또한 구속됐다.

우산혁명은 시위 정당성을 홍콩사회에 알리는 기회가 됐으며, 중국 중앙정부를 향한 대규모 집단 시위 학습효과를 통해 향후 홍콩구민이 재응집할 수 있는 기반을 마
련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와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1] 덩샤오핑(Deng Xiaoping, 1904년~1997년) : 중화인민공화국의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임기, 1978년 3월 8일~1983년 6월 22일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1981년 6월 28일~1989년 11월 7일)등 역임
[2] 렁충잉(Leung Chun-ying, 1954년~ ) : 홍콩의 제4대 행정장관(임기, 2012년 7월 1일~2017년 7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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