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해협 해전

대한민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건기간 : 1950년 6월 25일~1950년 6월 26일, 조회수 : 411,   등록일 : 2022-01-27
대한민국 해군의 유일한 전투함인 백두산함이 출동하여 대한해협에서 북한군 제766독립보병연대 및 제945육전부대 병력을 싣고 동해안을 거쳐 부산으로 침투하던 수송선을 침몰시킨 해전이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될 때 해군은 보유 함정 수는 105척이었지만 대부분 장비가 노후해 작전 가능한 배는 절반에 지나지 않았다. 
그때까지 무장을 갖춘 전투용 함정은 단 한 척도 없었다. 1949년 6월, 해군참모총장 [1]손원일 제독은 전투용 함정을 구입하기 위하여 장교부터 사병까지 모금운동을 벌였다. 이렇게 해군장병의 성금과 정부의 지원금 6만 달러를 모았다.

1949년 10월 7일, 미국 뉴욕주 롱아일랜드의 킹스포인트에 있는 해양대학교에서 [2]화이트헤드 소위호라는 실습선을 1만 8천달러에 구입하였다.
뉴욕의 미 해안경비대의 부두로 옮겨진 화이트헤드소위호는 12월 26일 함미에 태극기를 게양하고 백두산(PC-701)함으로 명명하였다.
당시 화이트헤드 소위호는 퇴역한지 오래되었고 몹시 낡아 운용하기에는 많은 과정이 필요했다. 승조원들은 배에서 숙식하며 손수 수리하여 1950년 1월 24일 중간기착지인 하와이에 도착한다. 3월에 3인치(76mm) 주포를 장착하고 포탄 100발과 기름을 구입하여 1950년 4월 10일 해군기지인 경남 진해항에 입항했다.
  
백두산(PC-701)함은 해군장병들과 국민들의 성금으로 미국에서 구매한 함정으로서 대한민국 해군 최초의 전투함이자 당시 유일한 전투함이었다.

손원일 제독은 나머지 돈으로 백두산함과 동형함을 한 척당 1만 2천 달러에 세척을 더 구입하였으며 이것이 각각 PC-702 금강산함, PC-703 삼각산함, PC-704 지리산함이었다.

6월 25일 오후 8시 경 연기를 내며 오고 있는 미식별 선박이 발견되었다. 국기와 선명도 표시되지 않은 선박의 갑판 뒤쪽에는 중기관총 2정과 수병복을 착용한 수많은 무장 병력이 승선해 있었다. 그들이 착용하고 있는 북한 정규해군 및 육전대의 복장으로 인해 북한의 선박임을 확신한 백두산함장은 적선으로부터 이탈하여 "확인된 선박은 북한의 1,000톤급 수송함정이며, 약 600명의 북한군이 승선한 채 남하 중에 있음. 상륙을 기도하는 것으로 판단됨"이라고 해군본부에 타전 보고하였다.

해군본부는 백두산함에서 보고한 상황을 경무대에 있는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하고 국방부의 지시를 기다렸다. 국방부 장관은 "백두산함이 접촉 중인 선박이 적 공산군 함정으로 판단되면 쏘라"고 지시했다. 

백두산함은 명령에 따라 위협사격을 개시했다. 그러자 적선은 선수갑판의 주포와 중기관총으로 대응사격을 해왔다.백두산함은 적선을 향해 주포를 발사했다. 이때 백두산함의 뒤를 따라 진해를 출발한 [3]소해정 고성정(YMS-518)이 현장에 도착하며 후방에서 적선에 대해 포를 발사하였다. 드디어 오전 1시경 적수송선은 포를 맞고 침몰하였다. 북한군 약 600여 명 전원이 사망하였다(추정).

이 해전에서 대한민국 해군의 김종식 소위(병기관장), 김춘배 [4]삼등병조(주포 전환수)가 부상당했고 전병익 일등병조(포탄 장전수, 1929년생), 김창학 이등병조(조타수, 1929년생)이 전사하였다.

백두산의 대한해협 전투승전은 거의 무방비상태로 놓여있던 부산항의 안전을 확보한 전략적인 사건이었다. 이 대한해협전투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의의를 갖는다. 
첫째, 미군이 참전하기 이전 우리 해군이 단독으로 적 선박을 격침시켰다. 
둘째, 부산으로 향하는 군수물자와 증원 병력을 위한 해상교통로의 안전을 확보했다. 
셋째, 남해안 상륙을 기도한 적의 게릴라 부대를 격멸하여 후방교란을 미연에 방지하였다. 즉 한국전쟁의 발발 초기 후방으로 침투하는 북한군을 격퇴함으로써 부산 및 남해안의 안전을 확보한 의미있는 전투였다.

1959년 7월 1일 백두산함은 함체의 부식과 노후화로 인하여 퇴역하였다. 함체는 폐선 처리되어 해체되었으나 중앙의 마스트(돛대)만이 1965년 해군사관학교에 보존되어 전시되어 있으며 2010년 6월 25일 대한민국의 국가등록문화재 제463호로 지정되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나무위키

[1] 손원일(1909년~1980년) : 대한민국 해군 초대 참모총장, 제5대 국방부 장관, 초대 서독 주재 대한민국 대사등을 역임
[2] 화이트헤드 소위(Ensign Whitehead)호 : 미국의 PC-461급 구잠함(잠수함을 탐지하고 공격할 능력을 갖춘 대잠 함정)으로 원래 함명은 USS PC-823이다. 서대서양에 투입되어 해상 공중의 구조임무에 사용되었으며 미국 해군에서 퇴역한 후 화이트헤드 소위(Ensign Whitehead)라는 이름으로 실습선으로 사용되었다
[3] 소해정 : 1947년부터 1948년부터 미군정으로부터 18척을 인수 한 YMS-1급 목제 소해정. 인수후 함의 주무장 자체가 없었던 함정에 대해 37mm 대전차포와 20mm 기관포가 탑재되었다. 원래 소해정이란 기뢰를 제거하여 해상 안전을 도모하는 작은 군함을 말한다
[4] 병조 : 대한민국 해군과 해병대는 1962년까지는 병조장(상사), 일등병조(상사와 중사 사이), 이등병조(중사와 하사 사이), 삼등병조(하사)란 호칭을 썼다

Copyright 2020 TMSTORY.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