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회담(Congress of Berlin)

포르투갈 영국 프랑스 독일 콩고민주공화국 벨기에 사건기간 : 1884년 11월 15일~1885년 2월 26일, 조회수 : 832,   등록일 : 2022-03-25
1876년 벨기에 국왕 [1]레오폴 2세는 미국의 유명한 탐험가 [2]헨리 모턴 스탠리에게 충분한 재정적 지원을 해주며 콩고 탐험을 의뢰했다. 헨리 스탠리의 탐험 결과 벨기에가 콩고 지역에 진출하게 되자, 아프리카 전역에 산재한 풍부한 지하자원을 확보하기 위하여 유럽 주요 국가들은 너나할것 없이 아프리카 식민지화에 발벗고 나섰다.

당시 영국은 이집트 카이로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케이프타운 및 인도 캘커타를 잇는 이른바 3C정책과 아프리카 종단정책을 추구했다. 프랑스는 모로코, 알제리를 거점으로 해서 동쪽으로 점령해 나가는 아프리카 횡단정책을 추구했다. 독일은 베를린,비잔티움,바그다드를 잇는 3B정책으로 중부유럽과 발칸 지역을 넘어서서 서아시아와 아프리카로까지 세력범위를 확장시키려 했다. 여기에 벨기에, 포르투갈도 아프리카 식민지화에 나섰다.

이리하여 중동에서는 독일의 3B정책과 영국의 3C정책이 대립했으며 아프리카에서는 영국의 종단정책과 프랑스의 횡단정책이 부딪쳤다. 또 모로코에서는 독일과 프랑스가 부딪쳤다. 유럽열강들의 식민지 정책은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졌다.

벨기에의 [1]레오폴드 2세와 독일의 [3]비스마르크는 베를린 회의를 주도하여 콩고분지를 중심으로 아프리카 분할 문제를 두고 유럽 각국은 협의를 하였다. 이 회의에서 콩고는 자유무역국(중립국)으로 선포하고 벨기에의 레오폴드 2세가 개인자격으로 통치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벨기에는 콩고를 자신들의 식민지로 할 수 있었다.

유럽열강들의 식민지화로 1914년 무렵에는 에티오피아와 라이베리아를 제외한 아프리카 모든 지역이 유럽의 식민지로 분할되었다.

이렇게 유럽열강들은 자국의 이익에 따라 원주민들의 문화적, 언어적 경계를 무시하고 만들어진 일직선에 가까운 국경선은 130년 지난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1] 레오폴 2세(Leopold II of Belgium, 1835년~1909년) : 벨기에왕국의 2대 국왕(재외 1865년~1909년). 아프리카 콩고 식민지를  사유지처럼 사용하면서 수천만 명의 주민을 노예로 만들어 착취하고 집단살해하였다
[2] 헨리 모턴 스탠리(Henry Morton Stanley, 1841년~1904년) : 영국의 탐험가이자 언론인. 아프리카 탐험과 데이비드 리빙스턴을 구조한 것으로 유명하다. 1877년부터 1884년까지 벨기에 국왕 레오폴 2세의 후원을 얻어 콩고 지방을 탐험하였다
[3] 오토 폰 비스마르크(Otto von Bismarck, 1815년~1898년) : 프로이센 수상(재임 : 1862~1890년). 통일독일제국 수상(재임 :1871년~189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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