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독립전쟁(Greek War of Independence)

튀르키예 러시아 그리스 영국 프랑스 사건기간 : 1821년 3월 6일~1829년 9년 12일, 조회수 : 869,   등록일 : 2022-04-03
그리스는 비잔티움 제국(동로마 제국)이 멸망하면서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민족적·종교적·문화적으로 다른 민족에게 지배를 받는다는 데 대한 그리스인의 반감과 오스만 제국 투르크의 가중되는 여러 가지 압력이 독립에의 의지를 강하게 했다.

1821년 3월 6일 [1]필리케 헤타이리아의 지도자인 [2]알렉산드로스 입실란티스는 오스만 제국에 대항하기 위하여 [3]몰다비아에서 봉기를 일으켰다. 그러나 1821년 6월 19일 도나우 강 북편의 드러거샤니 전투(Battle of Dragashani)에서 오스만 제국에 대패했다. 그는 체포되었고 감금되었다.

알렉산드로스 입실란티스의 봉기에 호응하여 [4]펠로폰네소스 반도, 중앙 그리스, 마케도니아 등의 그리스 각 지역에서 연달아 봉기가 일어나면서 그리스 독립전쟁은 오히려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1821년 3월 25일 [4]펠로폰네소스 반도에서 본격적인 봉기가 시작되었다. 10월 5일 [5]데오도로스 콜로코트로니스가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주도인 [6]트리폴리를 함락시켰다. 이 때문에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봉기가 처음 일어난 3월 23일이 오늘날 그리스의 독립기념일로 지정되었다.

그리스 중부에서 오스만군은 알라마나 전투(Battle of Alamana, 1821년 4월 22일)에서 그리스군을 패배시켰다. 그리고 페로폰네소스 반도를 공격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그라이바 인 전투(Battle of Gravia Inn, 1821년 5월 8일)에서 일격을 당하면서 오스만군은 큰 손실을 입고 후퇴하였다. 이 전투는 그리스 독립의 결과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1821년의 8월 25일, 바실리카 전투(Battle of Vasilika)의 승리는 중부 그리스의 오스만 군대가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진입하는 것을 막았다.

1822년 1월 1일 공화제를 근간으로 하는 그리스 헌법을 채택하고 1월 13일 그리스 제1공화국이 출범되었다.

오스만 제국은 1822년부터 1824년까지 3차례에 걸쳐 공격을 하였지만 육지와 바다에서 그리스를 쉽게 제압하지 못했다. 이에 오스만 제국은 이집트 총독인 [7]무함마드 알리에게 지원을 요청하였다. 

그 사이 그리스 제1공화국은 내분에 휩싸였다. 중앙 그리스와 지역 정부간의 내전상태에 빠졌다. 1차, 2차 내전이 일어나는 등 그리스는 사분오열하고 있었다.

오스만의 도움을 수락한 [7]무함마드 알리는 아들 [8]이브라힘 파샤에게 원정대를 맡겨 그리스에 파병하였다. [8]이브라힘 파샤이집트 함대는 1825년 2월 24일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상륙하여 서부 지역을 장악하여 그리스군을 위기에 몰아넣었다.

유럽의 강대국들은 빈 체제의 원칙에 따라 그리스 독립전쟁을 불간섭의 원칙을 내세우며 관망의 자세를 취하고 있었으나 그리스가 불리하게 진행되자 그리스를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었다. 그리스 독립전쟁은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의 종교적인 대립이기도 하였다. 동방정교회의 그리스인과 이슬람교 무슬림 사이의 학살이 서로 자행되었다. 특히 당시에는 고대 그리스 문화를 동경하는 고전주의와 낭만주의가 유행했다.

전황은 계속하여 오스만-이집트군에게 유리하게 진행되어 오스만군은 1826년 4월 중앙 그리스의 [9]미솔링기가 함락시켰고 1826년 8월에 아테네 중심가를, 1827년 6월에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까지 점령했다.

영국과 러시아, 프랑스 3개국은 1827년 7월 6일 [10]런던조약을 체결하고 오스만 제국에게 그리스의 자치를 인정하도록 하는 중재안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오스만 제국은 이를 거부하고 결국 펠로폰네소스 반도 남서쪽의 나바리노 만에서 영국-프랑스-러시아의 유럽연합함대와 오스만-이집트 연합함대 사이에 해전이 벌어졌다. 일명 나바리노 해전(Battle of Navarino, 1827년 10월 20일)해전이다. 결과는 유럽 연합함대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으며 오스만-이집트 함대는 궤멸되었다. 이 해전으로 오스만 제국은 제해권을 완전히 상실하였으며 그리스 독립전쟁의 전환점으로 평가받는다

오스만 제국은 보복으로 러시아 상선의 [12]다르다넬스 해협을 통과를 거부하자 이를 명분으로 1828년 4월 오스만에 선전포고를 하였다. 제10차 러시아-투르크 전쟁으로 확대되었다. 오스만 제국의 주력부대가 러시아 국경지대인 왈라키아와 몰도비아로 옮기자 그 틈을 이용하여 그리스 독립군이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장악하였다. 
러시아는 초기에 오스만군에 고전하였으나 1829년 8월 [11]에디르네를 함락시켰다. 오스만 제국은 패배하였고 결과로 1829년 9월 14일 에디르아노플 조약(Treaty of Adrianople)을 체결하여 러시아의 지중해와 흑해를 연결하는 다르다넬스 해협에 대한 자유로운 항해권 획득, 오스만 제국내에서 러시아의 통상권 획득, 세르비아에 대한 자치를 보장받았으며 전쟁배상금의 지불이 완료될 때까지 러시아 군을 [13]왈라키아와 [3]몰다비아에 주둔하였다.

