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남북전쟁은 1861년 4월에 일어났다.
1862년 7월 22일 링컨 대통령은 그의 각료들에게 역사적인 노예 해방 선언의 초안을 낭독해 보였으며 9월22일 노예해방 선언의 제 2초안을 내각에게 낭독했다. 몇 가지 수정을 가하여 이 선언문은 예비선언으로 발표되었다.
정식 노예해방 선언문은 1863년 1월 1일에 발표되었다.
*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 1809년~1865년) : 미국의 16대 대통령. 임기 :1861년 ~1865년
* 윌리엄 스워드(William Seward) : 미국 국무장관이며 1867년 러시아로부터 알래스카를 매입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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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2년에서 1890년 사이에 북아메리카 대륙에서 벌어졌던 미국 백인 정착민과 북아메리카 원주민인 인디언 사이의 정복 전쟁을 통틀어 일컫는 말
중앙아시아의 패권을 둘러싸고 영국과 러시아가 거의 한 세기 동안 벌인 갈등과 경쟁을 벌어졌다. 이를 그레이트 게임이라 한다.
인도를 차지함으로서 제국주의 경쟁의 선봉에 선 영국과 아시아로의 영토 확장을 꾀한 러시아 두 제국은 러시아와 인도 사이에 있는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필연적으로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그레이트 게임은 1813년의 러시아와 페르시아간 [1]굴리스탄 조약 조약부터 시작하여 1907년의 [2]영러 협상으로 끝을 맺는다.
조선의 거문도 사건이나 영일동맹, 러일전쟁, 한일합방 역시 그레이트 게임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1] 굴리스탄 조약(Gulistan) : 1813년 이란의 카자르 왕조(Qajar dynasty, 페르시아)와 러시아가 전쟁후 아제르바이잔의 굴리스탄에서 체결한 조약. 전쟁에서 승리한 러시아는 이란의 카프카스 지역(조지아ㆍ아제르바이잔ㆍ다게스탄등)을 할양받았다
[2] 영러 협상 : 1907년 영국과 러시아가 상트페테르부르크(Saint Petersburg,러시아의 북서쪽에 있는 연방시)에서 페르시아, 아프가니스탄, 위구르, 티베트와 같은 중부 아시아에서의 분쟁을 원만하게 해결한 협상이다
태평천국운동 청나라 말기의 사회적·경제적 혼란과 외세의 침략으로 중화제국의 질서가 붕괴되어 가는 동안에 일어난 대규모 농민 반란이자 종교 혁명 운동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운동의 지도자인 [1]홍수전은 [2]광시성 출신의 몰락한 유생으로 과거 시험에 여러 차례 낙방한 후 기독교 서적을 접하고 자신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중국에서 태어난 메시아라는 교리를 세우고 전파하였다. 그는 서양 기독교의 사상과 중국 민간 신앙을 혼합하여 새로운 종교를 창시하고 평등하고 이상적인 사회를 건설하고자 하였다.
1851년, 홍수전은 자신의 신념과 종교적 열망을 바탕으로 농민과 하층민, 소수민족의 지지를 받아 태평천국이라는 국가를 선포하고 스스로 천왕에 올랐다. 그는 청조의 통치를 부정하며 새 질서를 세우고자 하였다. 태평천국은 남부 지방을 중심으로 빠르게 세력을 확장하였고 1853년에는 중국의 중심 도시인 [3]난징을 점령하여 수도로 삼았다.
태평천국은 재산의 공동 소유, 남녀평등, 신분제 폐지, 전족 금지 등의 급진적인 개혁을 추진하는 등 근대화 방안을 제시하였다. 이는 많은 농민과 억압받는 하층민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배경이 되었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권력 다툼, 통치 경험 부족, 과도한 종교 중심주의 등으로 인해 점차 혼란이 커졌고 외부적으로는 제2차 아편전쟁의 결과로 베이징 조약이 체결된 후 청나라군과 서양 열강(영국, 프랑스)에 패퇴하였다. 결국 [5]중국번의 [4]상군에 희하여 난징이 함락되고 홍수전이 사망하면서 14년간의 태평천국운동은 종결되었다.
이 운동은 청나라 체제의 취약성을 드러내고 이후 양무운동과 변법자강운동, 신해혁명 등의 근대화에 영향을 주었다.
[1] 홍수전(1814년~1864) : 청나라 내에서 기독교에 기초한 종교국가인 태평천국(太平天國)을 건국하여 청나라 조정과 대립하였다 [2] 광시성 : 현재의 광시 좡족 자치구로 성도는 난닝시이다. 1958년 이전에는 광시성이었지만 1958년에 좡족 자치구로 승격되었다 [3] 난징(Nanjing) : 중화민국(대만, 지도자 쑨원의 중국 국민당 정부의 수도)의 명목상 수도이자 현재 중화인민공화국의 장쑤성의 성도 [4] 상군 : 청나라 말기 후난성 지방군의 호칭. 후난성의 상향출신의 증국번이 향용을 조직했으며 상군은 향용조식중 하나이다 [5] 증국번(1811년~1872년) : 청나라 말기의 군인이자 정치가,학자로서 약체화된 청나라 조정의 군대를 대신해 상군을 조직하여 태평천국의 난을 평정했고, 양무 운동에도 큰역할을 하였으며 이홍장, 좌종당 등 청나라 말기의 많은 인재들을 길러냈다
청나라는 두 차례의 아편전쟁에서 무기력하게 패하고 태평천국운동을 겪은 뒤 국제사회의 변화에 눈을 뜨면서 서구 열강에 대응하기 위하여 황폐한 산업과 사회 질서를 회복하고, 나아가서는 서양의 문물과 제도를 받아들여서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자 노력하였다.
