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포탄의거(黃浦灘義擧)
대한민국
일본
사건기간 : 1922년 3월 28일, 조회수 : 896, 등록일 : 2021-09-22
1922년 3월 28일 중국 상하이 [1]황포탄 부두에서 일본군 대장 다나카 기이치 저격 사건이 일어났다.
독립운동단체인 [6]의열단은 1922년 3월 일본 육군 대장 [2]다나카 기이치가 배를 타고 필리핀을 거쳐 상하이로 온다는 소식을 입수했다. 의열단원 오성륜, 김익상, 이종암은 다나카 기이치를 암살 임무를 부여받았다.
1922년 3월 28일 상하이 세관 부두에 김익상과 오성륜이 [2]다나카 기이치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나카 기이치가 하선하자 [4]오성륜이 먼저 권총으로 사격하였으나 그의 앞에 있던 영국 여성이 총에 맞아 실패했다. 총소리에 놀란 다나카가 황급히 자동차로 달려갈 때 [3]김익상이 권총을 쏘았으나 다나카의 모자에 맞으면서 빗나갔다. 마지막으로 군중속에 숨어있던 [5]이종암이 다나카가 탄 자동차를 향해 폭탄을 던졌으나 폭탄은 자동차 바퀴 밑으로 굴러가서 터지지 않았다. 이를 지켜보던 영국 군인이 폭탄을 물속으로 차버려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오성륜은 현장에서 체포되었으며 김익상은 추격하던 중국 경찰에 의해 붙잡혔다. 이종암은 오성륜과 김익상이 경찰의 주의를 분산시키는 틈을 타서 무사히 피신하였다.
체포된 김익상과 오성륜은 상하이 공동조사계 경무청에서 취조를 받고 일본 총영사관 경찰서에 인계했다. 두 사람은 일본 총영사관 구치소에 분리 수감되어 고문을 받았으나 굴하지 않았다.
오성륜은 나가사키로 압송되기전에 5월 탈옥하였으나 김익상은 나가사키 지방재판소로 압송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20년 징역으로 감형되어 1943년에 출소하여 귀국하였다. 귀국하고 얼마후 일본경찰에 연행된 후 소식이 끊겨 생사를 알 수 없었다. 아마도 일제에 암살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황포탄 의거는 암살 성공으로 이어지지 못했지만 상하이와 국제 언론을 통해 전 세계에 보도되었다. 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6]의열단이 단순한 선언이나 외교 활동을 넘어 실질적인 무장 투쟁을 전개하고 있음을 국제사회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1] 황포탄 : 당시 공공 조계지역. 19세기 후반과 20세기초 상하이 상업의 중심지로 황푸 강변을 따라 주요 선착장이 위치해있다
[2] 다나카 기이치(1864년 7월 25일 ~ 1929년 9월 29일) : 일본 육군 군인. 1920년 간도참변의 기획자. 일본 제26대 내각총리대신(재임, 1927년 4월 20일 ~ 1929년 7월 2일)
[3] 김익상(金益相, 1895년 6월 25일~1941년 8월) :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독립운동가. 조선총독부 폭탄 투척(1921년), 다나카 기이치 암살사건 등과 관련된 독립운동가. 21년의 옥고를 치루고 귀향하였으나 일본경찰에 연행된 후 행방이 묘연해져 일제에 암살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1962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받았다.
[4] 오성륜(吳成崙, 1898년 ~ 1947년) :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가로 활동하다 변절한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1947년 네이멍구 자치구에서 병사하였다
[5] 이종암(1896년 1월 12일 ~ 1930년 5월 28일) : 일제강점기 대구은행 출납계 주임. 의열단 부단장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1930년 5월 28일을 기하여 대구형무소에서 병으로 옥사하였다
[6] 의열단(義烈團) : 1919년 11월 김원봉을 중심으로 중국 지린성에서 결성된 독립운동단체. 1935년 공식 해체되었다
독립운동단체인 [6]의열단은 1922년 3월 일본 육군 대장 [2]다나카 기이치가 배를 타고 필리핀을 거쳐 상하이로 온다는 소식을 입수했다. 의열단원 오성륜, 김익상, 이종암은 다나카 기이치를 암살 임무를 부여받았다.
1922년 3월 28일 상하이 세관 부두에 김익상과 오성륜이 [2]다나카 기이치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나카 기이치가 하선하자 [4]오성륜이 먼저 권총으로 사격하였으나 그의 앞에 있던 영국 여성이 총에 맞아 실패했다. 총소리에 놀란 다나카가 황급히 자동차로 달려갈 때 [3]김익상이 권총을 쏘았으나 다나카의 모자에 맞으면서 빗나갔다. 마지막으로 군중속에 숨어있던 [5]이종암이 다나카가 탄 자동차를 향해 폭탄을 던졌으나 폭탄은 자동차 바퀴 밑으로 굴러가서 터지지 않았다. 이를 지켜보던 영국 군인이 폭탄을 물속으로 차버려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오성륜은 현장에서 체포되었으며 김익상은 추격하던 중국 경찰에 의해 붙잡혔다. 이종암은 오성륜과 김익상이 경찰의 주의를 분산시키는 틈을 타서 무사히 피신하였다.
체포된 김익상과 오성륜은 상하이 공동조사계 경무청에서 취조를 받고 일본 총영사관 경찰서에 인계했다. 두 사람은 일본 총영사관 구치소에 분리 수감되어 고문을 받았으나 굴하지 않았다.
오성륜은 나가사키로 압송되기전에 5월 탈옥하였으나 김익상은 나가사키 지방재판소로 압송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20년 징역으로 감형되어 1943년에 출소하여 귀국하였다. 귀국하고 얼마후 일본경찰에 연행된 후 소식이 끊겨 생사를 알 수 없었다. 아마도 일제에 암살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황포탄 의거는 암살 성공으로 이어지지 못했지만 상하이와 국제 언론을 통해 전 세계에 보도되었다. 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6]의열단이 단순한 선언이나 외교 활동을 넘어 실질적인 무장 투쟁을 전개하고 있음을 국제사회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1] 황포탄 : 당시 공공 조계지역. 19세기 후반과 20세기초 상하이 상업의 중심지로 황푸 강변을 따라 주요 선착장이 위치해있다
[2] 다나카 기이치(1864년 7월 25일 ~ 1929년 9월 29일) : 일본 육군 군인. 1920년 간도참변의 기획자. 일본 제26대 내각총리대신(재임, 1927년 4월 20일 ~ 1929년 7월 2일)
[3] 김익상(金益相, 1895년 6월 25일~1941년 8월) :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독립운동가. 조선총독부 폭탄 투척(1921년), 다나카 기이치 암살사건 등과 관련된 독립운동가. 21년의 옥고를 치루고 귀향하였으나 일본경찰에 연행된 후 행방이 묘연해져 일제에 암살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1962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받았다.
[4] 오성륜(吳成崙, 1898년 ~ 1947년) :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가로 활동하다 변절한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1947년 네이멍구 자치구에서 병사하였다
[5] 이종암(1896년 1월 12일 ~ 1930년 5월 28일) : 일제강점기 대구은행 출납계 주임. 의열단 부단장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1930년 5월 28일을 기하여 대구형무소에서 병으로 옥사하였다
[6] 의열단(義烈團) : 1919년 11월 김원봉을 중심으로 중국 지린성에서 결성된 독립운동단체. 1935년 공식 해체되었다