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마이단(Euromaidan)

우크라이나 사건기간 : 2013년 11월 21일~2014년 2월 22일, 조회수 : 692,   등록일 : 2021-12-31
유로마이단은 당시 빅토르 야누코비치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친러 정책에 반대해 2013년 11월 21일에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의 마이단 광장에서 시작된 대규모 시위이며 우크라이나 정부의 강경진압에도 불구하고 결국 정권을 몰아내고 새로운 친서방 정권을 수립한 사건이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유럽연합(EU) 가입 및 경제협력 진행을 포기하자 이를 지지하는 시민들이 우크라이나 경제가 러시아에 예속당할 것이라 주장하며 크게 반발해 대규모 시위에 나섰다.

2013년 11월 21일 2천여명의 시민들이 키예프 마이단 광장에 모이고 소셜 네크워크를 통하여 시위대를 모집하였다. 다음날 유럽연합(EU) 가입 교섭을 잠정 중단한 정부의 결정을 항의하기 위해 반정부 및 친서방 시위대가 모여 시위를 열었다.
11월 24일에는 독립광장에 모인 5만명에서 10만명의 시위대가 거대한 행진을 진행했고 경찰은 이들을 해산시키기 위해 최루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11월 29일에 우크라이나 정부가 유럽연합 협정에 서명하지 않은 것이 확인되자 시위대는 만 명으로 늘어났고 무장한 경찰은 시위대 뿐 아니라 주변의 민간인들도 무력으로 진압했다.

12월 1일 시위대 봉기는 전날 경찰의 폭력적인 진압에 대한 항의로 일어난 키예프 여러 지역의 동시다발적 봉기였으며 12월 1일은 시위대가 정부 청사를 처음으로 점령하게 된 날이기도 했다.

2014년 2월 18일 이후 시위는 전국적인 봉기로 확대되었으며 결국 사태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시위대를 주도한 야권과 정부간 협상도 성과 없이 결렬되어 2014년 2월 19일 이후 양측의 충돌은 본격적인 무력 동원과 유혈 충돌로 확대되었다.
2월 23일 시위대가 키예프를 장악하자 빅토르 야누코비치 태통령은 피난길에 올랐으며 우크라이나 의회는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을 탄핵했다. 그리고 올렉산드르 투르치노프 신임의장이 대통령 권한을 대행하도록 결정했다. 의회는 5월 25일에 조기 대선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이렇게 빅토르 야누코비치 정권이 물러나고 친서방 세력이 급부상하자 우크라이나는 친유럽 성향의 서부와 친러시아 성향의 동부로 나뉘어 서로 합법 정부를 칭하는 이중권력 상태에 놓였다.

유로마이단 사건은 친서방 정권에 반대하는 우크라이나 크림 반도와 러시아의 국경을 맞대고 있는 동부의 친러시아계 주민들이 분리독립을 주장해 2014년 크림반도 위기와 내전인 돈바스 전쟁이 일어난 계기가 되었다. 돈바스 전쟁은 현재도 진행중이다.

* 마이단광장 : 페르시아어 '메이단'에서 온 단어로 광장을 뜻한다
* 빅토르 야누코비치(Viktor Yanukovych, 1950년~현존) : 우크라이나의 4대 대통령(재위: 2010년 2월 25일~2014년 2월 22일). 5년 임기중 탄핵됨
* 키예프(Kyiv) : 우크라이나의 수도
* 크림반도(Crimean Peninsula) : 흑해 북부연안에 위치한 반도이며 2014년 크림 위기이후 러시아가 실효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인정하지 않고있다
* 돈바스 전쟁(War in Donbas) :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에서 2014년 4월부터 시작되어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천러 성향의 반군과의 전쟁
* 올렉산드르 투르치노프(Oleksandr Turchynov, 1964년 3월 31일~) : 현재 우크라이나 국회의장이며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탄핵되면서 임시 대통령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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