이 시기에 군수 공장과 조선소(북양함대, 남양함대, 복건함대를 창설), 제철소, 방직 공장등을 만들었다. 근대 기술을 습득시키기 위한 유학생을 외국에 파견하고, 서양의 서적을 번역하였으며, 근대적인 학교도 세웠다. 이렇게 서양의 문물과 기술을 수용하는 데 힘썼다고 하여 [1]양무운동이라고 한다.
양무운동은 태평천국운동, 신유정변을 거치면서 한족인 [2]증국번, [3]이홍장 등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이들 세력들이 주도하였다.
이시기의 권력 중심은 [4]서태후에게 집중되어 있었으며 [5]공친왕이 양무정책 추진의 중심인물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양무운동은 반대세력에 의해 비판과 견제를 받아왔다. 관리의 기업통제에서 야기되는 부패와 비능률, 전통적인 경제구조의 잔존, 운동 추진 주체가 지역적인 한계를 뛰어넘지 못한점등으로 근본적으로 개혁하지 못하고 실패하였다. 이는 곧 청불전쟁과 청일전쟁에서 패배하는 아픔을 겪게된다.
[1] 양무(洋務) : 청나라와 서양 여러나라와의 관계, 교류 등을 일컫는 말
[2] 증국번(장꿔판, 1811년~1872년) : 청나라 말기의 군인이자 정치가,학자로서 약체화된 청나라 조정의 군대를 대신해 상군을 조직하여 태평천국의 난을 평정했고, 양무운동에도 큰역할을 하였으며 이홍장, 좌종당 등 청나라 말기의 많은 인재들을 길러냈다
[3] 이홍장(리훙장, 1823년~1901년) : 청나라 말기의 한족계 출신으로 중국번의 막료로 관리생활을 시작하여 북양대신의 자리에 오르면서 청나라 대외정책의 실질적인 결정권자가 되었다. 태평천국운동을 진압하였으며 청나라 부국강병을 위한 양무운동등을 주도하였다.
[4] 서태후(자희황태후,1836년~1908년) : 제9대 황제인 함풍제의 후궁이자 제10대 황제 동치제의 어머니이며, 제11대 황제 광서제의 큰어머니. 6세의 어린아들(동치제)이 황제에 오르면서 섭정정치로 집권을 하게된다. 이후 청나라 말기는 서태후의 시대라고 평하기도 한다. 처소가 자금성의 서쪽에 위치하여 서태후라 불린다
[5] 공친왕(1833년~1898년) : 함풍제(청나라 제9대 황제)의 이복 동생.혁흔. 청나라 제8대 황제인 도광제의 6남이며 신유정변으로 권력의 중심에 서게된다.
미국 남북 전쟁(American Civil War)은 미국에서 아메리카 합중국과 아메리카 연합국 사이에서 일어난 내전이다.
1861년 4월, 노예제를 지지하던 남부주들이 모여 남부연합을 형성하며 미합중국으로부터의 분리를 선언한 후 아메리카 남부 연합군이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 항의 섬터 요새 포격을 시작으로 1865년까지 4년 동안 벌어진 전쟁이다.
전쟁 결과 남부연합군이 패했고 미국 전역에서 노예제를 폐지한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1863년 11월 19일 게티즈버그 전투의 격전지였던 펜실베이니아주 게티즈버그에서 열린 국립묘지 봉헌식에서 링컨 대통령이 한 연설이다.
272 단어에 3분여의 짧은 연설이지만,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연설이자 가장 많이 인용된 연설문이 되었다.
Four score and seven years ago our fathers brought forth on this continent a new nation, conceived in Liberty, and dedicated to the proposition that all men are created equal.
Now we are engaged in a great civil war, testing whether that nation, or any nation, so conceived and so dedicated, can long endure. We are met on a great battle-field of that war. We have come to dedicate a portion of that field, as a final resting place for those who here gave their lives that that nation might live. It is altogether fitting and proper that we should do this. But, in a larger sense, we can not dedicate - we can not consecrate - we can not hallow - this ground.
The brave men, living and dead, who struggled here, have consecrated it, far above our poor power to add or detract. The world will little note, nor long remember what we say here, but it can never forget what they did here. It is for us the living, rather, to be dedicated here to the unfinished work which they who fought here have thus far so nobly advanced. It is rather for us to be here dedicated to the great task remaining before us - that from these honored dead we take increased devotion to that cause for which they gave the last full measure of devotion - that we here highly resolve that these dead shall not have died in vain - that this nation, under God, shall have a new birth of freedom - and that 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shall not perish from the earth.
지금으로부터 여든하고도 일곱 해 전 우리의 선조들은 이 대륙에 자유의 정신으로 잉태되고 만인이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신념이 바쳐진 새로운 나라를 세웠습니다.
지금 우리는 바로 그 나라가, 아니 이러한 정신과 신념으로 잉태되고 헌신하는 어느 나라이든지, 과연 오래도록 굳건할 수 있는가 하는 시험대인 거대한 내전에 휩싸여 있습니다.
우리는 바로 그 전쟁의 거대한 싸움터인 이 곳에 모여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에 온 것은 바로 그 싸움터의 일부를, 이 곳에서 자신의 삶을 바쳐 바로 그 나라를 살리고자 한 영령들의 마지막 안식처로 봉헌하기 위함입니다.
리의 이 헌정은 지극히 마땅하고 옳습니다. 그러나 더 큰 의미에서 보자면, 우리는 이 땅을 헌정할 수도, 축성할 수도, 신성화 할 수도 없습니다.
여기서 싸웠던 용맹한 전사자와 생존 용사들이 이미 이 곳을 신성한 땅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