1828년 8월 30일 프랑스 군대가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상륙하면서 이집트 군마저 몰아내어 그리스 군은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넘어 본토의 아테네와 테베까지 회복하였다.

독립 전쟁에서 마지막으로 일어난 전투는 [14]아티키주의 북쪽에서 일어난 페트라 전투(1829년 8월 12일)였다. 이 전투는 그리스군이 정규군으로 승리한 최초의 전투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또한 오스만 제국과 그리스가 전장에서 처음으로 교섭한 날이기도 하다.

1828년 11월 런던 의정서(London Protocol)를 채택하여 영국, 러시아, 프랑스 3개국이 그리스를 오스만 제국하의 자치국을 성립되었다.

러시아-투르크 전쟁의 결과로 러시아가 발칸반도까지 영향력을 확대하자 위기 의식을 느낀 영국과 프랑스는 그리스가 러시아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독립시키기로 하여 1830년 2월 새로운 런던의정서를 통해 그리스는 독립국임이 선언되었다. 

1832년 7월에 '이스탄불 조약(Treaty of Istanbul)'을 통해 오스만 제국은 그리스의 독립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였다.

[1] 필리케 헤타이리아(Filiki Eteria) : 1814년 오데사(현, 우크라이나 오데사)에서 그리스 상인을 중심으로 결성된 비밀결사 
[2] 알렉산드로스 입실란티스(Alexander Ypsilantis, 1792년~1828년) : 1820년 헤타이리아 필리케의 지도자가 되어 1821년에 앞장서서 독립전쟁을 일으켰다. 이는 그리스 독립의 실마리가 되었다. 8년 뒤인 1829년에 오스만 제국에서 독립하였다
[3] 몰다비아(Moldavia) : 현재의 루마니아와 몰도바, 우크라이나 사이에 걸쳐 있었던 공국이며 1859년에 왈라키아 공국과 동군연합을 구성하였다
[4] 펠로폰네소스(Peloponnesian) 반도 : 그리스 남부의 반도. 펠로폰네소스주, 서그리스주, 아티키주 3개의 주로 구성되어 있다
[5] 테오도로스 콜로코트로니스(Theodoros Kolokotronis, 1770년~1843년) : 그리스의 장군이자 독립전쟁의 지도자
[6] 트리폴리(Tripoli) 또는 트리폴리스 : 그리스 펠로폰네소스 반도 중부에 위치한 하고 있으며 펠로폰네소스주의 주도
[7] 무함마드 알리(Muhammad Ali of Egypt, 1769년~1849년) :오스만 제국의 이집트 총독(재위 ,1805년 5월 17일 ~ 1848년 3월 2일). 이집트 마지막 왕조인 무함마드 알리 왕조의 창시자
[8] 이브라힘 파샤(Ibrahim Pasha of Egypt, 1789년~1848년) : 무함마드 알리의 아들. 이집트의 총독(재위, 1848년 3월 2일~1848년 11월 10일) 
[9] 메솔롱기(Missolonghi) : 그리스 서부에 위치한 도시. 그리스 독립 전쟁 당시 많은 그리스인들이 오스만 제국에 대한 저항 운동을 벌였던 곳. 1824년에 그리스 독립 전쟁에 참전한 영국의 시인 조지 고든 바이런이 이 곳에서 사망한 것으로 유명하다. 오늘날 메솔롱기에는 조지 고든 바이런의 동상과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10] 런던조약(Treaty of London) : 영국, 프랑스, 러시아 제국이 1827년 7월 6일 체결한 조약. 그리스와 오스만 제국에게 1821년 3월 6일 그리스의 독립으로 지속되었던 전쟁을 중단하는 것을 요구했다
[11] 에디르네(Edirne) : 터키의 가장 서쪽에 있는 도시. 그리스와 불가리아 국경근처의 도시로 터키의 에디르네 주의 주도. 영어 아드리아노플로 알려져 있다
[12] 다르다넬스 해협(Dardanelles Strait) : 에게 해와 내해인 마르마라 해를 잇는 해협. 보스포루스 해협과 함께 터키를 아시아와 유럽으로 나누는 경계선 역할을 한다
[13] 왈라키아(Wallachia) : 오스만 제국의 제후국. 1859년에 몰다비아 공국과 동군연합이 이루어졌으며, 1861년에 국호를 루마니아 공국으로 바꾸었다. 이후 루마니아 왕국이 되었다. 현재 루마니아 남부 일대
[14] 아티키주(Attica) : 에게 해와 접한 반도 지대로서 그리스의 수도인 아테네를 포함한 그리스의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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